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본 재능으로 정점-19화 (19/217)

[19화]

“그럼. 라니우스 님. 저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오늘 저를 청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여러모로 고맙네. 나에게 청할 일이 있다면 언제든 찾아오게나.”

폭풍 같은 시간이었다. 짧은 시간에 너무나 많은 사건이 휘몰아쳐 간 시간이었다.

“범아. 네가 내 제자가 되었음은 당분간 말하지 말거라.”

“네?! 네…”

“너무 서운해하지 말거라. 네가 처음으로 초인의 제자가 되었다면 이래저래 말이 많을 것이니.”

“아… 그렇네요.”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다. 아무래도 곧 초인의 선택을 받을 아이가 생길 것 같으니, 길어도 1학년이 지나기 전에 선언할 수 있을 것이다.”

“네? 누구요? 누가요?!”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란. 지금은 그것이 중요치 않으니. 들어가자꾸나.”

생각나는 아이가 몇 있었다. 하지만 그 몇이라는 것이 더 궁금하게 만들었다.

‘전생에서는…. 누구였더라…하… 기억이 안 나네…’

라니우스 님을 따라 오두막을 가면서 아무리 생각해봐도 기억나지 않아 그냥 포기했다.

“오늘로써 네가 내 제자가 되어 해주고 싶은 말이 많지만, 내일 떠나야 하니 아쉽구나.”

오두막에 들어가자 라니우스 님께서 우유를 데워서 건네주셨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옛이야기를 해주시듯 입을 여셨다.

“제자야. 너는 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느냐?”

“라니… 아니 스승님께서 도살자라는 이명의 초인이시고 백합 전쟁에서 이름을 알리시고 초인이 되셨다는 것. 이 정도만 알고 있어요.”

“그래… 백합 전쟁. 그 전쟁이 내가 사람을 베게 만든 전쟁이지… 그 전에 나는 그저 이름이 조금 있는 백정일 따름이었단다.”

그렇게 이어지는 라니우스 님의 이야기는 해가 지고 밤이 깊어져서 겨우 끝을 맺었다.

라니우스 님의 인연을, 악연을 조금이나마 이어받게 되었다.

“대략적인 이야기로 끝내야겠구나. 벌써 밤이 깊었다. 내일 수호산맥으로 향하는데 어서 들어가거라.”

“하… 스승님 너무 아쉬워요…”

“하하하. 걱정 말거라. 아직 우리에게 시간은 많이 남아 있으니. 수호산맥에 가거든 긴장을 풀지 말거라. 간혹 베리어에게 인지조차 못 하는 약한 몬스터가 나타나기도 하니.”

“네? 정말요?”

“베리어에게 약한 몬스터이지만 아직 너에게는 위험하니 조심하거라.”

“네 스승님! 걱정 마세요! 조심해서 다녀올게요! 다녀와서 많이 가르쳐 주세요!”

“허허허 걱정말거라. 내 모든 것을 가르쳐 줄 터이니.”

“네. 들어가겠습니다. 스승님.”

돌아가는 길. 평소와 다르게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게 된다.

기분이 좋은 만큼 아쉬움도 컸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스승도 없었다. 친구도 없었고 오로지 혼자였다.

오로지 자신만 믿을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은 모두 믿지 못하는 대상이었다.

다시 돌아오니 마틴이 있었다. 한스 형, 칸 님이 있었고 아카데미에 와서는 친구들도 생겼다.

사람을 배워가고 믿어가는 연습을 해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이자 스승님을 만나게 되었다. 뒤를 돌아보니 무심히 그저 서 있는 스승님의 모습이 보였다. 그저 든든했다.

*

범의 눈에 한없이 든든해 보이는 라니우스. 사실은 자신의 웃는 모습을 초인의 인내로 참고 있는 중이었다.

“흐… 흐흐하하… 하. 아니지. 음… 큼… 근엄함 스승. 흠”

촌극을 벌이면서도 범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 라니우스였다.

*

늦게 들어왔음에도 카인은 자지 않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왜 이렇게 늦은 거야! 우리 책 읽기로 한 거는 벌써 까먹은 거야?!”

오자마자 잔소리와 투정을 쏟아내는 카인의 모습마저 이뻐 보였다.

“왜 안 자고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왜… 왜 이래? 무슨 일 있었어?”

이미 스승님께는 카인에게 말을 해도 된다고 허락을 받았기에 편한 마음으로 카인을 대할 수 있었다.

“음… 좋은 일?”

“좋은 일? 원래 이 시간에 라니우스 님께 가는… 어?… 너… 설마…?”

“맞아! 나 오늘부로 라니우스 님의 제자가 되었어!”

