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실로 훌륭한 식사였다. 야영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밤하늘에 별빛이 빛나는 고요한 시간이 얼마 만인지 모른다.
“뭐해에~?”
누워서 별을 보고 있노라니 카인이 슬슬 다가와서 옆에 눕는다.
“좋겠다. 너는.”
자신도 모르게 절로 속에 있는 말이 그대로 걸러지지 않고 나왔다.
“그치. 나도 알았어. 내가 행운아라는 걸.”
카인 답지 않는 답변이 날아와서 오히려 당황했다. 어벙벙한 얼굴로 카인을 바라보니, 아버지의 미소와 비슷한 미소가 어리는 표정이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다 싶었다.
“나도, 처음에는 막 부모님이 바쁘시고 여기저기 돌아다녀야 해서 싫었는데…. 아카데미에 와서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지.”
그간 카인이 겪은 일들을 하나하나 듣다 보니, 카인이 항상 밝은 얼굴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뭐…. 그랬지. 근데 너는~?”
카인의 이야기가 끝나고 자신의 이야기가 시작되고, 어느새 밤이 깊어져 하루가 지기 시작했다.
*
하루. 저녁에 출발하여 오후에 도착하였다. 자유섬 중 중도(中島 : 가운데 섬)를 북에서 남으로 가로지르는데 걸린 시간이었다.
블레어 왕국의 수도보다는 조금 덜 화려하지만, 훨씬 역동적인 도시가 눈에 들어오자 감탄이 나왔다.
이 세상에서 무역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도시. 모든 재화가 모여있는 곳이라고 불리는 도시.
자유섬의 심장이자 유일하게 도시로 칭함받는 장소. 프라이스타드에 도착했다.
“이제, 벌써 헤어져야 할 것 같구나.”
프라이스타드의 중심에 거대한 대로를 가로질러 항구에 도착하자, 카인의 아버지가 내리며 말했다.
당황스러워하는 자신에게 인자한 미소를 지으시면서 말을 이으셨다.
“너희는 다른 곳을 갈 거란다. 너에게도 카인에게도 시험이기도 한 장소로.”
대화를 하며 깨달은 것은, 카인의 좋은 머리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았다는 것이다. 아니 그의 아버지보다 부족하다 싶었다.
느껴지기로는 량이랑 비슷하게 느껴졌으니, 그것만으로도 천재(天才 : 남보다 훨씬 뛰어난 재주. 또는 그런 재능을 가진 사람.)라고 말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그 천재(天才)라는 족속들은 이렇게 어렵게 말하는 걸 좋아하는 걸까?’
마치 량이랑 대화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 표정이 그대로 드러난 듯하다.
“하하하. 미안하구나. 버릇이 들어서. 자세한 이야기는 카인에게 들으면 될 거다. 내가 이야기 한 건 조심하고.”
그 말을 끝으로 카인의 아버지가 마력 범선에 오르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출발한다.
그 모습을 그저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툭.’
‘툭.툭’
어느새 범선이 지평선의 아래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제야 자신을 치고 있는 손길을 느꼈다.
“뭘 그렇게 넋을 놓고 있어.”
개구쟁이의 얼굴이라면 이런 얼굴을 말하는 것이라는 걸 그대로 보여주는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카인이 보인다.
‘아무리 그래도 넋을 놓을 줄이야….’
카인과 있으면, 아니 친구들과 있으면 종종 감각을 놓을 때가 있다.
거기에 방금 그 광경은 자신이 넋을 놓게 만들기 충분한 광경이었다.
범선의 선미에 금속으로 Kien이라고 멋들어지게 쓰여있는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넋을 놓을 수밖에 없다.
범선도 범선이지만, 마력 범선이라는 그것이 중요했다. 그 가격 때문에 적어도 후작가, 그것도 실세가 아니라면 결코 구매할 수 없는 범선.
그중에서도 저 유려한 자태는 넋을 잃게 만들었다. 수많은 바다 사람뿐만 아니라 남성의 마음을 앗아간 자태.
그리고 요소요소에 들어가 있는 디테일은 그것이 주문제작임을 알게 해주었다.
그것도 중도(中島)의 프라이스타드 옆에 존재하는 세계 최고의 조선소 블랙 펄(Black Pearl : 흑진주)의 마킹이 달려있다.
“넌 저걸 보고도 넋을 잃지 않을 수가 있냐. 심지어 주문제작이잖아! 너 어떻게!!”
자신과 함께 마력 범선의 모델을 보면서 같이 감탄하던 카인에게 왠지 모를 배신감이 든다.
“아니 뭐 내 것도 아니고. 저 배 나랑 나이가 같아. 근데…. 지금은 나보다 더 좋아하시는 것 같더라.”
