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아카데미에 천재가 있었다-176화 (175/212)

176화 아카데미 사변 (2)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이 흑천마교 총본산을 무너뜨리고 총대주교를 쓰러뜨렸다.

이 소속은 통신 마법을 통해 리히테나워 검술 아카데미에도 전해졌다.

“욜스 교수, 이건 정말로 놀라운 소식이군.”

“네, 페르디난드 교수님.”

페르디난드가 전해 준 소식을 듣고, 욜스가 침대에 누운 채 고개를 끄덕였다.

“아쉽습니다. 저도 그 자리에서 함께 싸우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지. 자네는 나보다 부상이 심한 상태였으니까.”

두 사람은 동부 지역에서 이그니아스 가문과 싸우다가 부상을 입었다.

특히 욜스는 칼레온의 화염 공격을 정면에서 막아 내느라 생명을 잃을 뻔했다.

페르디난드는 이미 다 회복된 상태지만, 욜스는 아직 더 요양이 필요했다.

“하긴, 제가 참전해 봤자 별 도움이 안 되었을지도 모르겠군요.”

“욜스 교수…….”

“에르나스는… 정말 대단한 검사가 된 것 같습니다.”

에르나스는 흑천마교의 대주교들을 차례차례 쓰러뜨린 뒤, 총대주교까지 해치웠다.

대주교들이 절정급이라고 하나, 이미 에르나스는 절정급의 그래듀에이트 상대로 계속 승리를 거둬 왔기 때문에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총대주교를 쓰러뜨렸다는 건 다른 관점에서 봐야 한다.

“게다가 총대주교는 새로운 경지에 도달했다는 것 같던데… 그렇다면 에르나스도 새로운 경지에 도달했다는 얘기 아닙니까?”

“그건 모르겠군. 자세한 얘기가 없어서 말이야.”

“흑천마교가 절정급을 초월한 경지를 만들어 낸 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놈들은 줄곧 많은 생명을 희생시키면서 무언가를 추구하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에르나스는 어떻게 새로운 경지에 도달했을까요?”

“나도 짐작이 가지 않는군…….”

“정말로 놀랍습니다.”

욜스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도 그동안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실력을 갈고닦았지만… 그래듀에이트로서 한계에 도달한 상태이기 때문에 더 이상 강해지기 어려웠죠.”

“욜스 교수…….”

“절정급의 한도 안에서 기술을 단련해 보고, 전략을 고민해 보고… 그런 정도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앞을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벽을 부수지는 못했죠.”

“그거야 뭐… 나도 마찬가지지.”

페르디난드는 검술보다 연구를 더 중시하는 교수지만… 젊은 시절에는 그래도 좀 더 의욕이 있었다.

절정급을 초월한 경지에도 관심이 있어서 나름대로 연구를 해 봤지만, 결국 포기했다.

“지금까지 모든 절정급이 그랬을 거야.”

“칼레온 이그니아스도 그랬겠죠.”

욜스는 자신에게 중상을 입힌 칼레온을 언급했다.

“칼레온은 뛰어난 검사였지만, 오래전부터 한계에 도달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동부에서 저희들에게 화염 공격을 했던 칼레온은 명백히 절정급의 한계를 넘어선 공격을 했었죠.”

“그거야 뭐… 모종의 수단을 사용해 일시적으로 그런 화력을 낸 거지.”

그때 칼레온은 염옥공(炎獄公)이라 불리던 초대 이그니아스 공작의 힘을 재현했다.

“그때 제가 그 공격을 막느라 중상을 입긴 했습니다만… 조금 부러웠습니다.”

“부러웠다고?”

“그렇게 한계를 넘어선 힘을 발휘하는 모습이 부러웠던 것이죠.”

“어이, 욜스 교수, 그건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잠깐 동안 그런 힘을 발휘했을 뿐이야. 그런 걸 부러워해서는 안 되지.”

“알고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제 얘기는…….”

욜스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지금보다 더 강해지고 싶다… 그런 마음이 계속 제 내면에 있다는 겁니다.”

“…….”

페르디난드가 한숨을 내쉬었다.

“정 그러면 나중에 에르나스에게 물어보든가. 어떻게 그렇게 강해졌는지 말이야.”

“네, 이제는 제가 에르나스에게 가르침을 청해야겠군요.”

욜스는 에르나스가 아직 그래듀에이트 하급, 중급에 머무르던 시절에 지도 교수 역할을 했다.

누가 뭐래도 욜스는 에르나스에게 큰 가르침을 준 스승이다.

하지만 이제는… 욜스가 에르나스에게 가르침을 청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욜스 교수.”

“네, 페르디난드 교수님.”

“자네는 현재 남아 있는 절정급 중에서도 나이가 젊은 편이지. 자네가 에르나스에게 가르침을 얻어 계속 수련한다면… 언젠가 절정급을 초월할 수 있을지도 몰라.”

“그건…….”

“자네가 원한다면, 내가 서포트를 해 주지. 우리 클래스에서 준비하고 있는 것이 있으니까.”

