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화]
“쿠왕!”
거대한 소리와 함께 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오른다. 황망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철가면이 보인다.
‘큭. 위험할 뻔했어.’
등에 멍이 들었다. 생각 이상 잘렸고 자신의 등을 찍고 떨어지고 말았다.
‘후. 그래도 다행인데, 예상한 것 이상의 충격인 거로 봐서, 퍼그 님이랑 비슷한 과인가.’
“종자!”
다급하게 종자를 부르는 철가면. 그에 놀란 표정으로 어안이 나가 있던 로안이 품에 들고 있던 대검을 힘껏 던진다.
“흠. 한 번 봐줄게. 천천히 해.”
무기를 주는 것도 자유지만, 그 시간에 달려가 처리하는 것도 자유.
하지만, 내버려 두었다. 그간 그에게 “제물”이 되었을 이들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성에 차지 않았다.
꽤 힘을 주어서 던진 것 같은데도 연무장의 중앙이 아닌, 가장자리에 겨우 도착한다.
“쿵”
그리고서 1/3이 박혀 들어가는 것을 보니 그 무게가 심상치 않았다.
‘그래도 조심은 해야겠어. 저 무게에 재능이 더해지면 지금은 힘들어.’
검을 잡고 자세를 잡는 것이 눈에 보이자 그대로 튀어 나간다. 마디, 마디. 눈에 들어오는 것들.
‘참 좋단 말이지. 기권은 페널티가 더 크다는 점이. 그리고 저런 놈은 절대 안 하겠지.’
패배를 기록하는 것보다 2배 이상의 손해가 생기는 것이 기권패였다.
‘그 말은. 마음껏 벨 수 있다는 소리지.’
전장에서 졸(卒)이 살아남는 방법 중 한 가지. 그 누구보다 잔인해 질 것.
그리고 자신은 그 분야에 정통했다.
폭풍처럼 튀어나가 정확하게 귀 윗부분을 베어낸다. 당황스러워 하는 그 표정이 즐겁다.
“생각 이상으로 아프지?”
[육체의 이해]에는 인간의 신체가 정말로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외우느라 죽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통증을 느끼는 부분들은 쉽게 외워졌다. 자신이 경험해 알고 있는 부분들.
“이제 시작이니까. 정신 똑바로 차리고.”
무겁고 강렬한 기세가 넘실거리는 공격이 몰아치지만, 폭풍 앞에서는 휩쓸려 나갈 뿐이었다.
귀부터 시작해서, 한 마디 한 마디씩 잘라낸다. 특별히 재능을 푹 담은 도는 신경을 건든다.
절대 큰 상처를 내지 않는다. 얇게 포를 뜨듯, 하지만 정확하게 신경을 건드려서.
누가 보면 그저 작은 생채기에 불과할 뿐이지만, 정작 대상이 느끼는 고통은 상상 이상이다.
“왜? 별거 아닌 상처에 그렇게 부들부들 떨까?”
아직도 눈에 보이는 수많은 선들. 특히 자신이 노리는 선들은 많이 남았다.
“이. 이 애송이가!”
‘이상한데. 아파서 떠는 것 만이 아닌 것 같은데.’
아직 제대로 시작도 안 했다.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용병이라면 그럭저럭 버틸 정도일 뿐이었다.
“죽여버리겠다!”
눈이 벌겋게 물든다. 마니에르처럼 빛이 나는 선홍색이 아닌 검붉게. 실핏줄이 터지고 터져 눈이 붉은 색으로 물들자 대검이 운다.
“죽어라!”
‘위험!’
감각이 경종을 울린다. 저건 멀리 피해야 한다고, 그리고 감각에 그대로 따른다.
대검이 목표를 놓치고 떨어지는 동시에 땅이 움푹 파인다. 굉음과 함께 움푹 들어간 땅.
“죽어! 죽어! 죽어!”
무엇인가에 단단히 홀린 듯한 모습이었다. 광기의 덩어리가 자신을 향해 오고 있었다.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불균형한 그 느낌 때문인가? 아프면 깨어나겠지 뭐.’
저렇게 광분하는 대상이야, 좁고 갇힌 곳에서는 문제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오히려 좋은 먹잇감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리고 다시 질주를 시작한다.
*
“왜? 벌써 끝이야?”
미친 듯이 자신을 향하던 그 핏발 선 눈이 죽어가기 시작하는 것이 보인다.
아무래도 정신을 차린 듯, 검붉은 눈은 그대로지만 더 이상 광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전신에 피를 흘리고 있는 모습. 생채기가 쌓이고 쌓여 이제는 몇몇 군데는 뼈가 보인다.
“왜!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것이냐!”
“참 웃겨. 꼭 자기가 당할 때는 억울해 하더라. 자기가 할 때는 아무 말도 안 하면서.”
이미 무릎을 꿇고 있는 그의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아직 다 하지 않았다.
