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B22
“그래. 감당할 수 없는 힘. 끊임없이 탐구하지만, 그것은 짝다리와 다르지 않단다.”
“비어있는 부분이 있다는 말씀이죠?”
“그렇지. 나 같이 무인인 경우에는 그 경지가 따라주지 않으니 그리 쉽게 요동하는 것이겠지.”
“자기 재능인데도 그런 건가요? 사실 잘 이해가 안 가요.”
재능을 발아하기도 이전에 자신은 재능을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사용 할 수 있었다.
비록 보잘것 없는 남들보다 조금 더 빨리 익숙해지거나 잘 자르는 정도였지만, 자신의 의지에서 벗어난 적은 없었다.
발아하고 난 이후에는 더욱 그 느낌을 세밀하게 다룰 수 있었다. 자신보다 더 나아간 할머니가 그런 것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흠. 비유하자면 네가 어느 날 갑자기 힘이 강해졌다고 생각해 보렴.”
“그럼 어색하겠죠?”
“그치? 그런데 그걸 네가 전혀 조절 할 수 있는 게 아닌 거지. 아무리 조절하려고 해도 기본적으로 너무 힘이 센 거야.”
“그래도 잘 모르겠어요. 뭔가 알 것 같기는 한데.”
“이해가 잘 안 가지? 아마 이런 불균형이 우리를 상위 세계로 부르는 게 아닐까 싶구나.”
“할머니는 왜 올라가지 않으셨어요? 사실 이제라도”
“이제 올라가서 무엇을 하려고. 그리고 나는 이곳이 좋단다. 하지만, 꼭 너는 그 이상을 보았으면 좋겠구나.”
“그 이상이요?”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이 힘은 반쪽에 불과하니 말이다. 통제할 수 없는 힘은 온전히 나의 힘이라고 할 수 없단다.”
“전 그래도 부럽기만 한걸요. 그리고 제 재능이 어떻게 될지 상상도 안 되고요.”
“글쎄. 세계를 벨 수도 있지 않겠니?”
“말도 안 돼요. 아! 근데 그 패랑 깃발은 뭐였길래 다들 그렇게 격하게 반응한 거였어요?”
“아? 혹시 바다에도 마수가 있다는 건 알고 있니?”
“네! 이번에 알게 됐어요! 근데 그게 사실이에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는데.”
“나중에 한 번 보러 가자꾸나. 하여간. 그런 마수들을 오지 못하게 하는 거란다.”
“…네?”
마수를 쫓아낼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수호 용병이 그토록 고생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바다에 있는 마수들은 의외로 위계가 확실히 있단다. 두려움이 새겨져 있다고 해야 하나? 산맥과는 조금 다르지.”
“어떻게? 아니 왜 그렇게 된 걸까요?”
“아마도 바다의 마수는 처리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에 그렇지 않을까 추측만 할 뿐이란다.”
“와. 진짜 상상이 안 가기는 해요. 제가 본 마수들이랑은 너무 다른 것 같기도 하고.”
“마수는 다 거기서 거기란다. 그런 마수 중에서도 꽤 상위에 있는 마수의 비늘이 하나씩 있단다.”
“비늘이요?”
“살아있는 마수의 비늘을 떼어 놓으니 꽤나 효과가 좋더구나. 다만, 조건이 쓸데없이 많아서 그렇지. 그 덕에 편하게 다닐 수 있고 호위를 아이들의 훈련처럼 할 수 있게 되었단다.”
“아. 그래서.”
그 말인즉슨, 그 비늘이 존재하지 않으면 언제 마수가 다가올지 모르는 긴장감으로 다녀야 한다는 뜻이었다.
“진짜 웃긴 거란다. 해적이 언제부터 그리 안전하기만 했다고. 멍청하기도 하고, 내가 너무 이 자리에 오래 있었나 싶기도 하고.”
“예전의 해적이랑은 많이 달라졌나 봐요?”
“그렇지. 예전이 훨씬 신나고 재밌었는데, 참. 그러고 보면 너무 옛날이구나.”
과거를 회상하듯이 아련해지는 할머니의 표정에 과연 얼마나 옛날을 생각하고 계실까 싶었다.
‘반세기도 넘었나?’
“이제는 그때의 사람들도 다 사라졌구나. 뒷방 늙은이들이 되었어.”
“그런 것 치고 너무 무서운 거 같기는 한데요? 젊은이들이 힘을 못 쓸 만큼?”
“그건 그 젊은이들이 너무 쉽게 살아서 그렇지. 아니 젊은이들이 아니라 해적이 아닌 거란다.”
“그런가요?”
자신이 본 사람은 러더님 뿐이었지만, 10대대와 1대대에는 오래전부터 할머니를 모셨던 사람들이 더 있다고 들었다.
‘러더님도 괴물인데, 다 그 정도라면 진짜 할머니 말대로 다 쓸어버릴 수 있는 정도라는 건데.’
할머니가 나설 필요 따위도 없었다. 그냥 1대대만 나서도 지금의 상황을 정리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해적의 적은 본래 같은 해적과 마수들뿐인데, 생각해 보니 내가 그를 다 정리해 버리고 말았구나.”
