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용병, 그것도 피를 보는 것이 일상생활인 전쟁 용병이 일이 없을 때? 무조건 술을 들이붓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때 온갖 소문이 귀에 들어오는데 나름 유명했던 논쟁이 있었다.
‘정신이 먼저냐 육체가 먼저냐 뭐 이런 거였는데.’
이제는 단호하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정신이 먼저라고, 당황스러운 상태에서 누군가 방에 들어오자 나도 모르게 구석을 찾아 칼을 꺼내는 자세를 취했다.
9살 꼬마가 칼을 빼려는 자세를 하고 있는 걸 보면 얼마나 어이가 없을까.
“…우리 범이가 기사가 되고 싶었나 보구나.”
안타까움이 흘러넘치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이의 시선에 부끄러움에 죽을 것만 같았다.
“어…”
“그래도, 기도실에서는 기도하는 곳이니까, 공터에서 하자. 새벽마다 나와서 그랬던 거니?”
“아…아니요 그…”
다 안다는 눈빛으로 자신을 한 번 토닥이더니 나가는 이의 뒷모습을 그저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하 씨 망했어.”
넋을 잃고 있기를 얼마 후 생각이 번뜩 들었다.
“아니지 어차피 할 일이었으니까 이 기회에…”
서둘러 자신을 불쌍하기 그지없는 눈으로 바라보던 이를 따라나섰다. 다행히 고아원을 벗어나지는 않으셨다.
“한스 선생님!!”
이제는 잊어버리고 말았다고 생각했던 기억들이지만, 자신의 생애를 수없이 반복해서 바라보다 보니 잊을 수 없게 된 이름 중 하나였다.
“우리 범이 괜찮아. 선생님이 다른 아이들에게는 말하지 않을게.”
“감…감사합니다!”
‘이게 아니라…’
“아 그게 아니라 선생님께서 마을을 돌아다니시는 걸 도와드리고 싶어요!”
순간적으로 혹한 제안에 나도 모르게 고맙다는 말을 입에 담고 말았다.
“나를? 하루아침에 우리 범이가 다른 사람이 되었네. 근데 정말 괜찮아. 선생님이 혼자 할 수 있단다.”
“선생님도 도와드리면서 체력 단련도 하고 싶어서요!”
‘하 존대라니 상상 이상으로 어색하구나.’
세 단어 이상을 말하면 욕이 튀어 나가고 존대는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던 자신의 말투가 그리웠다.
“체력 단련? 갑자기 왜 체력 단련을 하고 싶은 걸까~?”
자애롭고 따스하기 그지없는 음성에 잊은 줄 알았던 감정이 움찔움찔 거렸다.
‘생각해 보면 고아원이 내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시절이였지.’
하나같이 모든 선생님이(그래 봐야 셋이 전부지만) 따스하고 자애로운 분들이었다.
모든 사람이 그럴 거라 착각하던 자신에게 아카데미는 더욱 혹독한 곳일 수밖에 없었다.
“저… 아카데미에 가보려구요.”
존대가 어색할 따름이었지만, 그 모습을 용기내 말하는 것으로 보아주어 다행이었다.
“우리 범이가 참 어려운 결정을 했구나… 그런데 한 번 하기로 하면 끝까지 해야 하는데 괜찮겠니?”
“네. 걱정하지 마세요.”
“그럼. 선생님이 범이의 도움을 받아볼까?”
수레를 가지고 나온 한스 선생님은 자신의 옆에서 수레를 같이 끌게 해주셨다.
“우선은 마을을 처음부터 끝까지 도는 거에 집중하자.”
“네!”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고아원은 이 마을 유일의 신전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고아원과 마을 사이의 길을 잘 닦여 있는 편이었다.
“우리 고아원 아이들이 입고 먹고 마시는 모든 것들이 마을 분들의 후원과 기부로 이루어지는 건 알고 있지?”
“네.”
“그럼 후원과 기부의 차이는 뭘까?”
“음…”
‘솔직히 고맙긴 한데… 귀찮기도 하고… 아니야 다르게 살기로 했으니까.’
