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본 재능으로 정점-1화 (1/217)

[1화]

혈인(血人). 지금 그를 보면 딱 떠오르는 말이 그러했다.

본래는 검은색 머리에 남자답게 생긴 얼굴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얼굴에 나 있는 수많은, 오래되고 새로운 상처들은 그의 얼굴을 꿈에 나올까 무섭게 만들었다.

검은색의 머리는 피에 물들어 불길한 검붉은 색으로 변했고 그 끝에서는 피가 방울져 떨어지고 있었다.

전장의 한가운데 존재하는 이.

여러 사람에게 갇혀 있는 이가 눈에 바로 들어온다.

*

세상은 불합리하다. 알고 있다. 원래 그렇다는 건.

그놈의 재능이 문제였다. 기본 재능. 이 세상에서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각종 재능의 밑바닥에 있는 재능.

살아가는 사람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재능이 존재한다지만, 그 재능의 고하(高下)는 존재했다.

그래도 할 수 있다고 아카데미를 향했지만, 결국 쫓겨났다. 그래서 선택한 곳은 전장이었다, 아니 전장밖에는 남은 곳이 없었다.

영지의 말단 병사보다 못한 소모품으로 끊임없이 전쟁에 나섰다. 전쟁이 있는 곳은 어디든 가리지 않았다.

눈앞의 사람을 베고 또 베고 또 베어냈다. 그렇게 악착같이 살아남았다. 동료가 죽어갈 때도 어떻게든 살아남아 돌아왔다.

조금 지나자 병사뿐만 아니라 기사가 달려오면 베어냈다. 모두가 나를 무시하지 못하게 할 날이 곧 오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왜!! 지금!!!”

“개 주제에 너무 눈에 띄면 안 된다는 걸 몰랐나 보지?”

“그래서 위.대.하.신. 초인께서 직접 왕림하셨다?”

“영광으로 여기도록. 너 같은 놈은 꿈도 꾸지 못할 경지에 이른 내가 상대해 주는 것이니.”

주변을 둘러보아도 빠져나갈 길이 없었다. 나 하나 잡자고 기사단들이 나서서 포위했다는 것에 어이가 없을 따름이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뭐 기본 재능 따위가 설치고 다니면 사기에 별로 도움이 안 되니까. 겸사겸사 나도 네가 그리 마음에 들지도 않고.”

“도망친 놈 주제에 초인에 올랐다고…”

억울하고 억울했다. 피에 미쳤다고 할 때도, 동료를 잡아먹고 살아온다고 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미친 듯이 전쟁을 전전했다.

정복 전쟁의 초기에 마주쳤던 상대. 분명 벨 수 있었지만 결국에 베지 못한 상대가 초인이 되어 눈앞에 있었다.

“빌어먹을…”

“애초에 사람 죽이는 것 말고 신경 안 쓰는 너 따위가 오래 살 가치가 없는 거지.”

‘하 씨발….’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누구도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았다. 동정 혹은 멸시. 그것이 자신이 받은 시선의 전부였다.

“그래도 기뻐하라고! 오러 블레이드를 받은 기본 재능이라니. 역사에도 이런 일은 없었을 거야.”

‘죽자… 그래도… 어떻…게든…‘

칼을 집어 들고 나섰다. 저 빌어먹을 면상에 칼자국을 내는 것만 생각하기로 했다.

“친히 내가 맞상대해 주도록 하지. 죽기 전에 보고 배우라고. 왜 기본 재능은 안 되는지.”

개소리를 귓등으로 흘리며 재능을 일깨웠다. 손에 잡은 칼에 마나와 함께 재능이 깃드는 것이 느껴진다.

‘조금만 더 빨리 알았어도…’

상념을 털어내고 곧장 상대에게 달려들었다. 베어내는 것. 상대를 죽이고자 베어내는 것이 자신의 모든 것이었다.

“흠 역시. 비천한 신분답게 비천한 움직임이야.”

다리를 노리고 휘두른 칼을 막으며 느긋하게 말을 하는 상대가 너무 미웠다.

“재능이란 절대적이지.”

듣기 싫은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보다 자신이 그 소리를 많이 들었을 것이다.

‘칼침을 놓으려면, 이 순간뿐이야. 방심하고 있는 그 순간에. 단 한 번.’

어쩌면 오지 않을 그 기회를 위해 인내하고 인내한다. 사람을 베는 것, 그거 하나는 누구보다 잘할 수 있으니까.

“사실. 대단하다고 생각해. 기본 재능 주제에 살아남았다는 게, 하지만 결국 기본 재능은 그게 한계인 거지. 선택받지 못한 거야 넌.”

자신도 모르게 그 재수 없는 소리에 모든 힘을 쏟을 뻔한 순간을 다스리고 참았다.

“오러에는 속성이 없지. 하지만 나같이 선택받은 이들은 오러 자체에 속성이 함께한다. 이것이 바로 선택받은 자의 검이다!”