“해적이랑 마수요?”
“그럼. 바다 위에서라면 감히 우리를, 아니 해적을 이길 수 있는 곳은 없단다.”
“다른 왕국들이나 제국은요? 거기도 바다에 사는 사람들이.”
“바다에 산다고 다 뱃사람이 되는 건 아니란다. 그리고 원래 그치들은 그냥 우리 밥이야.”
왕국의, 제국의 해군을 밥이라고 표현하는 할머니는 그것이 너무도 당연하다는 것처럼 말씀하신다.
“상선을 약탈하거나 몇 지역을 침탈하는 건 그냥 작은 유흥? 스트레스 해소? 이런 거란다.”
해적 그 자체에 대한 자부심이 넘치는 할머니의 말이었다. 그리고 사실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위협이, 아니 상대가 사라지니 쓸데없는 권력 놀음이나 하는 것을 보니 씁쓸하구나.”
“그럼. 한 번 뒤집으면 되지 않을까요?”
“그래도 변하지 않을 것이란다. 이미 너무 편했던 것이지. 사실 나도 이렇게 될 거라고 생각을 못 했구나.”
“혹시 그 비늘? 때문인가요?”
“가끔 량이가 너보고 똑똑하다고 하더니 사실인가 보구나? 그치. 아마도 그것이 가장 큰 것 같구나. 불순물도 좀 들어왔고.”
“불순물이라면, [맘몬]을 말씀하시는 거죠?”
“쯧. 마음 같아서는 그냥 다 갈아엎고 싶지만, 그건 내 일이 아니니. 다음이 알아서 하겠지?”
어느새 저택에 도착했다. 조금 더 할머니와 단둘이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자신들을 기다리는 이들이 보였다.
“막내? 생각보다 엄청 멀쩡한데? 말도 안 되는데?”
양손에 량이 준 포션을 들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어머니가 놀라며 말하는 것이 보인다.
“너는 날 뭘로 보고 그러는 거니!”
“아니. 엄마야 적당히지만, 그 적당히가 엄마한테나 적당히지 우리는 죽어난다니까?”
“쯧. 아이들이 하나같이 허약해서야 마음을 놓을 수가 없어.”
“좀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엄마는 정말!”
그러면서 자신의 몸을 하나하나 살펴보는 어머니의 손 길에는 애정이 묻어났다.
“정말 고생했다. 우리 엄마가 난리 치는 걸 받아주려면 엄청 고생했을 텐데 말이다.”
“그래도 나름 많이 참으셨어요. 그래서 그나마 이 정도인거죠.”
“들어가서 빨리 먹자. 고생했을 텐데 맛있는거라도 먹여야지. 정말.”
“아니! 왜 이러실까. 진짜로 조심했다니까?”
“4년전 그날.”
“아니. 또 그건 왜 꺼내서 그럴까아.”
“6년 전에도.”
“들어가자. 그래 내가 죄인이다! 그래도 잘 버티기만 하더구만. 연해는 가뿐하고.”
궁시렁거리면서 들어가는 할머니의 말에 또 한바탕 잔소리를 하면서 따라가는 어머니.
어느새 옆에는 량이와 카인이 다가와서 궁금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 뭔데 그 눈은?”
“어땠는데?”
“뭐가 어때. 힘들고 죽을 것 같았는데?”
“그런 것 치고는 너무 멀쩡해서. 그리고 초인이 힘을 쓰는 걸 보는건 진짜 귀한 거거든.”
“아. 몰라! 들어갈 거야.”
“아니. 어떤 식으로 움직였는데! 훈련 할 때랑은 뭐가 달랐어?”
귀찮게 달라붙는 두 친구를 떨어트리고 저택의 안으로 들어갔다.
*
“꼭 가야하는거야?”
“안 가도 된다니까? 나랑 량이만 다녀오면 돼. 그러니까 그냥 있어. 혼자서. 조용히 사색을 즐기면서.”
“아니. 네가 가면 나도 움직여야 하니까 그렇지. 그리고 결국에 말 해 줬는데 왜 아직도 그러냐.”
어제저녁을 먹은 이후로도 계속 알려달라는 카인과 량이 사뭇 신기했다.
‘초인이 힘을 쓰는 걸 보는 게 그렇게 힘든가?’
초인이 힘을 사용하는 것 하나하나가 중요한 정보라면서 내놓으라고 강짜를 부리는 이들.
그렇기에 조금. 아주 조금 장난을 친 것으로 이렇게 아직도 뾰루퉁해있다.
“진짜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 그 하나 알려주는 게 그렇게 힘들었냐!”
“아니. 알려줬잖아 그래서!”
“어젯밤 내내 시켜 먹을 건 다 시켜먹고!”
“에이.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었잖아. 량이에 비하면야 뭐.”
“뭐. 그건 그렇지만!”
“그래서 너도 재밌었다 아니다?”
“재밌었는데!”
“그래서. 오늘 회의에는 우리는 왜 가는 거야?”
