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데스투도 백작가와의 싱거운 일전이 끝이 나고, 돌아가는 수호 용병단의 행렬은 길었다.
자신들의 몇 배나 되는 이들을 데리고 가는 이들. 그리고 수호성에 도착하여 부발은 그들을 모두 데리고 수호산맥으로 향했다.
“이거… 찍히는 것 맞지?”
부발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는 데마르였다. 데마르의 손에는 영상 저장 장치가 들려있었다.
“흠… 모두들 안녕하신가? 불스 수호 용병단의 단장 부발이다. 다름이 아니라 수호 용병을 너무 쉽게 보는 것 같아서 말이지. 그리고 초인도 말이야.”
부발의 뒤로는 포박되어있는 수많은 인물이 있었다. 그중에는 여인들도 갓 성년에 이른 아이들도 있었다.
“그래서 말이야. 내가 수호 용병들을 대리해서 보여주기로 했단 말이지. 우리를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두려움이 가득한 이들이 떨고 있는 장소에 쿵쿵거리면서 무언가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자. 그럼. 수호 용병들이 평소에 상대하고 있는 게 뭔지. 그리고 그런 수호 용병들을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보자고. 시작해!”
부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쿵쿵거리는 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그리고 이내 모습을 드러내는 소리의 실체.
땅을 울리는 두 발. 거대한 크기의 상체. 머리 옆으로 난 뿔. 그리고 순박한 눈망울. 미노타우로스였다.
몇 특이한 개체는 1성 마수와도 견줄 수 있다는 미노타우로스는 신기하게도 몬스터치고 온순한 몬스터였다.
먼저 공격을 하지 않는다면 먼저 공격하지 않는다. 다만, 새끼를 건드리거나 하는 특수한 상황에서는 눈이 붉어지며 흉포한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지금 달려오는 미노타우로스의 눈은 붉게 빛나고 있었다. 새끼를 잡은 것도 아닌데 붉은 눈으로 다가오는 미노타우로스.
평균 5m가 넘어가는 미노타우로스, 그리 강한 개체는 아닌지 5m가 살짝 안 되어 보였다.
하지만, 처음 보는 5m의 거대한 미노타우로스가 눈을 붉게 빛내면서 달려오는 광경은 포로들에게는 호러 그 자체였다.
그런 호러 자체의 광경을 무덤덤하게 바라보는 불스 용병단. 그중 부발이 입을 열었다.
“저게 미노타우로스라는 몬스터다. 암컷이 임신한 상태의 수컷 미노타우로스는 흉포하기 그지없지.”
어느새 눈앞으로 다가온 미노타우로스. 미노타우로스를 유인해서 온 불스 용병단은 방어만 하면서 공격은 하지 않고 있었다.
“미노타우로스 정도는 수호 용병이라면 종종 마주치는 몬스터지. 운 나쁘면 바로 골로 가는 경우도 많고.”
부발의 말이 전혀 들리지 않는 이들, 그저 눈앞에 생생한 몬스터가 나타난 것이 처음이기에 두려워하고 있는 이들. 그들이 듣든 안 듣든 이야기를 계속 이어 나가는 부발.
“너희가 안전한 생활을 하고 있을 때, 우리는 항상 이런 몬스터를 마주하고 살아가고 있지.”
그 말과 함께 떨고 있는 이들 옆으로 무기가 담긴 수레가 멈추어 섰다. 각종 무기와 갑옷이 담긴 수레.
“수호성에 사는 이들도 언제든 몬스터를 마주할 수 있는 상황에서 살아가고 있지. 그러니 한 번 경험해 보라고. 수호성의 삶을.”
사실 조금 비약이기는 했다. 고블린이나 오크를 종종 만나기는 하지만, 미노타우로스는 수호산맥으로 조금 들어가야 만날 수 있다.
하지만, 꼭 틀린 말이 아니기도 했다. 몬스터와 마주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사실이었으니.
“저걸 죽이면 우리를 살려주는 겁니까?”
포로로 잡혀 와 있는 무리 중에서는 기사들도 꽤 많았다. 그중에서 간부였던 이로 보이는 이가 나서서 입을 열었다.
“그럼. 살려줘야지. 단, 도망치는 인원은 그대로 죽인다.”
부발의 말에 전직 기사, 현직 포로인 이들이 무기와 갑옷을 챙겨서 착용하기 시작했다.
포로의 숫자만 200명이 넘어가는 상황. 지금 인원조차 데마르가 구별한 이들 중 직접 가담한 이가 아닌 이들과 가족들이었다.
반드시 죽여야 할 필요는 없지만, 데스투도 백작의 사례가 본보기이기에 살려두기는 애매한 이들이었다.
그저 명령에 따랐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에게 책임이 없다는 것은 아니었다. 약했다면, 그들의 손에 자신들이 죽었을 테니.
