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본 재능으로 정점-70화 (70/217)

[70화]

오랜만에 보는 제자의 기척이 반가웠다. 문이 열리자 반갑게 마주하는 제자는 갑자기 폭풍같이 눈물을 흘리며 오열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쓰레기라며 눈물 흘리는 제자를 보니 마음이 찢어지는 듯했다. 우선은 그저 토닥여줄 수밖에 없었다.

금방 멈출 거라 생각했던 제자의 오열은 해가 가장 높이 솟아서야만 끝이 났다.

“어쩐 일로 그리 울었던 것이냐…”

눈이 한참이나 부은 얼굴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제자였다. 제자의 이야기는 공감이 가는 것도 있지만 어이가 없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이야기가 제자를 짓누르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스승이 되어 모든 해답을 명쾌하게 주지 못함이 씁쓸할 따름이었다.

다만, 다행인 것은 무(武)에 관한 것은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점이라는 것이었다.

다시 보지 못 할 수 있는 제자이지만, 끝까지 가르침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범아. 내 제자야. 진정 선천 재능때문에 고민하는 것이냐.”

“잘…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단장님의 재능을 보고 많이 부러웠던 것 같아요… 그리고 과연 제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싶었던 것 같아요.”

“흠… 초인의 힘이란 그런 것이지. 근데 과연 네가 본 것이 선천 재능의 힘일까? 초인의 힘일까?”

“어… 그게…”

자신의 물음에 당혹스러운 표정이 제자의 얼굴 위로 드러나는 것이 보인다. 꽤 많은 이들이 하는 착각 중 하나의 늪이었다.

자신보다 뛰어난 선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이가 그 재능을 마음껏 활용하는 모습을 보면서 하는 착각.

저 재능이 있기에 그가 저런 위용을 보일 수 있다는 착각. 일반인은 무장을 보면서, 무장은 익스퍼트를 보면서, 익스퍼트는 마스터와 초인을 보면서 하는 착각.

물론 선천 재능이 그 위용의 줄기가 되는 것은 맞지만, 그 줄기도 본인의 무(武)가 뿌리가 되어 나타나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거기에 하나 더 해서 그 재능 자체에 대한 변화가 필요하다.

자신도 초인에 오르고 나서야 깨닫게 된 사실이기도 했다. 선천 재능은 나침반이 되어주고 기름이 될 수 있지만, 본질은 되지 못한다는 것.

하지만 그렇기에 선천 재능이 중요한 것이다. 본질이 무가 타고 올라갈 수 있게 만들어주는 나침반. 상위 재능에서 초인이 더 드물게 나타나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당혹이 오른 제자에게 이 차이를 상세하게 설명해주었다. 자신의 재능을 낱낱히 파헤치며 예로 들어 설명해 주면서.

항상 무뚝뚝하고 어른스러워 보이는 제자는 이럴 때는 꼭 사탕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좋아하고, 어쩔 줄 몰라 안절부절못해 한다.

제자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주는 것이 기쁨이건만, 과한 것을 받는 다는 듯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면 사실 더 즐겁고 기쁘기 그지없었다.

다만, 그것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조금 정리가 되었는지 표정이 다시 살아나는 제자였다.

“이제 좀 괜찮아졌나 보구나.”

“네… 아직 생각할 건 많지만… 정리가 된 것 같아요.”

“그래. 카인에게도 어서 가 보거라. 아침부터 너를 기다리면서 동동 발을 구르더구나.”

“네… 늘… 감사해요 스승님.”

부끄러웠던지 인사를 마치자마자 튀어가는 제자의 모습이 그렇게 귀여웠다.

“쯧… 덩치는 산만한 놈이…”

말은 그렇게 하지만서도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후… 이제 곧 이려나…”

일평생 찾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 후계자이고 제자였기에, 그 제자가 자신의 길을 가려고 하는 모습이 더욱 아쉬웠다.

그럼에도 제자가 가려고 하는 길이기에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그 길이 더군다나 바른 길이었기에…

그렇게 한 명의 스승으로 제자를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를 하지만, 역시나…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다.

*

스승님의 처소를 나오니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그제야 깨달았다.

“하… 그렇게 펑펑 울다니…”

수치사가 뭔지 알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래도… 역시 스승님은 대단하시구나…”

무론(武論)에 대한 가르침은 새삼 자신이 아무것도 생각 없이 그저 강해지는 것에만 집중해 왔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그저 강함만을 쫓아서 달려온 삶이었다. 운이 좋아 회귀를 경험하고 운이 좋아 스승님을 만나게 되어 지금의 경지를 이룩했다.

스스로의 무론에 대해서 깊이 생각 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왜 이 길을 가는가에 대한 대답은 언제나 강함이었다.

강함에도 종류가 많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고 그 가운데 내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도 이제야 깨달았다.

그리고 오히려 기본 재능인 자신이 이 세상에서 말하는 초인의 경지를 쉽게 오를 수 있게 해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까지는 너무 한미(寒微 : 지체가 변변치 못함)해서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 기본 재능이었지만, 마스터에 오른 자신이 깨달은 것은 기본 재능이야 말로 본질에 가까운 재능이라는 것이었다.