“헐…와……”

너무 놀라 넋을 잃은 카인. 그 반응을 보며 즐거웠다.

‘카인이 말을 잃은 순간이라니! 재밌는데?’

“아 근데. 스승님께서 당분간 밝히지 말라고 하셨어. 나중에 선언하신다고. 최초가 되면 이래저래 안 좋을 거라고.”

“나한테는 말해도 되는 거야?!”

“응. 허락받아왔지. 믿을 수 있는 친구라고 했어!”

“범아… 진짜… 너… 너무 축하해!! 진짜 대단!! 와… 씽… 흑… 흑후”

갑자기 축하를 해주다 말고 우는 카인의 모습에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왜…. 왜?”

“아니… 막… 내 친구가 이렇게… 대단한 것도… 후우… 나를 믿어주는 것도… 후우… 기쁘고…”

“고마워 카인.”

축하를 받으려다 카인을 토닥이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진짜 부러워 범아… 나는 … 나는 안 되겠지…”

다시금 우울해지는 카인.

‘동생 하나 키우는 게 진짜 힘들구나…. 어째 마틴보다 애 같지…?’

“카인. 넌 마법사잖아. 그것도 그 희귀한 무속성의! 그리고 너도 잘 알잖아. 초인의 제자라고 해서 반드시 초인이 되는 게 아니라는 거.”

“훅…후우….흑…후”

“그리고 3학년이 되면 언제든지 초인들께, 마탑에 질의하고 가르침을 받을 수 있잖아! 너도 할 수 있어.”

“고…고마워 범아… 흐아… 후…흑.”

결국에 축하를 받지 못하고 위로를 하는 신세가 되었지만, 그 기분이 나쁘지 않게 다가왔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의지가 되고 도움이 된다는 것이 은근히 기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라니우스의 제자가 된 기쁘고 의미 있는 날은 카인의 울음과 함께 마무리되었다.

*

눈이 탱탱 부은 카인을 데리고 강당으로 향했다. 새로운 코트와 함께 나서는 걸음은 상쾌했다.

어제부로 계약서를 작성하면서 방으로 새로운 코트가 도착해 있었다. 마법이 부여된 코트였다.

온도조절 마법과 함께 클린 마법이 부여된 코트였다. 같은 재질이었음에도 마법이 부여되어 검은색의 코트에 윤기가 흐르는 것이 몹시 마음에 들었다.

강당에 도착하자 꽤나 많은 학생이 미리 와있었다. 자리에 앉자 그제야 처음 보는 학생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카데미 학생이 꽤 많네?”

“그치? 이번 연도 총 아카데미 학생 수가 965명이래!”

“965명? 그렇게나 많아? 거의 못 본 거 같은데…”

“우리는 1학년이라 동선이 아예 달라서 그래. 선배들을 보려면 3학년은 되어야 볼 수 있을걸?”

“와… 카인 너는 그런 걸 어떻게 다 알고 있어?”

“엣험! 다 방법이 있지!”

맨 뒤에 서서 선배들의 코트를, 무기를 구경하느라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형형색색의 코트와 각각의 무기들을 가지고 있는 선배들의 모습은 위풍당당(威風堂堂: 풍채나 기세가 위엄이 있고 당당함) 해 보였다.

‘웬만한 애들이… 전생의 나보다 무장이 좋네… 와…’

시간이 되자 몇몇 인도하는 선배들을 따라 강당을 나섰다.

강당을 나서면서 가는 곳은 놀랍게도 초인의 요람으로 가는 방향이었다. 항상 스승님이 계시던 문을 지나 들어온 초인의 요람은 생각 이상으로 크고 화려했다.

각양각색의 건물들이 각자의 자태를 뽐내고 있었지만, 구경할 새도 없이 지나쳐 중심을 지나 끝으로 향했다.

어느새 초인의 요람의 가장 끝, 왕성과 가까운 곳에 멈추어 섰다. 그곳에는 넓은 공터와 탑이 하나 서 있었다.

그리고 공터에는 놀랍게도 선생님들뿐만 아니라 여러 귀족, 그리고 중앙에 국왕이 존재했다.

‘역시… 수도 아카데미라는 건가. 아카데미 수련회에 국왕이 행차할 정도라니…’

국왕의 연설이 시작되었다. 강대국의 국왕은 다르다는 것인지 애국심과 충성심이 하나도 없던 자신마저 마음이 울리는 느낌이었다.

‘저것이. 국왕… 이구나. 역시 다르구나.’

처음 보는 국왕은 카리스마가 넘쳐 보였다. 국왕을 유심히 바라보자 신기한 점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이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가문의 문양을 중심으로 귀족들이 나뉘어 서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묘한 느낌이었다. 국왕의 좌편으로 카시스 가문이, 우편으로 데스투도 백작이 서 있는 모습.

