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총본산 공략전 (3)
“후후…….”
진은검과 진철검을 두 손에 들고 있는 나를 보면서 알베리히 대주교가 웃었다.
“지금 그런 상태로 저를 위협해 봤자 의미없습니다, 에르나스.”
“…….”
“당신의 마나 하트와 혈맥은 과부하에서 아직 회복되지 못했습니다. 그런 몸으로 저를 상대할 수 있을까요?”
알베리히는 내 상태를 완전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를 꿰뚫어 보고 있는 건 알베리히뿐만이 아니었다.
“너야말로, 그런 상태로 나에게 위협이 될 거라 생각하나?”
“…….”
알베리히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나를 보면서 작게 미소 지었다.
“놀랍군요. 제가 ‘본체’가 아니라는 걸 깨달으신 겁니까.”
“철저히 위장했지만, 나한테는 통하지 않아.”
“매우 훌륭합니다, 에르나스.”
지금 이곳에 있는 건 알베리히 본인이 아니다.
본인은 총본산 내부에 있고, 이쪽으로 분신을 보냈을 뿐이다.
하지만 분신이라고 해도 무시할 수 있는 상대는 아니다.
그래듀에이트 상급에 도달한 클로에를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고 기절시켰으니까.
“분신을 쓰러뜨리면 본체에도 충격이 피드백되는지 시험해 봐야겠군.”
“너무 성급하시군요.”
“시간을 끌 이유가 있을까?”
“잠시 대화를 나눠 봅시다, 에르나스.”
알베리히가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당신과 싸우러 온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기습을 해 놓고?”
“여기까지 오면서 저는 누구도 해치지 않았습니다.”
“대화를 나누고 싶다면 정식으로 회담을 신청했어야지.”
“흑천마교의 대주교가 회담을 신청해 봤자 당신은 응하지 않았겠죠. 그래서 이렇게… 당신이 혼자 있을 때를 노린 겁니다.”
그렇게 말하며 알베리히는 클로에를 힐끔 쳐다봤다.
“이 아가씨가 곁에 있어서, 잠시 재우긴 했습니다만.”
“…….”
“에르나스, 잠시만 대화를 나눠 봤으면 합니다.”
알베리히가 이지적인 눈동자로 나를 쳐다봤다.
“당신에게도 이득이 되는 얘기일 겁니다.”
“나에게 이득이 되는 얘기?”
“네, 에르나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알베리히가 말했다.
“절정급을 넘어선 경지에 대해…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 * *
폴카 대주교의 흑천칠염검술(黑天七炎劍術)은 불꽃의 검기와 조합된 어검술이다.
불꽃에 휩싸인 일곱 자루의 검에 포위당하면 주위 상황조차 파악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건 주위에서 안쪽 상황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니… 브랜틀리가 아그리파 청월검술을 사용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압……!”
파아아아아앗!
아래에서 위로 휘두르는, 단순하기 그지없는 동작.
단지 그것만으로 공간이 절단되었다.
검의 궤적이 공간을 갈라 버리면서, 모든 것이 좌우로 갈라졌다.
브랜틀리를 포위하던 불꽃의 검기조차도.
“……!”
우우우우우!
흑천칠염검술의 포위망을 뚫고, 공간의 절단이 폴카 대주교를 덮쳤다.
그는 다급히 회피하려 했지만, 초고속의 공간 절단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다.
“크윽……!”
공간 절단은 폴카의 우측 팔을 날려 버렸다.
폴카의 육체에는 견고한 호신기가 전개되어 있었지만, 아그리파 청월검술의 공간 절단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이게… 아그리파 청월검술인가!”
브랜틀리가 펼친 기술의 정체를 꿰뚫어 보고, 폴카가 목소리를 높였다.
“남들이 보는 앞에서는 사용하지 않는다는 아그리파 가문의 독문 검술… 이 정도 위력이었을 줄이야!”
폴카가 마력으로 급히 지혈을 하면서 브랜틀리를 노려봤다.
“하지만… 너도 무사하지는 못했군, 브랜틀리.”
“…….”
브랜틀리도 말없이 마력으로 지혈을 하는 중이었다.
전신에 부상을 입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아그리파 청월검술의 가장 큰 약점은 한쪽 방향만 공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공간 절단이 발생하는 정면에서는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지만, 측면이나 후면은 무방비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아그리파 청월검술로 폴카를 공격한 순간, 불꽃의 검기가 브랜틀리의 측면과 후면을 덮쳤다.
공간 절단에 휘말려 7개의 검기 중에서 2개가 소멸한 상태였지만, 그래도 가볍지 않은 부상을 입었다.
“총본산을 지키는 대주교 상대로, 쉽게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폴카 대주교는 지금까지 만난 대주교 중에서 최고의 실력을 지닌 것으로 보였다.
