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결계석 안에서 안전하게 피난하고 있는 이들은 새끼 불스들이었다. 자신들의 용병대의 이름이 있지만, 그들도 자신들을 새끼 불스라고 부른다.
불스 용병단이 창설한 4년이 조금 넘은 용병대. 간부들은 대부분이 오랜 기간 용병 생활을 한 이들이었지만, 그 밑으로는 다 어리다면 어릴 수 있는 이들이었다.
재능이 보이고 싹이 보이는 이들을 받아들여서 만든 용병대. 하나로 시작했지만, 범이라는 괴물의 등장으로 수도 늘리고 하나를 더 창설했다.
불스 수호 용병단에 가입하는 것이 꿈인 이들도 있고, 좋은 대우로 다른 용병대에 가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이도 있다.
각자의 목표와 생각이 모두 다른 이들이 모인 용병대.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모두가 동일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저게 진짜 불스 용병단이구나… 고작 1개 소대인데.’
새삼 자신들이 얼마나 무거운 짐이었는지를 여실히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소리가 차단되는 것은 아니었는지 비명이 들려온다.
“흐… 불스 용병단은 변한 게 없구만…”
결계석을 들고 있던, 작동시킨 용병대의 간부가 전투를 보며 저도 모르게 뱉은 말은 새끼 불스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갑자기 이루어진 주목에 당황도 잠시 새끼 불스들에게 이보다 좋은 시청각 교육은 없을 거라 생각하고 입을 열었다.
“날 보지 말고 전투를 보면서 들어라. 내가 단장님이랑 오래된 건 알고 있지? 나도 꽤 유명했던 것도.”
“네! 실제로 단장님께서 불스 용병단에 들어오라고 하셨다면서요.”
“크흠. 그렇지. 그런데 그때는 한창 잘나갈 때였단 말이지. 그래서 좀 대답을 미루고 있었어. 속내로는 나도 단장이 될 수 있다, 생각했거든.”
비명이 들리는 와중에도 그 간부의 목소리는 뚜렷하게 귓가에 들려왔다.
“하튼. 그러고 있는데 데마르 님께서 마수 사냥에 한 번 같이 가보지 않겠냐 하시는 거지. 그래서 흔쾌히 승낙했지. 그때도 불스 용병단의 마수 사냥은 유명했거든.”
말하는 사이에 기마를 타고 있던 용병들의 수가 착실하게 줄어들고 있었다.
“그때 사냥에 참여하고 바로 깨달았지. 아! 난 아니구나. 단장은, 수호 용병단은 아무나 만드는 게 아니구나.”
전투도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지만, 그만큼이나 간부의 이야기도 재밌었다. 그 고민을 알고 있는 것 처럼 말을 했다.
“전투에 집중해 봐. 뭐가 다른지.”
간부의 말에 전투를 집중해서 바라보는 새끼 불스들이었지만, 일방적이고 멋있다는 것 말고는 보이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중에서 관찰력이 돋보이는 이가 있는 법이었다.
“소리가? 용병 단원들의 소리가 하나도 안 들리는데요? 저게. 가능한 건가요?”
“하! 눈이 제법 좋은데? 그래. 괴물들이지. 기본적인 수신호 말고는 훈련과 경험으로 하는 거지.”
“저렇게 유기적인 게 훈련으로 되는 건가요? 상황이 항상 다를 텐데?”
“그래서 내가 포기한 거지. 괴물이거든 진짜 단원들은. 불스 용병단 하면 사람들이 무식하게 치고 들어가 부수는 걸 생각한단 말이지.”
“아무래도. 단장님께서.”
“그런데, 실제로 불스 용병단이랑 마수 사냥을 다녀오면 그런 말은 하지도 못해. 전투하지 않아. 사냥하지.”
간부의 말이 끝나갈 무렵 전투도 서서히 끝맺음을 보이고 있었다. 마르쿠스가 비에를 상대하는 사이 그 주변에서 소대원들이 착실하게 수를 줄여 갔다.
어느새 기마에 타고 있는 용병들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살아있는 용병들이 두 손으로 셀 수 있게 될 무렵.
“항복하지. 그러니. 살려다오.”
마르쿠스가 상대하던 비에가 항복을 표하자 남아 있던 용병들도 무기를 내려놓았다.
“후. 너무 늦었군. 조금 더 이르게 항복을. 아니 의뢰를 받지 말았어야 했나.”
“흠. 누가 의뢰했지?”
전쟁 용병에게 의리란 사치다. 항복하는 순간 살기 위해 무엇이든 하는 것이 용병. 그것이 용병과 기사의 차이라고 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용병, 특히 전쟁 용병들은 계약을 할 때 계약서를 사용하는 것이 당연한 절차였다.
“흠. 눈알 돌아가는 걸 보니 계약서를 썼나 본데. 하급? 중급?”
계약서도 허점이 있다. 일부러 만든 허점이랄까. 용병들은 무엇보다 생존이 우선이기에 용병 사무소에서 제공하는 계약 서식이 있었다.
자신의 물음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 비에였다.
“설마… 상급 계약서를 사용했다고?”
