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아카데미에 천재가 있었다-158화 (157/212)

158화 마교 전선 (1)

태양광이 닿지 않는 어딘가.

어두운 공간에 마련된 석제(石製) 탁자를 둘러싸고, 흑의(黑衣)를 걸친 자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르테클라스 대주교, 카톨레아스 대주교에 이어 문하이젠 대주교까지…….”

“믿기지 않아. 일곱 명 있던 대주교 중에서 벌써 세 명이나 당하다니.”

“1년 사이에 이렇게 많은 대주교가 당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지금 대화를 나누는 그들이야말로, 제국 사회를 위협하는 흑천마교의 수뇌부 ‘대주교’들이었다.

그들은 영약 ‘소마’를 한계까지 복용해 그래듀에이트 절정급에 오른 실력자로, 강대한 힘으로 마교도들을 복종시키는 절대 강자였다.

하지만 지금 그들의 표정은 상당히 어두웠다.

황궁에 잠입해 있던 카톨레아스 대주교에 이어, 유스바스트 제후공(諸侯公)과 연계하던 문하이젠 대주교가 쓰러졌다는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그것도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이라는 애송이에 의해서.

“문하이젠 대주교가 마지막으로 전투를 벌인 장소를 조사하니, 급격한 냉기가 휩쓸고 지나간 흔적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말한 건 20대 초중반 정도의 외모를 지닌 여성으로, 흑천마교의 정보 수집을 총괄하는 샤르나드 대주교였다.

젊은 외모를 갖고 있고 실제로 여기 있는 사람 중에서 가장 젊지만, 실제 나이는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많다.

“케르베스트 백화검술을 이어받은 페르디난드는 요양을 위해 아카데미로 돌아갔어. 페르디난드가 그곳에 있었을 리가 없으니, 에르나스가 케르베스트 백화검술을 이어받은 거라 생각해야겠지.”

얼굴에 주름살이 가득한 여성이 팔짱을 낀 채 말했다.

그녀는 흑천마교의 재정을 관리하는 제뉼라 대주교로, 지금 있는 세 사람 중에서는 가장 연장자였다.

“에르나스 그놈… 뭔가 이상하다. 역시 소마를 복용하고 있는 것 아닌가? 엘릭시르만으로는 그런 힘을 얻을 수 없을 텐데.”

험상궂은 외견의 중년 남성이 인상을 찡그렸다.

그는 흑천마교 총본산의 경비 책임자인 폴카 대주교로, 산처럼 커다란 몸집을 지닌 남자였다.

“에르나스가 정말로 강력한 소마를 복용했다면, 아르테클라스 대주교의 본거지를 습격했을 때 입수했을 겁니다.”

“아르테클라스 대주교가 그렇게 강한 소마를 보유하고 있었을까? 지금의 에르나스는 카톨레아스 대주교 수준의 마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 같은데.”

“어딘가에서 독자적으로 소마를 제작하고 있는 것 아닐까?”

샤르나드 대주교, 제뉼라 대주교, 폴카 대주교, 이렇게 셋이서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을 때.

어둠 속에서 느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르나스가 소마를 복용했을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됩니다.”

“……!”

하얀 얼굴을 지닌 장발의 남자가 천천히 다가왔다.

흑천마교의 기술 개발 총괄… 알베리히 대주교였다.

“알베리히 대주교, 그게 무슨 소리죠?”

“샤르나드 대주교라면 알고 계실 텐데요. 아카데미의 페르디난드 교수가 ‘암리타’의 복원을 추진하고 있었다는 것을.”

“아……!”

이미 소실된 고대의 영약 ‘암리타’.

그 복원에 성공했다면, 에르나스의 나이로도 충분히 절정급에 도달할 수 있다.

“다만 카톨레아스 대주교를 능가하는 마력을 갖게 된 거라면… 단순히 암리타를 복용한 것만으로는 어렵겠죠. 암리타를 개량했거나, 어떤 다른 방법을 사용했을 겁니다.”

“그러니까, 어디선가 소마를 구해서 복용한 거 아닌가?”

폴카 대주교의 말에 알베리히가 고개를 저었다.

“소마를 복용해서 그 정도 힘을 얻었다면, 분명 어딘가에서 티가 났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들려오는 얘기를 종합해 볼 때 수상한 부분은 없었습니다.”

“흐음…….”

“우리가 모르는 미지의 부분이 있는 건 확실합니다만, 그걸 에르나스의 약점이라 생각하는 건 관두는 게 좋을 겁니다.”

란즈슈타인 가문의 후계자이자 리히테나워 대공 후보인 에르나스가 소마를 복용했다면 엄청난 문제가 된다.

자칫하면 흑천마교의 동조자로 몰려 제국에서 숙청당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손 안 대고 코 푸는 꼴이라 흑천마교로서는 반가운 일이지만… 지금으로서는 그런 낌새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것보다는 리히테나워 기사단의 동향을 주의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리히테나워 기사단…….”

제뉼라 대주교가 팔짱을 낀 채 말했다.

“알베리히 대주교, 놈들이 정말로 유스바스트의 영지를 수색하기 위해 남쪽으로 내려오고 있는 거라 생각하나?”