자연스럽게 카인을 앞으로 이끌면서 이야기를 하자, 못 이기는 척 따라오는 카인이었다.
“진짜 내가 너니까.”
“알지. 잘 알지. 그래서 왜 가는 건데?”
“이제 이모가 은퇴했잖아?”
카인이 이모라고 할 때마다 너무 웃겼다. 그래도 할머니 교육의 효과는 정말 탁월하기는 했다.
“그러니까 이제 마지막으로 평화 속에서 모이는 거겠지? 그만큼 드러나는 게 많을 거야.”
“복잡하구만. 근데 아직도 잘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야.”
“어떻게 전쟁을, 전투를, 통일하냐는 거지?”
카인의 말이 내 의심의 핵심이었다. 구역주를 정하는 것, 지배자를 정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그렇지않아? 사실 지배자라는 것도, 구역주라는 것도 할머니의 존재 때문에 가능한 거잖아?”
실제로 그랬다. 자유섬은 할머니에서 시작해서 할머니로 끝난다.
레핀 일리야 마을이 특수한 케이스였을 뿐, 그 누구도 할머니의 지배력에 의심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공고한 체계가 할머니의 은퇴로 하루아침에 혼란으로 빠진 것이다.
그런 가운데 수많은 이들이, 그것도 준비를 이미 한 것 같은, 패권을 차지하려고 하고 있다.
“그런데 할머니가 은퇴하셨단 말이지. 구역주들도 다 꿍꿍이가 있고. 그 상황에서 뭐가 어떻게 되는 거야?”
“네 말은 서도의 주민들을 말하는 거지? 정말 왕국에서처럼 그런 전쟁이 일어날 건지에 대한 의문인 거고.”
“그런 거지. 전쟁이 일어난다는 거잖아? 아무리 포장을 해도 전쟁이니까.”
자신만큼 전쟁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이가 이 세계에 이 시점에 존재할까 싶었다.
‘전쟁은, 몇을 제외한 모든 이들의 파멸인데 말이지. 이 서도가 그렇게 된다는 게… 믿기지 않는데.’
전쟁이란 건 있는 자들의 유희이고 다툼일 뿐이다. 아닌 이들에게는 삶의 파괴일 뿐 다른 것이 아니었다,
‘특히나 전선에 있는 마을들, 도시들은 수탈의 대상이지. 살아있는 가축이고.’
무력이 없는 이들에게, 힘이 없는 이들에게 전쟁이라는 것은 모든 것을 빼앗기는 시간이라는 것이다.
‘할머니가 그렇게 놔두실까. 아니, 가만히 있을 수 있으실까?’
“일단 네가 간과하는 게 세 가지 나 있어.”
“응? 갑자기?”
“우선은, 이모의 영향력. 아무리 은퇴를 하셨다고 해도 감히 이모 앞에서?”
“그렇다고 한들. 은퇴하신 건 하신 거지. 그리고 어떻게 해도 모든 곳에 관여하실 수는 없고.”
“그리고 다른 하나는 량이의 음험함? 네가 몰라서 그래. 량이가 얼마나 음험한 아인데.”
“아니.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린데?”
“네가 걱정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란 소리지. 아마 대부분의 마을들은 괜찮을걸?”
“괜찮다니? 그게 또 뭔소리야?”
“마지막으로 네가 간과하는 게 자유섬이라는 곳의 특수성. 절대 마을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 착취까지는 한계선인데, 침탈하는 순간.”
“순간?”
“모든 해적의 적이 되는 거지. 그건 해적으로의 금기야.”
“해적으로의 금기라고? 마을을 침략하고 약탈하는 게? 해적이 약탈하는 게 금기라는 건 무슨 소리야?”
세상에서 가장 웃긴 말을 들은 기분이었다. 해적이 약탈하지 않는다니.
“자유섬에서 약탈한다는 건 말이지.”
카인의 설명을 들으려고 하려는 찰나에 도착해버렸다. 주변의 사람들이 도떼기 시장처럼 들어가려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왠지 이 모습이 할머니가 은퇴하고 난 후의 자유섬의 모습 그대로인 것 같은데.’
불과 하루. 하루 사이에 이렇게 변했다. 그만큼 할머니의 공백이 느껴진다.
“길을 뚫어라!”
장난식으로 옆에서 말하는 카인을 보면서 조금 어울려 주기로 했다. 그리고 기세를 피운다.
‘할머니가 워낙 괴물이고 그 옆이 괴물이라서 그렇지.’
이 도떼기 시장에서 자신을 감당 할 수 있는 인물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리고 선전포고이기도 하고. 뭐 알아서 하겠지?’
몇몇을 제외하고는 숨을 가쁘게 쉬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그 몇몇을 열심히 눈여겨보는 카인.
“그럼. 들어가실까요? 구역주님.”
어느새 자신의 옆으로 온 량이. 그리고 그 옆에 딱 달라붙은 칼라 이모.
“그래. 시원하게 뚫어보시지. 수호대주님.”
소란스럽기 그지없던 광장의 앞에 정적이 찾아오니 괜히 기분이 좋았다.
“아주 맹랑하기 그지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