소설리스트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49화 (49/653)

마약과의 전쟁

고려에는 선교승이라는 자들이 있었다.

해심에게 교육을 받은 승려들 중 모험심이 강하고 용감한 승려들을 칭하는 말인데, 기독교의 선교사와 같이 스스로 오지에 가 교세를 확장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매우 열정적이고 대단한 승려들이었으나 적지않게 죽기도 했다.

자연은 친절하지 않았고, 원주민들은 그보다 더 흉폭했으니.

하지만 그래도 종교는 서서히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만큼이나 불교 네트워크의 정점, 보덕사에는 정보가 취합되었다.

종교가 황실의 아래에 속한 이상 관의 양지 정보망이라 볼 수도 있었다.

서쪽 한 원주민의 영역으로 나아가 불교를 전파하던 승려가 본단에 보고를 올렸고, 그것은 추밀원에서 정리되어 자신의 책상으로 올라왔다.

별 내용이 없었으면 이곳까지 올라오지 않았겠지.

밥을 먹고 추밀원의 수장 승현이 가지고 온 보고서를 읽다 보니 갑자기 속이 더부룩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코카나무라.

원주민들이 껌처럼 씹거나 차로 타마시는 식물의 잎이다.

어딘가 익숙한 이름은 시원하고 달콤하며 톡 쏘는 검은 음료를 생각나게 한다.

사실 맞는 말이다.

코카잎과 콜라나무 껍질에서 추출해 만든 음료가 바로 그 유명한 음료니까.

그 붉은 로고에 흰 글씨를 생각하니까 군침이 도는구만.

그리운 현대의 맛이어.

하지만 보고서에는 추억과 낭만이 있는 내용이 적혀져 있지 않았다.

해발고도 조금 높은 곳에서 자라는 이 나무는 무역로를 통해 들어와 기호식품처럼 취급받기 시작했다.

고려 귀족들과 승려들은 차(茶)를 상당히 좋아해 공납으로도 차나무를 재배하였고 지금 고려에서도 일정량이 생산되고 있었다.

따라서 새로운 차의 문화에 대해 개방적이고 우호적인 분위기는 내재되어 있었다.

보고서를 올린 승려조차도 그 차가 효능이 뛰어나며 피로를 없애준다 극찬하고 있었다.

고산병에 특효약이며 두통치료도 있고 자양강장제로써 기능도 한단다.

그 순수한 감탄이 섞인 보고서를 읽다 보니 뒷골이 땡겼다.

물론 잎을 달여 마신다고 사람이 뿅 취하는 것은 아니었다.

차로 마시면 효능만 누릴 수도 있겠지.

마시는 걸로만 사용될 수 있다면, 고려 전역에 널리 퍼져도 정말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 잎을 모아 핵심 성분을 추출하여 결국은 코카인을 만들 생각을 할 것이고, 그 때가 되면 널리 퍼진 문화는 다시 바로잡기 힘들 것이다.

모름지기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했다.

기회는 지금뿐일지도 몰랐다.

다른 죄악의 작물, 담배와는 그 위험성이 하늘과 땅 차이였다.

심지어 그는 코카잎을 없애기 위해서라면 담배라도 쓸 용의가 있었다.

용의만 있었지. 들여온다는 것은 아니고.

상민은 마음을 굳혔다.

유하게 가서는 안되겠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집무용 약식 어보가 아닌, 크고 아름다운 금새를 가져와 화려한 두루마리에 찍었다.

“이번 일에 한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대응하라.”

“전부 파괴하라는 대명이옵니까.”

“그래. 전부, 하나도 남김없이.”

필요하다면 잔혹하게.

나중에 후손들이 잔혹한 굴레에 신음하기 전에, 미리 피를 봐서라도.

개천 13년, 서력 1288년, 인류사 최초로 마약과의 전쟁이 고려에서 발발했다.

추밀원(樞密院) 소속

정보총국(情報總局)

국내의 여러 방첩 임무를 맡고있는 부서로 승현이 예전에 도성에 만들었던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만든 정보기관.

새로운 과제가 주어지고, 우선순위가 바뀜에 따라 인원이 배분되었다.

새롭게 만든 과는 제3국, 마약단속국(痲藥團束局)였다.

소위 ‘요원 선발 특별과정’을 수료한 요원들은 강력한 행정력과 댕댕이의 지원을 받아 도성을 들쑤시며 코카잎을 단속하기 시작했다.

“제법 반발이 있사옵니다.”

“예상하던 일이다. 어차피 한 번 솎아주긴 해야 했다.”

담배야 피우는 관습이 낮설어 쉽게 사그라들었지만 차를 마시는 것까지 규제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악법으로도 보일 수 있겠지.