“그래도 지금의 나를 만난 거를 감사히 생각해. 이제는 함부로 안 죽이니까.”
그와 동시에 도에 자신의 모든 재능을 담아 그의 오른팔을 잘라낸다. 사회자가 대결이 끝났음을 말하기 전이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완전하게 다시 예전처럼은 되지 못 하겠지.’
소리를 지르고 있는 그 철가면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넋이 나간 로안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환호성을 지른다.
‘하. 은근히 피곤하네. 10연승이 진짜 쉽지 않은 거긴 하네.’
*
결국 어떻게 해서 마지막까지 왔다. 생각 이상으로 체력이 소진되었다.
‘억제하고 있는 게 이렇게 효과가 좋을 줄은 몰랐는데. 생각 이상이네.’
마나구속구를 따로 차지 않은 채 억제를 하고 있었다. 자신의 의지도 있었지만, [이니티움]의 도움이 컸다.
마스터에 이르렀을 때 또 한 차례 변화를 한 [이니티움]이었다. 도저히 끝이 어딘지를 모를 지경.
경지를 억압한다는 게 아직도 신기하지만, 심지어 량이조차 탐을 냈다, 굉장히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스승님조차 억압된 경지의 이상한 부분을 찾지 못할 정도였다. 알아차린 사람은 오직 둘 뿐이었다.
각설하고, 진짜 괴랄한 대전들이었다. 단체전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상상 이상이었다.
사제의 찬가(讚歌)와 치유를 받는 이들은 과히 죽여도 죽지 않는 이들 같았다.
끊임없이 몰아치는 이들을 심지어 죽여서도 안 되었다. 그렇기에 한 번에 기절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첫 대전은 그래도 어설픈 이들이었는데, 그 후로 나타나는 이들은 단체전에서 활약하고 있는 이들이었다.
숨을 고르고 있는데, 쉴 틈을 주지 않는 얄미운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파격! 파격의 연속! 과연 루키 이벤트의 끝까지 온 이가 얼마만에 나타난 지 모르겠습니다!”
아니다. 얄밉지 않고 고마운 사회자였다. 나름 시간을 주려고 하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진귀한 구경을 할 수 있는 우리는 실로 행운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루키 이벤트의 마지막에서야 볼 수 있는 그들.”
뭔가 뉘앙스가 이상했다. 자신이 아닌 자신의 대전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도대체 누가 등장하기에 그런 거지?’
사회자뿐만 아니었다. 여기에 모인 이들이 모두 흥분하는 것이 느껴진다.
“무투의 탑! 실로 수많은 강자들이 존재하기에, 무수히 많은 사건이 하루를 멀다 하고 벌어집니다!”
‘설마. 설마 아니겠지. 그런 괴랄한 것 따위’
“그런 강자들 사이에서 무투의 탑의 평화를 지키는 이들! 무투의 탑 강자들도 모두 인정하는 그들!”
‘하. 진짜 너무하네. 이건 이기지 말라고 하는 거나 다름 없지 않나? 아무리 노란 수실, 초록 수실이라도. 적어도 파란 수실은 데려와야 할 건데. 그것도 버티는 게’
“모두 3번대까지 존재하는 무투의 탑의 감찰대! 하지만. 그들을 지금 부르는 것은 너무한 거겠죠?”
자신을 바라보는 사회자가 더 이상 고맙지 않고 얄미워 보였다. 보아하니 모르는 사람은 오직 자신뿐인 것 같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카인이 알려줄 때 좀 더 자세히 듣고 물을 걸 그랬나.’
카인이 설명을 해줄 때 괜찮다고 말하는 과거의 자신에게 원망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무투의 탑 감찰대 보다도 더 보기 힘든 그들! 바로 예비 감찰대입니다!”
본래 한 감찰대는 20명 내외의 인원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런데 예비대는 고작 8명으로 보였다.
‘다행인가. 그런데 하. 예비대가 뭐 저리 괴물 같냐.’
이미 완숙한 익스퍼트에 이른 이가 둘, 아직 어설퍼도 익스퍼트인 이가 넷. 경계에 이른 이가 둘이었다.
“심지어 이번 예비대에서 각광받는 두 명은! 실력은 이미 감찰대에 들어갈 정도라 기대를 받는 기대주들!”
’왜! 도대체 이 세대에는 괴물이 이렇게 많은 거야!‘
“감찰대 개개인의 강함도 강함이지만! 그들을 무투의 탑의 감찰대로 군림하게 한 것은 특유의 합격술!”
’하. 진짜 이번에는 간당간당한데. 져야 하나.’
점수를 잃고 다시 쌓을 생각을 하니 아득한 기분이 들었다.
“그 합격술을 이미 완숙하게 익혔다는 이번 예비대와 파죽의 9연승을 쌓은 루키의 대결!”
‘하. 언제부터 이렇게 내가 쉽게 포기하고 쉽게 이기는 것만 익숙했지?’
