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본 재능으로 정점-98화 (98/217)

[98화]

첫날. 감격했다. 그 파울로 님의 후계자 포션에 담겨질 수 있다는 사실에.

그리고 친절하게 이론을 알려 주는 모습에 대단하다고 느꼈다. 공녀님의 친구는 참 대단했다.

자신의 조를 순식간에 몰아치는 범 님도 대단했지만, 그 이론을 쉽게 설명해 주고 몸의 자연 치유를 돕는 포션을 만든 량 님도 대단했다.

하지만 그 감탄은 불과 하루였다. 이것도 이해 못하며 날아드는 곰방대는 지옥이었다.

다들 자기 같은 천재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왜 한 번 이야기 했는데도 이해 못하냐는 외침은 자괴감을 들게 했다.

‘그때 분명히, 더하기를 알려줬으면 곱하기는 자연스럽게 알아야하는 거 아니냐고 하셨지… 그게 되는 사람이 있냐고.’

그리고 그 지옥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맞고 부러지고 담기고를 얼마나 반복했는지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금붕어는 몸과 머리에 새기지 않으면 모른다며, 변수 하나하나를 머리에 박힐 때까지 듣고 듣고 또 들었다.

*

수하들 굴리기를 5일 정도 하니 눈에 확연하게 변화하는 모습이 들어왔다.

‘확실히 량이 도우니까 진짜 빠르기는 하구나. 천재긴 한갑다.’

조금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자신은 10년 가까이 [바람의 탑]을 공부했는데, 그보다 량이 훨씬 더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생각해 보지 않았던 과정, 결과들이 량의 입에서 튀어나올 때마다 새로운 사실처럼 다가왔다.

표정이 죽어가던 때, 그걸 또 어떻게 아는지 량이 다가와서 위로인지 욕인지 모를 말을 해 주었다.

‘넌 이런 거 다 알 필요 없어 이레귤러 같은 놈이라서.’

바로 이해했다면 좋을 일이지만, 그렇지 못했고 결국에 다시 량에게 묻는 우(愚)를 범했다.

‘하. 진짜. 넌 가끔 정말 똑똑한 것 같은데 항상 멍청이 같아. 도대체 이해가 안 간다니까?’

그러면서 설명하기를 자기는 갑자기 직진을 하는 비숍과도 같다고 설명해 주었다.(체스에서 비숍은 대각선으로만 움직일 수 있다.

제대로 못 알아듣자 결국에 한 말이 있었다.

‘이론 중요하지. 너도 알기는 해야지. 그런데 넌 자세하게 파고 들어갈 필요 없어. 몸으로 때우는 스타일이야. 감으로. 본능으로. 그런 주제에 남들보다 빠르지. 재수 없게.’

누가 누구한테 재수 없다고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해했다.

“결국, 몸으로 때우면 된다는 소리를 그렇게 어렵게 해야 하나 몰라. 천재들이란. 쯧.”

4일째가 되던 날 량이는 자신이 이제 처리해야 할 일이 생길거라며 돌아갔다.

‘기본적인 매뉴얼을 머리에 박아 놨으니, 바보가 아니라면 어찌어찌는 될 거야.’

라는 말에 수하들의 어벙벙한 표정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심지어 그 프라우가.

‘이게 기본. 기본적인 매뉴얼. 난,  나란 아이는. 기본도 못하는 바보였던가.’

라며 넋을 놓고 이야기하는 장면은 생각지도 못한 볼거리였다. 마지막 하루는 전 인원과 하는 대결.

생각 이상의 결과가 튀어나왔다.

“대장! 어때요. 찌릿찌릿하죠? 진짜 대장만 아니였음. 우리가 그냥 확!”

“그래. 그래. 자알 나서 여기저기에 구멍도 숭숭 뚫고 신나셨지 다들?”

자신도 결국, 수하들과 함께 통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진짜. 위험했지. 생각 이상인데?’

고작 익스퍼트 8명(프라우를 포함해서 5명이 익스퍼트에 올랐다)에 유저 10명. 그들이 자신과 대등했다.

‘비록, 재능도 안 쓰고 죽이지 않으려고 해서 아주 그렇다고는 할 수 없지만.’

마스터와 대치가 가능한 전력이 익스퍼트 10명이라는 점에서 이들은 이미 그 이상의 힘을 내고 있었다.

‘적어도 익스퍼트 20명분의 힘은 되려나. 진짜 몇 명 죽을 각오하면 갓 오른 마스터는 잡을 수도 있겠는데?’

말도 안 되는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마스터를 죽이기 위해서는 적어도 20명의 익스퍼트가 필요했다.

그래야지 죽는 익스퍼트보다 살아있는 익스퍼트가 더 많다. 심지어 그들의 합도 중요했다.