“저런 미려(美麗 : 아름답고 곱다)한 범선에서 이름을 따왔다니…. ”
“아니 내 이름을 따서 범선을…. ”
그렇게 넋을 놓다가 정신을 차리고 카인을 따라 다른 배로 향했다.
“우리도 여기서 나가?”
“응! 여기에서 거점을 잡기에는 거의 불가능해서.”
아쉽기 그지없었지만 할 수 없었다. 다음을 기약하는 수밖에.
“너무 아쉬워하지 마, 여기 자주 와야 하니까. 그때 시간 내서 둘러보면 되지.”
그렇게 자리를 옮겨 찾아간 곳에서 또다시 넋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카..카인?”
비록 카인 아버지의 범선보다는 그 크기가 작았지만, 분명 저것은 마력 범선이었다. 그것도 블랙펄의 산물.
게다가 기성품이 전혀 아닌 처음부터 하나하나 만들어진 주문제작품.
“그냥.. 그냥.. 구경하는 거지 우리?”
괜한 기대를 하지 않기 위해서 말을 해보았지만, 여전히 웃고만 있는 카인의 얼굴이 보였다.
선미에는 멋들어지게 알 수 없는 단어가 적혀있었다.
“섹타토르?”
“가자!”
카인의 손에 이끌려서 탄 범선은 그렇게 작지만도 않았다. 그리고 여기저기 묘하게 익숙한 구석이 눈에 들어왔다.
“설..설마?”
카인의 손에 이끌려 선실로 들어가자 거대한 문이 눈에 들어왔다. 거침없이 열고 들어가는 카인.
그리고 열리는 문 사이로 그 묘한 기시감(旣視感)의 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랴…. 앙…. 이?”
거대한 방 한가운데에 승자의 미소를 만연히 띠고 있는 량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의 부름에도 여전히 대답 없이 승자의 미소를 짓고 있는 량이의 모습.
‘졌어..’
어디서 오는 지 모르는 패배감이 전신을 엄습한다.
“훗.”
그 웃음소리에 무너지고 말았다.
“어떻게!”
“음…. 스승을 잘 만나면?”
단 한 번도 다른 스승님을 부러워해 본 적 없었지만….
“나도 최근에 알았는데, 아마 량이가 세계에서 제일 돈이 많을걸.”
카인의 말에 패배감은 놀라움으로 전환되었다. 세계에서 돈이 가장 많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수식하던 단어였다.
재인. 서대륙뿐만 아니라 동대륙에서도 비할 수 없는 부자라는 의미로 세계 제일의 부자로 칭함 받던 아이였다.
아직은 아니지만, [뿌리]라는 정체불명의 조직도 알고 있는 [마타 하리]의 후계자인 카인의 말이었다.
“량이…. 세계 제일의 부자….?”
“뭐 아직은 아니지만, 결국에는? 범아. 3대 발명품이 뭐지?”
“[마나 구속구], [마나석 변환기], [계약의 서]”
“그치? [계약의 서]는 30년 전에 그리고 [마나석 변환기]는 40년 전에 만들어졌지. 알려지기로는 동시라고 하지만.”
“그런데?”
“[계약의 서]야 발명자가 누군지 워낙 유명하지, 근데 [마나석 변환기]는 누군지 안 밝혀졌지? 서대륙에서 조차 알고 싶어 하는 그 인물 말이야.”
“죽은 것 아냐? 몇 년 지나지 않아서 죽었다고, 희대의 천재 마법사니 뭐니 말이 많았는데….”
실제로도 마법사로 알려진 그 인물의 던전을 찾기 위해서 아직도 인생을 바치는 트레져 헌터들이 꽤 많았다.
“잠깐…. 아니지? 설마…. 에이….”
문득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 최고의 부자. 거기에 갑작스럽게 등장한 3대 발명품이 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믿을 수 없는 일은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너가 생각하는 게 맞아. 대부분이 마법사로 알고 있지만, 그것도 파울로님이 만드셨어. 신전의 도움으로 이름을 가리셨지만….”
“미친..”
욕이 절로 나온다. 연금술사가 이렇게 대단한 존재였던가, 아니 파울로님이 그만큼 괴물 같은 존재였던가.
도대체 그런 인물이 세상에 존재나 할 수 있는지가 의문이었다. 괜히 저 괴물 같은 량이가 파울로님앞에서 순한 양이 되는 것이 아니었나 보다.
“뭐. 이 정도지 내가!”
더이상 이야기를 했다가는 패배감에 삼켜질 것 같아서 황급히 눈을 다른 데로 돌렸다.
량이의 자랑스러운 방, 그 의자 뒤에 그려져 있는 관계도가 눈에 들어왔다.
‘어떻게 저걸 못 볼 수가 있지?’
[Mammon]이라는 이름 밑에 물음표 하나와 함께 수많은 인물과 단체가 얽히고설켜 있었다.