그제야 고개가 끄덕이는 비에었다. 용병 계약에 상급 계약서를 쓰는 것이 없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자주 있는 일은 절대 아니었다.
“하. 묵언 서약인가 보지? 걸린 게 뭔지도 알 수 없겠네. 누가 상대인지도.”
계약서는 대게 용병 사무소에서 보관하기에 지금 따로 확인할 방법도 없었다.
사실, 죽이는 것이 가장 편하고 효과적인 방법이긴 했다. 다만 살인을 즐겨하는 것도 아니고 방법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기에 죽이지 않을 뿐이었다.
“하. 이럴 때는 량이 있으면 참 편할 텐데 말이지.”
혼잣말하면서 뒷목을 툭, 툭 치며 고민을 이어갔다. 그럴 때마다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축, 축 늘어지는 이들이었다.
어느새 결계석이 사라지고 나서 나온 이들이 용병들을 꼼꼼히 묶기 시작했다.
“나중에 쓰일 수 있으니까. 잘 관리 해 놔요. 얼마나 남았어요?”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30분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중간에 위험해 보이지 않아 사용을 중지했습니다.”
자신들을 대하는 태도가 확연하게 달라진 이들이었다. 간부들뿐만 아니라 새끼 불스들 전원이 그러했다.
“잘하셨어요. 그래도 다음에는 제 말이 있기까지는 해제하지 마세요.”
“넵! 수고하셨습니다.”
사냥이 끝나고 상황이 정리되어가고 있는 사이, 성안에서의 폭음도 점점 줄어 들어가고 있었다.
“흠… 이렇게 정리가 되려나…”
*
성 밖에서 용병들이 다가오던 순간, 성안에서는 난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성벽 위 3대대는 다른 세상에 사는 이들이었다.
3대대가 각 소대별로 날뛰고 있을 때 이목을 사로잡는 이는 나수트스였다.
“항복해라! 무기를 버리고 엎드린 이는 죽이지 않는다. 그렇지 않으면 오로지 죽음뿐이다!”
나수투스가 이목을 사로잡고 있는 사이 각 소대들은 지휘관으로 보이는 이들과 마법사들을 죽여나갔다.
성벽 위가 나수투스의 차지가 되어가는 사이 2대대는 데스투도 백작의 소재를 찾고 있었다.
어차피 이목은 부발에게 쏠려 있었기에 침투해 들어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1대대. 부발의 뒤를 따라서 나가는 이들은 보이는 모든 것을 파괴하면서 따라가고 있었다.
가장 선두에 선 부발은 거침이 없었고 그 무엇도 그를 막을 수 없었다.
성문에서 곧게 뻗은 대로를 따라서 거침없이 걸어 나갔다. 다가오는 이가 있으면 베고 부수면서.
이름을 외치며 달려들었던 비싼 갑옷을 입고 있는 기사도, 단체로 달려들었던 기사단도, 계속해서 날아드는 마법도
그 무엇도 부발의 걸음을 멈칫거리게조차 하지 못했다. 성문에서부터 부발의 걸음은 단 한 걸음도 멈춰서지 않았다.
그저 성주가 있어 보이는 영주성으로 향했다. 영주성 안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작은 성. 그 중앙을 향해 나아갔다.
영주성의 해자도, 단단한 철문도 그 무엇도 부발을 막을 수 없었다. 무식할 정도로 직진을 한 부발을 기다리는 것은 대치하고 있는 2대대와 데스투도 백작의 최후의 보루였다.
“오셨습니까? 생각보다 좀 걸리셨네요?”
“걸어오느라. 그래서. 누가 데스투도 백작이냐.”
중무장한 기사단과 마법사들이 이렇게 든든하지 않아 보이는 것도 어색한 일이건만. 부발의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 안에서 단단한 갑옷으로 무장하고 있던 이가 살짝 앞으로 나왔다.
“접니다.”
그가 앞으로 나오자 부발의 기세가 달라졌다. 살의(殺意)가 기세를 타고 그 앞을 내리누르기 시작했다.
경지가 낮은 이들은 벌써 무릎이 꿇려지고 입가에 입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백작의 앞으로 나선 기사단장과 부 기사단장으로 보이는 이들은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들이 앞에 나섰음에도 백작의 온몸에 힘이 들어가고 눈에는 실핏줄이 터지는 것이 보였다.
“항보옥…으을…”
그 기세에 짖눌린 백작이 입을 힘겹게 열면서 항복을 외쳤다.
“항복? 지랄하고 있다. 항복을 하려면 진작에 했어야지.”
“호오…우…ㅌ….”
그 말에 부발의 기세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힘겹게 기세를 버티고 있던 이들이 털썩거리며 주저앉았다.
“흐. 괴물은 괴물이구만 우리 단장은.”
그 모습을 지켜보는 2대대와 1대대는 자신들의 단장의 괴물 같은 모습이 든든하기 그지 없었다.
“다시 씨부려 봐.”
기세는 거두었을 진정 부발의 눈 안에 있는 분노는 더욱 불타올랐다.