최대한 밝고 순수한 목소리로 대답을 건넸다.
“후원은 정기적으로 하는 거구… 기부는 때때로 받는 거인가요?”
“오? 우리 범이가 똑똑하구나. 정답이란다. 그런 분들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잘 생활할 수 있는 거지.”
한스 선생님과 함께 하는 마을 탐방은 재밌었다. 애초에 마을에 대한 기억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리고 가출 아닌 가출로 상행을 따라 아카데미로 향했기에, 정말 아는 것이 몇 없었다.
“마을이 생각 이상으로 크네요?”
“그렇지? 그래서 아침 일찍부터 나와야 한 바퀴를 다 돌 수 있단다.”
마을이라고 칭하기에는 꽤나 크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랐다.
‘거의 타운(Town)? 정도는 되는 것 같은데. 우리 마을이 이렇게 컸었나?’
“그리고 우리가 항상 마지막으로 가야 할 집이 저곳이란다.”
한스 선생님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마을에서 가장 큰 저택이 눈에 들어왔다.
“저런 저택이…”
‘저 정도 크기의 저택이 우리 마을에도 존재했었다고? 왜 전혀 몰랐지?’
“엄청 크지? 우리 마을에서 가장 큰 자택이란다. 우리 범이 수호 용병이라고 들어봤지?”
‘수호 용병… 수호 용병?! 그러한 존재가 우리 마을에 있었다고?!’
용병 세계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었고,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고하(高下)가 있었다.
그 세계에 가장 위에 존재하는 고고한 존재가 바로 수호 용병이었다. 귀족들마저 함부로 할 수 없는 그런 이들.
“그래. 용병업에서 은퇴하시고 이곳에 와서 지내고 계신단다. 우리 고아원의 가장 큰 후원자이시기도 하시지… 칸 님!”
40대? 50대? 나이를 특정하기 쉽지 않은 외모의 사내가 문 앞에 나와 있었다.
“항상 이렇게 이른 시간에 나오시고,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됐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선행이니. 괘념치 말게나 근데…?”
칸이라 불린 그 사내의 눈이 자신을 향하는 것이 느껴졌다.
“아! 범아. 인사드리거라. 이분이 칸 님이시다. 우리가 우유를 매번 마실 수 있게 해주시는 감사한 분이지.”
검은색의 머리와 하얀색의 머리가 정말 묘하게 어우러져 잿빛의 짧은 머리를 가진 사내.
전생의 자신보다 족히 머리 하나는 더 커 보이고 몸은 나이를 알 수 없을 만큼 탄탄해 보였다.
“안녕하세요! 범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공손하고 착하게, 순수하게, 잘하고 있어!’
“흐음? 그래. 반갑구나. 그나저나 어쩐 일로 이렇게 함께 왔는가?”
“아! 이 아이가 아카데미를 가고 싶어 하는데 그전에 체력을 단련하겠다고 부탁해, 같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호오? 아카데미를? 하긴 아카데미는 누구에게나 열려있으니…”
자신을 바라보는 눈길에 기특함, 호기심, 흥미의 감정이 떠오르는 것이 보였다.
‘이상한 놈을 보는 호기심이 아니라 긍정적인 호기심은 또 처음 받아보네.’
“재능에 대한 확신이 어느 정도 있다는 뜻일 터… 중위 재능이려나? 고아원에 인재가 나왔나 보군.”
“사실 범이는 기본 재능입니다. 그래서 걱정이 되긴 하지만…”
“기본 재능? 하위 재능도 아니고 기본 재능? 아이야. 아직 네가 몰라서 그럴 수 있지만. 기본 재능을 가지고 아카데미를 가는 건…”
무언가 순화한 표현을 찾으려고 이리저리 고민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생각보다 나쁜 사람은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좁은 길, 그 이상의 좁은 길이고 가시밭길 그 이상의 가시밭길 일터인데… 포기하는 것이 나을 수 있음이라.”
“감사합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을 셈입…이에요. 그래서 한스 선생님을 따라 나왔구요! 재능이 다가 아니니까요!”