새삼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언젠가부터 이기는 것이 당연하게 되었다.
마스터가 되고 몇몇, 초인이라던가 초인 같은, 괴물을 제외하면 자신은 이기는 것이 당연했다.
세상에 마스터가 많으면 얼마나 많겠는가 싶고, 그렇기에 어느 순간 쉬운 승리는 당연한 것이었다.
전생의 자신이 보았더라면 뒤를 돌아 침을 뱉었을 재수 없는 인간이 되어 있었다.
‘정신 차리자. 범아. 넌 언제나 약자다. 세상에는 나보다 강한 사람이 많아.’
얼마 전에도 그런 이를 보지 않았던가. 오즈안 님을. 그런데 그것을 그냥 특별한 일이라며 넘겼던 모양이다.
정신을 차리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예비 감찰대의 얼굴을 자세히 살핀다.
‘당연히 이길 거라고 생각하고 있구나. 자신감이 너무 넘쳐. 그것도 모두가.’
한 명, 한 명의 표정, 행동, 무기, 자세를 세세하게 살핀다. 언제부턴가 잊고 있었던 습관.
약자가 포식자를 이기기 위해서는 언제나 강박이라고 부를 만큼의 관찰은 필수였다.
‘진짜 나태해졌네. 미친놈.’
자신을 자책하며 자신을 약자의 위치로 내린다. 그러자 익숙하게 보이는 것들이 나타난다.
‘밸런스는 좋아. 하지만, 겪어 봐야 알겠지만 둘에게 치우쳐져 있을 것 같은데.’
함께 걸어오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파악할 수 있다. 누가 앞에서 걷는지 누가 누구의 눈치를 보는지.
합격술을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이는 기술. 그런 만큼 작은 행동 하나가 많은 것을 알려준다.
“이번 마지막 대결은! 예비 감찰단에게 찬가를 제외하고 사제님의 치유는 없습니다.”
‘좋아. 치유가 없다면 조금 더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지.’
어느새 자신만만한 8명의 인원이 자신의 눈앞으로 다가왔다. 모두가 자신을 수고했다는 듯이 쳐다본다.
‘헤. 오랜만이네 이런 기분은. 재밌는데?’
어깨를 한껏 처지게 내리고, 숨을 조금 더 가쁘게 내뱉는다. 아주 작은 차이.
하지만 유저에 오른 이들이라면 무의식적으로라도 느낄 수 있다. 반대로, 그런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것.
‘그때는 살아남으려고 무엇이든 했는데. 지금은 너무 마음을 놓고 살았네.’
그래도 늦지 않게 깨달아서 다행이었다. 이 장소가, 이 시간이 무투의 탑이라 다행이었다.
손을 살짝 떨고 눈에 힘을 준다. 엉덩이에 힘을 주지만 발가락은 살짝 떤다.
‘너무 오랜만이라 어색하긴 한데, 오히려 더 미세하게 할 수 있네?’
바디 체인지 이후의 신체에 대한 통제력이 말도 안 되게 변했다. 그 변화가 지금 순간에도 도움이 되고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9연승에 경의를.”
리더로 보이는 이가 고개를 살짝 숙여 경의를 표한다. 하지만, 그 경의에는 자신들이 이길 것이라는 확신이 담겨 있다.
“아직. 아직 끝난 건 아니다!”
‘표정에 다 드러난 이유도, 결국에는 내가 어느 순간 자만해 있어서 그런 거였나.’
이렇게 연기가 잘 통할지 몰랐다. 새삼 새로운 사실을 또 깨닫는다.
‘진짜 자만이 이렇게 쉬운 건가, 내가 잘 하는 건가.’
“그 투지에도 경의를. 그러는 만큼 저희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후우. 후우, 해 봐야 아는 거지.”
더 눈에 힘을 주고 손에 힘을 준다. 거기에 아주 살짝 떨리는 어깨와 발을 보여 준다.
둘의 대화가 끝나자 사회자의 말이 이어진다.
“그렇다면! 이제 루키 이벤트의 마지막! 10연전의 마지막 대결! 과연 이번 루키는 전승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루키 이벤트의 마지막 대전을 시작! 합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바로 자리를 잡는다. 한두 번의 훈련이 아닌 몸이 기억하는 움직임.
‘예비대라고 해도, 장난 아니네. 그나마 다행인 건 아직이라는 거지.’
이전에는 대형을 잡는 것을 기다려주었지만, 이제는 그것이 자신의 자만인 것을 안 상황.
원래 치사하고 악랄해야 이길 수 있는 법이었다.
‘아까 인사한 놈이 리더지. 저놈 부터다.’
찬가가 그들을 향해서 쏟아진다고 해도, 자신의 경기를 보아서인지 느긋하게 움직이는 이들.
‘내가 딱 저랬단 말이지. 미쳐가지고.’
분석이 끝나고 경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대놓고 보이는 약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