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무인시대
반추해 보면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다.
대승(大勝)을 거둔 고려는 백성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거점에 돌아왔다.
얼마만의 승전보인 것인가.
왕온이 직접 문으로 나아가 중손을 마중했다.
강화에서 거병할 적에도 방어전으로 오는 적을 격퇴하면 격퇴했지, 공세의 일환으로 성벽과 섬이 아닌 곳으로 직접 군세를 이끌고 나아가 적을 쳐 승리를 거둔 적은 드물었다.
몽골과의 전쟁 기간까지 합산하면 매우 오래 된 셈이다.
큰 규모의 승전에 고려의 군민들은 잠시 동안의 암담한 신세를 잊고 기쁨의 노래를 불렀다.
굴비마냥 줄줄이 엮여 들어오는 포로는 모두 고려의 재산이다.
그 수는 족히 이천 명에 육박했다.
사람이라는 것이 본디 저열한 면이 있어 아무리 같은 예속민, 피지배계층이라고 할지라도 자신보다 처지가 더 안 좋은 사람이 있다면 그것에 대해 위안을 삼는 사람들이 많았다.
결국 계층은 상대적인 것이니.
지금 이 고려인이 아닌 야인 노비들은 자연적으로 현 고려의 계층 중 가장 밑바닥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길들이지 않아 난폭하며 고려의 언어도 하지 못하는 것들인데.
다만 성인 남자 노(奴, 남자)들은 그 수가 적었고 대부분은 비(婢, 여자)거나 어린 노였다.
성인 노들은 모두 위험한 토목 현장에서 혹독하게 부려지다가 죽을 것이었다.
괜시리 입맛이 썼다.
그리고 그에 따른 반작용도 있었다.
어찌보면 당연했는데.
몇 몇 의견이 달랐던 무장들이 경고했던 것 처럼 군량이 바닥이 나고, 기근이 찾아왔다.
배고픔에 번식을 시켜야 할 가축을 몇 마리 잡아먹은 자들이 모두 효수되었다.
“사람이 어찌 금수만도 못하구나!”
저 너른 들판에서 호위를 받으며 풀을 뜯는 가축들이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보다 신세가 더 좋아 보였다.
본디 한번 출정을 하면 기본적으로 소요되는 군량이 상당했다.
아무래도 거점에서 자고 일하는 것 보다 계속 걸으며 전쟁을 치루는 것이 칼로리 상으로 훨씬 영양분을 많이 필요하겠지.
하지만 그 정도는 괜찮았다.
다만 군식구들이 천 단위로 증가하기 시작하자 먹는 입 자체가 많아지는 결과를 낳았을 뿐.
무신들은 자신들의 야인 노비를 먹이기 위해, 백정들에게 돌아갈 식량을 빼돌리기도 했다.
심지어 몇 몇 고위 무장들은 군량으로 자신이 먹을 술을 담그기도 했단다.
중손이 크게 화를 내었지만, 군령에 의한 마땅한 처벌이 내려가진 않았고, 다만 근신하는 것에 그쳤다.
‘주먹구구식이야 모든게.’
진절머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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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시간이 어찌 흐르긴 흘러 드디어 여름이 왔다.
말이 조금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한 겨울에 심은 작물들이 모두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었다.
겨울이라고 해 봤자 느낌상 평균 최저 기온이 섭씨 5~8도를 왔다 갔다 하는 온난한 기후였지만.
드넓은 평야에 황금빛으로 일렁이는 곡물들의 모습을 바라보면 그동안 겪었던 고통이 다 보상되는 느낌이다.
백성들의 표정도 밝아져, 주린 배를 움켜쥐고 고된 수확을 하는 와중에도 사방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시기이다.
더욱 고무적인 것은 자신이 명했던 대로 따른 농부들은 부가적인 수입이 모두 짭짤했다.
봄밀과 봄보리의 파종이 탁월한 선택이다.
다른 곳에 비해 거의 배는 많은 잡곡의 소출에 농민들은 그저 상민을 우러를 뿐이었다.
물론 대부분은 세금으로 나라의 곳간을 채우는 데에 쓰일 것이지만 적어도 잡곡은 그들에게 돌아갈 몫이 많아지겠지.
‘진짜 나라의 곳간이 차긴 할까.’
한국사상에서 고결하고 깨끗한 무장이 있다지만 적어도 지금 삼별초의 수뇌부들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닐 터다.
