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화]
판테온에 도착하자마자 자신을 반기는 사제가 있었다. 다름 아닌 천공의 신전 소속의 사제.
‘도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움직임을 숨기면서 다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광고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판테온에 오기까지 만난 사람은 불의 신전 사람들을 제외하면 단 두 명.
게이트를 관리하는 사람과 게이트를 운용하는 사람뿐이었다. 그리고 바로 게이트를 통과했다.
절차들을 모두 포함한다고 해도 5분 남짓의 시간. 그런데도 눈앞에 자신을 기다리던 사제가 있었다.
“알리오츠님께 들었습니다. 몽상가의 후예시라고, 판테온 천공의 신전 주교 아울라라고 합니다.”
“아. 조금 당황스러워서 인사가 늦었습니다. 반갑습니다.”
“하하. 이해합니다. 천공의 신전의 사람들이 오해를 많이 받는 부분이기도 하지요.”
“혹시 어떻게 제가 올 줄 알았는지.”
“천공의 신께서는 하늘에서 굽어보시기에 알고 계실 뿐입니다. 그나저나, 수행자님의 이름을 알게 될 그 날이 기대되는군요.”
모르던 사실인데, 수행자의 이름을 밝히게 되는 것은 소속이 생기고 나서였다.
그전에는 이름을 밝히지도 궁금해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수행자가 명성이 쌓이면, 칭호가 생기고 그 칭호로 불린다는 점이었다.
그렇기에 이름을 알고 싶다는 뉘앙스는 ‘너 우리 신전으로 와라’ 라는 뜻이었다.
‘천공의 신이 알려줬다는 건가? 아니면, 다른 권능이 있다는 건가? 그도 아니면….’
머릿속에서는 다양한 경우의 수가 떠올랐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지만, 입은 움직였다.
“아직 세상에 대해서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 무지한 상태라. 지금은 조금 더 세상을 돌아볼 생각입니다.”
“수행자님이라면 당연히 그리 말씀하실 줄 알았습니다. 다만, 힘드실 때는 언제고 저희 신전을 찾아주시지요.”
혀가 기름으로 만들어진 주교였다. 그것도 과하지 않을 정도의 선을 명확하게 지키면서.
게이트에서 남쪽으로 향하는 길. 신전에 속하지 못한 이들이 삶을 영위하는 곳.
아울라가 안내한 곳은 판테온에서도 단 두 곳으로, 어느 신전에도 소속되지 않은 중립을 유지하는 호텔이었다.
“이곳에 묵으시면서 판테온을 천천히 돌아보시면 됩니다. 수행자님의 이름으로 이미 예약했으니, 얼마든지 계셔도 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은 방으로 예약해 주고, 깔끔하게 떠나갔다. 꼭 신전으로 찾아오라는 말을 남기고.
“생각보다 까다로운 인간 같지? 너한테는 신경도 안 쓰는 척하고 말이지.”
[음흉한 인간이다! 마음에 안 든다! 그리고 주교 아니다!]
“알아. 마법사만 있는 게 아니었어. 하긴, 그게 더 이상하지?”
전 세계에서 의도치 못한 사건에 휘말리면서 가장 많이 마주해야 했던 적(敵)이 있었다.
화경에 오른 뒤에도 몇 번이고 사선을 넘게 했던 적. 살수(殺手). 아울라는 살수였다.
“적어도 대주교 이상의 살수란 말이지. 진짜 신기하네.”
[그래도 네 말대로 덕분에 편하게 왔다! 빨리 가자!]
리퀴두스님이 무슨 일이 있다면 들려보라고 했던 [지고한 바] 그곳이 이 호텔과 더불어 판테온의 중립지역이었다.
“좀 기다려. 나도 준비 좀 하고 가야지.”
아공간에서 물건을 꺼내서 품속에 집어넣었다. [지고한 바]의 주인을 만나러 가는 길에 필요한 것.
[그거! 내놔라! 나도 먹고 싶다!]
“넌 먹어봤잖아. 나도 얼마 없어.”
사실 많지만, 그렇게 뿌리고 다닐 만큼 많지는 않았다. 판테온에서 중립이라는 의미는 두 가지였다.
‘신경 쓸 가치도 없거나, 감히 덤빌 수 없거나.’
단 두 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신경 쓸 가치가 없는 곳들. 신전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중립이란 그런 의미였다.
‘이 호텔도 그분의 소유라는 거지.’
인간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신이 존재한다고, 이름 없는 신이라고 불리지만.