“설마… 지난번에 말씀하셨던 암리타 말입니까?”

“그래, 맞아.”

페르디난드는 고대의 영약 ‘암리타’를 부활시키기 위해 예전부터 노력해 왔다.

에르나스 덕분에 비로소 제조법을 알아냈고, 최근 첫 번째 완성품을 만들어 에르나스에게 먹였다.

“아카데미로 돌아온 뒤로도 계속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지. 슬슬 두 번째 완성품이 나올 것 같아.”

“두 번째 완성품이…….”

“생각이 있다면 자네에게 넘겨주지. 어떤가?”

“저한테 말입니까? 어째서…….”

“방금 말했지 않나. 자네는 나이가 젊은 편이라고.”

“…….”

“훗날 아카데미를 이끌어 갈 사람이 필요해.”

그동안 있었던 전란에서 아카데미도 많은 인재를 잃었다.

가장 젊은 지도 교수였던 아킬레온은 발트펠트 가문과의 싸움에서 죽었고, 아카데미를 이탈한 칼레온은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발렌티아노 교수까지 죽었다.

“지금 아카데미에 남은 건 알드바우트 총장님과 안겔라 교수 그리고 우리 두 사람뿐이지. 하지만 총장님은 너무 고령(高齡)이고, 나와 안겔라 교수는 조직을 이끌 만한 인물이 아니야.”

“교수님…….”

“에르나스는 머지않아 아카데미를 떠날 테고… 결국 자네밖에 없어. 그러니 자네가 절정급을 초월하여 아카데미의 미래를 이끌어 줘야지.”

“…….”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말이야.”

얼마나 걸릴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에르나스가 무슨 깨달음을 얻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욜스도 그걸 터득할 수 있으리란 보장은 없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터득하지 못할 수도 있다.

“절정급을 초월한 경지라…….”

욜스가 복잡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제가 가능할까요?”

“그런 경지가 있다는 걸 에르나스와 총대주교가 증명했잖아. 가능성은 있는 거지.”

“…….”

페르디난드의 말을 듣고, 욜스가 생각에 잠겼다.

“페르디난드 교수님.”

“뭐지?”

“절정급을 넘어선 게 에르나스와 총대주교가 처음일까요?”

“…….”

이번에는 페르디난드가 생각에 잠길 차례였다.

“적어도… 공식 기록에는 그런 사례가 없어.”

“공식 기록에 없다는 건…….”

“야사(野史)에는 그런 얘기가 있긴 하지. 철혈검제와 6공작(公爵)이 초월적 존재가 되어 마인과 엘더 드래곤, 몬스터 엠페러 등을 모조리 때려잡았다고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페르디난드가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내가 연구한 바에 의하면 그건 그냥 누군가가 꾸며 낸 애기일 뿐이야. 평범한 절정급으로는 그런 존재들을 쓰러뜨릴 수 없다, 그러니 절정급을 초월한 경지에 도달했을 것이다… 그렇게 누군가가 소설을 쓴 거지.”

“페르디난드 교수님, 하지만…….”

“응?”

“평범한 절정급은 그런 존재들을 쓰러뜨릴 수 없는 게 맞지 않습니까?”

“…….”

“저는 동부에서 칼레온이 염옥공의 화력을 재현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그런 화력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그건 절정급의 한계를 초월한 그래듀에이트입니다.”

“그러니까… 초대 이그니아스 공작은 절정급을 초월한 경지에 도달했었을 거라고?”

“제 생각으로는 그렇습니다. 만약 그가 절정급을 초월한 존재였다면… 나머지 6공작이나 철혈검제도 절정급을 초월했을 가능성이 있는 거죠.”

“크흠…….”

페르디난드가 헛기침을 했다.

“욜스 교수, 자네 가설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어. 정말로 철혈검제와 6검제가 절정급을 초월했다면… 왜 그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거지?”

“그건…….”

“어떤 아티팩트나 성검, 마검 등의 힘을 활용해 절정급을 초월한 힘을 발휘했다고 보는 게 더 그럴듯해. 실제로 그들이 어떤 특별한 것들을 사용했다는 건 기록에 남아 있으니까.”

정말로 천 년 전에 절정급을 초월한 존재들이 있었다면… 그들의 노하우가 어떤 식으로든 전해져야 자연스럽다.

하지만 철혈검제의 후예인 역대 황제들도 그런 걸 계승한 모습을 보여 주지 않았다.

다들 평범한 절정급을 넘어서지 못했던 것이다.

“뭐 이런 건 내가 앞으로 계속 연구해야 하는 부분이고, 자네가 고민할 부분이 아니야. 그 사람들이 절정급을 초월했든 초월하지 않았든, 자네는 그냥 에르나스를 만나서 가르침을…….”

페르디난드가 그런 얘기를 하고 있었을 때, 기척이 느껴졌다.

흠칫 놀라서 시선을 돌리자, 백발이 성성한 노교수의 모습이 보였다.

아카데미의 총장을 맡고 있는 ‘백랑검(白狼劍)’ 알드바우트였다.