그런 강적을 상대하면서 상처 하나 없이 승리를 거두는 건 어려운 일이다.
“다음 공격으로는 숨통을 끊어 주마, 폴카 대주교.”
“큭…….”
브랜틀리도 부상을 입은 상태이긴 하지만, 한쪽 팔이 통째로 날아가 버린 폴카보다는 낫다.
폴카가 동시에 전개하던 7개의 검기도 이제는 5개밖에 남지 않았다.
지금은 브랜틀리가 승기를 잡은 상태였다.
“간다.”
“……!”
쿠웅!
시커먼 땅바닥을 발로 차면서 도약했다.
다섯 자루의 검이 폭음과 함께 솟구치면서 브랜틀리를 요격하려 했다.
하지만 브랜틀리는 교묘한 움직임으로 그 사이를 돌파했다.
“흐읍!”
콰앙!
때로는 아그리파 절검술을 펼쳐 검을 튕겨 내기도 했다.
충돌한 순간 폭발이 발생하면서 브랜틀리의 검기를 손상시키려 했지만, 이미 브랜틀리는 대책을 세워 놓은 상태였다.
“검기를 더 견고하게 만든 건가!”
가끔 에르나스가 보여 주는 고밀도의 검기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에르나스가 직접 가르침을 주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여러 번 봤기 때문에 충분히 재현할 수 있었다.
“크윽……!”
쿵, 쿠쿵, 쿠웅!
급기야 칼 한 자루가 부서지면서 불꽃의 검기가 네 개밖에 안 남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 브랜틀리의 움직임을 봉쇄하는 것도 어려워진다.
“끝이다, 폴카 대주교.”
“……!”
앞을 가로막는 불꽃의 검기를 쳐 내면서, 브랜틀리는 폴카를 향해 쇄도했다.
그 목을 날리기 위해 질풍 같은 일격을 펼치려던 순간.
“어쩔 수 없군……!”
“……?!”
쿠쿵!
폴카의 전신에서 갑자기 불꽃 같은 기운이 솟구쳤다.
아까 흑천칠염검술을 펼칠 때하고는 다른 느낌이었다.
그리고 폴카에게서 강력한 충격파라 발생했다.
“윽……!”
위험을 느낀 브랜틀리는 신속하게 회피했다.
화산 중턱의 바위에 착지한 뒤, 폴카의 현재 상태를 확인하려 했다.
“……!”
브랜틀리는 숨을 삼켰다.
폴카의 외형이 크게 변화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원래 폴카는 브랜틀리보다 훨씬 건장한 몸을 갖고 있었지만, 지금은 두 배 이상 몸집이 커진 상태였다.
그뿐만 아니라 전신에 갑각류 같은 외골격이 돋아나 있었고, 아까 절단되었던 팔도 재생되어 있었다.
“변이약인가?”
마교도들이 오크나 오거 같은 괴인으로 변하는 것하고는 달랐다.
샤르나드와 제뉼라가 거대한 살덩이로 변모했던 것하고도 달랐다.
폴카는 이성을 유지한 채로 인간을 초월한 무언가로 진화한 것처럼 보였다.
“아니, 이것은…….”
브랜틀리는 뒤늦게 눈치챘다.
저 존재가 어떤 것인지… 아카데미 재학 시절 검술사학(劍術史學) 시간에 배운 적이 있다.
“천 년 전에 철혈검제 폐하가 전멸시켰다고 하던… 마인(魔人)인가!”
흑천마교는 인간을 마인으로 만드는 기술을 만들어 냈다.
그걸 깨닫고 경악하는 브랜틀리를 향해, 폴카 대주교가 무서운 속도로 달려들었다.
* * *
“지금으로부터 약 천 년 전… 철혈검제는 6명의 측근들을 거느리고 인류를 위협하는 세력들을 제거하기 위한 전쟁에 나섰습니다.”
알베리히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몬스터들을 지배하는 몬스터 엠페러, 레서 드래곤과는 비교도 안 되는 힘을 지닌 엘더 드래곤…….”
“…….”
“그리고… 마인들과 싸웠죠.”
마인.
그것은 인류에게 마력의 사용법을 전수했다고 하는 고대 종족이다.
그들은 마력의 힘으로 육체를 강화할 수 있었으며, 무기를 들지 않고 맨몸으로 싸웠다.
이 세계에서 생체 에너지를 ‘마력’이라 부르는 건 ‘마인’들이 가르쳐 준 힘이기 때문이다.
“마인들은 강대한 힘을 숭상하는 종족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존재가 치열하게 싸우면서 원하는 것을 쟁취하는 세계를 이상적으로 생각했죠.
“…….”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그것이 마인들의 사상이었습니다.”
그렇게 말한 뒤, 알베리히가 미소를 지었다.
“그 사상을 이어받은 것이 바로 우리 흑천마교지요.”
