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본 재능으로 정점-13화 (13/217)

[13화]

머릿속에 기억된 티에르 님의 동작이 그대로 재현된다. 머릿속에 생각이 사라지고 몸이 절로 움직인다.

몸이 저절로 아는 느낌이었다. 머리는 자연스럽게 베어가는 길을 그렸고, 몸은 그를 그대로 재현해 내었다.

“하…”

순간에 잘게 나누어진 양고기가 눈에 들어온다.

“꼬…꼬맹이!…”

탈력감이 온몸에 가득하다. 재능이 개화한 순간을 이 몸이 버티기에는 쉽지 않았던 듯하다.

‘드디어 개화했어! 벌써 발아(發芽: 싹이 틈/어떤 사태가 시작됨)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도축…도축이 정말…’

놀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티에르 님이 보인다. 뭐라 대꾸하고 싶지만, 이미 힘이 빠져 주저앉은 상태였다.

“꼬맹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는 모르지만. 확실히 너라면 라니우스 님의 진짜 제자가 될 수도 있겠구나.”

자신을 들면서 들려오는, 알 수 없는 회환이 가득한 티에르 님의 말이었다.

“오늘은 내가 데려다 주마. 이만 하도록 하자.”

그 말을 끝으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

‘와 진짜 개운한데?’

눈을 뜨니 상쾌함이 온몸을 휘감았다. 옆에서는 카인이 자는 모습이 보였다.

“하 티에르 님이 데려와 주셨구나. 근데 어떻게 들어오신 거지?”

아카데미는 출입 자체가 까다로운 곳이었다. 웬만한 귀족도 사전에 고지를 해야 출입할 수 있는 곳.

그런 아카데미 안으로, 그것도 자신의 방에 데려다주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그나저나 진짜 빠르게 개화했어. 이제 발아한 거지만. 전생에 비하면 20년은 빠르지.”

자신의 경험에 의하면, 기본 재능은 결코 쓰레기가 아니었다. 다만 다른 재능들처럼 사용하는 방법이 다를 뿐이었다.

자신도 후에야 알게 되었지만, 칼질이 다른 이들보다 빠르게 능숙해졌다.

그것 하나만이 다라고 생각했지만, 기본 재능의 진정한 모습은 그 재능을 자각하고 느낄 때 드러난다.

‘그걸 개화라고 내가 그냥 붙인 거지. 결국 씨앗이 난 상태이니까. 아직 갈 길은 멀어.’

관리자님과의 대화를 통해서 더더욱 확신을 얻었기에 재능을 개화시킨 지금 자신감이 넘쳤다.

눈을 감고 발아시킨 재능을 느낀다. 그리고 서서히 눈을 떴다.

“오랜만에 보는 세상이네. 진짜 반갑다.”

변한 게 없어 보이지만, 자신은 그 누구보다 변화를 느끼고 있었다.

무엇인가를 벤다는 생각을 하자 어떻게 베어야 하는지 느낌이 오기 시작한다.

“원래는 이 세상에서 익숙해져 있었는데. 완전히 잊고 있었어. 다시 익숙해지려면 꽤 걸리겠네.”

“버어엄이이야아…?”

혼잣말 때문에 깬 건지, 부스스한 머리와 아직 다 떠지지 않은 눈으로 자신을 부르는 카인이 보였다.

‘아 진짜. 빨리 익숙해지든 해야지. 진짜.’

자신도 모르게 카인을 깔끔하게 베어버리는 방법을 본능이 알아내었다.

‘꽤 끔찍한데. 진짜 조절부터 해야지. 조절할 생각은 하지도 못했는데.’

본디 재능이란 본능의, 감각의 영역이다. 그중에서도 기본 재능은 더 본능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드러나기가 더 어렵고 드러나더라도 조절하기 쉽지 않았다.

“더 자. 아직 일어나려면 시간 멀었어.”

“으…응…이따가 깨워주어어…나…라앙… 가…치…”

다시 잠드는 카인을 보면서 미소가 지어진다.

‘그래도 동생이 생긴 것 같아서 좋긴 하네. 빨리 조절하는 거에나 집중해야겠다.

한참을 씨름한 끝에 재능을 켜고 끄는 것에만 겨우 성공을 할 수 있었다.

“하. 한참이네. 재능을 항상 깨워둬야 하는데. 그래도.”

과거에는 어차피 다 베어버릴 상대이기에 조절에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그래도… 해야지. 후 카인! 카인!!”

*

연무장에서 바람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 자신이라는 것이 너무 즐겁다.

평소에도 재능을 조절하기 위해서 애를 쓰고, 단련하기를 3주. 그제야 조금 감을 잡게 되었다.

재능을 조절하려고 하는 그 노력이 기본 도법을 단련하는 데도 크게 도움이 되었다.