“총장님, 여기는 웬일로…….”

“일어설 필요 없네.”

알드바우트가 페르디난드와 욜스를 제지하면서 다가왔다.

“욜스 교수, 몸은 좀 어떤가?”

“많이 회복되긴 했지만, 만전의 상태가 되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합니다.”

“흑색 엘릭시르를 복용하면 더 빠르게 회복할 수 있을 걸세.”

“네?”

제국에서 만드는 엘릭시르 중에서 가장 등급이 높은 게 흑색 엘릭시르다.

흑색 엘릭시르에는 단순한 마력 공급 외에도 몇 가지 부가적인 효과가 있는데, 육체의 자연 치유력을 극대화하는 것도 그중 하나다.

“초, 총장님, 흑색 엘릭시르는 황궁으로 가야 받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아카데미에는 흑색 엘릭시르가 보관되어 있었네. 그걸 내 판단으로 자네에게 주도록 하지.”

“……!”

욜스뿐만 아니라 페르디난드도 눈을 크게 떴다.

“초, 총장님, 왜 갑자기 그런…….”

“페르디난드 교수, 지금은 전력이 필요한 상황일세. 욜스 교수의 빠른 복귀가 필요하지.”

“그렇게 급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흑천마교도 무너졌고, 다른 검술명가들도 이제는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하는데…….”

“그러니까 더 문제지.”

“네?”

눈을 동그랗게 뜨는 페르디난드 옆에서 욜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총장님, 이제는 더 이상 제국을 위협하는 존재가 없습니다. 어째서 그런 편법적인 방식으로 저를 치료하시려는 겁니까?”

“제국을 위협하는 존재가 없다니?”

“네?”

“가장 거대한 위협이 있지 않은가.”

당혹스러워하는 두 교수 앞에서, 알드바우트가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절대 강자가 되어 버린 그 남자야말로 제국을 위협하는 존재일세.”

* * *

소설 후반의 싸움은 대부분 아카데미 바깥에서 벌어지지만, 이쯤 되어서 다시 아카데미로 무대가 옮겨진다.

흑천마교까지 쓰러뜨렸고 더 이상 싸워야 할 적도 없으니, 주인공들은 아카데미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주인공 일행이 흑천마교와 싸우는 동안… 에르나스는 아카데미에서 공작 활동을 하고 있었다.

‘에르나스가 그렇게 움직일 수 있었던 건 알드바우트 총장의 성향 때문이었지.’

알드바우트 총장은 충성심이 뛰어난 인물이다.

세속적인 권력을 탐하지 않으며, 아카데미를 운영하여 제국에 공헌하는 것만 생각한다.

그래서 알드바우트는 주인공 아칸델의 행보를 계속 지원했다.

아칸델이 제국의 적을 쓰러뜨리면 쓰러뜨릴수록 제국이 평화로워질 테니까.

하지만, 흑천마교의 총대주교를 쓰러뜨린 시점에서 알드바우트는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한다.

‘알드바우트는… 이제 누구도 아칸델을 막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아 버렸어.’

아칸델은 검제급에 도달해 버렸다.

다른 절정급하고는 차원이 다른 힘을 지닌, 독보적인 최강자가 된 것이다.

만약 아칸델이 황제의 자리를 탐하게 될 경우… 누가 막을 수 있을까?

‘아직 검제급 초입인 아칸델이 더 강해지기 전에, 일찌감치 제거하려 한 거지.’

어차피 제국을 위협할 만한 세력은 거의 다 제거되었다.

아칸델을 토사구팽 해도 아무 문제 없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알드바우트에게 에르나스가 접근하고… 아카데미에 돌아온 아칸델과 동료들을 말살하기 위한 음모가 진행된다.

‘소설처럼 에르나스가 관여하지 않았어도, 알드바우트가 나를 제거하려 할 가능성은 높아.’

그동안 알드바우트가 나를 지원해 준 건 사실이다.

나를 리히테나워 대공으로 만들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힘을 써 왔다.

하지만, 남들이 내 검술에만 주목할 때 ‘에르나스는 검술 못지않게 권모술수도 뛰어난 놈이다.’라고 경계했던 것도 알드바우트다.

황제 자리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고 알드바우트를 설득해 봤자 먹혀들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이제 곧 시작될 싸움을 생각하면… 결국 알드바우트를 쓰러뜨리는 수밖에 없다.

‘문제는 욜스와 페르디난드인데…….’

소설과는 달리, 알드바우트는 에르나스의 협력 없이 단독으로 움직여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처럼 교묘한 계략을 꾸미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래도 나를 쓰러뜨리기 위해 아카데미에 남아 있는 교수들을 포섭했을 가능성이 있다.

‘만약 욜스와 페르디난드가 알드바우트에게 붙는다면…….’

아카데미에서 나에게 많은 도움을 준 스승들.

그들과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

“…….”

나는 입술을 깨물며 언덕을 뛰어넘었다.

어두운 밤하늘 아래, 아카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