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화]
한 손에는 태양처럼 빛나고 있는 빨간 공이, 한 손에는 번개를 발산하는 푸른 공이 있었다.
“내가 번개!”
양손에 있는 것을 제어하기가 쉽지 않았는지 온몸을 꽉 쥐던 압박이 사라졌다.
하지만 압박이 사라진 동시에 양손에서 쏘아지는 두 구의 기세에 피할 곳도 마땅하지 않았다.
젬마에게 날아가던 불덩이로 향하는 순간, 자신을 스쳐지나가는 화살이 느껴진다.
‘아무리 봐도 저건 내가 따라 할 수가 없겠네.’
아무것도 없는 활대. 활시위를 당기고 놓으면 폭풍이 담긴 화살이 튀어나간다.
감탄을 하다가 살이 익을 것 같은 열기가 정신을 차리게 해준다. 작은 태양이 날아오고 있었다.
‘그나마 번개에 비하면 속도가 느려서 다행인가.’
거리를 가늠한다. 너무 멀면 제대로 베어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너무 가까우면 익다 못해 불탈 것 같았다.
불덩이가 아니라 불덩이가 있는 공간 자체를 베어낸다는 일념을 담고 또 담았다.
‘라니우스 3식 : 단절.’
보이는 흐름이 반듯하게 잘려가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서 작은 태양도 함께 잘려나간다.
“범!”
잘린 태양 사이로 뛰쳐나가려는 순간 들리는 목소리. 하지만 늦었다.
“크으으아아!”
전투 중에는 웬만한 고통에도 반응하지 않는다. 반응하는 순간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고통은 어쩔 수 없이 비명이 터질 정도의 고통이었다.
“본인이 그리도 멍청해 보이더냐! 몇 번이고 네가 하는 행동은 보았느니라!”
더이상 신처럼 보이지 않는 에트라. 인간으로 보이는 에트라가 점점 하늘로 오르기 시작한다.
“네 몸에 들어간 것은 번개. 그것도 번개들이 뭉쳐 만든 폭풍이니라. 굉장히 찌릿하지?”
진심으로 죽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속에서 번개가 치는 느낌. 신경이 불타오르는 느낌.
“하! 그리고 숲 지기의 제한을 벗어나지 못했어. 쯧. 내가 너무 흥분했어. 멍청했음을 인정하마.”
오히려 지금이 더욱 두려웠다. 차라리 광분하던 그때가 상대하기 더 쉬웠을 것 같았다.
‘씨….’
욕조차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정신은 뚜렷하다. 느껴지는 고통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느껴진다.
“재밌지 않은가. 인간의 몸은 참 특이하단 말이지. 작은 번개들이 수도 없이 많아.”
젬마를 향해 만든 무엇인가가 젬마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그리 보아도 변하는 것 없느니라. 저 숲 지기는 움직이지 못할 터이니.”
‘어떻…게!’
“입을 벌려 말도 못 하겠구나. 하지만 고통은 생생하지. 인간을 연구하다 얻은 작은 소득이지.”
내리치던 낙뢰. 손에서 쏘아지던 번개와 다르게 작고 작은 번개라고 할 수 없는 얇은 번개가 날아왔다.
“크하하아아!”
“몸 안에 있는 번개들을 자극하기만 하면 엄청난 고통을 줄 수도 있지. 심지어 정신을 맑게 하면서.”
[정신 똑바로 차려라. 네가 제어 할 수 있다! 네 근원을 생각해라! 정수는 모든 것의 정수니라!]
아프의 말이 들려왔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말이지만, 그 말 외에는 잡을 동아줄이 없었다.
“그래도 좋은 경험이었노라. 신으로 지낸 지 너무 오래되었기에 잊은 것을 알려주는구나.”
장난스럽게 던지는 실과 같은 번개에 온몸이 경련하고 기괴하게 움직인다.
“우웨에에에에엑”
갑자기 위가 경련을 일으키며 속에 있는 것들을 게워내기 시작했다.
“신비하지 않니? 인간의 몸이란. 그렇게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것이 잘 어울리는구나.”
몸의 통제가 사라진다는 것은 소름 끼치는 경험이었다. 하지만, 아프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바람의 탑]을.’
몸속에서 날뛰고 있는 번개들. 그중에서 유독 하나의 탑만이 자유로웠다.
‘에우루스의 탑. 모두 에우루스의 탑으로. 크흑’
다행인지 모든 것을 토해내게 만든 후에는 땅에 누운 채로 경련을 일으키게 만들었다.