깨어난 재능이 어떻게 하면 더 깔끔하게, 간결하게 벨 수 있는지 길을 알려주었다.

더 오래 걸릴 것으로 생각했는데, 도를 패용하고 3주가 지나자 오후 수업이 마치기 전에 4000번의 베기를 끝낼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의 자세가 정확해질 때마다 아침에 배우는 연환이 부드러워졌다.

연무장에서 무기를 수련하는 아이가 자신뿐만이 아니라는 것이 새로운 변화였다.

자신의 옆에서 레이피어를 들고 있는 소녀가 있었다. 바로 어제부터 로사 또한 무기를 패용하는 것이 허락되었다.

4개월이 채 되지 않아서 무기를 패용하게 된 것은 이례적으로 빠른 속도지만 그에 로사는 별로 기뻐하지는 않았다.

다만, 어제 아이들의 박수 소리는 자신이 받은 박수와는 질이 다르게 우렁찼다는 점이 차이 날 뿐이었다.

어제의 박수는 부럽지 않았지만, 부러운 것이 있었으니. 소녀가 들고 있는 검이었다.

박수 소리를 받으면서 로사가 한 것은 귀에 걸려있던 귀걸이를 잡은 것이었다.

순간, 그 귀걸이가 검이 되어 로사의 손에 잡혀 있을 때. 진심으로 부러워졌다. 그 모습을 로사가 알게 되면서 본의 아니게 흑역사가 생기기도 했다.

귀해 보이는 검은 검이지만, 로사의 검술은 참 매끄러웠다. 베어내고 찌르는 동작이 도저히 10살이라고 볼 수 없을 만큼 간결하고 매끄러웠다.

그를 보면서 어떻게 위대한 여기사가 탄생했는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로사가 옆에 있기에 오늘은 더욱 집중해서 도를 휘두를 수 있었다. 로사의 미래를 알기에, 그 점만으로도 훌륭한 자극제였다.

로사가 무기를 패용하게 되고 3주가 지나갔다. 찬란한 세대라는 말이 과언이 아니듯이, 모든 아이들이 기초체력 훈련을 끝마칠 수 있었다.

가장 늦은 아이가 4개월하고도 2주. 때때로 가장 빠른 아이의 기록이라는 것을 보아서 아이들의 재능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더구나 도미토르 님이 워낙 자신을 가지고 아이들을 자극하니 재능도 독기도 모두 갖추었다는 평이 주를 이루었다.

모두가 가슴께에 청동 브로치를 달고 난 다음 날. 기초 훈련을 끝낸 로사가 돌연 도미토르 님에게 질문했다.

“선생님. 오늘부터 대련해도 괜찮을까요?’

“흠….”

잠시 생각을 하던 도미토르 님은 사제님을 흘낏 보더니 흔쾌히 대답했다.

“좋다. 앞으로 대련도 수업에 일환으로 넣지. 다만, 체력훈련이 3시간 이내에 끝나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다.”

“네! 선생님. 그럼 저는 범과 대련하고 싶어요!”

도미토르 님께서는 올 게 왔다는 표정이었다. 자신도 예상한 말이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자신을 벼르고 있었다.

체력훈련은 질 수 있지만, 고작 고아. 대련을 하면 무조건 이길 수 있다는 것이 모든 아이들의 일관된 생각이었다.

“범아. 너는 어떻냐.”

“네! 좋아요!”

흔쾌하게 수락하는 모습에 아이들이 놀랐다. 누가 보아도 자신에게 불리한 대련을 흔쾌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모두가 흥미진진한 모습으로 연무장 중앙을 두고 물러섰다.

그 가운데 이를 몹시 아쉬워하는 학생이 하나 있기는 했지만 빠르게 연무장 중앙이 비었다.

자신을 앞에 둔 로사.

“무섭거나 아프면 빠르게 기원해. 네 한계를 알려주기 위해서 그랬을 뿐이야.”

나름 자신을 배려한다고 조용하게 말하는 로사를 보며 기가 찼다.

‘귀족들은 꼬마일 때도 요상하구나. 꼭 저렇게 꼬아서 말을 한단 말이지. 내가 이래 봬도 전생에 도 하나 들고 군대를 거슬러 온 사람이다 꼬맹아.’

“그래. 잘 부탁해.”

말과 함께 조절하는데 조금은 익숙해진 재능을 일깨운다. 어떻게 베어야 하는지 본능이 알려준다.

“다섯이 넘는 검상이 생기면 패배다. 도중에 기권을 하는 순간 둘 모두 무기를 내리도록. 도중에 무리가 있다 판단되면 대련을 멈추게 할 것이다. 알았나?”

“네!”

“동전이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시작한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팅!” 소리와 함께 동전이 떠올랐다. 로사가 동전에 눈을 두고 있을 때, 로사에게 집중했다.

