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다짐하며 걷다 보니 눈앞으로 도미토르 님의 방이 보였다.
‘똑. 똑.’
최대한 예의 바르게 문을 두드린 범
“들어와라.”
문을 열고 들어간 도미토르 님의 방에는 의외로 책이 굉장히 많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깔끔했다.
‘육체파의 극으로 보였는데 책이 엄청 많네. 와…’
자신의 인사를 받아주는, 손에 서류를 들고 있는 도미토르 님의 모습이 보였다.
‘엄청 신기한 생물 바라보듯이 바라보는 느낌인데? 하긴.’
1학년에 두각을 나타내는 아이들은 대부분 귀족 자제들이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받는 교육의 질이, 환경이 비교가 안 되기 때문.
평민 중에서도 두각을 드러내는 아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부분 4~5학년이 되어서였다.
그런데 자신은 아니었다. 고아 출신으로 마나는 익혔지, 환경을 생각한다면 실로 특이한 아이가 맞았다.
‘나도 회귀를 하지 않았으면… 이럴 일 자체가 없었겠지… 회귀 만세다!’
아마 자신의 재능이, 선천 재능이 중위 재능만 되었어도 모든 이들이 주목했을 것이다.
자신의 품에 안거나 죽이기 위해서. 다만, 기본 재능이라는 것에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따름이었다.
‘뭔가 점점 눈빛이 위험해지는데. 어…’
위험한 상상을 하려는 찰나 도미토르 님의 입이 열렸다.
“들어왔으면 잠시 앉거라.”
변함없는 도미토르 님의 모습에 절로 긴장이 된 범은 책상 앞에 가서 앉았다.
“널 부른 것은 다른 게 아니다. 통보와 보상하기 위함이다.”
“보상이요?”
“그래. 난 너를 자극제로 사용할 예정이다. 너를 제외하면 다들 귀족가의 자제들, 게다가 네 재능이 기본 재능이니 아주 좋은 자극제가 될 것이다. 전제가 네가 그들보다 뛰어나야 한다는 것이지만 오늘 보니 그럭저럭 할 수 있을 것 같구나.”
도미토르 님의 말을 듣고 대충 계산을 해보았다.
‘어차피, 짝짜꿍하면서 놀려고 온 것도 아니고. 오늘 로안의 태도를 보니 친해지는 것도 글렀는데 상관없지 싶은데. 나를 통해서 귀족들이 지적받는 다라 좋은데?’
“자극제요?”
‘그래도 아직은 10살이니까 조금 순수하게 대답해야지.’
“그래. 자극제. 그 대신 선물을 주도록 하마.”
자신의 말에 일어나는 도미토르 님을 보며 순간 곰이 일어나 자신을 잡아먹는 상상을 했다.
“쿵!”
분명 살포시 놓았는데도 꽤 큰 소리가 났다. 무식한 두께의 책은 [육체의 이해]라고 쓰여있었다. 저자는 쓰여있지 않았다.
“내가 평생을 걸쳐서 쓴 책이다. 네가 이것의 반, 아니 반의반이라도 이해한다면, 네가 쓰는 육체가 달라질 것이다.”
도미토르 님의 말을 듣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의 말에 따른다면 이 책에는 그의 평생의 심득이 들어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과했다. 너무도 과한 보상이었다.
“선생님의 심득(心得)이 모두 담긴 책이라는 말씀이신가요?”
“그렇지. 잘 알아듣는구나. 책을 읽고 수업을 따라온다면, 네 육체는 변할 것이다. 장담하지.”
‘와 이거 잘못하면 체한다. 삼키다가 죽는 수가 있어.’
“자극제 용으로 사용하는 보상치고는 너무…너무 과한 보상입니다.”
“하하! 제대로 된 가치를 알고 있구나? 네가 마음에 들어서라고 하자. 너 따로 스승이 있지?”
“아 네….근데 어떻게?”
“고아가 마나를, 그것도 정순한 마나를 품고 있는데 그걸 모르면 병신이지. 누구냐?”
“아직 정식으로 제자가 된 것은 아니에요. 라니우스 님의 과제를 수행하는 중입니다.”
“어? 라니우스 님이 내가 아는 그 라니우스 님을 말하는 것이냐?”
“네…”
“하하하하하하! 너 정말 재밌는 아이구나? 그럼 지금 도축을 배우고 있겠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라니우스 님의 과제를 알고 있다고 생각이 든다.
‘이러면 좀 달라지는데. 삼켜도 괜찮을 것 같은데? 라니우스 님이 계시니 일단 먹고 보자.’
“네. 배우고 있습니다.”
“도축을 함에 있어서 그 책이랑 항상 같이 생각하면서 해보거라. 그 책을 다 외우는 것을 추천한다만, 네 자유지.”
“네! 반드시 다 읽을게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반드시 훌륭한 자극제가 되겠습니다!”