그런데 그런 걸 고작, 유저 전원이 아무리 익스퍼트를 바라본다고 할 지라도, 8명의 익스퍼트와 유저 10명으로 할 수도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 량이 만든 플라비스 카테나가 얼마나 뛰어난지를 알 수 있었다.

‘앞으로 판도가 바뀌려나? 아니지, 이걸 또 만들 수 있는 괴물이 있을 리가.’

“대장. 저희는 이제 어디로 가게 되나요?”

이제는 대장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게 들리는 프라우의 말에 상념이 멈추었다.

“아! 말을 안 해줬구나. 점령전. 시작할 거야. 그래서 이렇게 급하게 굴린 것도 있고.”

점령전이라는 단어에 통 속에서 골골대던 이들의 눈이 번쩍 뜨인다.

“그런데 저희가 다 갈 수 있나요?”

날카로운 프라우의 질문에 벌써부터 초조함이 눈에 보인다.

‘하여간 전쟁광들 아니, 전투광들이라니까. 그렇게도 나가서 싸우고 싶은가. 에휴 에휴.’

자기는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채 수하들을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을 이었다.

“다 가니까 그렇게 다 같이 굴렸지.”

“하지만. 저희가 다 빠져나가면, 점령을 해 보았자 의미가 없는 거 아닌가요?”

가끔 로사나, 에밋이나, 프라우를 보면 귀족은 역시 귀족이긴 한가 보다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난, 량이 점령전을 하자고 했을 때 어디부터 칠까라고 물어봤는데 말이지.’

시야가 다르다고 해야 할까,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다고 해야 할까. 다른 점이 있었다.

조금 더 넓게 보고 조금 더 멀리 보는 시야가 그들에게는 그저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나도 좀 저런 건 배워야 하는데, 그 뭐냐. 나무를 보고 숲을 보자인가?’

“괜찮아. 괜한 신경전 벌이지 마, 나무통 안에서 그러니까 진짜 웃긴다. 얼굴들만 동동 떠서.”

“하지만!”

“하지만이고 저지만이고, 넌 량이를 모르냐.”

“아.”

량이라는 단어 하나에 금방 수긍하는 프라우였다. 그만큼 량이 보여 준 모습이 대단하다는 방증일 것이다.

“에밋이 자신 휘하의 마법단을 파견해 주기로 했어. 당분간.”

‘또 뒤에서 뭔가 꾸미고 있겠지. 음흉해 빠져 가지고.’

“확실히! 마법사라면, 그것도 와흐네 공작가의 마법사라면 마음 놓고 다녀도 되겠네요!”

이 세계에서 소수의 전투마법사를 제외하고는 마법사는 강자로 취급받지 못한다.

연구하고 학문을 갈고 닦는 학자로 취급받는다. 하지만, 그들이 빛나는 때가 있었다.

전장의 포격대. 마법사를 이르는 말이었다. 전투가 아닌 전쟁에서는 마법사가 훨씬 위력적이고 무섭다.

그리고 그보다 더 빛나는 때는 바로 수성을 할 때였다. 시간을 가지고 준비된 마법사가 있는 성을 공략하는 것은 미친 짓이었다.

‘진짜 압도적인 힘으로 무너트리지 않는 이상 답이 없지. 시체의 탑을 쌓는 수밖에는.’

시체의 탑이라는 어구가 나오게 만든 이들이 바로 와흐네 공작가. 그 마법사들이 오는 만큼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에밋의 휘하야. 프라우.”

“아. 네.”

자유섬. 그중에서도 서도에서 참 많은 것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에밋도, 카인도, 로사도.

‘그러고 보니 다 나랑 친한 친구들이네. 서로는 좀 아닌 것 같지만.’

량이 고백한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너희만은 내가 내 생명처럼 생각하고 나보다 먼저 생각할게.’

술 때문인지, 부끄러움 때문인지 모를 그 모습은 잊혀지지 않는다. 카인과 량 그리고 마틴과 함께한 자리에서 고백한 그 내용.

‘에밋이 서운하겠어. 에밋 탓도 있겠지만.’

어느새 다들 희희낙락한 채로 통에 담겨 있는 이들이 눈에 들어온다.

“너희 죽을 수도 있는 점령전에 나가는 게 그렇게도 좋냐? 하여간 다들 전투에 빠져 가지고.”

갑자기 작은 소란마저 사라지고 다들 어이가 없다는 듯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장. 진심이유? 진심으로 우리한테 그런 소리를 한 것이유?”

“맞잖아? 다들. 점령전이라고 하니까 희희거리고 있고 말이지. 에휴.”

“하! 다른 사람이 그러면 몰라도 대장이 그러면 안 되지유. 지금 웃고 있는 거 몰라유?”

“하! 너네가 걱정돼서 그렇지. 내가 참 고생이 많다!”

*

머리만 통에 동동 떠 있는 이들이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시간. [빛과 바람의 집] 최상층.

“우리 자기는 왜 이렇게 멋질까?”