그래서 선택한 것이 시험 아닌 시험을 주는 것이었다. 경고의 의미와 함께 기회를 주는 것, 그리고 그 시험이 바로 미노타우로스였다.
“이게 어쩌면 기회일 수도 있다. 그러고 죽지 않기 위해선데 어쩔 수 없지.”
“하. 하지만, 할 수 있을까요?”
“우리만 죽는 거면 상관이 없지만, 가족들이 다 있지 않냐. 할 수 있나 없나가 아니라 무조건 해야 하는 거다.”
비장하기 그지없는 그들의 대화를 보면서 고소하면서도 씁쓸함을 느끼는 범이었다.
“할 수 있을까요?”
영상 저장 장치를 설치해 놓고 옆으로 빠져있던 데마르 님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왔냐? 뭐. 실력만으로 놓고 보면 가능은 하지, 수월할 수도 있고.”
“하지만이라는 거죠?”
“그치. 너도 알겠지만, 인간을 상대하는 거랑 몬스터를 상대하는 건 차이가 크니까.”
더군다나 전투에 익숙한 기사들이었다. 1:1의 대결이나 집단 전투에는 익숙할지 몰라도 1:다수 또는 사냥에는 문외한인 이들.
“조금 씁슬하기도 하네요.”
“왜? 다 죽을까 봐? 여자도 있고 애도 있어서?”
“아니요. 이해는 하는데, 힘이라는 게 참.”
“애초에 기사나 용병이나 힘으로 먹고살 생각을 말았어야 하는 거야 그럼.”
그 가족들도 그 특혜를 누리며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선택을 내린 것일까.
패배자에 대한 아량이란 목숨을 걸고 사는 인생에서는 사치라는 것도 알고 있다.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그른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애초에 옳고 그른 것이라는 건 기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일지도 몰랐다.
“참. 어렵네요.”
“가끔 보면 넌 생각이 너무 많아. 너무 빨리 강자가 되어서 그런 걸지도. 하지만, 알아 둬 목숨을 걸지 않는 인생은 없어.”
‘사실. 진짜 치기 어린 생각이긴 하지. 그래도…’
전생(前生)에서는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니 할 시간도 상황도 없었다.
전장에서 살아남는 것만이 목표였고, 강자가 되는 것이 목표였다.
강자가 되어 본 적이 없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자신은 강자이기도 했다. 그를 누릴 수 있는 그릇이 안 되었을 뿐이지.
그때는 쓸데없는 아량으로 인해서 비수를 맞는 이들을 보면서 비웃었다.
그때는 찬란하게 빛나던 강자들의 자리가 부러웠고 자신이 그 자리에 갈 수 없음에 절망했다.
지금 그 찬란한 강자들을 아래로 볼 수 있는 위치에 올랐다. 그렇지만 여전히 자신에게는 답이 없었다.
상념을 뒤로 미루고 고개를 들어보니 기사들이 무장을 한 채로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하… 저러면 안 될 텐데…”
미노타우로스를 향해서 우르르 달려가는 기사단의 모습을 보면서 탄식이 절로 나왔다.
불스 용병단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몬스터와 마수들을 사냥하는 것은 당연한 일과였다.
그 과정에서 느낀 점이 있다면, 인간은 참 연약한 존재구나라는 것이었다. 힘이 부족하기에 마나를 수련하고 마법을 수련하는구나.
몬스터의 가장 밑바닥의 고블린 조차 성인 남성의 근력을 사용한다. 그런데 최상위 포식자 중 하나인 미노타우로스는? 말할 것도 없었다.
미노타우로스는 기술과 마나가 필요가 없었다. 압도적인 힘, 지치지 않는 체력, 검이 들어가지 않는 피부. 그것이면 충분했다.
그렇기에 몬스터와 전투를 벌인다는 것은 미친 짓이었다. 그렇기에 몬스터를 상대하는 방법들이 만들어졌고 그것이 사냥의 범주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치열하게 약점을 연구하고 진형을 연구하고 습성을 연구해서 사냥해낸다.
하지만 지금 기사단이었던 이들은 전투하기 위해 달려나갔다. 적어도 완숙한 익스퍼트가 아니라면 상대를 꿈꾸지 말아야 할 몬스터를 향해서.
“후. 그럼 그렇지 저 꼴이 나지.”
몬스터들은 신기하게도 약자를 구별해 내는 방법을 알았다. 기가 막히게 약한 이를 가장 먼저 처리한다.
그것을 속이기 위한 여러 방편이 있지만 그를 전혀 모르는 이들이었다. 비장하게 달려든 기사 한 명이 안면이 함몰되어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도 기사는 기사인가 보네. 허둥지둥할 줄 알았는데.”
