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 열렸다.
184.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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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힘을 탐하는 욕망 덩어리가 된 그들에게 함정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지구에 있는 침략자, 그들 중 특별한 이유가 있는 소수를 제외하고는 전부 은순이가 만들어낸 차원으로 들어갔다.
그 수가 신과 초월자를 합치면 백에 가까웠다.
백에 가까운 신과 초월자.
심지어는 같은 목표를 가진 적.
이런 이들이 한 차원에 모이면 어떻게 되겠는가?
당연하다,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싸울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됐다.
화르륵-!
세상을 전부 태워버릴 거 같은 기세로 타오르는 강력한 화염.
쩌저적-!
모든 것을 얼려버릴 것 같은 매서운 눈보라.
후우욱-!
모든 것을 휩쓸어 버릴 거 같은 강력한 폭풍.
콰지직-! 쿠구궁-!
갈라지며 솟구치는 땅까지.
그들의 전투는 인류 최후의 종말, 신들의 전쟁을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전쟁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자신의 주제도 부린 욕심을 부린 어리석은 존재들아. 』
마치 태양이라도 된 듯, 화염으로 온몸이 일렁거리는 불타르가 하늘에서 지상을 내려다봤다.
『그 대가는 죽음이다. 』
불타르의 말대로 지상에 남은 존재 중, 살아남은 이들은 극히 소수였다.
살아있다고 한들 정상이 아니었다.
화르륵-!
불타르의 화염은 굶주린 맹수처럼 살아있는 존재를 집어삼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대가에서 네놈도 벗어날 수 없다. 데아이스. 』
불타르의 시선은 정면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한쪽 팔이 잘린 채, 전신에 큰 화상을 입은 데이아스가 있었다.
『네놈, 처음부터 힘을 숨겼구나······.』
데이아스는 고통에 신음하며 불타르를 노려봤다.
분명 한 끗 차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랬다.
태초의 차원, 시온에서 많은 다툼이 있었기에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뚜껑이 열리고, 신들과 초월자들의 전쟁이 시작되자 판은 완전히 달라졌다.
불타르는 강함은 그의 예상을 한참 벗어나, 혼자서 전장을 지배했다.
『힘을 숨겼으면 어떻게, 그게 아니면 어떻지? 어차피 승부는 내 승리로 끝이 난 것을. 』
『 ······. 』
데이아스는 주먹을 꽉 쥔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불타르의 말대로 이미 승부는 끝이 났다, 그의 승리로.
『옛정을 생각해서 단번에 끝내주지.』
화르륵-!
불타르의 손에 불로 이루어진 창이 생겨났다.
주변의 공기가 타오를 정도로 강력한 위력을 담고 있었다.
그는 역수로 창을 쥐면서 데이아스를 노렸다.
‘끝이구나.’
그 모습에 데이아스는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다.
지금 상황에서 불타르의 공격을 막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태초신의 파편, 정확히는 빈 껍데기인 미끼를 노리고 일어난 전쟁은 불타르의 승리로 끝이 나는 듯했다.
하지만 새로운 존재의 등장으로 상황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투드득-!
불타르의 데이아스, 이제는 둘밖에 남지 않은 거대한 전장에서 뭔가 뜯어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크으윽!』
이어서 고통에 신음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의 주인공은 조금 전까지 전장을 지배했던 불타르였다.
그는 멀쩡했던 조금 전과 달리 뜯진 팔을 부여잡고 자신을 공격한 존재를 노려봤다.
『네놈······.』
흔들리는 그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집채만 한 크기의 백호가 있었다.
『······.』
백호를 보는 데이아스 역시 시선이 흔들렸다.
『크르르, 오랜만이구나 핏덩이들. 』
백호는 둘과 이미 구면인 듯, 불타르의 피가 뚝뚝 떨어지는 아가리로 미소를 지었다.
불타르와 데이아스는 태초의 차원, 원시의 신이다.
그런 그들에게 핏덩이? 이건 오만한 걸 떠나서 미쳤다고 할 수 있었다.
『······.』
하지만 백호의 말에 당사자인 둘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게 백호는 충분히 둘에게 그럴 말을 뱉을 자격이 있었다.
최초의 차원, 시온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생물은 신이 아니었다.
태초의 짐승.