‘신전의 추기경이 되어야 알 수 있는 사실이 있지. 그 주인이 신이 아니라는 것.’
인간이 바라보기에 거대한 이적을 표하는 신. 하지만, 결국 인간이 바라보기에였다.
그런 이적을 숨 쉬는 것처럼 행하는 존재. 신으로 불리고 권능을 나눠주는 이들조차 함부로 할 수 없는 존재.
‘드래곤. 그것도 유희 중인 드래곤이 아니라 [지고한 바]를 별장으로 삼은 괴짜.’
그렇기에 [지고한 바]와 호텔이 판테온이라는 곳에서 절대적인 중립지대가 될 수 있었다.
‘심지어 신전에 소속된 사제들도 이곳을 이용하기도 하니까.’
절대적인 중립지대. 두 곳에서는 완벽한 프라이버시가 보장된다. 그리고 전투는 금지되어있다.
‘호텔의 총지배인이 엘프니까. 말 다 했지 뭐.’
리퀴두스님이 아니었다면, 자신도 알아차리지 못했을 사실. 호텔을 관리하는 것은 그 괴짜의 가디언이었다.
[지고한 바]의 지하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총지배인에게 출입증을 구해야 했다.
[지고한 바]로 갈 준비를 마친 뒤 호출버튼을 눌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세요.”
‘하긴 드래곤이 아니면 이 호텔의 기능들이 말도 안 되기는 하지.’
호텔의 특징 중 하나는 열쇠가 없다는 점. 등록된 마나 주인의 말로 숙소의 모든 기능을 사용할 수 있었다.
‘마나가 없는 일반인도 가능하다는 게, 량이나 카인이 봤으면 엄청 좋아했을 텐데 말이지.’
문이 열리고 등장하는 총지배인. 확실히 천공의 신전이 잡아 준 방은 달랐다.
하지만, 총지배인의 반응도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오셨습니까. 안 그래도 미리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이곳의 관리를 맡은 쿠라라고 합니다. 아프님도 오랜만에 뵙습니다.”
[반갑다! 여전히 잘생겼다! 그리고 센스도 넘친다!]
쿠라라고 소개한 총지배인이 주머니에서 과자 꾸러미를 꺼내자 바람이 자연스럽게 꾸러미를 아프 앞으로 가져다주었다.
“너가 말하면 들을 수 있어?”
[당연하다! 쿠라는 그냥 엘프가 아니라 엘더 중 하나다!]
“엘더?”
[하이 엘프가 엘프들의 수호자이자 왕같은 존재라면, 엘더는 실제로 엘프들을 관리하는 존재다!]
과자를 먹으면서 이야기하는 아프. 사람과 전혀 다를 바 없어 보이는 이가 엘프, 그것도 엘더라는 것에 머리가 멍한 상태였다.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아닙니다. 아프님께서 너무 치켜세워 주시는 것입니다.”
[근데 왜 파파는 안 보이냐!]
“제가 일을 시킨 게 있어서, 부득이하게 여기에 없습니다.”
“파파?”
[있다! 쿠라의 영수. 이노무자식이 형님이 왔는데!]
“네가 형이야?”
[그건 아니지만, 이래저래 가르침을 많이 주었지!]
쿠라님의 표정을 보니, 아프 때문에 여기에 데리고 오지 않은 것이 100%였다.
“아! 죄송합니다. 너무 많은 것이 휘몰아쳐서. 수행자로 돌아다니고 있는 범이라고 합니다.”
인간도 아니다. 신전의 사람도 아니다. 그리고 이미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기에 편히 말할 수 있었다.
“들었습니다. 승천자시라고, 나중에 시간이 허락하면 여러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저. 다름 아니라.”
“네. 준비해 왔습니다.”
손바닥만 한 패를 꺼내서 건네주는 쿠라님이었다. 확실히 드래곤의 가디언은 달랐다.
‘가디언들은 하나같이 다 이렇게 준비성이 좋은 건가?’
말하기도 전에 모든 일을 처리해 놓고 준비하던 랑코님이 오버랩되었다.
“지금 가시면, 바에 계실 겁니다. 아마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 안내해드리고 싶지만.”
“괜찮습니다. 이 이상으로 시선을 모으는 것도 좋은 건 아니니까요.”
“여기에 계시는 동안 편히 지내셔도 됩니다. 그럼.”
순식간에 나타나서 뭔가 폭풍을 던져주고 간 느낌이었다.
“엘프를 만났는데, 만난 것 같지가 않다.”
경지도 화경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고, 정말 다른 점이 하나도 없었다.
