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화]
“진짜 이런데도 왜 그따윈지 모르겠는데?”
죽을 것 같았다. 젬마의 순간순간의 견제가 아니었으면 위험했을 순간이 너무 많았다.
“하찮은 벌레가!”
지금도 그런 순간이었다. 위에서 찍어누르는 중력 마법. 거기에 어디에서 터질지 모르는 공간들.
앞으로 나가려고 하면 번개가 떨어진다. 공간과 번개를 다루는 그 모습이 진짜 신처럼 보였다.
‘저 번개를 맞추는 젬마도 미친 것 같지만.’
수많은 계단이 쌓여있던, 에트라가 있던 권좌의 위에 뚫린 천장.
그곳에서 에트라의 손길에 따라 번개가 내리쳤다. 마법이 아닌 진짜 번개.
그럼에도 젬마는 어떻게 한 것인지 때에 맞춰 번개를 떨어트리고 있었다.
“이 버러지 새끼들이!”
푸르게 빛나던 에트라의 오른쪽 눈동자가 검은색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하! 모조리 없애고 다시 시작해 주마!”
순식간에 땅에 대고 있는 발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황급하게 오러를 둘러 겨우 무게 중심을 잡았다.
“미친…….”
하늘이 없는 세계에서 처음 하늘을 본다면 이런 느낌일까 싶었다.
불이 있었지만, 어두운 공동의 천장이 에트라의 손짓에 따라 열리기 시작한다.
그리곤 폭발하듯이 모든 것이 솟구치며 천장이 터져나갔다. 하늘이 열렸다.
“버러지들아. 보아라 천공의 신의 위엄을.”
맑게 갠 하늘이 우중충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내 먹구름이 가득 채웠다.
“조심해. 이제 진짜 시작이니까.”
젬마의 말에 아프가 어깨에 살포시 앉았다.
[정식으로 계약한 것이 아니라 안 되지만. 한 번. 단 한 번은 가능하니 잘해봐라.]
아프가 바람이 되어 몸에 깃들어간다. 이내 아프가 완전히 사라졌을 때 세상이 달라졌다.
“영수……. 영수의 계약자가 괜히 강한 게 아니구나.”
사 속성 신전이 사제의 수가 적음에도 압도적일 수 있는 이유를 알았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변했다. 선천 재능으로 흐름을 조금 볼 수 있던 눈이 달라졌다.
“바람이 보이네. 진짜 미치겠네.”
그 사이로 낙뢰가 치는 것이 보였다.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머리로 그냥 그려졌다.
한 걸음. 낙뢰를 피하는데 필요한 걸음이었다. 도저히 답이 안 나왔는데.
“할 만하겠어.”
풍도를 따로 펼칠 필요가 없었다. 걷는 걸음이, 발 하나하나가 모두 바람이 되었다.
“모두 나에게 오거라!”
공동에서의 전투로 위신에 대한 생각이 변했었다. 진짜 신은 아닐지언정 그 능력은 대단하다고.
하지만, 지금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다시 생각이 변했다.
“위신은 역겨운 것들이구나.”
잡것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참사에 있었다. 몇몇 남은 이단심문관들.
그뿐만 아니라 이 섬에 있는 모든 인간이 스스로의 몸을 바치고 있었다.
“이래서 위신들을 우리 선조들이 그렇게도 싫어하던 것이군.”
몸에 피 한 방울도 묻히지 않은 채로 검붉게 변한 창을 들고 있는 세탄타님이 옆으로 왔다.
“저 모습을 보고도 좋아하면 그건 광신이겠죠. 가능하시겠어요?”
“그리 큰 도움은 되지 않지만, 그래도 신경이 쓰이게 할 수는 있을 것 같구나. 허. 참. 나도 갈 길이 멀어.”
“크게 도와주지는 못하지만 귀찮게 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지.”
달라진 세상, 거기에 더해 두 사람의 도움이라면 어떻게든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두 사람을 뒤에 두고 한참 공양물을 먹으며 신성을 채우고 있는 에트라를 향해 달려나갔다.
‘진짜 빠르구나. 이게 진짜 풍도.’
지금까지의 풍도는 바람의 길을 따라 달리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길을 만들고 있었다.
낙뢰가 떨어지는 것이 보이고 느껴진다. 흐림이 꺾이고 격해지는 것이 보였다.
직선으로 향하지는 못했지만, 오히려 그렇게 움직이는 것이 더욱 바람 같았다.
전투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에트라가 사정거리에 들어온다. 도갑에서 도를 꺼내며 그대로 발도.
점차 권능의 영역으로 향하고 있다는 선천 재능이 에트라의 드레스를 베고 지나간다.
