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 던전
102. 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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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온은 극심한 탈력감을 느꼈다.
힘의 괴리가 그 원인이었다.
잠시였지만, 육신이라는 탈을 벗은 강하온의 힘은 진정한 투신이라 부르기 부족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투신이라는 말이 표현하기 부족했다.
굳이 이 힘에 어울리는 말을 하나 있다면 그것은 절대였다.
절대자라는 말이 어울리는 힘이었다.
마나가 의지에 반응했고, 강하온의 의지가 곧 세계의 의지가 되는 힘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런 힘이 있다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시스템이라는 태초 신의 힘으로 육체를 강화했지만, 그의 정신을 따라가기에는 아직도 육체가 약했다.
굳이 따지면 1000조이 있다가 1000억이 있게 된 셈이다.
1000억이 적은 돈은 아니지만, 1000조에 비할 바는 못 됐다.
순간적으로 몰려드는 허무함은 어쩔 수 없었다.
일반적인 사람이었다면, 육신을 버리고 신으로 거듭나는 선택을 했을지도 모를 정도였다.
하지만 강하온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지금 그에게 진짜 힘든 것은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극심한 허무감, 탈력감 따위가 아니었다.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강하온의 뇌리에는 한빛나의 우는 모습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처음 한빛나를 만난 뒤, 처음으로 보는 모습이었다.
단 한 번도, 한빛나가 그렇게 서럽고 힘들게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 때문인지, 한빛나의 우는 모습은 강하온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당연히 힘들었을 텐데······.”
지금 생각해보면 힘든 것이 당연했다.
강하온이 사라지고, 암인에게 납치당하는 동시에 유일한 삶의 희망이라 할 수 있었던 나래와 헤어지게 됐다.
사랑하는 딸 아이와 생이별 해야 하는 부모인데, 그것이 안 힘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어······.”
강하온은 지금 생각해보면, 한빛나는 잘 버텨주고 있을 거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게 맞았다.
그의 기억 속에 있는 한빛나는 누구보다 밝고 강인한 여자였기 때문이다.
물론, 강하온이 한빛나의 말대로 기다리고 있지만은 않았지만, 한빛나가 그렇게 힘들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도 자신이 딱히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답답했다.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은순이의 실험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어.”
강하온은 지금의 육체로서는 앞으로 나타날 적들을 감당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네 번째 사도인 데카까지는 아무렇지 않았지만, 니우다한테 듣기로 데카의 위에 있는 사도들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함을 가졌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에 꿈속에서 만난 암인도 그랬다.
강하온이 정신체로서 완전한 힘을 사용해서 그랬지, 약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는 교단의 네 번째 사도였던 데카보다 강했기 때문이다.
“레벨을 올려야겠어.”
강하온은 정작 한빛나를 찾았을 때, 혹시 모를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 육체를 더욱 강화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단은······ 이번 여행만 끝나고 시작해야겠네.”
그 시기는 이번 여행이 끝난 뒤였다.
만약, 이러한 마음으로 나래가 잔뜩 기대한 여행을 그만하고 돌아간다면 한빛나도 좋아하지 않을 거니까.
“그나저나 이 녀석은 어디 간 거야?”
잠시 지붕에서 휘황찬란한 달빛을 보며 생각하던 강하온은 주위를 둘러봤다.
분명 애들 잘 지키고 있으라고 했던 드라쿨의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항이라도 하는 건가? 하긴, 충분히 그럴 수도 있지.”
강하온은 드라쿨의 행동을 충분히 이해했다, 그동안 그가 생각해도 심할 정도로 대우했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의 관점에서 본다면 굳이 대우가 필요하나 생각할 수 도 있었다.
그냥 인간들에게는 피에 미친 살인귀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강하온은 그동안 지내다 보니, 마냥 나쁜 놈은 아니었다.
그냥 모자란 놈일 뿐이지.
“그래도 조금 괘씸하긴 하네? 말도 없이 재껴?”
강하온은 곧바로 드라쿨을 잡아 올까 생각했다.
현재 강하온과 드라쿨은 피의 맹약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 때문에 마음만 먹는다면 찾아내는 것은 식은 죽을 먹기보다 쉬웠다.
