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검을 자른 후에 오이겐과 할머니와 함께 진지하게 토론을 이어갔다.
무슨 느낌이 들었는지, 왜 그렇게 했는지. 무엇이 변했는지.
할머니의 이야기와 오이겐의 설명은 한층 그것을 더 잘 이해하게 해주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날 때, 할머니께 재밌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막내 친구가 생각 이상인데? 해년회의를 통해서 안부를 전하기도 하고 말이야.”
“네?”
“이번 해년회의에 참석하기를 기다리며 온전히 그 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다. 뭐 이렇게 왔네.”
안 그래도 괜히 걱정이 들었는데, 역시는 역시였다.
‘하긴, 량이 나를 걱정하면 했지, 내가 할 주제는 아니지.’
“제 친구라서 그런 게 아니라. 정말로 똑똑한 친구예요. 아마 오이겐 이상으로?”
“오이겐을 겪고도 그런 말을 한단 말이야? 안 그래도 꼭 보고 싶었는데.”
“막내 고모 때문이죠?”
“그럼! 그나저나 칼라 이 기지배가 남자를 만날 거라고 생각도 못 했는데 더 기대되는구나. 어쩌면.”
무언가 들릴 줄 알았는데, 들리지 않았다. 입안에서 맴돌고 사라진 듯했다. 그에 대해서 물으려는 찰나.
“그나저나 굉장한 발전이더구나. 속도가 빨라. 기본 재능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네가 특별한 건지 모르겠구나.”
“그래도 여전히 잘 모르겠는걸요. 티거를 이기는 건 좀 요원한 일 같기도 하고.”
“인석아. 아무리 비인이라고 할지언정, 그 강함이 초인과 같다고 하는 이를 네가 그리 쉽게 이길 줄 알았니?”
“하지만… 앞으로 그들과 싸우려면 티거는 이겨야 하지 않을까요.”
“흠. 네가 이야기 한 것으로 보아서 솔직히 평가하자면. 티거 정도면 마스터 둘이면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싶구나.”
“네?”
마스터 한 명을 잠시라도 묶어두기 위해서는 적어도 10명의 익스퍼트가 필요했다,
그만큼 마스터와 익스퍼트의 격차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런데 마스터와 초인은 더욱 심했다.
그것을 알고 계실 것이 분명한 할머니께서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잡는다는 게 잠시 잡아둔다는 것인가요?”
자신도 어느 정도 잡아두기는 했으니, 두 사람이면 시간을 버는 것은 충분할 것 같았다.
“아니. 모가지를 따는 걸 말한단다. 무슨 잡아두는 건 너 혼자로도 충분하지. 지금으로도.”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 얼굴로 있자 할머니께서 조금 더 상세하게 설명을 해 주신다,
“본래 선천 재능을 사용하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말했지?”
“네. 지금도 충분히 느끼고 있어요.”
사실이었다. 오히려 자신의 체력이 지치지 재능을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이겐과 할머니와 함께한 한 달동안 정말 별의별 것을 베고 또 베었다.
온종일을 벤 적도 있었는데, 약간의 무아를 경험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말 놀랍게도 자신이 지쳐 떨어져 나갔다.
오히려 지쳐서 온몸에 힘이 없어지니 재능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지는 신비한 경험을 했다.
마스터의 육체를 지치게 하려고 정말 수많은 방법을 썼고 그때마다 재능이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신기하게 그때마다 체력은 바닥이 나도 재능을 사용하는 데는 정말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
“하지만 비인들은 다르단다. 참 웃긴 게 힘을 탐하고자 했는데, 재능을 사용하는데도 제약이 생겼지.”
“제약이요? 별다른 건 못 보긴 했는데. 조금 지친 정도?”
“잘 생각해 보렴. 무엇이 달랐는지.”
할머니의 말씀에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던 기억을 다시 꺼낸다.
‘생각해 보면, 이상한 점이 있긴 해. 선천 재능을 거의 안 쓰고 싸운 것 같은데.’
자신의 재능이야 워낙 눈에 보이지 않아서 그렇다 쳐도 티거 또한 그랬다.
‘종종 내가 어떻게 움직일지 아는 것만 같은 움직임. 그러고 나서 그 순간이동.’
두 가지를 제외하고는 드러난 적이 없었다.
‘순간이동을 하고 난 후에는 다리가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고, 그 이후는 잘 모르겠네.’
“약간 지친 것 같기는 하지만, 별다른 점은 없었는데요?”
“마스터가 지친다는 게 별다른 점이란다. 생각해보렴 네 힘을 빼기 위해서 우리가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왜 그것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싶을 정도로 당연했다. 고작 전투를 치렀던 시간이 30분도 채 되지 않았을 것이다.
마스터가 30분 만에 지친다는 것이 이상했어야 하는데, 그것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못한 자신의 패착이었다.