드레스를 벤 순간 사라진 에트라가 먼 곳에 다시 등장한다.
드레스를 간신히 베었는데도 순식간에 다시 생겨나듯이 드레스가 복구된다.
“빌어먹을 신성.”
분노한 얼굴의 에트라의 손짓에 사방의 공간이 자신을 짓누른다. 몸을 움직일 수 없는 그때.
하늘에서 작은 무언가가 엄청난 빠르기로 내리꽂히고 있었다.
“와. 미쳤…….”
젬마의 기지로 공간이 생겼지만, 도망칠 수 있는 시간은 없었다. 시선을 돌려 떨어지는 돌을 본다.
양다리를 굳건하게 대지를 밟고 도를 들어 올린다. 모든 신경을 눈앞의 돌에 둔다.
풍아에 오러 블레이드를 넘어선 무언가가 깃들기 시작한다. 재능과 함께 섞인 오러 블레이드는 소름 끼칠 만큼의 날카로움을 토해낸다.
‘라니우스 3식 : 단절.’
바람이 찢어지고 공기가 찢어진다. 공간이 잘리는 것 같은 광경. 끝내 닿은 돌마저 반으로 잘라낸다.
마치 원래 두 개였다는 듯 잘린 돌은 양쪽으로 찢어지며 떨어져 내렸다.
떨어진 돌들로 인해서 땅이 울리고 먼지가 자욱하게 피어난다. 그를 틈타 은밀하게 몸을 움직인다.
폭풍 같은 바람도 있는가 하면 언제 어디서 불어오는지 모를 바람도 있었다.
조용하게 기척도 없이 움직인다고 생각했지만, 낙뢰가 정확하게 떨어진다.
그 순간 머리 위로 지나가는 화살. 그 화살에 번개가 내리꽂히고 스파크가 몸에 튄다.
‘괜찮아 맞을 만해.’
직격은 위험하지만, 이런 식이라면 괜찮았다. 그리고 아니마 덕분에 젬마가 자신을 찾는 것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뒤를 잡는 것을 포기하고 가장 빠르게, 변화막측하게 정면을 향해서 다시 달린다.
눈앞에 에트라가 보인다. 그리고 때마침 별이 무수히 빛나는 밤하늘 같던 드레스가 칙칙한 검은색으로 물들어간다.
“이 버러지들이! 진짜!”
에트라를 중심으로 번개가 폭풍처럼 내리꽂히기 시작한다. 이내 땅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폭풍이 되어 주변을 휩쓸었다.
‘라니우스 2식 : 면면부절’
뒤로 물러나면서도 폭풍처럼 다가오는 번개를 향해 도를 끊임없이 휘둘렀다.
그리고 확연하게 약해진 번개를 느낀다. 번개를 자르는데 더 이상의 무리가 없었다.
한차례 폭풍이 지나고 난 후, 에트라의 양손에 거대한 번개가 맺힌 것이 보인다.
“죽여주마. 죽여주마. 모든 이들을 죽일 것이다.”
7성 중에서 4명이 죽었다. 그럼에도 저 번개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파괴적이었다.
‘처음에 봐주지 않았으면 순식간에 죽었겠구나.’
자신을 포기하지 못한 에트라가 새삼 고마워지고 있었다. 아니었다면 지금 숨을 쉬고 있지 못했을 것이다.
양손에 맺힌 번개가 손을 떠나는 순간, 눈앞에 다가온 번개가 보였다.
[절(切)]이 오러 블레이드처럼 맺힌 풍아로 번개를 자르는 순간 몸이 경직되는 것이 느껴진다.
‘미친!’
모든 신경이 위험을 알린다. 하지만, 온몸에 흐르는 전류로 인해 움직이지 않는 몸.
그때 아무도 신경 쓰고 있지 않던 세탄타님이 에트라의 옆에서 창을 내지르는 것이 보였다.
한껏 피를 머금은 마창이 한 점을 향해서 있는 힘껏 찌르는 모습.
하지만 검은색으로 변한 드레스에 흠집조차 내지 못 했다. 다만, 에트라가 한발 물러나게 만들었다.
“이 버러지만도 못한 벌레가!”
순식간에 도망가는 세탄타님. 그리고 고개를 돌린 에트라. 그 시간에 경직이 풀렸다.
‘진짜 혼자 왔으면 택도 없었겠…….’
생각이 이어질 시간도 없이 하늘에서 내리꽂히는 낙뢰. 확실히 얇아졌다.
‘한 명만 더 죽으면 전투를 시작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전투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전혀 아니었다. 일방적인 에트라의 우세.
그조차도 젬마가 아니었다면 살아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세탄타님의 한 방이 없었다면 이미 죽었을 것이다.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기는 해. 이 정도라면.’