‘말투 진짜 어렵네 그리고 뭐 재능이 다이긴 하지…’
순진무구한 아이의 역할이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최대한 또랑또랑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는데,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기세가 자신을 옥죄어 왔다.
“칸 님…? 아직 어린아이에 불과하니 부디…”
‘오? 한스 선생님도 뭔가 있나 보네. 나한테만 집중된 기세 같은데 그나저나 엄청나네.’
익스퍼트에 이르기 시작하면 특유의 기세가 점점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어떤 이는 날카롭고, 어떤 이는 거친.
지금 나에게 향하는 기세는 진중하고 무거웠다. 마치 태산이 자신을 누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후 돌아오자마자라 그런가 힘드네…’
“괜…괜찮…아요! 한…스 선…생님. 칸 님. 저는…포기…하지 않…아요.”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아무런 훈련도 하지 않은 아이의 몸으로는 그저 쓰러지지 않고 오줌을 지리지 않는 것만이 최선이었다.
“호? 꽤나 대가 있는 꼬맹이였구만. 흠 그럼, 나랑 내기 하나 해 보지 않으련?”
나름의 시험을 통과했는지 짓누르던 기세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와 이렇게 깔끔하면 적어도… ‘
“후우…후우…네! 좋아요!”
“흠 그럼 앞으로 한 달 동안 네가 수레를 끌고 다니면 앞으로 우유뿐만 아니라 고기도 후원해 주마.”
‘헐 이런 횡재가!!’
“하지만, 만일 하루라도 네가 나오지 않으면 아카데미에 가는 것을 포기하도록 하거라.”
‘진짜 괜찮은 양반이네. 내가 어려서 그런 건가? 그래도 이렇게 처지는 거래를 할 수는 없지.’
“칸 님! 석 달 동안 매일 나올게요! 대신, 제가 가고 나서도 고기를 후원해 주시면 안 될까요…?”
‘순진무구한 눈망울 진짜 겁나 어렵네.’
그래도 순진무구한 눈망울이 어느 정도 먹힌 건지 피식 실소를 짓는 칸 님이었다.
“그래! 좋다. 하지만 명심하거라, 단 한 번이라도 빠지면 안 된다.”
“넵!”
용무가 끝나자 저택의 내부로 사라지는 칸 님이었다. 칸 님의 모습이 사라지자 이내 수레를 잡고 출발하기 시작했다.
‘생각 이상으로 꽤 무겁네?’
“우리 범이 대단한데? 다시 봤어.”
“선생님도 대단하시던데요?!”
“이놈이? 그래도 수습 사제인데 이 정도는 해야지. 그나저나 고생 많았다.”
‘수습 사제였구나! 하긴 고아원이 일단 신전이긴 하니까 당연한 건가. 그래도 사제님이라니.’
새로운 사실들을 많이 깨닫게 된다. 용병 시절에는 감히 바라보지도 못한 사제님을 동네 형처럼 대하고 있었다.
‘수습이라는 말이 붙어도 사제님은 사제님이라는 거니까… 내가 생각 이상으로 멍청했네!’
“그래도 칸 님같은 분이 없단다. 조금…조금… 괴팍하실 뿐이지,”
“네?”
‘뭔가 당한 게 있나 보네… 한스 선생님도’
“아… 아니다. 우리 범이 고생했으니까. 수레에 올라타거라. 오늘은 선생님이 끌어주마.”
“하지만…”
“괜찮다. 내일부터는 범이가 끌게 할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감사해요. 사실 다리가 좀 후들거리기는 했어요.”
머리를 헝클어트리는 한스 선생님의 손길에는 온정이 깃들어 있었다.
‘세상이 고아원 같지 않네… 진짜 우리 고아원이 좋은 곳이긴 했구나’
전생(前生)에서는 고아원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터라, 이런 온정들이 귀찮을 뿐이었고 참견이라고 생각했다.
‘마을에서 고아새끼라는 말을 듣고 난 후였지 참…’
선선하게 부는 바람을 수레에 앉아서 느끼며 가는 길은 마음이 편해지는 그런 느낌이었다.