“범이지? 지켜보마. 이제 나가봐라.”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감사함을 담은 인사를 하고 나오자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꼈다.
고개를 돌려보니 빛에 반짝이는 백금빛 머리에,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진녹색의 눈동자를 가진 소녀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엇을 받았지?”
“내가 말해야 할 이유는 없지 않나? 그냥 책 한 권을 받았다만.”
‘무의 정점이라기에는 진짜 예쁘고 귀엽다. 워… 정신 차리자. 지금 10살 꼬맹이한테!’
자신의 품에 들린 책을 흘낏 보고 범을 직시하는 소녀였다.
“오늘은 네가 운이 좋아 이긴 것이다. 검을 쥐었다면 달라졌을 것이다. 앞으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어린 소녀의 말투는 외모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자신의 할 말만 하고 돌아서는 소녀를 보며 실소가 나왔다.
“어지간히도 자존심 상하셨나 보네. 찬란한 재능을 가진 천재 여 기사가 나 때문에 자존심 상해한다니. 와 회귀하기 잘했네.”
언제나 무시 받고 다른 이를 동경하며 질투하기 바빴던 자신이. 모두의 동경을 받던 이의 질투를 받는다는 것이 너무나 기분 좋았다.
기분이 좋아 사뿐하게 가려던 범에게 막상 느껴지는 책의 무게에 다시 겸손한 기분이 되었다.
“와 이건 언제 다 읽고 외우나…”
*
저녁을 먹고 방에 들어왔는데, 방을 잘못 들어온 기분이 들었다.
언제나 쉬지 않고 밝았던 카인이 다 죽어가는 얼굴로 방구석에 있었기 때문이라는 걸 알아차리는 것은 금방이었다.
“카인! 무슨 일이야?”
“어 범아. 아니 그냥 내 주제를 알게 되었다. 라나… 이 세상에 천재는 있구나. 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싶어서…”
말하면서 눈에 습기가 급속도로 차오르는 카인을 보며 당황스러웠다.
“왜? 오후 수업이 어땠길래 그래?”
잠시 회상하는 듯한 카인이 이내 폭풍같이 울기 시작했다.
“범아아 나는… 허…헣허… 재능이 업…허… 나느은… 안 되나봐아…”
이미 한 명의 울보를 대처해 본 범은 차분하게 토닥여주며 다 울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이내 다 울고 나서야 입을 여는 카인.
“고마워… 프헹”
카인은 오후에 있었던 일을 회상하며 입을 열어 이야기를 시작했다.
*
카인은 오후 수업을 하기 위해 강의동으로 향했다. 놀랍게도 그곳에는 찬란한 재능 중 하나인 스콜라스가 있었다.
이미 놀라고 있는데 들어온 선생님을 보고 더 놀란 카인. 1학년 총 담당인 플레미 선생님이 들어온 것이었다.
자신이 플레미 선생님의 수업을 받는다는 것에 설레는 카인이였다.
수업이 시작되고, 서클이 있는 스콜라스, 에밋 그리고 스텔라를 제외하고 자신의 속성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마법사의 속성은 대표적으로 7가지였다. 사대속성 (바람, 물, 불, 대지)와 빛, 어둠 마지막으로 무속성이 그것이다.
실상 하나의 속성만 지닌 사람은 없었지만, 자신에게 가장 맞는 속성을 찾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무속성은 모든 속성과 같다는 말이었다. 모든 분야에 재능이 있지만, 특출난 재능이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러한 무속성이 자신의 속성임에도 카인은 괜찮았다. 자신에게 적합한 마나 서킷을 추천해 주실 때만해도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문제는 이어진 이론 시간이었다. 마법의 기초 이론을 배우는데, 그 속도가 너무 빨랐다. 자신은 1/10도 이해하지 못했는데 진도가 거침없었다.
수업 마지막에 보는 쪽지시험에서 카인은 무너지고 말았다. 스콜라스와 에밋 그리고 스텔라는 이해가 갔다. 왕자에 공녀에 마법사의 제자니 당연하다 싶었다.
하지만 자신과 같이 처음 배우는 것으로 보이는 통이라는 아이의 성적을 보고 존재하는 것은 나락(奈落 : 벗어나기 어려운 절망적인 상황)뿐이었다.
50문제로 이루어진 시험에서 자신은 9개만을 정확히 적어내었다. 반면 통이라는 아이는 27개를 정확하게 적어내었다. 스칼렛과 비슷한 점수였다.
아이들의 무덤덤한 시선이 카인을 다시 한번 헤집었다. 그리고 마지막은 플레미 선생님의 말씀이었다.
“카인은… 수업 후에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 아니면 위험할지도 모르겠네.”
그 말과 함께 책을 받아들었을 때 이미 카인은 나락에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멍한 상태로 방에 들어와 정신을 놓고 있었던 것이다.