“그걸 순순히 믿어서는 안 되겠죠. 남들을 속이기 위한 핑계일 겁니다.”

“그래, 고작 유스바스트의 영지를 수색하기 위해 아그리파 가문과 슈라이에르 가문까지 협조시킬 이유가 없지.”

현재 리히테나워 기사단은 에르나스의 지휘하에 남쪽으로 내려오고 있다.

유스바스트의 영지에서 흑천마교의 흔적을 수색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검술명가들과 싸울 때보다 더 강한 전력이다.

“에르나스는… 이곳 총본산의 위치를 알고 있는 걸지도 몰라.”

“…….”

제뉼라의 발언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동안 계속 숨겨 왔던 총본산의 위치가 어떻게 유출된 건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에르나스가 이곳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든, 대략적인 방향만 알고 있든… 그냥 가만히 숨만 죽이고 있을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알베리히가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카톨레아스 대주교에 이어 문하이젠 대주교까지 당했습니다. 더 이상 에르나스를 내버려 뒀다간 우리가 당합니다.”

“그렇다면…….”

“에르나스 그리고 리히테나워 기사단 말살을 위해… 궐기합시다.”

알베리히의 발언에 나머지 세 명의 눈빛도 달라졌다.

이건 지금까지처럼 여기저기서 비밀리에 음모를 꾸미는 게 아니라 본격적으로 군사를 일으켜 전쟁을 벌이자는 뜻이다.

원래는 황제가 죽고 제국 전체가 더 혼란에 빠진 뒤 궐기할 예정이었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앞당길 수밖에 없다.

“이제야 움직일 수 있게 되었군.”

“더 빨리 결정이 내려졌다면, 문하이젠 대주교도 당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죠.”

제뉼라와 샤르나드가 반가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폴카는 인상을 찡그린 채 알베리히에게 질문을 던졌다.

“알베리히, 이건 총대주교님의 뜻에 부합되는 건가?”

“무슨 뜻에서 하는 말이죠?”

“제국 사회를 최대한 혼란스럽게 만든 뒤 일제 궐기한다는 건 총대주교님이 직접 우리들에게 지시한 방침이었다.”

폴카는 알베리히를 노려보며 물었다.

“이 타이밍에 궐기하는 것이 정말로 총대주교님의 뜻에 맞는 일인가?”

“폴카 대주교, 그러면 이대로 총본산에서 가만히 대기하고 있는 게 맞겠습니까?”

알베리히가 폴카에게 반문했다.

“이대로 에르나스를 내버려 뒀다가 리히테나워 대공으로서 제국을 완전히 지배하면 어떻게 합니까? 우리가 원하는 타이밍이 찾아올까요?”

“그건…….”

“혼란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외부에서 공작 활동을 하는 것도 위험합니다. 카톨레아스 대주교나 문하이젠 대주교처럼 에르나스에게 걸려서 목이 달아날 수도 있으니까요.”

“…….”

“게다가 지금 에르나스가 총본산을 직접 공격하려고 남하하고 있는 거라면… 어차피 맞서 싸워야 합니다.”

알베리히의 설명에 폴카가 입을 다물었다.

그 얼굴을 보면서 알베리히가 미소를 지었다.

“폴카 대주교, 어차피 총대주교님이 지금 이 자리에 계셨어도 같은 판단을 내리셨을 겁니다.”

“함부로 떠들지 마라. 네가 총대주교님의 무엇을 안다고.”

“적어도 여기 있는 그 누구보다 오랜 시간을 함께하고 있습니다만.”

“웃기는군. 너는 그저 유리관 안에 잠들어 있는 총대주교님한테 온갖…….”

그렇게 거친 목소리를 내뱉다가, 폴카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됐다. 여기서 총대주교님을 위해 가장 노력하고 있는 사람한테 이런 소리를 하면 내가 추잡해지는 거지.”

“괜찮습니다, 폴카 대주교.”

“…….”

입을 다물어 버린 폴카 대신 제뉼라가 입을 열었다.

“알베리히 대주교, 총대주교님의 상태는 어떻지?”

“양호합니다, 제뉼라 대주교.”

“서두르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제뉼라가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만약 놈들이 총본산으로 쳐들어올 경우… ‘의식’이 완료되기도 전에 총대주교님을 깨워야 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안 되지요.”

알베리히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니… 우리 모두가 전력을 다해서 에르나스와 리히테나워 기사단을 쳐야 합니다.”

“…….”

알베리히의 말에 나머지 세 사람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알베리히 대주교.”

샤르나드가 알베리히를 쳐다보며 물었다.

“우리가 준비해 둔 그 전력도 투입하는 겁니까?”

“네, 물론이죠.”

알베리히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면 전쟁입니다. 은밀하게 움직일 필요는 없으니… 대대적으로 가도록 하죠.”

알베리히의 단정한 얼굴에 잔혹한 미소가 떠올랐다.

“검사들끼리의 명예로운 싸움만 해 왔던 귀족님들한테는, 조금 버거운 싸움이 될 겁니다.”