경박하게 불이 붙어있는 듯한 상대의 검에 불길이 점점 잦아든다. 역설적으로 잦아드는 불길에서 더 강한 열기가 느껴진다.

‘저걸… 아니야 해야 해. 어떻게든.’

이제는 살아남는 것보다 칼침을 놓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아니 그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푸른끼가 아주 살짝 도는 빨간 불꽃이 넘실거리는 검. 상대는 자신의 검기에 도취된 듯 보였다.

‘지금이다!’

자신이 개화시킨 재능의 모든 힘을 쥐어짜 담는다. 몸에 있는 마나가 물밀듯이 칼에 주입된다.

검기가 이미 맺힌 칼. 거기에 재능이 더해지자 검기가 한결 더 날카로워진다.

“뒈져라!”

아래에서 위로 베는 실로 기본적인 움직임. 하지만 그 베임에 내 재능 [절(切)]이 담긴다.

“이…”

당황하면서 자신의 검을 들어서 막는다. 비웃음이 담긴 표정으로

내 모든 것이 담긴 베기에 잘난 척을 하던 초인의 불꽃이 조금이지만 베인다.

“이…이게… 뭐…!”

순간 말을 잇지 못하는 녀석의 면상에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그 잘난 불꽃이 사그라든 것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나타난다.

‘사실 나도 예상치 못한 거지만. 내 재능…’

더 이상 생각을 이어갈 수 없었다. 순식간에 기세가, 분위기가 변한다.

“죽인다… 죽인다… 이 비천한 버러지 따위가!”

느긋하고 여유로웠던 표정이, 말투가 금세 뒤바뀐다. 악귀 같은 얼굴로 온 힘을 다해 검을 내지른다.

*

“지금 내가 보는 것이 확실한 것인가.”

기사들이 포진하고 있는 모든 위치가 훤히 보이는 둔덕. 그곳에 호위를 대동하고 나선 중년인은, 넋이 빠진 채 중얼거렸다.

“예 각하.”

“허 허 허… 지금 재능이 담긴 초인의 오러를 베었단 말이지.”

자신이 보기에 귀하고 귀한 인재였다. 초인이라 불리는 이와 검을 맞대고도 여전히 형형히 날 선 칼만 보아도 알 수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각하. 살귀(殺鬼)를 좋아하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흠 살귀라… 제대로 조사한 적이 있나?”

“예. 15살의 나이에 전쟁 용병이 되어 지금까지 100회 이상의 전투를 경험했습니다. 그때마다 그와 같이 간 용병은 죽어도 그만은 살아 돌아왔습니다.”

“엄청난 것 아닌가?”

“하지만, 계속 홀로 살아 돌아온 점. 그리고 전투에 들어가면 오로지 상대는 베는 것에 미치는 점. 또한 평판이 좋았던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렇다 한들 살귀라고까지 부르지 않지 않는가?”

“그게, 브론즈 용병 시절에 동료를 베고 살아 돌아온 적이 있다고 합니다. 다만, 그 이유가 합당하다지만…”

“동료를 베는 이에게 등 뒤를 맡길 이는 없겠지. 평소에도 평이 좋지 않았을 테고 그를 두둔해 주는 이도 없었겠지, 그 후에는 안 봐도 뻔하군.”

중년 사내는 마치 보지 않았음에도 모든 것을 안다는 듯 말했다. 그럼에도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시선.

“쯧 아쉬울 따름이다. 멍청한. 조금만 주변을 바라보는 여유만 있었더라면… 아니 그랬다면 더 위험할 뻔했군. 사냥개로 쓰기에도.”

“각하.”

부하의 말에 지니고 있었던 일말의 망설임마저 털어낸 중년 사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뭐 이미 결정된 것 같긴 하지만. 확실히 하도록. 살귀는 여기서 끝을 내지.”

“예! 각하!”

여전히 미련이 남은 듯 전방을 주시하던 중년 사내는 곧장 뒤를 돌아 둔덕을 내려갔다.

중년 사내가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허리가 펴지는 호위. 그도 알 수 없는 손짓을 하더니 이내 자리를 떠났다.

*

“죽어! 죽으라고!”

‘하 저런 병신도 재능을 타고나는데.’

병신처럼 앞만 보고 달리는 상대는 죽이기 가장 쉬운 상대 중 하나였다. 틈이 점점 보이기 시작했다.

‘잘하면…’

살아 돌아갈 희망이 조금 보였다. 아무리 나를 죽이고 싶어 해도, 귀족에 상위 재능을 지닌 이랑 한낱 용병의 가치는 비교 불가.

‘저 병신을 잘 요리하면…’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간다. 뿔난 황소처럼 전진하는 상대는 함정을 파서 잡으면 될 뿐이었다.

슬금슬금 자리를 이동하며 한순간, 단 한 번의 틈을 노린다. 순간, 움직이는 자신의 다리를 부여잡는,  흙으로 만들어진 손이 눈에 들어왔다.

“이 씨발!!!”