날아가는 기사를 두고서 전투에 집중하는 이들을 보면서 짧게 감상평을 남기는 데마르 님이었다.
“그나저나… 딸이랑 그 이상한 마법진이랑은 못 찾았어 결국. 조각난 마정석과 부분적인 것만 찾았다.”
“하. 그게 핵심인데 말이죠.”
“[마타하리]가 나섰는데도 못 찾았다 하더라. 아마 가문 대대로 준비 한 일이지 싶은데. 근데 그 딸이 그렇게 중요해?”
“어쩌면. 마법진 보다도 더 중요한데. 뭐. 어쩔 수 없죠.”
전생에 찬란한 재능이라고 불리는 세대에서 세간에서 평하기를 그 정점에 있던 인물이 세 명 있었다.
검의 주인 로사. 폭풍의 마도사 스콜라스. 그리고 황금의 주인 재인. 사실 이 중에서 진짜 인정받는 이는 로사뿐이었다.
스콜라스는 태자이기에 고평가받았다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전쟁이 시작되면서 재인의 능력이 새삼 떠오르기 시작했다.
끊이지 않는 재물. 그리고 스콜라스와의 약혼이 발표되면서 동시에 발표한 소식에 대륙이 경악했다.
데스투도 백작의 상단은 위협하던 신생 상단 2개가 모두 재인의 소유였음을 밝혔던 것이다.
재인의 휘하에 수많은 인재가 있었고 넘치는 돈이 있었다. 그제야 사람들은 재인의 실상을 알게 되었다.
데스투도 백작가 상단의 폭발적인 성장에 재인이 관여했다는 소문마저 돌았다.
그 후 대륙에 돌았던 소리가 있었다.
모든 검의 주인은 로사. 그리고 다른 모든 것의 주인은 재인.
그 미래를 알고 있는 것은 오직 자신뿐이었다. 현생에서는 자신과 로사 때문에 상대적으로 묻힌 스콜라스와 재인이기에 사람들은 재인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다.
“흠… 그 정도나 된다고? 아무리 최상위재능이더라도 행정을 공부한다고 하지 않았나? 아니면 상인이나.”
행정가. 상인에 대한 인식은 아직 이 정도에 불과했다. 결국, 돈이라는 것은 힘 앞에 무릎 꿇는 것으로 모두가 생각했다.
큰 규모의 전쟁이 없고 언제나 힘의 논리에 따라서 살아온 세월이 이를 증명했다. 힘이 중심이자 모든 것이었다.
전생의 삶에서도 그것은 동일했다. 하지만 재인이 등장하고 정복 전쟁이 일어나고 황금의 힘이 얼마나 거대한지 알게 되자 인식이 조금은 변하기 시작했다.
황금도 힘이다. 무력에 비할 바는 안되지만 거대한 황금 또한 거대한 힘이다. 이런 인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상단을 무시하던 귀족들이 상단에 관심 두기 시작했다. 오로지 힘을 외치는 이들답게 돈도 거대한 힘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자 빠르게 행동했다.
그 시류에 맞춰 각 귀족 가문들이 상단을 창설하기 시작하고 그 정점에는 왕가의 상단이 존재했다.
‘하… 이렇게 되면 카인이랑 마틴한테 맡기는 수밖에 없겠네. 량이한테도 말하고.’
량이에게 말하면 바로 알아들을 것이다. 데마르 님을 설득하는 것도 쉬울 것이기에 그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분명 재인은 복수를 꿈꾸고 그를 실행시킬 능력이 차고 넘쳤다. 아직 결코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 복수에 자신과 지인 모두가 포함될 것이기에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칼이… 없어. 칸 스승님 정도뿐인데… 이건 량이랑 이야기해 봐야겠네.’
자신이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벌써 기사 몇이 죽어 나갔다. 그리고 결국 미노타우로스가 기사들을 지나 포로들에게 향하기 시작했다.
“하. 망했네요.”
“그러게나 말이다. 몬스터한테 약점을 들키면 끝난 거지.”
“전 먼저 들어갈게요. 량이한테 가 있을게요. 필요하면 불러주세요.”
“그래. 고생해라. 난, 마저 정리하고 들어가마.”
처절하게 울려 퍼지는 비명을 뒤로하고 불스 용병단의 저택으로 향했다.
‘결국, 힘이 답인가? 힘이 없으면 죽음뿐인가? 그렇다고 힘이 있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건 아닌 거 같은데. 하. 모르겠네.’
저택으로 향하는 발길은 갈 길을 잃은 듯한 사람의 걸음처럼 보였다.
*
“흠. 가끔 보면 넌 정말 천재인거 같기는 한데.”
자신의 말을 듣고 나서 묘한 눈으로 한참을 쳐다보던 량이 내뱉은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