“아! 그리고 이걸 정말 싫어하더라고. 신기하지?”
그 말과 함께 손끝에서 피어나는 번개줄기가 몸에 새로 들어오자 미칠듯한 고통이 찾아왔다.
역설적으로 그런 고통이 오히려 정신을 더욱 뚜렷하게 만들어주었다.
지나친 고통에 오히려 더 뚜렷한 정신으로 몸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어느 순간에는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 내 몸이니까. 내 몸속에 들어온 기운이지. 바람은 모든 것을 담을 수 있고. 내 재능은 모든 것을 자를 수 있어.’
머리로는 잊고 있었지만, 몸은 잊고 있지 않았다는 듯 자연스럽게 극기심결이 운용이 되었다.
‘어? 이거 오히려 나한테 좋은 거 같은데.’
극기심결이 운용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내부를 관조하게 되면서 깨달은 사실.
전신을 경련하게 만드는 번개들과 바람이 경쾌하게 몸 안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신비하고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거기에 더해 그 번개들이 계속 탑을 자극하고 있었다.
‘이렇게 된다고? 진짜? 죽어라 노력해도 안 됐는데?’
폭풍을 담당하는 에우루스의 탑. 그곳의 바람으로 모든 탑을 채웠다.
그런데 하나로 모이지 않던 탑이. 마지막으로 저항하듯이 남아있던 틈이 폭풍 사이의 번개가 자극하고 있었다.
‘바람이 바람만이라고 생각하는 머저리. 이걸 이제야 알게 아니, 인지하는 멍청이.’
영수들과 놀면서도 인지하지 못했다. 바람이 불을 키우고 불이 대지를 굳건히 한다. 그리고 대지는 물의 길을 만들어준다.
그 가운데 번개가 생기기도 하고 화산이 만들어지기도 하며 숲이 태어난다.
바람이 만든 폭풍 사이에 깃든 번개가 탑들을 하나로. 하나로 만들어가는 광경.
‘바람은 홀로 자유롭지만, 홀로 존재하는 게 아니야.’
안드로니쿠스님의 말이 떠오른다. 언제나 자유로운 바람은 자연에 있기에 자유로울 수 있다는 말씀.
8개의 탑이 하나가 되는 순간. 모든 번개가 탑을 감싸더니 하나의 빛이 되었다.
몸을 관조하며 바라보던 내부에 환한 빛이 차오른다. 정신에는 그동안 배운 모든 무리(武理)가 떠오른다.
‘바람과 만난 건 운명이었나. 자르고 베어내는 나에게 바람같이 어울리는 것도 없었구나.’
흐름이 보이던 것에서 폭발하면서 세상의 흐름이 미세하지만 보이기 시작한다.
‘저거구나. 강자가 되면 나보다 더 강자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는 것이.’
눈이 떠지면서 세상이 보인다. 세상의 흐름이 보이면서 말도 안 되는 존재감이 보인다.
그 존재감 중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존재가 바로 에트라였다. 거대하고 압도적인 흐름이 뭉쳐있다.
‘뭐야. 잡것이라고 하는 이유가 있었네.’
그 거대한 흐름이지만, 자연스럽지가 않았다. 하나의 시작이 있는 흐름이 아니었다.
억지로 잡고 있는 흐름들. 자신의 흐름이 아닌 타인의 흐름을 희생하며 질량을 늘인 것이 그대로 보였다.
“어떻게 하냐. 이제 보이네?”
“우…웃기지 말아라! 방금까지도 죽어가던 놈이!”
‘아프 너도 나와도 돼.’
탑이 하나가 되면서 이제는 아프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되었다. 모든 흐름이 눈에 보인다.
[괴물. 괴물이다! 말도 안 된다! 아무리 내가 조언을 했더라도. 아니. 그렇다면! 역시 이 몸은 그렇게나 위대했던가!]
‘너 나중에 나랑 따로 이야기하자. 이노무 새끼.’
아프에게서 보이는 흐름이 오히려 더욱 짜임새가 있었다. 눈앞의 에트라보다도.
“이제 전투다운 전투를 할 수 있겠네. 동등하게. 아니, 내가 좀 부족하긴 한데.”
덤벼볼 수 있다는 것이 달랐다. 이제 부딪힐 수 있었다.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온몸에 활기가 돈다. 아니 바람이 온몸을 휘감는다. 손에 쥔 도에는 자연스럽게 재능이 극한으로 담긴다.