한 서린 외침을 뱉고 난 후에 세상이 어두워졌다.

*

“하 진짜 병신같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새하얀 공간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생애를 돌려 보았다.

[이제 만족하십니까?]

“아 네… 감사합니다.”

‘너무 인생을 보는데 집중했네.’

[괜찮습니다. 그럼 선택하시겠습니까.]

‘아 맞네…’

생각을 읽는다는 것을 그새 까먹었다. 표층 심리를 읽는다나 뭐라나 너무 어려운 말이었다.

“관리자 님? 혹시 그 전에 질문을 해도 괜찮을까요?”

최대한 조심스럽고 공손하게

[제 첫 회귀자이니 그 정도 재량은 들어드리죠.]

첫 회귀자라는 의미가 궁금해졌지만 이내 그 궁금함을 내리눌렀다.

“기본재능이 정말 쓰레기인가요.”

[절대. 그분께서 주신 재능은 결코 쓰레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럼 왜… 기본, 하위, 중위, 상위, 최상위로 나뉘는 건가요… 왜!”

말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격해진 감정이 올라온다. 하지만 여전히 노이즈로 보이는 관리자의 차분한 목소리가 감정을 가라앉힌다.

[그 구분은 오히려 인간을 위한 그분의 배려입니다. 인간의 욕심에 어리석음에 변질하여버린 것일 뿐입니다.]

“후우 재능 간에 차이가 왜 나는 거죠.”

[차이는 없습니다. 어디에서 시작하는가에 따른 차이일 뿐, 인간이 나눈 구분입니다. 보이는 것에 매몰되고만 어리석음입니다.]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 소리다. 차이가 없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럼에도 위로가 되는 소리이기도 했다.

“기본 재능으로…”

[그것은 범 님에게 달려있습니다. 여기까지입니다.]

말을 마치기도 전에 관리자님의 대답이 들려왔다.

‘그래도 가능성이 있다는 거니까. 그거면 됐어.’

[그렇습니다. 그런 사고방식. 바람직합니다.]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얼마나 볼지는 선택이니까요. 그럼 선택하시겠습니까.]

“989년 11월 1일로 할게요.”

[신력 989년 11월 1일. 9살. 다시 시작하는 인생에 그분의 축복을…]

관리자님의 음성이 희미해지기 시작하면서 시야도 점점 어두워져만 갔다.

*

눈이 떠졌다.

“설마 진짜로….”

목이 메고 눈물이 흐른다. 방 안의 퀴퀴한 냄새가 너무나 향기롭게 맡아진다.

“정…말…로…”

소리 없이 흐르는 눈물은 지금, 이 순간의 감격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몸을 일으켜 방을 나섰다.

“후우… 후우…”

감정을 누르고 눈물을 훔친다. 20년도 지난 곳이지만 여전히 눈을 감고도 알 수 있는 고아원.

홀로 기도하는 기도실이 눈에 들어온다. 문을 굳게 닫고 무릎을 꿇는다.

“으아아아아아!!!!”

기쁨에 가득한, 감격이 가득한 함성이 터져 나온다.

“진짜!! 잘 살게요!! 잘할게요!!!”

멈췄던 눈물이 터져 나오고 눌렀던 감정이 폭발한다. 상상하고 생각하던 것 이상으로 기쁘고 즐거웠다.

“으아아아아!! 좋아!!! 아자!!!”

미친놈처럼 보이는 행동을 여과 없이 풀어내자 그제야 진정이 된다.

“할 수 있어. 수도 없이 생각하고 상상해 왔어.”

이상한 공간에 초대되어 관리자를 만났고 신이 허락한 기회를 받았다.

“이번에는 제대로 살아보자.”

인간답게 살고 누구에게도 무시받지 않게 살 기회가 주어졌다.

“정점. 갈 수 있는 한 멈추지 않고….”

정점이란 말을 내뱉자 뱃속이 뜨거워진다. 열기가 배를 타고 전신을 휘감는다.

“우선 이 세계의 정점(頂點)부터…”

고요한 방에 흐르는 적막한 온기가 자신을 축복해 주는 느낌이었다.

“일단 첫 단추부터 다시 제대로 채워야지…”

어쩌면 가장 후회했던 순간. 평생을 잊고 살았다지만 잊히지 않고 언제나 마음 한구석에 박혀있던 잘못된 선택이 있었다.

“다시 시작할 수 있어. 어린아이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했지?”

관리자님이 해 주셨던 말이 뇌리에 박히고 떠나지 않았다.

“인간으로 살아보자. 그것도 모든 이들이 우러르는 인간. 정점에 위치한 사람으로…”

‘똑똑똑’

포부를 가다듬으면서 계획을 하고 있을 무렵 들려오는 소리.

“어? 어?!”

순간 당황스러움에 머리도 몸도 반응하지 못했다.

“어? 우리 범이가 무슨 일로 이 시간에 이렇게 기도실에 있을까?”

‘하 망했다.’

정점의 시작은… 흑역사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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