대표적인 예가 강하온이 쓰러트린 베히모스다.
『라온, 살아있었구나 ······.』
그리고 거대한 백호, 라온 역시 태초의 짐승 중 하나였다.
게다가 라온은 더 특별했다.
『네놈들이 그분을 공격했을 때 말하지 않았느냐, 전부 찢어 죽여주겠다고.』
그는 태초의 짐승 중에서도 가장 먼저 태어났으면, 태초신이 봉인되기 직전까지 그의 옆을 지켰던 존재였다.
『그 방법으로 선택한 것이 타락의 길인가? 』
『네놈들에게 복수만 할 수 있다면 타락이 뭔 대수겠냐? 』
태초의 짐승이자, 태초신의 곁을 지키던 누구보다 지고한 존재였던 신수 라온.
하지만 이제는 신수가 아닌 타락한 흉수가 되어 있었다.
『그때의 약속을 곧 지켜줄 테니 기대해라. 』
『 ······. 』
라온의 증오 섞인 말에 불타르와 데이아스, 둘은 굳은 얼굴로 대비해야 했다.
아주 오랜 세월, 자신을 타락시키면서 준비했던 라온의 복수가 시
콰앙-!
라온이 움직였다.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세상이 흔들릴 정도로 굉음이 터져나왔다.
지금까지 쌓였던 라온의 분노를 대변하는 듯했다.
라온은 타고난 사냥꾼이었다.
이성을 잃은 것처럼 분노했지만, 그의 머리는 차가웠다.
그 증거로 그가 먼저 노린 적은 데이아스였다.
최대한 빨리 1:1 상황을 만드는 것이 둘을 사냥하는 가장 쉬우면서도 완벽한 방법이었다.
게다가 지금 데이아스의 상태로는 라온의 공격을 막는 것이 불가능했다.
『죽어라. 』
어느새 데이아스의 앞으로 도착한 라온은 그대로 무시무시한 앞발을 휘둘렀다.
‘빌어먹을 부상만 없었어도.’
데이아스는 라온의 공격을 그대로 지켜봐야 했다.
심한 부상 때문에 막을 처지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죽음을 받아들이려는 그때, 그의 앞을 막아서는 것이 있었다.
화르륵-!
화염의 창, 조금 전 자신을 공격하려 했던 불타르의 창이었다.
데이아스는 놀란 얼굴로 불타르를 봤다.
그의 도움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능한 놈 같으니라고, 당장 정신 차리고 회복부터 해라! 저 헛된 망령한테 이대로 죽을 수는 없으니까. 』
불타르는 그런 데이아스의 태도에 이를 악물고 말했다.
그는 이대로 쉽게 죽어줄 생각은 없었다.
죽을 때 죽더라도 라온에게 큰 상처를 입힐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마음에 들지 않아도 데이아스와 손을 잡아야 했다.
혼자서라면 불가능하지만, 데이아스와 손을 잡는다면 라온에게 상처 정도는 남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도망갈 수도 있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데이아스가 공격당하는 순간에 도망갈 수 있었다.
하지만 어차피 라온이 살아있다는 것을 안 순간 소용없었다.
태초신을 누구보다 사랑했던 라온에게 자신들의 철천지원수일 테니까, 아마 지옥 끝까지 따라올 게 분명했다.
그런 원수한테 힘을 넘기고 도망간다? 그냥 조금이라도 늦게 죽겠다는 선택이었다.
『빌어먹을······. 이번 만은 네놈의 뜻대로 해주지. 』
데이아스 역시 불타르와 같은 생각을 했다.
그렇게 뜻하지 않게 불타르와 데이아스는 힘을 합쳐서 라온을 상대하기 시작했지만, 전투는 일방적이었다.
당연했다.
둘이 온전한 상태였다고 하더라고 힘든 상황인데, 둘은 이미 다친 상태.
사실 이기는 것은 힘들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전투는 길어지기 시작했다.
『네놈도 정상이 아니었군. 』
불타르는 라온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파악했다.
그의 예상은 정확했다.
『하긴 그때 그 상처를 입고 살아있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
과거 전투에서 큰 상처를 입은 라온의 육체는 죽어가고 있었다.