“그만해 칼라. 나 집중해야 해”

그 말에 일어나서 옆에 놓인 의자로 향해 앉는 칼라. 량을 보는 표정에는 미소가 감돈다.

“남자가 되었어. 풋풋함이 있었는데 아니, 친구들 앞에서만 풋풋한 건가?”

“뭐. 걔네들 앞에서는 그렇지. 그리고 네 앞에서도 똑같아.”

그 말에 더욱 짙어지는 미소가 입에 감도는 칼라. 안도감이 그 미소 안에 섞여 있다.

“불안해 하지 않아도 돼. 안 그래도 스승님께서 오고 계신다더라.”

“헐! 왜 그걸 지금 말해! 진짜 못됐어!”

그 말을 끝으로 빠른 속도로 방을 튀어 나가는 칼라. 그 모습을 보니 웃음이 절로 나온다.

“배필이라… 생각지도 못 했는데 말이지.”

범을 만나고 나서 참 많은 것이 바뀌었다 싶다. 고마운 존재. 자신의 친구.

“그러니까 앞을 방해하는 떨거지는 빨리빨리 치워 버려야지. 같이 있을 시간도 얼마 없는데.”

의자를 뒤를 돌려 서도의 지도를 바라본다. 머릿속에 있지만, 하나의 습관.

팔걸이를 톡톡 치면서 계산하고 예측을 한다. 다양한 시나리오가 떠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어느 순간 팔걸이를 치는 손이 멎었을 때. 의자에서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오랜만이야. 에밋. 딱 맞춰서 왔네?”

“오랜만, 이라고 해야 하나?”

복잡한 표정의 에밋이 눈에 들어온다. 자신을 휘하로 만들기 위해 매 순간을 노력한 사람.

‘하지만, 그렇기에 거리가 생긴 사람인데 쟤는 그걸 잘 모르지. 하긴 어쩔 수 없기는 하다만, 그게 이유가 되는 건 아니니까.’

스승님과 에밋 공작가의 가주님을 제외하고 자신의 능력을 그나마 가장 먼저 안 상대가 에밋이었다.

한창 치기 어리던 10살 시절, 스승님의 힘을 어렴풋이 알게 되고 조금 잘난 척한 적이 있었다.

그때부터 에밋의 눈에는 강한 욕망이 떠올랐고, 그것이 그대로 느껴졌다.

‘친구가 되고 싶다고 하지만, 결국 자신의 밑으로 오라는 거였지.’

권세가의 2세들의 특징이라고 할까, 삶의 방식이라고 할까. 그들에게는 친구가 없었다.

자신들과 동등한 권세가의 이들과 친교를 나눌 수는 있지만, 모든 것을 벗을 수 있는 친구는 없다.

규격 외의 존재들처럼 경외를 하거나, 맞서고 이겨야 하는 동등한 이들이거나, 아니면 자신의 휘하로 들일 수하만이 존재했다.

‘이상하지, 초대 가주들은 대부분 그런 게 없는 것 같은데. 어쩔 수 없는 환경도 있겠지만.’

그래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다. 자신이 장기짝으로 부리는 인간들의 수하가 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은 일.

필시 자신이 순 상회의 총수가 되었다는 사실을 듣고, 저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리라.

믿지 못 했을 것이다. 자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 그렇기에 직접 온 것이리라.

“뭐 살다 보면 이렇게도 저렇게도 되는 법이더라. 그래도 흔쾌히 부탁을 들어줘서 고마워.”

“당연하지. 순 상회의 지분의 3할은 그래도 내가 가지고 있다고? 우린 친구잖아?”

금세 표정을 풀고 밝은 표정으로 말을 하는 에밋이 보인다. 저것이 괜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도 생각 이상의 지원이였어. 확실히 이제 시작하는 건가 보네?”

“응. 이번 기회가 좋은 경험이 될 거라고 하시더라. 그래서 대진(大陣)을 데리고 올 수 있었어.”

“후. 들어와. 숙소를 알려 줄게.”

‘대진을 데리고 왔다는 건, 하 진짜 이렇게 하는구나. 쯧. 아쉽네. 어쩔 수 없지. 슬슬 시작해야겠다.’

그리고 그 광경을 창문으로 바라보고 있는 이가 있었다.

“저 꼬맹이구먼. 우리 자기를 귀찮게 하는 아이가. 흠. 내심 기대했던 것 같은데 실망했겠다. 우리 자기.”

“나도 엄마 있는데. 하. 진짜. 싫은데. 아니 그래도 어차피 한 번은 꼭 가야 했으니까. 엄청 혼날 거 같은데. 에잇! 일단 옷부터 고르자!”

그렇게 각자가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고착화 되어 있던 서도가 점차 변화를 맞이하기 시작했다.

*

“허. 고맙고 고맙구나. 내 소원을 들어주다니. 이룰 수 없다고 생각했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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