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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재능으로 정점-5화 (5/217)

[5화]

항상 수레를 끌던 시간에, 가방을 메고 고아원을 나섰다.

‘하 엄청 어색하네… 그래도 이번에는 도망치듯이 가는 건 아니네.’

작은 배낭 하나. 그것이 마을을 떠나는 모든 짐이었다. 프란첸스코 님은 어제 홀로 오셨다.

프란체스코를 만나기로 한 곳으로 향하는 범은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제 돌아온 지 6개월.

반년 사이에 전생과는 너무나 다르게 변했다.

마틴과의 관계도, 칸 님의 가르침도 오늘 출발하는 것마저도 모든 것이 달라졌다.

자신의 앞길도 과거와는 모든 것이 다를 것이라 다짐하면서 걸어갔다.

“…!!!!’”

마을 끝에 도착하자 보이는 풍경에 놀라,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동안 만났던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와서 자신을 배웅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꼬마~~ 잘 다녀와라~!”

“범아!! 그동안 수고했어! 수도에 가서도 기죽지 말고!”

“너 같은 아이는 크게 될 거야!! 잘하고 오라고!”

“이제 네가 가면 누가 아침마다 나오냐~ 왜 벌써 가고 그래~!”

사람들의 배웅에 가슴이 먹먹해지고 어느새 눈에는 눈물이 차올랐다. 정말 받은 것만 있는 곳이었다.

‘이런 곳을 그냥 도망치듯이 떠난 멍청이였던 거지…’

“꼬맹이. 대단한데? 떠나는데 배웅도 받고”

“그러게요 저도 이럴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요…”

“범아~~~~”

달려 나오는 마틴이 보였다. 어제 그렇게 울더니 눈이 퉁퉁 부어있었다.

“이거 가져가.”

마틴이 건넨 것은 종이 뭉치와 노트 한 권이었다.

“가서. 꼭 편지 자주 하고. 노트에 열심히 써서 나중에 꼭 보여줘!”

말을 하면서 다시 눈물이 차오르는 걸 보니 사제가 되도 참 눈물 많은 사제가 되겠다 싶었다. 어쩌겠나 싶으며 안아주었다.

“고마워 마틴…”

어느새 모두와 인사를 하고 떠나는 발걸음을 내디뎌야 할 때였다. 막상 떠나려고 하니 발걸음이 참 무거웠다. 이럴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참 아쉬웠다.

‘예전에는 그냥 생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얼마나 걸었을까? 점점 사람들이 잘 안 보일 무렵, 마틴의 옆에서 서 있는 칸 님과 눈이 마주친 것 같았다. 그 순간 저절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비록 스승님이라 부르지 못하지만, 제 첫 스승님은 칸 님이십니다.’

그저, 마음이 전해졌기를 바라며 프란체스코 님을 따라 걸었다.

마을이 이제 보이지 않자, 프란체스코 님께서 입을 열었다.

“꼬마. 내가 왜 혼자 왔는지 아나?”

“아니요. 저도 상단에 따라갈 거로 생각했는데 혼자 오셔서 놀랐어요.”

“칸이 부탁해서 데려다준다만, 난 아직도 네가 수도 아카데미를 가는 게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가는 길에 시험하려고 혼자 온 거다.”

“시험이요?”

“그래. 네가 싫다면 하지 않아도 수도까지 데려다줄 거다. 다만, 시험하면 너에게도 나쁘지만은 않을 것이다. 어떻게 할 테냐?”

‘적어도 날 골릴려고 하는 것 아니신 것 같은데…’

“제가 기본 재능이라 그러신 건가요?”

“그래. 그렇지. 기본 재능에 수도 아카데미는 잔혹할 수 있지, 그곳에서 네가 잘 지낼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기분이 좋지 않았다. 자신에 대해서 무엇을 알고 있다고, 기본 재능이라고 무시하는 것일까. 걱정하는 것임을 알지만 그 걱정이 기본 재능이기 때문이기에 더 기분이 상했다.

‘좀 나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기분이 나쁜 건 변함이 없네… 기본 재능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면서…’

그 시험이 무엇이든 생각 이상으로 넘어서겠다는 오기가 피었다.

‘그리고 그래 봤자지… 10살을 기준으로 하실 테니.’

계산이 섰다. 하지만 절로 기분이 나쁜 기색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해요. 하지만, 기본 재능이라고 해서 안 되는 건 아니잖아요. 시험. 받을게요. 어떤 시험인가요?”

“칸에게 나에 대해 들은 이야기가 있니?”

“수호산맥에서 같이 활동하셨다고, 유명한 길잡이셨다고 들었어요. 죽음의 인도자라고 불리셨다고…”

“이…새… 하… 그래. 원래 길잡이였지, 길잡이를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니?”

“음… 길을 찾는 거요?”

“물론 엄청 중요한 능력이지.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가를 보는 거란다.”

“아! 그럼 시험이?”