풍도를 펼칠 이유가 없었다. 이제 걷는 걸음이 뛰는 발자국이 모든 것이 바람과 다르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움직인다. 바람을 타고 만들고 따라가면서 모든 움직임에 바람이 깃든다.
‘[바람의 탑], 아니 이게 구층일원공의 진짜 모습이네.’
순식간에 낙뢰들을 피하면서 에트라의 앞에 도착했다. 가볍게 내지른 도를 처음으로 손을 들어 막는 에트라.
“공간. 진짜 머리 아프게 하네.”
손을 들자 마치 에트라와 자신의 도 사이에 공간이 무수하게 생긴 느낌이었다.
베어내도 결국 에트라를 벤 것이 아니라 그 앞에 생긴 공간들을 베어낸 것이었다.
“이 버러지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금세 사라지면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에트라. 양손을 펼치며 주문을 영창한다.
“진짜 풍도는. 이런 것도 가능하더라?”
바람은 옆으로만 불지 않는다. 아래에서 위로 불기도 한다. 그리고 그 길을 그저 따라서 걸으면 된다.
여유롭게 영창을 하던 에트라의 영창속도가 빨라진다. 손에 무언가가 만들어지는 동시에 쏘아진다.
‘원래는 할 수 없었지만, 지금이라면.’
강하게 부는 바람의 길을 박차고 위로 쏘아지면서 먹구름 사이에서 거대하게 내리치는 번개를 바라본다.
‘라니우스식 2-3식 : 면면부절 단절.’
공간을 베어내기 위해서 모든 힘을 한 번에 집중해야 하는 단절.
한 번의 시작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면면부절.
두 가지가 한 번에 이어지면서 내려오는 번개를 베어낸다. 그 도격에 원래 여러 줄기였다는 듯 번개가 나누어진다.
번개가 잘려나가고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온 에트라. 그녀에게 도가 휘둘러지는 순간.
“버러지답게 땅으로 내리꽂히거라!”
에트라의 말이 마치 마법의 주문이라도 되듯이 거대한 압박이 내려오면서 땅으로 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중간에 겨우 베어낸 압박. 이제 보이지 않는 것을 베어낼 수 있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원래도 흐름이 있구나. 땅으로 잡아끄는 흐름이.’
땅에 부드럽게 착지를 하자 꽤 높은 곳에 있는 에트라의 모습이 보였다.
“이제는 더 만만해졌네?”
땅에 착지하는 동시에 에트라의 흐름이 풀려나가는 것이 보인다. 그러면서 그녀의 아우라가 줄어든다.
그것에 그치지 않고 하나의 흐름이 더 풀렸다. 그 동시에 탐스럽게 타오르는 색의 붉은 입술이 생명을 잃어가듯이 색이 빠진다.
‘의뢰를 한 사람 모두가 성공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말이지.’
5성을 치러 갔던 모든 이들이 임무를 완수한 듯했다. 그 덕에 풀려난 흐름이 생각 이상으로 컸다.
거대한 존재감이 한층 줄어들었다. 타인의 흐름을 억압하던 흐름이 힘을 잃었다.
“다 잃었나 보다?”
마지막 입술이 생동감을 잃어가면서 풀린 흐름. 그 동시에 젬마를 억압하고 있던 흐름이 절로 풀려난다.
“하. 그래. 다 잃었구나. 도대체가 네놈 때문에 수십 년을 더 고생해야 되겠구나.”
타인을 억압하는 흐름이 사라지자 오히려 흐름이 더 촘촘히 흐르기 시작했다.
‘이성이 돌아온 건가?’
자세히 살펴보니 흐름이 미친 듯이 요동치고 있었다. 다른 흐름을 잡던 힘들이 모이고 모이고 있었다.
‘아니네. 오히려 화산이 폭발하기 직전 그 느낌이랑 비슷해.’
오히려 차분해진 에트라의 모습에 긴장감이 차오른다. 거대한 흐름이 점점 하나로 모이고 있었다.
“그래. 이제는 정말로 다시 시작해야겠구나. 다시 하는 것이니 더욱 견실하게 할 수 있겠지.”
하늘에 떠 있던 에트라가 점점 내려온다. 그 동시에 그녀의 흐름이 압축된다.
“하지만 그 대가를 네가 치러야겠다. 네 놈 정도라면 그 이상을 노릴 수도 있겠어.”
마침내 에트라의 발이 땅에 닿았고, 그녀의 압축된 흐름이 대기를 찢어놓을 것처럼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