강함이라는 추상적인 것에 매달리다보니 정작 본질은 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 강함의 본질이 ‘나’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경지가 높으면 강하고 선천 재능이 뛰어나면 강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제야 직시 할 수 있게 되었다.

“참… 늦었다.”

오히려 당신이 제자에게 무론에 대한 깊이를 주지 못해서 자책하는 스승님을 보며 죄스러운 마음뿐이었다.

스승님께 받은 배움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며 걷다 보니 여관에 도착하는 것은 금방이었다.

“범아!!!”

자신이 오는 것을 발견했는지 이름을 외치며 뛰어오는 카인이 보였다. 괜한 미안함이 올라오는 것을 막을 순 없었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 내가… 마틴은 그렇다고 해도… 그래! 스승님은 뵙고 와야지… 그래도!”

성년이 아득히 지났음에도 여전히 아이같은 모습은 도저히 눈앞의 소년이 [마타 하리]라는 무서운 곳의 후계로 보이지는 않았다.

“미안. 미안. 빨리 온다고 왔는데 이래저래 혼나고 그래서.”

‘저놈이… 오치 소르라니 상상도 못 할 일이긴 한데…’

“너가? 혼날 일이 뭐가 있다고!!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고 왔는데!”

“뭐 이래 저래 그랬어. 그나저나 로사는 무슨 일이야?”

“아… 그거”

순식간에 해맑던 어린아이의 모습이 지워진다. 남은 것은 냉정한 얼굴의 소년.

‘사실… 이 모습이 사람들이 보는 모습이겠지…’

[마타 하리]는 절대, 세습제로 돌아가는 단체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대를 이어서 유지 된다는 것은 그만한 능력이 있기 때문.

벌써부터 그런 단체의 후계 소리를 듣는 카인 또한 자신 앞에서만 순진무구한 소년일 뿐이다.

“일단 들어가서 얘기하자.”

여관의 2층에는 언제나 카인을 위한 방이 따로 존재했다. 그리고 카인의 비밀 공간 또한 똑같이 존재했다.

여러 책과 양피지들이 빼곡하게 주변을 가득히 채워져 있는 공간. 간신히 앉을 자리가 있을 정도였다.

“이 곳은 언제 와도 정리가 안 되어 있어.”

“아니다!! 엄청 정리 되어 있는 곳이야! 무질서 속의 질서를 너가 알아?!”

역시, 자신에게는 진지한 카인보다는 이렇게 가벼운 카인이 더 익숙했다.

“그래서. 여기까지 와서 할 정도로 로사 이야기가 중요해?”

“흠… 로사는 그렇게까지는 아닌데… 일단 잔재(殘在)라고 알아?”

“잔재? 남은 것들? 그게 뭐야?”

“후… 이것도 꽤 긴 이야긴데… 쉽게 말하면 천년 왕국의 잔재를 말하는 거야.”

생각보다 길었고 생각 이상으로 복잡한 이야기였다. 천년 왕국은 5대 영웅에 의해 무너졌다. 모든 이들이 알고 있는 역사.

하지만, 그 강성했던 천년 왕국이 멸망했다고 해서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 시절 대통합 이후 이 세계의 지배자로 명명(命名 : 이름 붙여짐) 되었던 천년 왕국의 힘은 뿔뿔이 흩어졌을지언정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일컬어 잔재라고 불렀다. 그 뿌리는 깊고 깊어서 밝혀진 잔재는 거의 없지만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다는 이야기였다.

“우리도… 잔재 중 하나니까. 가문 중에서 잔재인 경우도 있고. 알려진 가문도 있지만 알려지지 않은 가문이 훨씬 많을 거야.”

놀라운 이야기였다. 세상이 모르는 비사가 카인의 입을 통해서 흘러나왔다.

“그런데… 로사랑 잔재가… 무슨 차이가 있어…?”

“로사가 아니라… 재인이야. 재인의 가문이 잔재였더라고. 데스투도 백작가는 그냥 그 뿌리의 가면 중 하나였던 것 같구… 아마 부발님이 정리한 데스투도 백작도 재인의 진짜 아버지는 아닐 거야… 하… 우리도 조사를 시작하다 보니 알게 된 거야.”

“....?!?”

상상도 하지 못했던 답변이었다. 잔재라는 것도 처음 들어보지만 재인의 가문이 그중 하나라는 것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잔재 중에서도… 뿌리인 것 같더라. 그래서 우리가 파악하는 게 늦었고.. 줄기는 파악 할 수 있는데 같은 뿌리는 알기 힘드니까…”

카인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새삼 자신이 오로지 자신의 강함에만 치중해서 살아왔다는 것을 다시 느꼈다.

자신이 5대 영웅을 아는 것도 [바람의 탑] 덕분이지 그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강해지는 것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후… 상상 이상인데…”

“그치? 우리도 조사하면서 깜짝 놀랐잖아. 뿌리가 또 남아있을 줄이야…”

“이런 상황에서 내가…”

자신의 말에 카인이 갑작스럽게 웃더니 정색을 하면서 입을 열었다.