다행스럽게도 코카잎은 고산지대에서 생산해야 하기 때문에 창양 근교의 평야에선 재배가 어려웠다.

재배가 어려우니 값이 비쌌고, 값이 비싸니 퍼진 것은 일부 계층 뿐이었다.

승려들과 혹은 권세와 금전적 여유가 있는 자들.

그 중 승려들은 종단에서 자체적으로 통제에 들어갔고 남은 것은 속세의 인간들인데.

‘도리어 잘되었어.’

황명을 엄하게 집행하니 불만이 터져나왔지만 그래도 많은 이들은 코카잎을 관청에 자진신고했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혼재되어 있는 고려 안의 불순한 분자는 언제나 있기 마련.

좌우별초 출신이건, 동고려에서 넘어온 난민이건 모두 관대하게 받아들인 댓가라 볼 수 있었다.

지금껏 해왔던 황제의 개혁에 불만이 있어 따르지 않는 반동주의자들(주로 항장(降將)들), 고려인의 핏줄이 가장 우월하다며 원주민들의 피를 섞지 않은 자신들끼리만 결혼하는 순혈주의자들.

복속 부족 출신이지만 반란을 꿈꾸는 자들.

노예해방을 원하는 자들.

상민을 향해 겨누어진 칼날은 꽤 많았다.

대부분은 날카롭지는 않았지만 그 중 가장 위협적인 칼날은 반동주의자, 그리고 순혈주의자들이었다.

모두 고려의 권세에 나름대로 가까이 있었다.

누가 누구인지 판별하긴 힘들다.

충신과 서로군 출신들은 아니겠지만, 그들의 가족이 연루되어 있을 수도 있었으니까.

그가 심혈을 기울여 정보총국을 만들어 제1국 대내국(大內局)을 통해 방첩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민간의 모든 일을 파악할 수는 없었다.

최첨단 인공위성과 전자기기가 있는 시대가 아니다.

그 사이 감자 표면에 조금씩 싹이 튼 것 마냥 조금씩 불순분자들의 세력이 올라오고 있었다.

더 늦으면 솔라닌 덩어리 부분을 많이 잘라내야 한다.

그보다 더 늦으면 버려야 했고.

어쩌면 이것은 기회일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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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양 도성 내.

밤이 되자 일단의 무리들이 한 곳에 모였다.

서로 주변을 살피며 조심하는 것이 이 일이 익숙해진 모양이다.

벽돌담을 돌며 혹시나 붙은 꼬리를 확인한 그들이 한 집에 모여 둘러앉았다.

몸집이 큰 사내가 목청을 돋우며 말했다.

그 자는 평소에 금상에게 크게 분노를 가지고 있는 자였다.

최근에는 아들이 별것 아닌 이유로 하옥당해 있기도 했었고.

부정시험이라, 사실 지공거(감독관)를 매수할 수 있었다면 그러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금상은 지금 도를 넘었소이다.”

사람들은 제각기 불평을 말했다.

“맞소, 코카차를 하루아침에 금지하다니요.”

“이제는 이 차 없이는 아침에 제대로 눈이 떠지질 않는데.”

차나무의 찻잎은 이제 뒷전이 된 모양.

그들은 이제 코카차 없이는 살래야 살 수 없는 몸이 되어버린 것이다.

누군가 옆사람에게 쑥덕였다.

“그거 아십니까? 잎을 잘게 썰어 달인 후, 그 달인 물을 천천히 졸이면...”

그는 짙은 농도의 차를 만드는 법을 주변인들에게 알려주었는데, 반응이 꽤 좋았다.

“허어 그래요?”

“예, 마시면 참으로 활기가 도는 것이 무엇이든 해낼 것만 같은 기분이 듭니다, 허허.”

“이런 좋은 차를 대체 왜 규제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마시면 마실수록 인생이 즐거운 차라 낙락차(樂樂茶)라 부르기도 하던데.

중년인들은 몇 차례 더 황상의 결정을 성토했다.

잠시 숨을 돌리며 진정하는 시간.

누군가 갑자기 화제를 돌렸다.

“금상, 그러고 보니 수상하지 않습니까?”

“무엇이 말이오.”

“세월이 그리 흘렀는데도, 늙지 않는답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머리에 서리가 내리고 쇠하며 병이 드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모르지요, 사특한 귀신에 혼이라도 팔았을지.”

“세상의 이치에 어긋난 짓을 한 것이 아닙니까.”

“영생을 얻었다라! 시황제도 도달하지 못했던 목표였소.”

“혹시 코카잎을 마시면 영생을 얻는 것이 아니오? 그 영생을 혼자 누리기 위해 우리에게 그 차를 빼앗아가려는 것이지.”

“일리가 있구려.”

초조하고 불안하다.