“쿨럭…쿨울럭. 큼. 호트의 아들을 찾고 싶지는 않소이까?”
“개지랄을 떨지 말고. 날 죽이려고 했던 양반의 아들을 내가 왜 찾아. 내가 찾을 건 네 가족뿐이지.”
“호트에게 아들을 부탁하지 않았소이까. 그대와의 전투에서.”
“감시? 아니지. 내 감에 걸리는 인간은 없었으니까. 그럼 아티펙트라는 건데. 이 새끼가.”
“그는 내가 아니면 아무도 알 수 없는 장소에 있소. 나를 살려주면 그를 수호성으로 보내주겠소.”
“크하하하하하하하.”
데스투도 백작의 말에 갑자기 미친 듯이 웃는 부발이었다. 한참을 웃고 난 후의 부발의 얼굴은 악귀. 그 자체의 얼굴이었다.
“야. 너가 미쳤지? 지금. 초인의 아들을 볼모로 잡은 거로 모자라서, 계약이 끝났는데도 써먹는다?”
“어쩌겠소. 나는 힘이 없는 약자인 것을.”
“하. 미친 새끼가. 나중에 호트 영감 무덤에 가서 미안하다고 하면 될 일이야. 대신 네 피가 조금이라도 섞인 모든 이들을 몬스터의 밥으로 주고 난 후에 말이지.”
“그러지 않아도 돼. 여기 있다.”
부발의 등 뒤로 보이지 않았던 데마르와 씨어가 나타났다. 씨어의 어깨에는 전신이 결박된 사람이 들쳐 메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가장 놀란 이는 데스투도 백작이었다.
“어. 어떻게!!”
“아. [마타하리]가 전해 달라더라. 자신들을 가지고 장난친 대가는 비싸다고.”
그 말을 듣고 얼굴이 창백해지는 백작이었다.
“야. 지금 쟤가 우리보다 [마타하리]를 더 무서워하는 것 맞지? 하. 참 내. 어쩌다가 수호 용병이 이따위 취급을 받게 된 건지”
“[마타하리]지 않습니까. 수호용병은. 너무 잠잠했던 거구요.”
“에휴. 이번에 한 번 미친놈들로 명성이나 떨쳐보자. 포박해.”
전의(戰意)를 상실한 이들이었다. 부발이 바라보는 상황에서 함부로 검조차 꺼낼 생각도 못 하는 이들을 포박하기는 쉬웠다.
싱거운 결말이었다. 요란했던 과정과 다르게 너무도 싱거운 결말이었다. 그리고 수호 용병의 힘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결말이었다.
그렇게 끝날 일이었다. 데스투도 백작가와의 전투가 끝나고 그렇게 정리된 것이라고 모두가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 달 뒤에 각 귀족과 상단에 도착한 영상 구슬장치가 싱거운 결말이었던 결말이 끝이 아님을 알려주었다.
*
블레어 왕국의 왕성. 그중에서도 가장 심처(深處). 왕과 소수의 신하만이 자리하는 곳에 세 사람. 하나같이 수심이 깊게 서린 얼굴들이었다.
“후… 어찌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왕의 물음에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긴 침묵 속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폐위는 일단 당연하고 유배와 유폐를 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궁내 대신이었다. 그 말을 하면서 근위 기사단장을 얼굴을 힐끔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와 관련된 인물들을 저희가 먼저 정리해서 가져다주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허… 왕실의 위신(威信: 위엄과 신망)은 어찌하고?”
“근위 기사단이 숙청하는 것으로 하면 위신의 문제는 괜찮을 것 같기도 합니다만…”
그러면서 바라보는 시선의 끝에 근위 기사단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후… 해줄 수 있겠는가…”
왕의 물음에는 조심스러움이 함께하고 있었다. 누구보다 충성스러운 신하였건만, 그의 자식이 자신의 아들로 인해 죽을 뻔하였다.
“예. 그리고 그 일을 끝으로 이만 은퇴하고자 합니다. 그럼.”
고개를 숙이고 나가는 근위 기사단장. 그를 보며 할 수 있는 것은 안타까워하는 것뿐이었다.
“하. 스콜라스 하나 때문에 왕가가 흔들리는구나. 선조가 세우고 이제야 단단해지려고 하거늘. 어찌해야 할꼬”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전하께서 정정하시지 않으십니까. 참람(僭濫: 너무 지나치다)한 말씀을 거두어주시옵소서.”
“후. 겨우 기틀을 쌓았것만,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군.”
“죄송합니다. 저의 무능 때문에.”
“아니다. 그대의 무능일 리가 없지. 영상은 보았는가.”
“예. 저의 집에도 하나가 와 있더군요.”
“수호 용병. 그들이 조용히 있을 때 가만히 있었어야 했거늘. 세월이 참 무섭긴 하군.”
왕의 말을 들으며 자신이 보았던 영상의 끔찍한 장면들이 떠오르고만 궁내 대신이었다.
어느 날엔가 도착한 영상 구슬. [마타하리]의 이름으로 도착한 구슬을 재생시키자 최근 가장 유명했던 이의 얼굴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