“아니 그건 아니지. 시험은 간단하다. 수도까지 가면서 우리는 관도로 가지 않을 것이다. 관도로 가지 않고 가는 길로 가는데 포기하지 않으면 된다. 쉽지?”

괴랄한 목표였다. 관도로 가도 걸어서는 일주일이 넘게 걸리는 거린데, 관도로 안가면 이주가 넘게 걸릴 그 거리를 간다는 것이다.

“먹을 건요?”

“뭐… 육포도 있고 가면서 내가 사냥할 것이니 그건 걱정하지 말렴. 어때?”

“좋아요. 할게요!”

그렇게 고행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왜 프란체스코 님의 이명이 죽음의 인도자인지도 새삼 알게 되었다.

1일 차

의외로 할 만했다. 종종 쉬면서 끊임없이 걷는 것도 수련이라고 생각하면 할 만했다. 노숙은 익숙했기에 괜찮으리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운치가 있어서 더 좋았다.

누가 쫓아오지도, 누군가를 쫓아가지도 않는 상황에서의 노숙은 운치도 있고 숲속에서 먹는 고기는 색다른 맛이었다.

3일 차

점점 이상한 길로 간다. 프란체스코 님에게 물어보니 최단기간으로 가는 방향이라고 말씀하셨다. 남자는 직진이라면서… 걷다가 웅덩이에 잘못 빠져 구르자

“앞을 잘 보면서 걸어야지! 어서 일어나!”

라고만 말씀하셨다. 길잡이 교육을 받는 것도 아니고 이건 뭐… 그래도 나름 버틸 만했다. 조금 익숙해질 것 같았다.

5일 차

5일 만에 씻었다. 계곡이 있어서 씻을 수 있었다. 씻은 내가 거지 같아 보이는 게 더 슬펐다. 지도를 보는 법을 가르쳐 주시고 별을 보며 내 위치를 잡는 법을 알려주셨다.

정말… 무식하게 직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6일 차

밥이… 고기가… 뭐든 먹고 싶다. 첫날의 바비큐를 제외하고는 고기는 입도 못 대었다. 이상한 뿌리만 먹고 걷는다. 힘이 점점 빠진다. 내 선택이 후회되려고 하는 것 같다. 괜한 오기를 부린 것만 같았다.

8일 차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동물들이 지나다니는 길, 사람이 지나다녔던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말을 하자

“난 가르치는 데도 천재였던가?!”

이러시기만 했다. 정말 믿어도 되는 사람인가…

9일 차

이제는 조금 익숙해졌다. 걷다 보면 눈에 보이는 먹을 수 있는 열매를 따 먹는 재미가 있다. 다만… 상거지 꼴인 게 마음에 걸린다. 전장보다는 나았지만.

이것저것 가르치는 게 재미가 들리셨는지 내 흔적을 지우는 것도 배우기 시작했다. 배우는 건 정말 많은 것 같다… 그래도 밥이 먹고 싶고 씻고 싶다.

11일 차

계속 혼나고만 있다. 장님이 아니면 다 알 수 있을 거라면서, 내가 여기 있다고 광고하고 있는 거냐고… 나는 그냥 아카데미를 가고 싶었을 뿐인데… 아니 광고를 한다는 건 무슨 말인지. 점점 거세져 가는 수업이었다.

13일 차

가는 길에 불스 무리를 마주쳤다. 불스가 혼자서는 별 볼 일 없어 보이지만 무리로는 기사도 조심하는 무리 동물이기에 긴장했다. 그리고 그때 프란체스코 님이 정말 사제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도? 찬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을 하는 프란체스코 사제님의 몸에서 빛이 나면서 불스 무리가 눈에 띄게 안정을 찾아갔다. 그리고 우리는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갈 수 있었다.

정말 이상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조금 멋져 보였다. 아주 조금.

15일 차

지도를 보아하니 거의 다 온 것 같았다. 앞으로 3일 정도만 가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나에게 선두를 서라고 하셨다.

괴롭히고 싶으셨나… 자신이 없는데 미친 듯이 머리를 굴리고 있다. 3일… 안에 갈 수 있을까?

나한테 왜 이러나 싶다.

16일 차

나름 잘 찾아온 것 같았다. 프란체스코 님은 정말 아무것도 가르쳐주시지 않으셨다. 물어보는 것에도 간단히만 대답하셨을 뿐 고쳐주시거나 하는 것은 없었다.

눈에 짧은 길만 들어온다. 배우길 잘못 배운 것 같다. 분명 돌아가면 편할 것 같은데 나도 모르게 직진으로 가고 있다…

나도 직진 병이 옮았나…?

17일 차

마을에 들어왔다! 얼마 만에 씻고 밥을 먹는 건지, 밥이 너무 맛있었다. 마을에 들어오는 것을 안된다고 하실 줄 알았지만 잘했다고 칭찬받았다.

이제는 관도만이 남았다고 하셨다. 다 온 것이다. 여관에 들어와 누우니 뿌듯함이 올라온다. 이제는 어디에 떨어져도 살아남을 것 같다.