하지만 강하온은 그러지 않았다.
“이참에 휴가나 준다고 생각해야지.”
사실 강하온은 처음부터 드라쿨한테 휴가를 줄 생각으로 이곳에 강제로 데려온 것이었다.
저번에 사도 바루스를 막아낸 보상이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혼자 즐길 시간을 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당분간은 바오한테 시켜야겠군.”
그렇게 강하온에 야간 경비는 바오도 모르는 사이, 바오로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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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온의 숙소 안에서는 아침부터 맛있는 냄새가 진동했다.
식탁 다리가 휠 정도로 차려진 음식, 강하온이 꼭두새벽부터 수산시장에 가서 사 온 신선한 해산물로 만든 아침이었다.
보는 것만으로 먹음직스러웠다.
“애들아, 밥 먹자.”
강하온은 그 어느 때보다 활기찬 목소리로 세상모르고 자는 나래와 레아를 깨웠다.
그는 여행이 끝나기 전까지는, 여행에 충실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녀석, 괜찮은 거 맞나?』
‘······괜찮은 건가?’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바오와 은순이는 괜히 신경 쓰였다.
어제 잠깐 봤을 때와는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활발했다.
“우와! 맛있겠다!”
어느새, 식탁에 앉은 나래는 감탄하며 음식을 때지 못했다.
한빛나를 닮아서 아침잠이 많은 나래의 잠을 단번에 깨울 정도로 오늘 강하온이 준비한 아침은 엄청났다.
“응, 마이떠!”
레아는 이미 음식을 먹고 있는라 정신이 없었다.
“맛있게 먹어, 너네도 빨리 먹어봐.”
『맛있군. 황금 대나무 잎보다는 조금 못하지만, 그래도 엄청 맛있었다.』
“태어나서 먹어 본 음식 중 제일 맛있는 거 같다.”
바오와 은순이도 음식을 먹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는 젓가락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강하온은 빠르게 사라지는 음식을 보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바다로 갑시다.”
잠시 후, 식사가 끝나고 원래 목적이었던 바다로 향했다.
그렇게 강하온 일행은 행복한 휴가를 즐겼다.
그 시각, 드라쿨은 사이펜이 보낸 던전 안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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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쿨은 자신의 몸을 집어삼킨 연기 때문에 당황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찰나였다.
평소 강하온의 집에서야 서열 꼴등이지만, 드라쿨은 명색에 초월자였다.
그는 침착하게 상황을 받아들이고, 주위를 살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은 어두운 곳에서 붉은 눈동자가 반짝였다.
“동굴?”
칠흑 같은 어둠이지만, 그의 눈에는 전부 보였다.
지금 그가 있는 곳은 대략 높이가 20m 정도 됐고,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긴 거대한 동굴이었다.
중간에 보이는 흔적으로 봤을 때, 절대로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곳은 아니었다.
“으음, 던전이군.”
드라쿨인 지금 자신이 있는 곳이 던전이라는 것을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판게아에서 몇 번 경험해 본 적 있었기 때문이다.
던전, 그것은 고대, 그보다 이전에 존재했던 원시의 산물이었다.
아주 진귀한 보물이 있을 수도 있었고, 봉인된 어쩐 존재가 있을 수도 있었다.
그 외에도 그냥 아무런 흔적이 없을 수도 있었고, 누군가에게 무엇을 전하는 메시지가 있을 수도 있었다.
던전이라는 곳은 뭐가 있는지 알 수 없는 장소였다.
“그것도 아주 강력한 던전이야.”
드라쿨은 이곳이 봉인된 어떤 존재가 있는 곳이라는 것을 단번에 파악했다.
이곳에 들어오고부터, 동굴 깊숙한 곳에서 느껴지는 힘이 그의 피부를 찌릿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드라쿨이 판게아에서 겪었던 던전하고는 차원이 다른 곳임이 분명했다.
“이참에 새로운 힘을 전력으로 사용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하지만 드라쿨은 이러한 상황을 오히려 반겼다.
그는 강하온에게 피를 받은 뒤, 지금까지 제대로 전력을 다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게, 사도 바루스는 그보다 약했고, 반대로 강하온이나 은순이, 바오 같은 경우는 너무 강했기 때문에 전력을 확인할 수조차 없었다.