같이 마셨으면 그래도 조금은 덜 미워했을 텐데.
탁주라도 좀 주지 그랬니.
나쁜 놈들아.
‘적어도 오늘 연회에서는 제법 배불리 먹고 마실 수 있겠지.’
상민은 고개를 들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았다.
나라가 안정되자 별초들은 미루어 왔던 일을 해야만 했다.
강화에서 대충 즉위식을 올렸다 하나, 지금 백성들은 당장 누가 왕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허다했다.
삼별초를 아직 미워하는 사람들이 많아 그들의 민심을 다독이는 것이 필요했다.
또한 고려의 세력 균형은 절묘하게 이루어지고 있고, 당장 지금 수뇌인 배중손이 명목상 황실 존중의 뜻을 표명하며 예전에 뿌려진 갈등의 씨앗이 아직은 발아하지 않고 있었다.
칭제건원(稱帝建元).
정식으로 연호를 올리고 황제를 칭한다.
왕온은 간소하게 만들어진 원구단(圜丘壇)에서 상제(上帝)와 오방제(五方帝), 태조 신성왕(太祖 神聖王)께 제사를 드리고 거점 동북쪽의 사찰에 들러 불공을 드렸다.
면복(冕服)과 면류관(冕旒冠)도 없는 일국의 황제로써는 어찌 보면 비참하기까지 한 의식이다.
또한 종묘라고 해 봤자, 선조 대왕들의 신위는 단 한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허름한 묘실은 그 모습이 현 고려와 같은지 텅 텅 비어 있었다.
급히 만든 전(前) 고려의 불천지주(不遷之主)들을 기린 위패에 절을 하는 꼴이 불쌍해 보이기도 했다.
다시 대전으로 돌아온 왕온과 신료들, 무장들은 백관들과 백성들을 모아놓고 크게 선포했다.
새로운 고려가 이 땅에 세워졌음을.
시궁창스러운 시작이야 어찌했든 앞으로의 비전을 제시한다면 싫어할 백성들은 없는 법.
사람들의 만세 삼창 속에서 왕온은 고려의 제 25대 임금이 되었다.
연호는 건원(建元)으로
그리고 또한 지금껏 이름을 붙이지 않고 거점, 혹은 대내(大內)라고만 칭해왔던 지금 이 도시를 건양(建陽)이라 칭하고 도읍으로 삼았다.
비슷하게 호칭이 없어 본궐(本闕)로만 불렀던 궁궐을 흥평궁(興平宮)이라 칭했다.
고려는 본디 외왕내제(外王內帝)의 국가로 잘 알려져 있었다.
조선시대처럼 주상 전하가 아니라 주상 폐하라고 한다든지,
적색 곤룡포가 아니라 황색의 자황포(柘黃袍)를 입고 통천관(通天冠)을 쓴다든지.
아까 전에 제사를 올렸던 원구단 자체도 황제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물론 대외적으로는 대충 왕인 척 굴었다. 조금 약한 놈들한텐 황제인 척 굴었고.
송나라도 이를 모르진 않았다.
몽골의 발호 전까지 고려는 국가가 강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마냥 약하지는 않아 요 금과 중원의 송 사이에서 세력 균형을 꾀할 수 있었던 덕이 컸다.
심기를 건드리기엔 조금 중요한 존재였으니.
만약 송이 명처럼 하북과 강남을 모두 석권한 강력한 중화제국이었다면 어림도 없었을지 몰랐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고려는 사사건건 트집을 잡을 옆집 불량배도 없었으며, 위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는 강도도 없었고, 바다 건너 해적들도 없는 상황이었다.
소규모의 야인 무리들 정도가 전부였으니, 지금 고려의 규모가 어찌되었든 당당히 천자를 칭하기엔 부족함이 전혀 없었다.
“황상 폐하 만세!”
입으로는 만세를 불러대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다른 생각이 들어 조금 웃겼다.
자신이 예전에 살았던 상계동 주민 숫자의 절반은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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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 즉위식이 끝나고 가장 먼저 논공행상이 시작되었다.
개성 본궐의 정전과 이름이 같은 흥평궁의 정전 선경전(宣慶殿)에 장군들이 모였다.
인원수가 많아 정전이 작아보였다.