그중에서도 최상단에 존재한 하나의 얼굴이 눈에 확 들어왔다.
“재인 인가….”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낸 친구들이 덩달아 진지해지기 시작했다.
“카인이 준 정보를 바탕으로 재구성해 본 거야. 정말…. 카인은 천재더라.”
“에이. 내가 뭘. 진짜 네가 왜 괴물인지 알겠더라. 파울로님의 제자가 된 이유도 알겠고.”
어쩜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이 서로의 얼굴에 금칠하는 두 녀석을 보니 고개가 절로 흔들린다.
‘그래도 진짜 둘 다 괴물이긴 한가 보네. 존재만 알았다고 한 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존재가 드러난 순간 저 둘이 합작한 저 관계도는 그만큼 상세했고 세밀했다.
비록 중간중간에 빈 부분도, 물음표로 되어있는 곳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꽤 많은 부분이 있었다.
“중심이 서도(西島)로 짜여있네?”
맘몬이라는 이상한 이름의 단체의 중심지는 모두 서도에 이루어져 있었다.
“애초에 그 [뿌리]가 천년 왕국에서 나온 거니까. 가장 좋은 위치 중 하나가 서도인 셈이지. 그들에게는 블레어도 시디야도 다 자신들의 땅이라고 생각하니까.”
이어서 카인이 [뿌리], 아니 이제는 [맘몬]이라는 단체에 대한 설명을 해 주었다.
천년 왕국. 이 세계에서 서대륙의 통치를 인정받은 왕국이었으나 100년도 가지 않아 멸망했다.
하지만, 그 [뿌리]는 지금까지 남아있다고 한다.
[권위]를 나타낸 왕조는 말살. 이제는 남지 않았다고 한다. 방계는 있지만.
[정치]를 나타낸 이들은 여전히 귀족의 세력으로 남아있지만, 이제는 각자의 영화를 위해 살아간다고 했다.
[정보]를 나타내는 이들은 바로 [마타 하리]였다. 여전히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신전과 연합하여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중립세력으로 그 일맥을 꾸준히 이어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재물]을 나타내던 이들. 왕국의 부(富)를 쥐고 있던 이들.
그들이 바로 지금의 [맘몬]을 만들어낸 이들이라고 한다. 불과 100년 전부터 단체명을 바꾸고 급진적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본래는 있으나 존재하지 않던 이들이 자신들이 정통이라 주장하기 시작하며 서서히 세를 불려왔고, 불과 한 세기 만에 대륙의 상권을 대부분 틀어쥐었다고 한다.
재물의 아래에 무력을 갖추고 시기를 보고 있던 찰나 나타난 완벽한 후계가 바로 재인이라고 한다.
“그럼?”
“응. 본래의 계획은 아마 그런 거였겠지. 스콜라스의 부인이 되어 시디야와 통일 전쟁을 하고 결국은 대륙이 [맘몬]의 손안으로 떨어지는 그런 그림.”
소름이 오소소 돋는다. 천재 둘이 만나면 미래라도 볼 수 있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카인과 량이 서로 말을 주고받으면서 설명해 준 가정. 본래의 계획이라고 하면서 설명해 준 그 가정은 정확하게 이루어졌다.
그러면서 이어졌던 량이의 지나가는 말조차 소름 돋게 만들었다.
“아마, 저들의 계획에서 제일의 변수는 너였을걸?”
그 말에 소름이 돋지 않을 수 없었다. 전생(前生)을 경험한 자신만이 알고 있는 그 미래를.
두 아이들. 아니 이제는 아이들이라고 할 수 없는 청년들이 정확하게 짚어낸 것이다.
“진짜…. 너네 둘 다 괴물은 괴물인가보다…. 가끔 보면 진짜 무인들은, 아니 무력(武力)은 아무것도 아닌가 싶다.”
절로 넋두리가 나오게 만드는 두 친구들. 그중에 량이가 자신의 발을 그대로 받아준다.
“헛소리하고 앉았네. 제일 계산이 안 되는 변수가 네가 말한 그놈의 무력을 가진 인간들이야!”
“왜? 무력은 그저 부술 수만 있잖아?”
“아무리 좋은 계획도, 그럴듯한 이야기도 결국에 실행하는 힘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해.”
‘장기판의 말 같은 건가?“
”그렇다고 인간들이 주어진 대로 행동하는 것도 아니고, 거기에 그놈의 무력을 가진 인간들은 어떻게 튀어 오를지 모르지.“
조금, 조금은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거기다가 만약의 그 무력이 상정한 기준을 넘어선다? 그럼 그 판은 완전 박살 나는 거지. 휘둘릴 수밖에 없어.“
그 누구도 아닌 량이 그렇게 말을 하니 또 그렇게 느껴진다.
’판을 뒤엎을 만한 힘…. 난 그게 필요하구나. 진짜 갈 길이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