*

어제는 머리를 침대에 대자마자 잠이 들었다. 너무 편해서 어색한 밤을 보내고 길을 나섰다.

이제는 마지막 날임을 나도 알 수 있었다. 저 멀리 거대한 성이 보였다. 거대한 방벽으로 둘러싸인 그 성은 멀리서 보아도 압도적이었다.

점점 성과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의 수도 늘어났다. 수도의 외성의 문 앞에는 수많은 사람이 서 있었다.

하지만 중앙에는 한산했는데, 이는 귀족과 대형 상단들을 위한 문이었다. 프란체스코 님은 자연스럽게 중앙으로 향하셨다.

허름한 두 사람이 중앙으로 오자 경계하는 기색이 보이는 관병들이었다. 하지만 이내 프란체스코 님이 브로치를 보이자 자연스럽게 통과가 되었다.

‘사제님 역시 의외로 대단한 사람…’

외성을 통과하지 쭉 뻗은 길을 따라 내성의 벽이 보였다. 외성보다 높고 견고해 보이는 그 벽은 빛이 나 보였다.

“범아. 저 빛이 나는 벽이 보이니?”

진짜 빛이 나는 거였다.

“네! 저게 정말 빛이 나는 거예요?!”

“그래. 저게 수도의 명물인 빛의 방벽이다. 특수한 마법처리가 모여 빛이 난다고 하더구나. 밤에 보면 은은하게 빛이 나는 것이 장관이지.”

“우와… 엄청나네요!”

‘그러고 보면 나 수도는 처음이네.’

내성 앞에 다다르자 외성과는 다르게 기본적인 문답과 수색을 진행했다. 이것도 사제님이라 엄청 간략한 것이지만, 사제님임에도 수색을 하는 것이 역시 내성은 다르구나 싶었다.

범 또한 임시로 발급되는 통행증을 받았다. 외성과는 다르게 닫혀있던 문이 열리자 별세계가 펼쳐졌다.

외성을 지나오는 길에도, 넓은 길과 수많은 사람, 빽빽한 건물에 감탄하면서 왔는데 내성은 아예 달랐다.

‘이것이 수도구나…’

어느 한 건물도 허름해 보이는 것이 없었다. 어느 한 사람도 허름해 보이지 않았다.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범아. 움츠리지 말렴. 여기 사는 사람도 다 너와 같은 사람이란다.”

움츠렸다는 말에 스스로 놀랐다. 자신도 모르게 여기에 자신이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했다.

프란체스코의 말에 다시 허리를 곧게 펴고 앞을 바라보았다. 눈을 들어 보니 가장 높은 곳에 왕성이 보였다. 그리고 그 중간에 정원처럼 보이는 거대한 건물들이 있었다.

어느새 중앙광장에 도착한 범은 프란체스코를 따라갔다. 신전으로 향해 가는 길에는 수많은 길드와 마탑의 지부들이 보였고 그 끝에 신전이 보였다.

신전은 우선 거대했다. 왕성을 제외한다면 가장 커 보였다. 그리고 웅장했다. 무엇인가 경건하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느낌이 있었다.

프란체스코를 따라가는 길에 보이는 사제님들이 모두 프란체스코 님에게 인사를 하는 것으로 보아 프란체스코 님이 의외로 높은 사람이구나 싶었다.

그리고 어느 방 앞에 멈추어 섰다. 답지 않게 굉장히 정중한 자세로 노크를 하는 프란체스코 님이었다.

‘똑. 똑. 똑’

“들어오세요.”

굉장히 듣기 좋은 목소리가 안에서 들려왔다. 이내 문을 열고 들어가자 넓은 방에 앉아있는 사제님이 보였다.

“몬시뇰. 몰타 기사단장 프란체스코. 외유를 마치고 들어왔음을 보고 드리러 왔습니다. 이 옆에 있는 형제가 제가 말씀드렸던 형제입니다. 인사드려라.”

“안녕하세요. 몬시뇰. 범이라고 합니다.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하마터면 인사를 할 타이밍을 놓칠 뻔한 범이었다.

‘몬시뇰이라니?! 거기다 그냥 몰타 기사단의 기사도 아니고 기사단장이라니?! 이 직진만 할 줄 아는 양반이??’

자신이 그렇게 대단한 사람과 같이 온 것도, 지금 몬시뇰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도 믿어지지 않았다.

“서 프란체스코. 수고했어요. 범 형제도 만나게 되어 기쁘군요. 그래서 외유는 어떠셨나요.”

어떻게 시간이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다.

나와서야 정신이 들었다. 전생까지 포함해서도 가장 높은 지위의 사람을 보았다.

수도에 존재하는 신전. 그리고 그 신전의 장인 몬시뇰은 왕과 다르지 않은 대우를 받는다.

그런 사람과 한 방에 있었다는 것도, 그리고 내내 같이 온 사람이 몰타 기사단장이라는 것도 아직도 믿어지지 않았다.

“프란체스코 님… 몰타 기사단장이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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