동쪽엔 문반이, 서쪽엔 무반들이 서 있는 것이 원칙이나 지금 이곳에서 문반이라곤 극히 드물었다.
소경(少卿) 임굉(任宏)과 같이 아예 별초들의 따까리가 되어버린 자들을 제외하고는.
동쪽의 가장 위의 자리엔 태자 왕환이 서 있었으며, 서쪽의 가장 위의 자리엔 중손이 서 있었다.
자신은 낭장 주제에 상참에 참여했으므로 동쪽 가장 말석에 위치하여 있었다.
“그럼, 문반과 호반(虎班) 양반(兩班)들이 얼추 모였으니 상참을 시작하시오.”
무반이 아닌 호반으로 부르는 까닭은 피휘(避諱)와 같은 쓰잘데기 없는 관습 덕분이겠다.
고려 임금 왕온이 짐짓 근엄하게 상참의 개시를 알렸으나 숨길 수 없는 긴장과 두려움을 읽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장군들은 상참에 전부 칼을 차고 들어왔으며 어깨를 피고 당당히 서 있었다.
수많은 전장을 헤쳐나간 자들의 투기가 정전 안을 가득 메웠다.
침을 삼키던 임굉이 앞으로 나섰다.
좌중의 이목이 그에게 쏠렸다.
“폐하, 본디 국가의 대업이 견여반석(堅如盤石)에 세워지기 위해선 공신을 마땅히 예우하여 책훈해 그 덕과 의기를 기려야 하옵니다.
삼별초 지유 배중손은 본디 좌별초 령(令)이었으나 개경의 반역 도당들이 북적에게 굴종하여 대 고려의 종묘와 사직을 위태롭게 할 때 부처님께서 보우하사 분연히 떨쳐 일어난 그 기세가 후세의 무장들에게 귀감이 되었다고 할 수 있사옵니다.
청컨대 그 의기와 충정을 후대가 본받도록 높이 기려 공신의 위를 제수(除授)하소서”
왕온은 잠시 무장들을 둘러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하라.”
“또한, 강화 행궁에서 일어난 의군(義軍) 별초들에 대한 공로와 충의를 기려 관직을 제수하고 토지를 하사하소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지금 임굉이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은 비단 무신들의 관직과 관품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는 말하고 있었다.
별초들이야 말로 이 신(新) 고려의 지도층임을 인정하라고.
별초들의 수장 배중손은 삼별초 총지유를 겸하고 문산계(文散階) 대신 여태껏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였던 무산계(武散階)를 정비하여 종일품 문하시중(門下侍中) 겸 종일품 표기대장군(驃騎大將軍)으로 공식적으로 문 무반의 최고 수장으로 등극했다.
또한 보위도감(保衛都監)을 설치해 스스로 보위별감의 지위에 올랐다.
웃기는 관제 기구였다.
그냥 예전처럼 교정도감이라고 부르지 그러냐.
별반 다를 바가 없을 텐데.
이름 따위가 뭐라고.
반대하는 자는 없었다.
상민의 상관, 통정에게 했던 것 처럼 미리 사전 작업을 다 쳐 둔 상태였을 것이다.
상민에게도 알려진 사실이니 뭐 딱히 비밀도 아니겠지.
야별초지유 노영희는 우별초 지유를 겸하고 정2품 보국대장군(輔國大將軍)으로.
좌승선 유존혁도 대장군에서 상장군, 그리고 정3품 관군대장군(冠軍大將軍)으로,
우승선 이신손은 장군에서 대장군 및 종3품 운휘대장군(雲麾大將軍)으로.
신의군도령 장군 김통정도 대장군 및 운휘대장군으로
기타 무장들도 계급이 적절하게 올라갔다.
수많은 자들의 논공행상이 지나고 그의 차례가 왔다.
상민은 정식으로 일군을 이끄는 중랑장의 위에 올랐다.
산계는 정원장군(定遠將軍)으로, 공신전도 받았으며 노비까지 몇 명 받았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운신의 폭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이제는 반쯤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었고 소속된 부대의 장수들을 부릴 수 있었으니.
낭장과는 격이 다른 관직이다.
신의군 내에서는 명실공히 한 손에 꼽히는 실력자가 되었고, 동급의 다른 지휘관 두 명 중에서도 실무적 영향력은 자신이 가장 세었다.
물론 누가 더 세냐로 드잡이질 할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