“아마 그 티거는 반동이 체력인가 보구나. 재능을 사용하는 대가로 말이다.”
생각보다 그렇게 큰 제약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초인의 힘을 가지게 되는 것 치고는.
“생각보다 별다른 제약이 아닌 거 같은데요?”
그 말에 크게 웃으시는 할머니였다.
“지금껏 허투루 배웠구나. 잠시 나오렴.”
동굴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꺾으니 작은 냇가가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할머니의 손짓을 따라 생기는 와류가 있었다.
“보렴. 간단하지. 과연 이걸 내가 얼마나 지속 할 수 있을까?”
“글쎄요. 한 시간이요?”
“땡이다. 해보지 않았지만, 내가 정신을 차리고 있는 내내 할 수 있단다. 숨을 쉬는 것처럼.”
“사기에요!”
“그렇지. 사기 같은 능력이지. 그리고 우리 모두의 선천 재능이 이렇단다. 네 재능을 사용하면서 지친 적이 없잖니?”
“하지만, 그 순간이동 같은 능력은 정말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강대했는데요?”
“항상 어떤 능력이든 파훼법은 있단다. 그것을 네가 찾지 못했을 뿐이지. 막말로 그저 방어에만 집중한다고 생각해 보렴. 그럼 어떻게 될 것 같으니.”
“방어에 성공한다면야, 이길 수 있겠지만.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순간 와류를 이루고 있던 물이 자신에게 쏟아진다.
“인석아! 날로 먹으려고 하면 안 되지. 생각해야지. 그리고 지금은 이렇게 생각할 시간이 많다지만, 전투에서는 어찌하려 그러누.”
‘이상하게 오히려 전투에 있을 때가 더 빨리 머리가 돌아가는 것 같단 말이지.’
“그런데 그 대가가 꼭 체력인 것만은 아니죠?”
“다양하단다. 내가 본 비인의 대가는 시력의 감퇴였단다. 억지로 계속 쓰게 했더니 결국 시력을 잃더구나.”
언제나 자상하고 푸근한 할머니지만, 이런 말을 들을 때면 새삼 해적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근데요. 할머니. 초인이 되었다는 건 어떻게 알 수 있어요?”
재능을 갈고닦으면서 가졌던 가장 큰 의문이었다. 과연 어느 단계가 되어야 초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자신이 지금 가고 있는 길이 얼마나 남았을까에 대한 의문이자 궁금증이었다.
“너무 조급해할 필요 없단다. 너는 충분히 잘 나아가고 있으니.”
“그래도. 잘 분간이 안 돼요. 제가 잘 가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할머니처럼 그렇게 어마어마한 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충분히 어마어마하단다. 보이는 것에 매몰돼서 자신의 가치를 잃어버리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지.”
“맞아! 멍청이. 자기가 가진 재능의 잠재력도 모르면서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오이겐?”
“어디 갔나 했더니, 여기에 있었는데 헛소리를 하고 있어서 답답해 죽는 줄 알았다.”
“하지만, 사실 보이는 것만으로 따지면 너무 차이가 나는걸”
처음에는 오이겐에게 님도 붙여보고 존대도 했지만, 죽을 것 같다며 말을 놓으라고 한 뒤로는 꽤 많이 친해졌다.
그리고 나서는 막말의 빈도가 심히 많아졌지만, 마치 량이의 머리에 카인의 성격 같아서 재미있었다.
그리고 내비두면 자기가 답답해서 알아서 대답해주니 훨씬 편하기도 했다.
‘말이 너무 많아서 좀 그렇기는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한숨에 저 많은 말을 어떻게 할까 싶을 정도로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멍청아. 기본 재능은 우선 근원과 닿아있어서 잘못될 길로 빠질 일도 없지. 거기에 한계가 달라 한계가. 초인? 고작해야? 아니지 훨씬 더 나아갈 수 있는 씨앗을 가지고 있는데 뭐? 보이는 게 별로라고? 진짜 어이가 없네. 첫날에 보여준 책은 국 끓여 먹었냐?”
그리고도 아직 성에 안 찼는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가는 오이겐.
“이 세상을 이루는 근본이 뭐라고 했어! 마나라고 했지! 마나에는 세상이 담겨있다고. 근데 너는 그걸 비록 가공된 형태이기는 하지만 자를 수 있다고! 그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모르냐! 기껏해야 물방울 동동그리랑 어떻게 비교를 컥!”
물방울 동동그리는 할머니의 재능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말에 와류가 물방울이 되어서 그대로 오이겐의 머리를 향했다.
“듣는 물방울 기분 나쁘다고 몇 번을 말했니. 정말 머리가 좋으면 뭐하누 말이 이따위인걸.”
물방울이 얼굴에 동동 떠 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라진다.