“탱!”

소리와 함께 튀어나갔다. 빠른 속도로 로사를 향해 나가면서 발도로 베어내기 이상적인 궤적을 그린다.

이를 본 로사는 당황하면서도 그 도를 쳐내면서 뒤로 물러섰다. 물러서는 로사에게 재차 도가 어깨를 노리며 베어갔다.

바로 연계가 들어올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는지 도는 로사의 어깨를 배었다.

“아아아악!”

검을 놓치진 않았지만, 베인 것은 처음인 듯 멈춰선 로사에게 그대로 다가가 목에 도를 살짝 얹은 범.

“그만! 범 승리!”

이변이었다. 모두가 생각하지 못한 결말이었다. 그리고 너무도 빠르게 이루어진 결말에 모든 아이의 얼이 빠져있었다.

‘쯧… 위대한 기사라고 해도 아직 어리긴 어리구나. 간단한 기습인데 그걸 못 막네.’

로사는 공황에 빠져들었다. 자신보다 빠르게 반응한 범에게 한번 놀라고 자신이 베인 것에 당황한 사이 목 곁에 도가 대어져 있었다.

자신이 졌다는 사실이, 동년배에 고아에게 졌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 로사였다.

“깔끔한 승리였다. 빠르고 정확한 베기였다. 수고했다 범.”

“감사합니다.”

기습이 성공한 순간 승리가 정해졌다. 그렇기에 도미토르 님의 칭찬에도 담담할 수밖에 없었다… 한창 공황에 빠친 로사에게 다가가는 도미토르였다.

“로사! 왜 졌다고 생각하지?”

“…말도 안 돼…”

“로사! 정신 못차리나!”

여전히 정신을 못차리는 로사였다.

“내가…. 내가 졌다고…?”

“로사 학생. 왜 졌다고 생각하지?”

은은한 기세가 섞인 물음에야 제대로 정신을 차리고 겨우 대답하는 로사였다.

“방심했습니다. 애초에 저보다 빠를 리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뒤로 당하기만 했고 당황해서 졌습니다.”

“정답이다. 마나를 사용하지 못하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구나. 마나를 사용했다면 네가 더 빨랐을 것이지만, 지금은 구속구를 찬 상태다.”

“아…!”

실제로 마나를 사용했다면 대련의 양상이 달라졌을 것이었다. 어느새 자신의 팔에 끼워져 있는 구속구를 바라보는 로사였다.

“이제 정신을 차린 모양이군. 모두 앞으로 기억해 두도록. 너희 단련 정도가 최소한에 미치지 못하면 마나를 사용하지 못한다. 앞으로의 대련에서도 염두에 두도록!”

“네!”

아이들의 힘찬 대답 소리 이후에 각자의 대련이 시작되었다. 모두 짝을 지어 대련할 동안 자신은 그저 묵묵히 도를 휘둘렀다.

‘지금은 대련하는 것보다 도를 수련하는 게 훨씬 도움이 돼. 어린아이들이랑 투닥일 필요도 없고.’

머지않아 수업이 끝나고 연무장을 정리하고 돌아가는 동안 아이들이 자신의 이야기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소공녀 님. 괜찮아. 좋은 경험 했다고 생각하면 되지. 우리가 언제 마나를 안 쓰고 대련해 보겠어. 게다가 고아라니까 길거리 싸움에 능한가 보지 뭐.”

“그래도 진 건 진 거야. 이번 학기를 마치기 전까지는 반드시…”

“아닙니다. 아가씨. 마나를 사용했다면 결코 이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트레어. 말을 편히 하라니까. 아카데미에서 우리는 같은 학년이라구!”

“솔직히 마나만 사용하면 우리 반에서 고아 놈한테 질 아이는 없을걸?”

“글쎄… 범이가 마나를 사용한다면… 쉽지 않을걸?”

“하하하하. 그럴 리가 없잖나. 고안데 마나를 언제 사용해 보기나 했겠어?”

세 명의 아이가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서, 역시나 귀족은 싫다고 생각하는 범이었다.

‘자기들끼리 난리가 났구나. 하긴. 고아에 기본 재능인데 당연하지 싶지만. 나랑은 전혀 다른 이야기일 텐데”

당연한 건 당연하지만 기분이 좋을 리는 없는 범이었다.

‘그래도 로사는 개중에서 다르기는 하네. 그래도.’

로사를 이겼기 때문이지 더 없이 기분이 좋아 그저 넘길 수 있었다.

‘세상에 무의 정점이라고 불리던 그 로사를 이기다.’

자신도 이렇게까지 기분이 좋을 줄 몰랐다. 그 위대한 기사를 이긴 (비록 지금은 어릴지언정) 이 순간이 너무나 기뻤다.

*

“범아!!!”

카인이 자신이 들어오자마자 반갑게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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