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 용사
163. 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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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프 일족이 사는 목책은 오랜만에 축제가 열렸다.
말이 축제라고는 하지만, 강하온이 잡아 온 늑대로 구워서 먹는 저녁이었다.
원래였다면 강하온은 족장 제카한테 들은 신전으로 바로 떠나려고 했지만, 제카의 부탁에 하룻밤만 머물고 가기로 일정을 바꿨다.
“행복해 보이네.”
라프 일족은 전부 마른 몰골과 달리, 굉장히 행복해 보였다.
고작 늑대라고 하기에는 조금 크지만, 하여튼 늑대 구이밖에 없는 식사에 모두 감사하며 즐거워했다.
과연 처음에 적대했던 그 사람들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고작 이런 음식으로 저렇게 기뻐하다니.”
강하온은 자신의 앞에 있는 늑대 고기를 봤다.
질긴데다 누린내까지 나는 음식, 그의 입장에서 절대로 맛있는 음식은 아니었다.
“마나를 되찾으면 진짜 음식을 보여줘야겠네.”
혹시라도 마나를 찾으면, 잠시라도 이곳에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진짜 맛있는 음식을 보여줄 생각이었다.
“그나저나 저 꼬맹이, 서운한 게 풀렸나 보네, 저러면 털 날 텐데.”
그중에는 강하온을 데리고 온 아이도 있었다.
아이는 늑대 고기를 뜯으면서 좋아했다.
그때, 아이가 강하온과 눈을 마주쳤다.
그러더니 아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강하온에게 다가왔다.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그리고는 알 수 없는 말을 뱉고는 곧바로 자리로 돌아가서, 엄마의 품에 안겨 다시 고기를 뜯기 시작했다.
“애들 보고 싶네.”
그 모습을 보자, 집에 있는 애들 생각이 났다.
고작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보고 싶었다.
빛나도 좋아하겠지? 빛나를 만나고 나서 모습도 상상했다.
그때, 뒤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트랑이 고맙다고 한 걸세.』
강하온에게 다가오면서 의념을 보내는 존재, 라프 일족의 족장 제카였다.
『트랑? 저 어린 애 이름인가 보군요.』
『그렇네, 아주 씩씩한 아이지. 그나저나 진짜 괜찮겠나?』
제카는 강하온의 옆자리에 앉으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습니다.』
강하온은 제카가 말하지 않아도 뭘 말하는지 알았다.
암인, 더 나아가서는 테스가 적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걱정하는 말이었다.
『그대가 강한 것은 알지만, ‘테라’의 십이 영웅들도 전부 그들을 상대할 수 없었네.』
‘테라’를 대표하는 열두 명의 영웅.
그들은 초월자를 넘어선, 신의 반열에 오른 자들이었는데 전부 암인에게 패배한 뒤, 지금은 신전에 봉인됐다고 했다.
『그들이 얼마나 강할지 모르겠지만, 저보다 강하지는 않을 겁니다.』
강하온은 확신에 찬 어조로 답했다.
오만할 수 있는 대답, 하지만 강하온에게 지금의 답은 오만이 아닌 자신감이었다.
『다른 사람이 말하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 거 같은데, 이상하게 자네가 말하니까 진짜 그럴 거 같군.』
족장 제카는 말도 안 되는 말이었지만, 이상하게 강하온의 말이 진짜 같이 느껴졌다.
『자네가 꼭, 그렇게 했으면 좋겠구먼. 자네가 전설 속 용사였으면 하네.』
그리고 꼭 믿고 싶었다.
강하온이 ‘테라’를 지배하는 테스와 암인을 처치하고, 다시 ‘테라’에 평화를 되찾아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설 속 용사? 그건 뭡니까?』
어차피 내일 아침까지 할 것도 없고, 강하온은 제카가 말한 용사 얘기에 관심이 갔다.
혹시라도 괜찮으면, 나래한테 들려줘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일족에게 아주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전설이네.』
모든 전설이 그러하지만, 시작은 어딜 가나 같았다.
차원이 달라져도 말이다.