‘이번에는 다르게 살아야지. 아이 처럼이 어렵긴 하지만…’
*
고아원의 일과는 의외로 체계적이다. 오히려 대개의 일반 가정보다 배우는 지식이 많다.
고아원장님이 애초에 신전의 사제님이기도 하지만, 선생님들 또한 수습 사제님들(오늘 아침에 알았지만)이기에 기본적인 배움의 수준이 다르다.
비록 그 가르침이 경전과 신전의 역사에 치우쳐 있다 하더라도, 아침에 수업을 매번 받는 것만으로도 큰 특혜이긴 했다.
점심시간을 보내고 신전을 청소하고 나서는 자유시간이 주어진다. 저녁에 돌아오기만 하면 무엇을 해도 상관이 없었다.
고아원과 조금 떨어진 곳에 나만의 비밀 공간이 존재했다. 그때는 진짜 아무도 모를 거라고 생각한 두근대며 설레기도 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저 숲속에 있는 공터일 뿐이었다.
‘진짜 오랜만이네.’
사람들이 거의 오지 않는 조용한 공터를 차근차근 눈에 담으니, 옛 생각이 절로 났다.
“후우… 시작해야지.”
인간이 마나를 다루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배워야 하는 것이 있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마나를 인간이 다루기 위해 마나를 가공하는 연공법. 그것을 서킷이라 불렀다.
기사는 오러 서킷이라 부르고 마법사는 마나 서킷이라 부르는 그 것.
대륙에는 수많은 종류의 서킷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 서킷에도 고하가 분명하게 존재했다.
그럼에도 서대륙의 어느 아카데미를 가더라도 처음에 가르치는 것이 있다. 기사나 마법사 어느 길로 가도 가르치는 것.
“프렌들리 서킷, 이것도 진짜 오랜만에 하네.”
마나를 몸에 쌓는 양으로 치면 최악의 서킷. 하지만, 마나를 처음 느끼고 친숙해지는 데에는 최고의 서킷이었다.
귀족들마저 자신들의 자녀의 입문 서킷으로 프렌들리 서킷을 사용한다.
“창시자가 이 서킷을 아무런 대가 없이 풀었다는 건 진짜… 이해가 안 가지만.”
공터에 앉아 천천히 프렌들리 서킷을 시작했다. 전생(前生)과는 다르게 바로 주변의 마나가 느껴진다.
‘이렇게 바로? 이미 알고 있어서 그런 건가? 아니면 갔던 길이라서 그런가.’
범이도 모르고 있는 사실이지만, 다시 인생을 시작하면서 몸이 마나에 민감하게 변화했다.
무의식이 마나의 존재를 알고 마나를 사용하던 기억이 있는데, 육체는 그를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는 괴리감.
그 괴리감을 채우기 위해서 끊임없이 감각이 변화하기 시작했고 거기에 칸의 기세를 몸이 받아들이면서 감각이 완전히 깨어난 것이었다.
‘전설에서 나오는 천재들보다 빠른데? 뭐 그래 봐야 기본 재능이니까 비교할 수는 없겠지.’
마나를 느끼고 몸으로 받아들인다. 마나가 몸에 들어왔다 나감을 반복하자 감각들이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상쾌한 숲의 내음이 짙게 느껴지고, 피부를 타고 지나가는 바람의 흐름이 세세하게 느껴진다.
‘하 역시 좋다.’
전생 최대의 운이라면, 입학한 아카데미에 프렌들리 서킷의 원본이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게 운이 좋은건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기본 재능이라며 혼자 알아서 익히라고 던져준 책. 원본이라며 책 한 장이 자신보다 귀하라 말하는 기억이 떠올랐다.
‘나중에 가서야 약식이 있다는 것을 알긴 했지만, 바꿀 생각은 없지.’
새로운 감각을 마음껏 느끼면서 프렌들리 서킷에 집중하고 있기를 얼마, 새로 깨어난 감각에 기척이 잡혔다.
‘역시 생각보다 빠른데? 하루도 안 돼서…’
기척이 점점 가까워져 오더니 이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너! 누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