* * *

리히테나워 기사단은 신속히 남부 지역을 주파했다.

황제의 명령으로 조직된 기사단이고 국무회의에서 작전 활동을 승인했기 때문에 그 누구도 앞을 가로막지 못했다.

오히려 크고 작은 가문이 앞다투어 보급 물자들을 지원해 주는 상황이었다.

“예전에 남부로 처음 진격했을 때하고는 천지 차이네요.”

“그때는 슈라이에르 가문과 적대하고 있었으니, 가는 곳마다 싸움이 벌어졌죠.”

보급 물자 서류를 확인하면서, 세리느와 클로에가 대화를 나눴다.

현재 두 사람은 기사단장인 에르나스의 최측근 참모 역할을 맡고 있었다.

“이제는 슈라이에르 가문도 우리에게 협조적이고… 어려움 없이 남쪽 변방까지 갈 수 있겠네요.”

“그런 말을 들으니 방해를 하고 싶어지네, 세리느.”

그때 금색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베리스리제가 다가왔다.

그녀는 예전에 아카데미에서 나왔지만, 지금은 슈라이에르 가문의 대표로서 리히테나워 기사단에 참가하고 있는 중이었다.

“너무 여유롭게 생각하고 있는 것 아니야? 흑천마교 놈들도 우리들이 남하하는 걸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을 텐데.”

“그야… 그렇죠.”

“이미 에르나스 님도 그럴 가능성을 언급하셨고 말이죠.”

이 작전의 진짜 목적이 총본산 공략이라는 걸 흑천마교에서 눈치챘다면, 반드시 저지하려 할 것이다.

“저희도 나름대로 대비하고 있으니까 걱정 안 해도 될 거예요, 베리스리제.”

“흥, 글쎄.”

베리스리제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만약 놈들이 남아 있는 전력을 전부 동원해서 전면 전쟁을 시작한다면, 상당히 위험할지도 몰라.”

“전면 전쟁을 펼친다고 해도… 지금 남아 있는 대주교는 서너 명 정도일걸요.”

세리느가 손가락을 꼽으면서 말했다.

“지금 여기에도 절정급이 네 명이나 있어요. 그리고 그중 한 명은… 에르나스고 말이죠.”

단장, 에르나스.

부단장, 브랜틀리.

1부대장, 발렌티아노.

2부대장, 안겔라.

이렇게 네 사람이 현재 리히테나워 기사단에 참가하고 있는 그래듀에이트 절정급이다.

절정급이 네 명이나 있는 이상, 대주교들이 떼거리로 나타나도 두렵지 않다.

“세리느, 전쟁은 절정급들만으로 하는 게 아니야.”

“그건 저도 알아요. 하지만 지금까지의 흑천마교와의 싸움을 생각하면 일반 전투 사제들은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았어요. 오히려 여러 명문가들의 그래듀에이트들이…….”

바로 그때.

남쪽에서 정찰병의 신호용 호각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듣고 세 사람은 작업을 중단한 채 신속히 움직였다.

“에르나스!”

이미 에르나스는 고지대에 올라 남쪽을 살펴보고 있는 중이었다.

에르나스 옆으로 다가간 세리느와 클로에, 베리스리제는 남쪽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숨을 삼켰다.

“저, 저게… 뭐죠?”

남쪽에서 대군(大軍)이 몰려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외견은 평범한 인간과 거리가 있었다.

전신이 거대하고 흉측하게 부풀어 올라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인간보다는 오크나 오거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마교도들이야.”

“에르나스, 저것들이 마교도라고요?”

“그래, 흑천마교에서 특수 제작된 소마를 먹여서 변이시킨 마교도들이지.”

에르나스가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알베리히 대주교… 역시 여기서도 이렇게 나오는 건가.”

“네?”

“세리느, 부대장들에게 전투 준비를 시켜. 인간이 아니라 몬스터 상대의 싸움이라 생각하고 준비하라고 해.”

그렇게 세리느에게 지시를 내린 뒤, 에르나스는 클로에에게 시선을 향했다.

“클로에는 보급 물자를 전해 주던 사람들을 피신시켜. 전투에 휘말리면 골치 아프니까.”

“네, 알겠습니다. 물자는 그냥 두고 가라고 해야겠네요.”

“그리고 베리스리제 너는… 브랜틀리 부단장을 불러와.”

“에르나스, 어쩔 생각이지?”

베리스리제의 질문에 에르나스는 다시 남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저렇게 괴물로 변해 버린 마교도들을 조종하는 존재가 있을 거야. 아마 대주교겠지.”

“대주교라고?”

“신속히 적진을 돌파해 그 대주교를 해치워야 해. 브랜틀리 부단장한테는 미리 얘기를 해 놨으니, 바로 달려올 거야.”

“……!”

이런 전투가 벌어질 거라고 예상한 듯한 에르나스의 발언에, 다들 숨을 삼켰다.

“알베리히 대주교… 네가 무슨 작전을 준비해 놨든 상관없다.”

남쪽을 노려보면서, 에르나스가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모조리 깨부수고 총본산으로 돌입할 테니까.”

남부의 평야를 무대로… 흑천마교와의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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