『생명의 여신 테메르님이 침략자한테 죽은 뒤, 우리 일족에는 뛰어난 예지 능력을 가진 존재가 태어났네.』
뛰어난 예지 능력, 강하온은 그 존재가 레이나나 한빛나처럼 신의 파편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파편의 주인은 생명의 여신 테메르일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이 그러셨네. 아주 먼 미래, 어둠에 잠식된 ‘테라’에 용사가 나타날 거다. 강력한 여신조차 두려워할 힘을 가지고 있는 용사는 찬란한 검을 휘둘러 어둠을 전부 베어버리고, ‘테라’에 빚을 내리게 될 것이다.』
전설이라고 해서 전래 동화일 거로 생각했는데, 완전한 예지였다.
강하온은 나래한테 해줄 얘기가 아니라 아쉬웠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제카가 강하온을 보며 넌지시 물었다.
『모르죠.』
강하온은 고개를 돌려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봤다.
그는 자신의 예언 속의 용사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는 확실히 알았다.
어둠을 전부 베어버릴 존재는 자신이 맞다는 것을.
『그렇군.』
제카는 강하온의 대답과 달리, 뭐가 그리 좋은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작은 잔치는 늦은 밤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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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강하온에게 잠이나 식사는 굳이 필요 없는 행위였다.
하지만 그것은 마나가 대체가 가능할 때 얘기, 지금은 아니었다.
강하온은 최소한의 영양분도 섭취해야 했고, 조금의 잠 정도는 자서 피로를 풀어 놓는 게 좋았다.
그래서 강하온은 앞으로 일정을 위해서 잠시 눈을 감고 잠을 청했지만, 그는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잠에서 눈을 떠야 했다.
“제 발로 찾아와주네.”
강력한 기운이 이곳, 목책이 있는 곳으로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이미, 꿈속의 공간에서 암인, 정확히는 어둠의 교단 사도인 바루스를 만난 적이 있는 강하온은, 이쪽으로 다가오는 거대한 힘이 암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섯? 꽤 많이 오는군.”
그 수는 하나도 아닌 여섯이었다.
물론, 그때 봤던 바루스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약했다.
광인으로 치면, 신도 정도 수준 같았다.
“역시, 그 늑대에 뭐가 있었나 보군.”
강하온은 처음부터 암인의 습격을 예상했다.
제카 족장의 부탁으로 남은 것은 핑계였고, 처음부터 강하온이 노렸던 것은 이거였다.
그가 잡았던 늑대, 그 늑대에는 이질적인 힘이 심겨 있었다.
강하온은 그것을 암인들이 장난쳐놨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은 적중했다.
“$#@#[email protected]#.”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강하온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아니었지만, 무슨 말인지는 알 수 있었다.
암인을 발견했다는 뜻일 것이다.
『암인이······, 이미 눈치챘겠군.』
다급하게 강하온이 자는 방으로 들어온 제카는 멈칫했다.
이미 자신도 느낀 것을 강하온이 느끼지 못할 리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전부 뒤로 무르세요, 괜히 죽는 사람이 나오지 않게.』
강하온은 말은 듣지 못해도, 그의 감각에 라프 일족의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느껴졌다.
그들은 아이들과 여자들은 대피시키기 위해서 죽음을 결사하고 시간을 벌려 하고 있었다.
『그게 무슨······.』
제카는 강하온에게 물었지만, 이미 대답할 사람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강하온은 어느새 목책 위로 올라온 상태였다.
『전부 내 뒤로 물러나, 혹시라도 충격이 갈 수도 있으니까.』
강하온은 놀라는 라프 일족의 경계병을 보며 말했다.
경계병은 강하온의 위압감에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자리에서 벗어났다.
“쓰레기 같은 놈들이네.”
강하온은 다시 한번 느꼈다.
약자라고 꼭 선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빠르게 다가오는 암인에게서는 지독한 살기가 느껴졌다.
이미 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말이었다.
『그래, 암인 놈들만큼 더러운 놈들은 없다.』
“너네도 다를 거 없으니까 조용히 해라.”
이때다 싶었는지 대교주가 옆에서 거들었지만, 강하온의 한 마디에 곧바로 조용해졌다.
약자가 선하다는 게 아니었지, 그 말이 강자가 선하다는 말은 아니었다.