금상이 정녕 불로의 경지에 올랐다면, 그들의 후손은 나중에 미개하고 야만스럽고 천박한 자들과 피가 섞이지 않을까.

그들은 알고 있었다.

저 자는 대단한 존재가 아니다.

고려의 하급 무장일 때부터 본 사람들도 있었다.

저 자는 고개를 숙일 때는 숙이고, 슬퍼할 때면 슬퍼하고, 기뻐할 때면 기뻐하는 일반 사람과 다른 것이 없었다.

하지만 세월이 더 흐르게 된다면 저자의 권위는 견고해질 것이며 그때는 끌어내리기가 쉽지 않을 것인데.

사실 이들은 핑곗거리를 찾고 있었다.

코카 차 사건은 단순히 불평불만으로 끝나기엔 아쉬운 기회였다.

반정을 꾀하는 자들은 서고려의 면류관을 동고려로 다시 가져갈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성공만 한다면 그들은 천하의 위인으로 소문날 것이다.

“군사적으로 움직일 수는 없겠소?”

“군 내에도 일부 불만 세력이 있긴 하지. 허나 황상의 졸개들, 오표의 충성심은 견고해 들키기 십상일게요.”

“이런.”

자객을 보내는 것도 말이 되지 않았다.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호위를 처치하더라도 황상 개인의 무력은 자객들 수 명을 한꺼번에 상대할 수 있을 것이었다.

“밖으로 잘 나오지도 않으니.”

정기적으로 밖으로 나오지도 않고 불규칙적으로 행동하는 황상에게 해를 입히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누군가 갑자기 무릎을 쳤다.

“오직 단 한가지 방법이 있겠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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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인같은 자라도 한 가지 인간적 흠결은 있는 모양.

아니다, 흠결이라고 말하면 섭섭하다. 개인적 취향이라 하자.

담배를 몹시 싫어하는 상민도 술은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술은 잘 마시면 사교성도 좋아지며 기분도 풀 수 있다.

불교 제사에도 쓰이며, 선조들에 바치는 곳에도 쓰인다.

미량이나마 60도 이상 고순도로 증류하여 소독약으로 쓰기도 했다.

지금 고려는 여러 가지 술이 있었다.

상민은 그 중 쌀로 빚은 청주와 보리로 빚은 맥주를 특히 좋아해 시대가 여유로워지자 양조장 건설을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바꾸었다.

심지어 매년 미복잠행을 나가 술을 마시기도 했지.

저온보관을 위해 깊게 파 놓은 양조장의 지하실.

넓은 지하실에는 마치 위스키나 와인을 보관하는 것 마냥 술통들이 주르륵 보관되어 있었다.

황제가 되니까 이젠 개인의 주류진열대가 이토록 커져버렸구나.

마트에서 싸구려 와인을 마시며 분위기에 취한 때가 엊그제같은데.

물론 오크통도 아니고, 담긴 것이 와인도 위스키도 아니다.

항아리에 담긴 액체는 대부분 청주였다.

맥주는 이 곳이 아닌 다른 곳에 보관되어 있을 것이고, 오늘은 특별한 일이 있어 겸사겸사 이곳에 행차했다.

미복잠행을 나와 술의 제조 기술을 살펴보고 있던 상민은 양조장 주인이 건네는 잔을 들이켰다.

톡 쏘는 맛과, 풍부한 쌀의 풍미, 그리고 기대하던 알코올의 향기.

아름다운 끝맛까지.

환상적이군.

“이번 것은 아까 것 보다 상당히 맛이 좋구나.”

“그렇습니다. 이것은 발효 과정에서 저실자를 으깨 조금 첨가해 보았으니 당도와 풍미가 조금 더 높을 수 있사옵니다.”

“좋군. 마음에 들었다.”

상민이 흐뭇하게 웃었다.

이 자는 자신의 밑에서 십 년이 넘게 술을 빚은 자였고 손재주와 관리력이 뛰어나 항상 빼어난 술을 만들기로 유명한 장인이었다.

민간에도 팔리는 그의 술을 사기 위해선 상당히 많은 미곡을 주어야 한댔다.

자신은 가끔 와서 이렇게 단지째로 술을 퍼마실 수 있는 특권이 있었지.

매우 신임하는 자라 가끔씩 상도 내렸다.

“그래, 이 술로 하자꾸나.”

곧 있으면 태자비를 맞이하는 혼례가 치러질 것이다.

잔칫날에 이 맛있는 술을 대접하면 모두 즐겁겠지.

안그래도 요즘 자신의 정책으로 인해 사회가 조금 뒤숭숭했다.

큰 축제를 통해 신민들의 스트레스를 낮추어 민심을 챙기는 것은 군주로서 기본적인 행동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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