“범아… 넌 큰 도움이 안 돼.”

카인의 날카로운 말이 폐부를 찌르듯이 날아왔다. 하지만 말하는 카인의 표정이 단호했기에 뭐라 반박할 수가 없었다.

“이런 종류에 싸움에서는 강자 한 명으로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아. 오히려 세력과 정보의 싸움이지.”

일견 합당한 말이었지만, 그래도 자신은 마스터였다. 초인에 비하면 손색이 있다지만 그를 제외하고는 상대가 없다는 마스터.

“그리고 너무 나를… 우리를 무시하는 것 아니야? 비록 너에 비해서 경지는 낮을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약한 건 아니다?”

다시금 가벼운 카인으로 돌아와서 말하는 속내에 자신을 위한 배려가 있음을 모를 수 없었다.

“후… 미안해. 내가 괜한 말을 했네. 그래도 5년. 5년을 생각하고 있어. 아직 나도 갈 길이 멀더라고.”

그 말에 금세 환해지는 카인의 표정이 눈에 들어온다.

“정말? 그럼. 또 이야기가 다르지. 너도 그럼 만날 때가 되긴 했지… 우린 그냥 네가 바로 갈 줄 알았지.”

언제부턴가 카인과 마틴이 자신이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모를 일이다. 사실 그 둘은 이미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데도 말이다.

오히려 도움이 필요한 것은 자신이었다. 자신의 길을 정하고 나아가는 둘과 달리 자신은 여전히 방황 중이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상위 세계로 가지 않으려는 이유를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이 안락함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래서는 안 된다.

이제 방황하는 것에서 돌아와 자신의 길을 걸어야 한다. 언제고 어린아이처럼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혼난 이유는 뭔데?”

마틴과 만난 이야기, 스승님께 들은 이야기를 모두 카인에게 해주었다. 확실히 카인은 좋은 청자(聽者)였다.

자신의 이야기를 요목조목 호응을 해주면서 진지하게 들어주던 카인이 진지한 얼굴로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범아. 난 네가 참 멋있다고 생각해. 처음 만났을 때 정말 멋있다고 생각했어.”

진지한 얼굴로 아무렇지도 않게 저렇게 부끄러운 말을 하는 것도 카인의 재능이었다.

“다들 정해져 있다고 말하는 길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아니라고 틀렸다고 그 길이 틀리지 않다고 걸어가는 네 모습이 진짜 멋있었어.”

카인의 말을 들으면서 생각하니 다른 사람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을 것 같았다. 모두가 아니라고 할 때 당당히 걸어가는 모습으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 난 알고 있기에 당당할 수 있었어. 적어도 익스퍼트는 될 걸 알고 있었으니까… 나는 그렇게 당당하지 않아…’

“지금 흔들리는 걸 보니 너도 사람이구나 싶다! 그래도 괜찮아. 난 알아 결국 넌 잘 할 수 있어! 지금도 잘해 왔잖아.”

‘아니야… 지금까지는 그냥 내가 아는 길을 걸어왔을 뿐이야. 운이 좋아 스승님을 만나 마스터에 이르렀을 뿐이야.’

“그리고 진짜 괜찮은 건. 네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괜찮다는 거야.”

왜일까. 그 괜찮을 거라는 이야기가 점점 숙여가던 나의 고개를 들게 했다.

“사람이 어떻게 다 성공만 하겠어. 괜찮아. 너 자체만으로 나에게 소중한 친구고 마틴에게도 라니우스님에게도 마찬가지야.”

전신에 힘이 빠지는 것이 느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전신에 힘이 빠지니 고개가 들린다.

위로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괜찮다는 소리가 이렇게 나를 자유롭게 만들어주는 걸 보면.

실패를 하건 성공을 하건 나 자체로 나를 바라보고 아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큰 힘이 되어주었다.

그제서야 일어날 수 있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일어서게 되었다. 이제 더이상 방황하고 있는 자신은 없었다.

두 다리로 일어서서 자신의 길을 찾아 나가야 하는 순간이 찾아왔고, 그 길을 걸어야 할 때가 되었다.

“고마워… 내가 울보 카인에게 위로를 받게 될 줄이야…”

“울보 아니다! 아니거든! 기억에 이상이 온 것 같은데?!”

“내가 본 것만… 기숙사에서 시작해서….”

“그만! 그만해!! 아니면 나도! 나도!!”

“너도 뭐? 나는 울보 카인과 다르게 운 적이 없는걸?”

“끄으으으… 응… 몰라! 됐어. 그래서 로사가 나온 건.”

“오오~ 울보 카인이 말을 돌리는 건가!?”

“너….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올 거야?”

“아니. 미안. 사과할게.”

“아아아아아! 더 얄미워. 하여튼 로사를 우리 쪽으로 당겨오려고. 그래서 네가 나섰으면 해서 나온 거야.”

“우리… 쪽이라니?”

생각지도 않은 말이 카인의 입에서 나오자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우리 쪽이라는 건 무슨 뜻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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