카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을 보았다. 기본 재능이라고 무시하던 그 시선, 어떻게 해보려 해도 줄어들지 않는 간극.
여러 가지 감정이 들어차면서 순간 자신도 모르게 화를 내는 범이었다.
“그래서?! 포기하겠다는 거야?”
자신도 모르게 화가 나자 놀랐지만, 사과를 건네지는 않았다.
“그래! 포기할 거다! 나보고 어쩌라는 건데!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데!”
“끝까지 해봐야지! 죽어라 해봐야지! 선생님이 공부하면 된다고 했잖아! 그저 하루 만에 포기하는 그런 애였어?!”
“해도 안 될 게 뻔히 보이는데! 어떻게 뭘 더하라고 하는 건데!”
“왜 안 되는데? 굳이 애들이랑 비교하면서 해야 해? 비교해서 뭐가 되는데? 애들을 이기는 게 목적이야? 그 애들만 이기면 대마법사가 되는 거야?”
“네가 뭘 알아! 넌 마법사도 아니잖아!”
“모르지. 마법에 대해서 하나도 몰라. 그래도 포기하지 않으면 된다는 거 하나는 알아! 내가 고아여서, 기본 재능이라고 포기했으면 여기에 오지도 못했어!”
자신의 말에 순간 말문이 막혔던 카인이지만 이내 다시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래 봤자! 너도 오늘 오후 수업에서 느꼈을 거 아니야!”
“아닌데? 오히려 애들이 날 질투했을걸?”
“널 질투했다고? 너를?”
“어. 그 찬란한 재능이라는 로사공녀도.”
“하 좋겠네, 결국에 너도 재능이 있으니까 그렇게 말하는 거지.”
“아 나… 이런 ㅆ…하! 그래요. 달리기에 존나게 재능이 있어서 그런가 보네. 재능? 저기요 잘난 중상 재능 나리야, 기본 재능에 적합도가 상도 아니고 중상이다 병신아. 그냥 평생 그렇게 재능 탓이나 해!”
“쾅!”
너무 화가 나서 있는 힘껏 문을 닫고 나가는 범이었다. 왜 화가 이렇게 나는지 스스로도 모르겠는 범이었다.
*
도축을 배우러 가는 내내, 도축을 배우는 내내 생각해보았지만 알 수 없었다. 그저 계속 화가 났다.
“꼬맹이. 뭐 하는 거냐! 왜 애꿎은 고기에 화풀이야!”
고개를 들어보니 깔끔한 단면으로 난자되어 있는 고깃덩이가 보였다.
‘이젠 재능이 슬슬 깨어나긴 하려나 보네. 진짜 생각 없었는데.’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무슨 일이냐. 원래 안 그러던 녀석이.”
“사실은요…”
카인과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흥분하면서 티에르 님에게 말씀드렸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우렁찬 호통이었다.
“이 멍청한 녀석! 애들이 다 너 같은 줄 아나! 10살 꼬맹이한테 뭘 바란 거냐! 10살이면, 자신의 재능에 절망하면 스스로 일어서지 못하는 나이란 말이다!! 네가 진짜 친구라면 좀 우쭈쭈도 좀 해주고 그래야 할 것 아니냐!! 빨리 친구한테 튀어 가!”
티에르 님의 말을 듣고 정신 번쩍 들었다. 자신과 너무 편하게 얘기를 하고 있기에 카인이 이제 10살이 된 꼬맹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거기에 왜 자신이 그렇게 화가 났는지도 알 것 같았다. 카인의 모습에서 자신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자신도 그때 누군가가 손을 내밀어 주기를 바랐다. 누구 한 명이라도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해 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아이에게 소리치고 화내고 나온 자신이 너무나도 싫었다.
‘멍청하기는… 진짜 쓰레기 같기는… 내가…!’
자신을 자책하며 아카데미로, 기숙사로 죽을 듯이 달려가는 범이었다.
“카인!”
최선을 다해서 달려온 방 안에 카인은 없었다.
“하… 씨…”
“응? 왜?”
후회가 미친 듯이 차오르던 찰나에 이제 막 씻고 나온 카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카인이 눈에 들어오자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저 덥석 안아주었다.
“카인. 내가 말을 너무 심하게 해서 미안해… 그래도 해보면 할 수 있어! 넌 재능도 좋아!”
자신이 할 말을 막무가내로 끝내고 다시 카인을 똑바로 보자, 또 카인의 눈에 습기가 차오르는 것이 보였다.
“범아 고마워… 나도 네가 한 말을 듣고 다시 한번 해보자고 생각했는데… 너가 이렇게 말해주니까 더 자신감이 생기는 거 같아. 너무… 너무 고마워.”
우는 건지 웃는 건지 모를 표정으로 말하는 카인을 보며
‘다행이다. 진짜 다행이다. 카인은 나보다 훨씬 강하구나… 감사합니다. 티에르 님.’
평생의 후회를 남기지 않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