[그건 인간으로 폴리모프되어 있어서 그렇다!]
“폴리모프는 뭐야?”
[존재 자체를 다른 존재로 성형하는 거다! 적어도 9서클의 마법사는 되어야 이상한 것을 알 수 있다!]
“9서클이라면, 현경이라는 건데. 쿠라님이?”
[아니다! 쿠라는 전사다! 그리고 폴리모프는 오롯이 위대한 드래곤의 권능이다!]
“머리가 아프다. 아파. 우선, [지고한 바]로 가자.”
[좋다! 오랜만에 뵐 생각을 하니까 기분이 좋다!]
“넌 뵌 적이 있다고 했지?”
불의 신전에 있으면서, [지고한 바]에 대해서 그리고 그 주인인 에첸트로스님에 대해서 간단하게 알려주었던 아프였다.
[그렇다! 다른 건 몰라도 특이하기로는 드래곤 중에서 제일이다!]
“이야기에 미쳤다라고 했지? 애초에 바를 차린 것도 그 이유고.”
[그럼! 아마 너를 엄청 기다리고 계실 수도 있다!]
“하긴 나만큼이나 특이하고 특별한 이야기는 없겠지.”
[특히나 너는 5계에서 왔으니 더 그렇다! 하튼 빨리 가자!]
호텔 밖으로 나온 풍경은 이 세상 아니, 인간의 세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듯했다.
호텔과 [지고한 바]를 제외한다면 평이하기 그지없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상가들도 식자재와 생필품을 파는 것을 제외하면 특별한 것이 없는 거리.
반면에, 게이트를 중심으로 북쪽에 있는 풍경은 신비롭다. 특이한 신전들, 특별한 상점들.
“생각보다 훨씬 양극화가 심한 세계네.”
[이렇게까지는 아니었지만, 점점 더 그렇게 변하고 있지. 신전들 때문이다!]
“사속성 신전이 나름 분전하고 있다 해도 이 정도라는 건가.”
[인간은 특별해지는 거에 너무 쉽게 빠진다.]
“아프. 태생부터 특별한 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인간이 바라보는 시선으로 보면 그렇지만, 영수들 사이에서는 꼭 그렇지도 않다!]
“응? 뭐가 꼭 그렇지도 않아?”
[어떤 등급의 영수던 간에 다른 영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것을 찾고 그 길을 따라 살게 된다!]
“쉽게 설명 좀.”
[그러니까 어떤 영수는 세상을 둘러보는 걸, 어떤 영수는 불타오르는 걸, 각자 원하는 대로 사는 거다!]
“글쎄다. 그건 너무 영수라서 할 수 있는 것 같은데 말이지.”
[네 말도 맞지만! 인간들이 너무 남들과 비교하는 거에 목메는 것도 사실이다!]
“영수 주제에 인간은 또 어찌 그리 잘 아실까.”
[이 몸은 위대한 영수니라! 네가 너무 자주 까먹는다!]
“네네 그러시겠죠.”
[불경하다! 그런 태도는 좋지 않다!]
아프와 다니면, 시선 집중이 당연하게 된다. 더구나 아프를 향해 기도를 하는 이들도 종종 보인다.
“진짜. 이걸 어디 떨어트려 놓고 다닐 수도 없고.”
[불경하다! 이 몸을 물건 취급하는 것이냐!]
아프와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면서 도착한 곳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세워진 4층 건물이었다.
“호텔을 제외하면 남쪽 구역에서는 이게 제일 높은 건물 같다?”
[빨리 들어가자!]
평이하기 그지없는 주변에서 홀로 튀면 그 무엇보다 눈에 잘 들어온다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건물.
은은하게 흐르는 광택이 마치 이 세상에 홀로 유리된 느낌을 자아내는 검은색 건물.
[지고한 바]
“지고하다고 대놓고 써도 사람들이 뭐라고 안 해?”
[인간들은 오히려 한 번 들어가 보고 싶어 한다! 신이 진짜 있다고 생각하니까!]
“거기에 방귀 뀌는 놈들은 주인의 정체를 아니까 가만히 있고?”
문지기도, 경비도 없는 문을 열고 들어가니 몽환적인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하…. 진짜 멋있다.”
꽤 넓은 홀에 6개의 테이블이 놓여있고, 바에는 6명이 앉을 수 있게 되어있었다.
분위기가 실로 몽환적이라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지하로 내려가면 이거랑 비교가 안 된다!]
아프에 말에 문지기가 지키고 있는 지하 계단으로 향해 패를 내밀고 지하로 내려갔다.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