그가 오랜 세월에 걸쳐, 레아의 육체를 빼앗으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그렇다고 달라지는 것이 있는가? 네놈들이 내게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여전히 어리석군. 』
조용히 입을 닫고 있던 라온이 말했다.
그의 말에 둘의 표정은 싸늘하게 굳었다.
라온의 말이 틀린 것이 없었기 때문.
그렇게 다시 전투는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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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에 있는 사람이 아무도 살지 않는 무인도.
길가메시는 그곳에서 은순이가 만든 포탈을 주시했다.
그는 포탈이 생겨난 이후, 단 한 번도 눈을 떼지 않았다.
“그렇게 보고 있으면 뭐가 보이나?”
그런 길가메시의 옆으로 다크 엘프 디에고가 털썩 주저앉으면서 물었다.
그로서는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길가메시는 포탈이 생겨난 이후로 단 한 번도 포탈에서 눈을 떼지 않았기 때문이다.
“짐이라고 어찌 포탈 너머의 차원을 보겠는가? 단지 느낄 뿐이다.”
“느낀다고?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디에고는 신기한 눈으로 길가메시를 쳐다봤다.
그도 그럴 게, 포탈 너머의 곳은 직접 가보기 전까지는 알지 못하게는 그의 상식이었기 때문이다.
“으음, 그렇게 말하면 짐도 모르겠군. 그저 느껴진다, 짐이 말할 수 있는 것 그뿐이네.”
그의 말대로 그가 알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당연한 것이 인간에게 어떻게 말을 하냐? 어떻게 앞에 뭐가 있는지 볼 수 있나? 어떻게 걸을 수 있지?
이런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인간이 있을까? 없다.
당연한 인간의 본능인 것을 어떻게 말하겠는가, 길가메시의 감각도 그러한 종류의 하나였다.
그가 영웅왕이라 불리기 이전, 아니 태어나면서 가지고 있던 그만의 힘이었기 때문이다.
“이해가 안 되네.”
“굳이 짐을 이해할 필요는 없다, 그저 다른 것뿐이니까. 그보다 이제 일어나지.”
“응?”
길가메시는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슬슬 끝이 난 거 같으니 말이야.”
“그게 무슨 ······.”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길가메시의 말에 의문을 표하던 디에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잉-! 지잉-!
허공에 떠 있던 포탈이 터질 듯 요동쳤기 때문이다.
“안에서 승자가 가려진 듯하군, 이제 곧 틈이 생기겠군.”
길가메시가 기다리던 순간이었다.
그는 이것이 함정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저 함정이 생겨난 것은 진짜 그들이 원하는 태초신의 힘이라는 것도 파악했다.
그리고 저 함정에서 승자가 나타나는 순간, 미끼로 사용됐던 힘이 회수되면서 원주인이 있는 곳으로 돌아간다는 것도 말이다.
그가 원하는 것은 그 틈을 파악해서 원주인, 가이아가 있는 곳의 공간을 강제로 열 생각이었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군. 』
상황을 기다리는 것은 길가메시 혼자가 아니었다.
길가메시처럼 상황을 기다리던 존재가 있었다.
빛의 교단의 첫 번째 사도, 데미안이다.
“속전속결이다, 전부 준비해라.”
『최대한 빠르게 회수하고 복귀한다. 』
길가메시와 데미안, 둘은 동시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요동치는 포탈 안에서 거대한 짐승의 손이 튀어나왔다.
그걸 시작으로 거대한 몸체를 들어냈다.
전투에서 승리하고 나온 라온이었다.
라온이 포탈 밖으로 나오면서 포탈이 사라졌다.
그리고 차원를 유지하던 힘은 원래 주인에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가이아의 공간이 열렸다.
물론, 그 시간은 아주 찰나였지만 둘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이다.”
『지금이군. 』
둘은 동시에 그 틈을 통해서 검을 휘둘렀다.
쩌어억-!
그 순간, 가이아가 머무는 차원이 강제적으로 열렸다.
『빌어먹을 ······. 』
모두 함정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잔뜩 화가 난 상태였다.
하지만 그때, 포탈이 사라지면서 그의 짜증은 사라지고 새로운 먹잇감으로 향했다.
“열렸다.”
짜증 섞인 울음소리를 내면서 등장한 라온이었다.
태초신의 힘이 모두 함정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잔뜩 화가 난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