강하온의 입장에서 암인이나 광인, 둘 다 악이었다.
탁-.
강하온은 목책에서 뛰어내려 사뿐하게 바닥에 착지했다.
그 모습을 본, 선두로 달려오는 암인이 광소를 터트렸다.
『웃긴 놈이군. 우리를 상대하겠다는 거야?』
‘테라’의 원주민에게 암인과 테스는 증오의 대상인 동시에 공포의 대상이다.
그런데 지금 강하온이 보여준 행동은, 최근 들어서는 암인들이 볼 수 없는 신선한 태도였다.
『어디 한 번 즐겁게 해봐라.』
암인은 즐겁다는 듯 웃으면서 더욱 속도를 올렸다.
“#[email protected]$#······.”
라프 일족은 강하온 혼자서 달려오는 여섯의 암인을 대치한 모습을 보고 걱정스럽게 쳐다봤다.
이미 먹을 것을 나눠 먹은 사이, 라프 일족에게 강하온은 식구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함부로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강하온이 보여준 위압감 있는 모습과 제카 족장의 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강하온을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내가 저 녀석을 맡을 테니, 너희들은 다른 녀석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해라.』
선두에 있는 암인은 한 팀을 이끄는 리더였다.
그는 남은 라프 일족을 전부 사로잡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살아있으면서 한 마지막 말이었다.
『응? ······커억!』
암인의 시야에서 강하온의 모습이 약간 흐릿해지는 순간, 그는 목에서 엄청난 충격을 느꼈다.
어느새 강하온이 그의 앞에 나타나 목을 움켜쥔 것이다.
“귀찮으니까 빨리 끝내자.”
이미 신전의 위치를 아는 이상, 암인에게 들을 말 따위는 없었다.
어차피 마나를 얻으면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었으니까.
뚜드득-!
강하온이 손아귀에 힘을 주자, 그대로 암인의 목은 그대로 부러졌다.
하지만 강하온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 새끼들은 숨어 있는 게 특기네.”
수많은 광인을 상대하면서 알고 있었다.
육체가 죽었다고, 그들이 죽은 것이 아니다.
몸속에 숨어 있다는 것을.
『······.』
옆에 있던 대교주는 찔렸는지 움찔하고는 조용히 있었다.
“죽어라.”
강하온의 다른 손에는 검붉은 기운이 서렸다.
마나가 아니었다.
그의 의지와 투기로 이루어진 힘이었다.
그리고 정신체를 완전히 소멸시킬 정도로 강한 힘, 죽음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힘이었다.
『무시무시한 녀석······.』
대교주는 마나가 없어도, 단순히 의지만으로 모든 것을 소멸시킬 정도의 힘을 사용하는 강하온을 보면서 치를 떨었다.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강하온이 절대 교단에서 대적해서는 안 될 적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크아아악!』
강하온의 손은 암인의 정신체가 숨어 있는 곳을 정확하게 꿰뚫었다.
그러자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암인은 죽음을 맞이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그의 눈앞에 떠오른 알람으로 암인의 죽음을 확실시할 수 있었다.
『이게 무슨······.』
라프 일족을 포획하기 위해서 움직이던 다섯 암인은 모두 그대로 굳어버렸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리더는 사도의 자리가 빈다면, 차기 사도를 노릴 정도로 강하다고 평가받았다.
그런데 정체불명의 인간에게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그대로 생을 마감했다.
그들로서는 충격일 수박에 없었다.
“놀랄 생각이 있었으면 도망갔어야지.”
강하온은 곧바로 움직였다.
이번에는 애초에 그의 양손에 투지와 의지가 섞인 검붉은 죽음의 기운이 서려 있었다.
서걱-! 콰직-! 푸욱-!
강하온은 손날을 휘둘러 목을 베고, 강하게 머리를 쥐어서 트리고, 심장을 꿰뚫어서 암인을 단번에 소멸시켰다.
그렇게 눈 깜짝할 새에 여섯 암인은 명을 달리했다.
“뭘, 저렇게까지 봐? 부담스럽게.
“······.”
라프 일족은 공포의 대상인 암인이 순식간에 처리되는 모습을 보고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강하온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 담긴 감정은 공포가 아닌, 희망과 믿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