8서클의 마법 중에서 퓨리 오브 더 헤븐이라는 범용 마법이 있었다.
범위 안에서 낙뢰가 무수히 내려치는 마법. 그 마법만 보아도 사람들은 경외심을 갖는다.
그런 낙뢰를 손짓으로 떨어트리게 하고, 사람의 몸통보다 거대한 번개를 쏘아낸다.
다른 이에게 경외를 받는 것보다도 자신이 얼마나 스스로 위대함을 느낄까 싶었다,
“하! 되었다. 이 섬조차 다시 만들면 될 일이니. 모두 죽어라.”
양손을 하늘로 드는 에트라를 보며 불길함이 느껴진다. 젬마도 세탄타님도 똑같이 느꼈는지 한곳에 모인다.
“배리어!”
세 명을 감싼 원형의 막이 생기자마자 하늘에서 번개 비가 내린다.
섬 전체를 범위로 한다는 듯 미친 듯이 떨어지는 번개에 소름이 돋는다.
배리어에 내리치는 수많은 번개에도 다행히 깨지지 않았다. 번개가 끝나고 배리어가 사라진다.
단 한 번에 사용 한도가 끝이 나듯이 반지가 먼지가 되어 사라진다.
‘감사합니다. 리퀴두스님.’
겨우 살아난 느낌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에트라는 눈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별 버러지 같은 물건으로 감히!”
열 받아하는 에트라. 다행히도 그 괴물 같은 번개 소나기는 쉽게 할 수 없는 듯했다.
‘천운이긴 해. 만약에 전투 마법사였다면, 진즉에 끝이 났겠지.’
에트라는 전투 마법사가 아니었다. 마법을 연구하던 학자. 진리를 탐구하던 학자였다.
모든 마법사가 진리를 탐구하지만, 성격이 다르다. 실전과 이론의 차이 정도.
하지만, 그중에서도 에트라는 마법을 고고한 학문으로 생각했기에 그 경향이 심했다.
마법을 함부로 쓰는 것조차 싫어하던 성격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덕에 지금 우리가 살아 숨 쉴 수 있었다.
‘전투 경험이 있었다면, 진즉에 세탄타님은 죽었겠지? 그리고 나도.’
이제야 눈에 세탄타님이 들어왔는지. 두 눈이 처음으로 세탄타님에게 고정되었다.
“우선 날파리 너부터 죽여주마.”
다시 생긴 양손의 번개. 그중 한 줄기가 세탄타님에게 향한다. 앞을 막아서려는 찰나 자신에게도 날아오는 번개.
집중해서 번개를 가르고 본 뒷모습은 처참했다. 번개 소나기 이후에 폐허가 된 땅.
그 땅에 또 거대한 번개가 작렬하자 땅이 시꺼멓게 탔다. 그리고 세탄타님의 상황도 좋지 않았다.
‘저걸로 전투에서는 아웃이네.’
마창에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오르고, 세탄타님의 양팔은 어깨까지 까맣게 탔다.
입에서 흘러나오는 핏물은 내상을 심하게 당했는지 검은색으로 나오고 있었다.
“난. 여기까지. 쿨헉. 인가 보네. 고생해라. 끝까지 보지도 못하다니. 진짜 멀었어.”
억울함. 안타까움. 분노가 함께 느껴지는 얼굴을 하고 있는 세탄타님. 다친 것보다 함께하지 못하는 것이 더 싫은 표정이었다.
순간 낙뢰가 떨어지지만, 빛에 휩싸인 세탄타님은 모습이 사라지고 땅에 낙뢰 자국만이 남았다.
“감히! 감히!”
어지간히도 분노했는지 낙뢰의 자리 주변으로 다시 번개가 치고 또 치고 있었다.
동시에 에트라의 피부가 색을 찾아가고 있었다. 투명하게 빛나는 어딘가 사람답지 않던 피부.
빛이 나고 성스러워 보이던 피부가 점차 사람의 피부색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제는 더이상 모르겠다. 신성을 모조리 사용해서라도 네놈들을 죽여야겠다! 그 이후는 흑색거성이! 그리고 숲이 될 것이다!”
에트라의 전신에서 기세가 미친 듯이 피어오르며 머리가 하늘로 치솟는다.
일전의 손짓뿐이었는데 이번에는 입으로 짧았지만 주문을 영창한다.
“지…!”
지금을 외치려던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온몸을 꽉 죄는 공간. 보이지 않는 손이 전신을 쥐어 잡은 것 같았다.
젬마도 마찬가지인 상황으로 보였다. 다른 곳으로 움직이는 기척이 전혀 없었다.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에트라 양손에 피어나는 것은 가늠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저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