“할망구! 해수는 독이라구! 내 피부에도 좋지 않아! 진짜 죽이려고 작정한 거야?”
“네 입이 조금만 고와지면 이럴 일이 없을 텐데 그렇지?”
“정말! 하여튼 범! 너! 진짜 그렇게 생각하는 게 네 재능에 대한 모욕이야. 몰랐을 때는 그렇다 할 수 있지만, 지금은 아니잖아.”
오이겐이 그렇게 말을 하니 위로가 되면서 자신의 재능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네 재능은 자기 확신이 가장 중요해. 아니, 어떤 재능이든 그렇지. 네가 열등감을 가져도 교만함을 가져도 안 돼. 재능은 너를 이루는 근간이고 네가 쌓아가는 모든 것의 기반이야.”
“오이겐의 말이 맞단다 자신의 재능을 천시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단다. 재능은 선물이자 평생 함께하는 것이니.”
단 한 번도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 없었다. 당연하지 않은가. 자신은 기본 재능이었다.
‘진짜 신기한 게 조금 있다 싶은 사람들은 모두가 기본 재능이 쓰레기라고 하는데 정점에 오른 할머니는 선물이라고 축복이라고 하네.’
“할머니를 만나서 정말 다행인 거 같아요. 오이겐도.”
“그럼! 어디 가서 나 같은 사람을 만나겠어? 나 같은 천재는 또 없다고?”
“아닌데요? 있는데요?”
“하! 네가 몰라서 그런데 나는 자칭이 아니라 타칭 천재다?”
“제가 아는 아이도 타칭 천재인데요? 진짜 괴물 같은데, 그것도 둘이나?”
“데리고 와 봐! 감히 어딜 비교할 걸 비교해야지! 나랑 대화가 통하는 사람도 얼마 없었어. 너 사람이 금붕어로 보이는 게 어떤 느낌인지는 알기나 하냐?”
“저랑 할머니도 금붕어 같아 보여요?”
“...”
다시 냇가의 물이 와류를 이루며 물기둥을 서서히 만든다.
“아니! 할망구 그렇다고 그러면 안 되지 아니 어느 분야에서는 아니지만, 또 다른 분야는 다르지!”
“입방정. 너는 깊이가 없지. 깊이가.”
“아니. 나 정도면 됐지. 뭐 얼마나 깊게 파야 하는데! 세상에는 알아야 하는 지식이 너무 많다고!”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근원은 그렇게 가서는 안 될 거다.”
“두고 보라지! 흥! 그나저나 그 둘은 누군데!”
데리고 오고 싶었고, 소개를 해 주고 싶었지만, 자신이 결정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할머니라고 하지만, 엄연히 이 장소의 주인이자 절대자였다. 눈을 돌려 할머니를 보니 인자하게 웃으시며 입을 여셨다.
“조만간, 아니 해년회의 중에 볼일이 있을 거니 그렇게 채근하지 말거라.”
“데리고 와도 될까요? 정말요?”
“다들 나와 관련이 있으니 괜찮단다. 하나는 막내의 예비 사위고 하나는 쌍놈의 아들이니.”
“쌍놈의 아들이요?”
“그런 놈이 있단다.”
그리움이 묻어나는 눈. 쌍놈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마음에 들어하시는 것 같기는 했다.
‘카인의 아버지가 왜 쌍놈이지?’
“빨리 들어가자! 이제 2달밖에 안 남았어! 시간이 없다고!”
그러고 돌아가는 오이겐을 따라서 할머니와 함께 동굴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날 저녁. 오이겐은 지쳐 뻗었는지 잠이 들었고 유독 잠이 안 오는 날이었다.
밖으로 나가보니 별을 바라보고 계신 할머니가 보였다. 옆에 앉아서 같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진짜 별이 많은 거 같아요. 유독 여기는.”
“그렇지? 나도 그래서 여기를 좋아한단다. 여기보다 별이 잘 보이는 곳은 한 곳밖에 없지.”
“그런 곳이 있어요?”
“그럼. 대양 한가운데서 하늘을 바라보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단다.”
함께 별을 바라보다가,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아공간에서 꺼내 할머니께 드린다.
“할머니. 이거...”
남은 자의 동전이라고 불리는 그것. 황제에게 부탁을 요구할 수 있는 물건. 하지만, 이미 많이 받았다.
할머니에게 이런 것으로 더 받는 것도 죄송스러웠다. 량이 보면 죽이려 하겠지만, 지금 없으니 뭐.
“네가 이걸 어떻게?”
“섬으로 올 때, 선장님께서 주셨어요. 근데 제 것이 아니니까요.”
한 손으로 동전을 들고 바라보면서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할머니.
뭐가 그렇게 그립고 서럽고 안타까운지 얼굴에, 눈에 다양한 표정이 감정이 서렸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이 동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