그렇다.
이것이 흑천마교가 ‘마교’라는 이름을 쓰는 이유다.
흑천마교는 ‘마인’의 사상을 이어받은 집단으로, 국가 체제를 붕괴시키고 혼란으로 가득한 투쟁의 세계를 만들기 위해 암약해 왔다.
“그런데 우리 흑천마교도… 시간이 흐르니 변질되기 시작했습니다. 과거의 마인들은 조직이나 체제를 만드는 것을 싫어했지만, 흑천마교는 어느새 상하 관계가 뚜렷한 거대 단체가 되어 버렸죠.”
“…….”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철혈검제의 제국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조직이 필요했으니까요. 하지만… 어느새 흑천마교는 사상을 실현하는 것보다 조직을 유지하는 것을 더 중시하게 되었습니다.”
알베리히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보다 못한 총대주교님은 결심하셨습니다. 이대로 계속 시간을 끌어 봤자 흑천마교는 갈수록 타락할 뿐이니… 자신의 대에서 제국을 무너뜨리고 투쟁의 세계를 구현하겠다고 말입니다.”
“…….”
흑천마교 입장에서는 최고의 타이밍이긴 하다.
황제가 죽어 가고 있는데, 황위를 이어받을 황녀는 검기조차 쓰지 못하는 어린 소녀니까.
황위 계승을 둘러싸고 제국이 혼란스러운 시기를 이용한다면 흑천마교가 원하는 투쟁의 세계를 실현하기 쉬워진다.
그런 생각에 흑천마교의 대주교들이 여기저기서 음모를 꾸며 왔던 것이다.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힘입니다. 그래서 총대주교님은… 지금 총본산 안에서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준비?”
“절정급을 뛰어넘은, 초월적 존재가 되기 위한 준비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알베리히가 웃었다.
“에르나스, 당신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총대주교님이 각성하시면 전혀 상대가 되지 않을 겁니다.”
“어째서 그렇게 단언하는 거지?”
“당신은 아직 인간의 한계에 사로잡혀 있으니까요. 방금 전에도 뼈저리게 느끼지 않았습니까?”
“…….”
“거대한 마력을 손에 넣었지만, 인간의 몸으로 낼 수 있는 출력에는 한계가 있죠. 말하자면… 당신은 더 이상 강해질 수 없는 겁니다.”
그리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지금 나는 절정급으로서 한계까지 강해진 상태였다.
여기서 마력을 더 늘린다고 해도 더 강해질 수 없다.
철혈검마심법을 활용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총대주교님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으려 하고 계십니다. 절정급을 초월한 경지에 도달하면… 당신은 결코 승리할 수 없습니다.”
“자세히 알려 줘서 고맙군, 알베리히.”
나는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결국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나로서는 총대주교를 이길 수 없으니 빨리 항복하라는 건가?”
“그렇지 않습니다, 에르나스.”
알베리히가 미소를 지었다.
“제가 자세한 설명을 해 준 건, 당신이라면 제 얘기에 귀를 기울여 줄 거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귀를 기울여 줄 거라고?”
“에르나스, 저는 당신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알베리히가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당신은 이 세상 누구보다 힘을 추구하는 존재입니다.”
“…….”
“여러 검술명가를 쓰러뜨려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해 왔지만, 그건 권력을 손에 넣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강적을 쓰러뜨리고 더 큰 힘을 손에 넣기 위한 것이었겠죠.”
알베리히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건… 장갑으로 가려져 있는 내 손이었다.
“에르나스, 당신이 장비하고 있는 반지와 팔찌… 고대의 아티팩트 아닙니까?”
“…….”
“남들은 알아보지 못했겠지만, 흑천마교의 지식을 계승한 저는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은 아티팩트의 권능을 사용해 거대한 힘을 손에 넣어 왔겠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말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알베리히가 미소 지었다.
“당신의 그런 가치관은 우리 흑천마교의 사상과 부합합니다.”
“…….”
“에르나스, 이대로 흑천마교와 싸워 봤자 당신은 더 이상 강해질 수 없습니다. 흑천마교를 무너뜨린 공적으로 리히테나워 대공이 되어도, 당신은 아무런 만족을 느끼지 못할 겁니다.”
알베리히는 나와 눈을 마주치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 흑천마교에 오십시오, 에르나스.”
“…….”
“마인의 전통을 계승한 흑천마교에서라면, 당신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 초월적인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인간의 한계를 넘은 초월적인 존재.
마인을 계승하려 하는 흑천마교에서 추구하는 그 경지의 이름은…….
“흑천급(黑天級)… 그래듀에이트 절정급을 넘어서는 초월적 경지에 도달할 수 있게 해 드리겠습니다.”
흑천급.
그것이야말로 흑천마교가 오랫동안 추구해 왔던, 궁극적 존재의 이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