‘뭔가…구도가 묘한데… 뭐.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니까.’

하지만 이내 무시하고 선열을 따라서 탑으로 들어갔다. 들어간 탑은 넓었다. 그리고 휑했다.

‘아무것도 없는데? 지하에…있나?’

모든 학생이 들어가고도 반도 채우지 못하는 공동의 공간에 학생들이 정렬해 있을 무렵, 탑 중앙에 사제 한 명이 나섰다.

‘어…? 저분… 몬시뇰… 이신 거 같은데?’

조용한 기도문이 시작되었다.

“나의 주여. 주께서 허락하신 길을 열고자 합니다. 정명한 권리를 받아 주의 길을 엽니다. 피아트 룩스.”

기도문이 끝나자 몬시뇰의 앞에 빛이 생겼다. 이내 가슴께에 머리만 하게 나타난 빛이 순식간에 거대한 게이트가 되었다.

압도적인 광경이었다. 순백의 빛으로 이루어진 반원형의 게이트는 신묘해 보였고 아름다워 보였다.

‘저…게… 게이트… 와… 진짜… 신비하다…’

“우와아아…”

1학년 아이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 광경에 감탄할 겨를도 없이 선배들을 따라 게이트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곧.

모든 학생의 자취가 더 이상 탑에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

국왕의 연설이 끝나고 아이들이 탑에 들어가자 탑 앞의 공터에서는 연회가 시작되었다.

연회의 중심은 단연 카시스 후작과 데스투도 백작이 주도하고 있었다. 국왕은 이미 들어갔기에 귀족들은 각자의 의도에 따라 행동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을 직접 맞이하는 데스투도 백작과는 다르게 카시스 후작은 자기 아들에게 수행하도록 하고 한 발 벗어나 있었다.

그의 옆에는 언제나 그렇듯 미네르바가 그를 수행하고 있었다.

“흠….”

“일전의 그 기본 재능의 아이를 생각하심입니까?”

“흠… 그 아이가 고아라고 했던가?”

“네. 고아 출신으로 코입툰의 고아원에서 생활했습니다. 그리고 칸이라는 이름의 용병에게서 가르침을 받은 것으로 보고받았습니다.”

“칸…칸이라… 그 ‘배달’이란 말이지…”

“네. 각하께서 아실 정도라면… 그가… 대단한 사람인가요?”

“아마… 초인은 제외한다면 그를 상대할 수 있는 자가 다섯을 넘지 않을 것이다. 그 아이를 포섭해야 하는 인물로 올리도록.”

“네. 후작님.”

카시스 후작의 주변에는 보이지 않는 선이라도 펼쳐진 듯 사람이 함부로 접근하지 않았다.

그때 그에게 거침없이 다가오는 한 남자가 있었다. 의아함에 고개를 돌려본 카시스는 자신이 먼저 일어나 다가갈 수밖에 없었다.

“피에르 님!”

“오랜만이구나 투토.”

카시스 후작을 이름도 아닌 아명으로 감히 부르는 이였다. 그는 초인 중 하나로 5대 영웅 중 폭풍의 검의 맥을 잇는 피에르였다.

제아무리 카시스 후작이라고 할지라도 먼저 일어나 예를 취해야 하는 인물이었다.

“딸을 잘 키웠구나. 투토.”

“피에르 님… 감히 감당하지 못할 말씀입니다.”

“아들을 후계로 생각하는 것 같고, 재능이 몹시 빼어나.”

“피에르 님… 혹시 그렇다면…”

“그래. 내가 두고 보았는데, 그 아이가 사탈레스의 이름을 이어받을 수 있을 것 같더군.”

사텔레스. 그 성은 혈족으로 이어지는 성이 아녔다. 오롯이 초인이 되어야만 이을 수 있는 영광스러운 성이었다.

피에르는 그 성의 4대째 주인이었다. 그가 성을 받고 그의 본가가 영지를 가진 자작이 되었다는 것이 그 성의 권위를 나타내준다.

그 모든 것을 떠나 5대 영웅의 맥을 잇는다는 것만으로도 영광과 권위가 따라오는 그러한 성이었다.

“감사합니다. 피에르 님. 제 딸도 영광으로 알 것입니다.”

어느새 연회의 모든 귀족이 그 둘을 보며 그 둘의 대화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허허… 고맙네. 이 연회에 참가하는 모든 이들이 나의 선언 전에는 여기저기 말하고 다니지 않았으면 좋겠다만.”

조용히 말하는 피에르의 목소리는 공토 전역을 울렸다.

학생들이 떠난 공터에서 폭풍이 불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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