그런데 지금 이곳이라면, 충분히 자신의 전력을 시험해볼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보다 아주 기분이 좋은 곳이네.”
드라쿨은 던전에 들어온 뒤로 기분이 한껏 격양되었다.
사방에서 진동하는 피냄새 때문이었다.
강하온의 피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그가 맛봤던 어떠한 피보다 향긋했기 때문이다.
“누군지 몰라도 넌 감사해야 할 거다, 이 몸의 전력을 보고 죽을 수 있으니 말이다. 크하하하!”
동굴 안에는 드라쿨의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럼 기다리고 있거라, 친히 이 몸이 그곳까지 행차해주겠다.”
입꼬리가 활짝 올라간 드라쿨은 혈마법을 사용했다.
라이트 마법이었다.
하지만 그 매개체가 피인 만큼, 붉은 빛을 내고 있었다.
“아주 아름다운 광경이군.”
붉게 빛나는 동굴을 보며, 드라쿨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걸어갔다.
잠시 후, 그는 동굴 안에서 처음으로 뭔가 다른 흔적을 찾아낼 수 있었다.
동굴을 막고 있는 동굴의 천장까지 닿을 정도로 큰, 두 개의 석상이었다. 검과 도끼, 그리고 갑옷으로 무장한 석상은 마치 더는 들어가지 말라는 듯 무기로 교차시켜 막고 있었다.
“여기가 본격적인 시작인가 보군.”
드라쿨은 천천히 석상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정확히는 석상의 무기가 교차하는 곳에 있는 비석이었다.
“으음, 이건 후에 누군가 만들어 놓은 비석이군.”
드라쿨은 비석이 처음부터 존재한 것이 아닌, 던전에 들어왔던 누군가가 만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석상과 비석의 재질이 달랐기 때문이다.
“어디 한 번 뭐라고 썼는지 볼까나.”
드라쿨은 처음 보는 문자였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고대 문자 해독은 귀족의 기본 소양이지.”
드라쿨, 그는 밤의 귀족, 뱀파이어의 왕답게 솔선수범해서 각종 지식을 배우는 데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곳에는 고대 문자 해독, 암호문 해독 같은 것도 존재했다.
물론, 이러한 것을 따라하는 뱀파이어는 없었다.
“일단은 어떤 원리로 만들었는지부터 확인해봐야겠군,”
문자 해독의 기초였다.
문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것의 뼈대가 되는 것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지적 생명체가 만든 문자라면 모두가 통용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다른 차원에서 만들어졌다고 해서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원리만 알아낸다면, 문자 해독의 반은 끝이었다.
“상형 문자를 토대로 만든 문자군.”
드라쿨은 이쪽으로 특출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고, 순식간에 문자를 만든 기초 원리를 파악했다.
“해석하는 데 그리 어렵지 않겠어.”
상형 문자를 도대로 만든 문자 해석은 드라쿨이 가장 자신 있어하는 분야였다.
드라쿨은 곧바로 집중해서 비석에 적힌 문자를 해석하기 시작했고, 금방 전부 해석해냈다.
『위험합니다, 이곳은 xxx, xxx의 xxx입니다.
이곳에는 피의 힘에 먹힌 원시의 존재, xxx, xxx가 봉인되어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이 문자를 읽었다면, 돌아가세요.』
몇 군데, 비석 일부가 뜯겨 있어서 해석하지 못한 부분이 있기는 했지만, 드라쿨은 완벽하게 해석해냈다.
“흥, 위험하니 돌아가라고? 감히 누구한테 명령하는 것이냐.”
드라쿨은 비석을 읽고는 콧방귀를 뀌었다.
“원시의 괴수라도 봉인되어 있나 보군, 나의 상대로 나쁘지 않겠어.”
드라쿨은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하고는 그대로 석상을 지나쳤다.
하지만 드라쿨은 보지 못했다, 동굴 한쪽 구석에 떨어진 비석에서 떨어진 조각을 말이다.
조각에는 선명하게 문자가 남아 있었다.
『피의 신, 블미르』 『참회동』
『피의 신, 블미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