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클라우비체의 검 (1)
“정말로 언제 봐도 아름다운 성이군.”
아카데미 측의 총지휘관을 맡고 있는 발렌티아노는 하중도(河中島) 위에 세워진 성을 살펴봤다.
지금 아카데미는 슈라이에르 본성을 공략할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욜스 교수, 정말 예술적인 성 아닌가?”
“네, 마치 그림으로 그린 것 같군요.”
옆에 있던 욜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건축이나 예술은 잘 모르지만, 정말로 아름다운 성입니다.”
“흥, 그런 게 무슨 의미가 있나. 공략하기 골치 아픈 성인데.”
코웃음을 치며 투덜거린 건 페르디난드였다.
“강 한가운데에 세워져 있기 때문에 강물이 자연적인 해자 역할을 하지. 성 자체의 방어 시설도 엄청나게 충실해서, 지금까지 한번도 함락당한 적이 없다고 하더군.”
“그러면 이번에 우리가 함락시켜 주면 되는 것이지.”
발렌티아노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동안 함락되지 않은 건, 그만큼 대대적인 공격을 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 아닌가?”
“그건 뭐…….”
“현재 우리들 전력으로 충분히 공략할 수 있을 걸세.”
그렇게 말하며 발렌티아노가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안겔라 교수?”
발레티아노가 시선을 향한 방향에서는, 주위를 살펴 보러 갔던 안겔라가 걸어오고 있었다.
“글쎄요. 성 자체만 보면 우리들만으로 충분히 공략할 수 있겠죠. 아카데미의 지도 교수들이 네 명이나 와있으니까요.”
“그렇지.”
발렌티아노, 페르디난드, 안겔라, 욜스.
현재 아카데미에 남아 있는 지도 교수 전원이 와 있는 상태였다.
그래듀에이트 절정급이 네 명이나 와 있다는 건 확실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클라우비체가 있으니 어쩔지 모르겠군요.”
“클라우비체?”
발렌티아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겔라 교수, 클라우비체가 그렇게 대단한가?”
“직접 나서는 일이 거의 없으니, 여러분들도 클라우비체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르시겠죠.”
안겔라는 남부 출신이다.
슈라이에르 가문과의 인연도 적지 않게 있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우리들 중에 클라우비체와의 일대일 대결에서 패배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음? 그런가?”
“하지만 클라우비체는 우리들 전원과 맞서 싸울 수 있는 그래듀에이트입니다. 그것도 상당히 우위에 서겠죠.”
“아니, 그건 또 무슨 소리인가?”
발렌티아노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말했다.
“한 명이서는 이길 수 있는데, 넷이서는 이길 수 없다는 뜻인가? 그건 너무…….”
“교수님들, 잠시만.”
그때 욜스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클라우비체가 나타난 것 같습니다.”
“……!”
다들 일제히 성을 쳐다봤다.
욜스의 말대로, 성벽 위에 금색 장발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낸 상태였다.
“우리 진영을 직접 살펴보려는 건가?”
“흠, 우리 쪽을 향해 무슨 말을 하려는 걸지도 모르겠군.”
“너무 멀어서 마력으로 시력을 강화해도 표정은 알 수 없군요.”
발렌티아노와 페르디난드, 욜스가 떠들어댔고 옆에 있던 안겔라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실수를 해 버린 것 같군요.”
“안겔라 교수, 무슨 소리지?”
“원래 이 정도면 클라우비체의 공격 범위가 아니었습니다.”
안겔라가 주위를 둘러봤다.
지금 슈라이에르 본성 앞에는 아카데미의 검사들이 진형을 유지한 채 대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클라우비체는 제가 알고 있던 것보다 더 성장한 것 같군요.”
“……!”
그 직후.
성벽 위에서 날아온 칼 한 자루가 아군 진형 한가운데 꽂히며 거대한 폭발을 불러일으켰다.
* * *
쿠쿵!
굉음과 함께 폭발이 발생했다.
평범한 폭발이 아니다. 마력이 부여된 검이 터져 나가면서 사방으로 파편을 흩뿌리는 폭발이었다.
아카데미의 검사들이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지는 모습을 확인하며, 클라우비체는 입을 열었다.
“다음.”
“네, 가주님.”
옆에 있던 루클레치아가 클라우비체에게 검을 건네줬다.
얼핏 보기에는 불량품 같은, 허술해 보이는 검이었다.
하지만 이건 클라우비체가 특별히 제작시킨 검이다.
이 허술해 보이는 검이 클라우비체의 손에 들어가면… 세상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원거리 무기가 된다.
“…….”
클라우비체는 마치 찌르기를 하려는 것처럼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허공을 향해 팔을 뻗자, 검이 클라우비체의 손에서 벗어나 사출되었다.
검은 그대로 하늘을 가르고 날아가, 강 너머에 있는 아카데미 검사들 사이로 떨어졌다.
“훌륭하십니다, 가주님.”
쿠웅!
검으로 직접 적을 명중시킬 필요는 없었다.
마력이 실린 칼날이 사방으로 터져나가며 주위의 적들을 덮치기 때문이다.
호신기를 쓰지 못하는 그래듀에이트 하급 이하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게 된다.
“다음.”
“네, 가주님.”
루클레치아에게 다음 검을 받아 들었을 때.
아카데미의 검사들이 다급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뒤로 물러서지는 않았다. 오히려 성으로 달려들고 있었다.
이렇게 된 이상 바로 공성전을 시작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 듯했다.
“어리석은 것들.”
남들보다 앞서 나오는 그래듀에이트들이 있었다.
움직임을 보니 욜스 칼레시우스와 안겔라 베르틴스키인 것 같았다.
클라우비체가 검을 날리면 맞받아치려는 건지, 고개를 치켜들고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내가 펼치는 슈라이에르 비격검술(飛擊劍術)에 대항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클라우비체는 옆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준비되어 있던 검들이 저절로 하늘로 떠올랐다.
직접 손을 대지도 않은 채, 클라우비체는 검 네 자루를 동시에 사출했다.
“건방지구나.”
쿠쿠쿠쿵!
폭발에 휘말린 욜스와 안겔라가 주춤하는 모습이 보였다.
두 명 다 절정급의 그래듀에이트이기 때문에 즉사시키는 건 어렵지만… 클라우비체는 그들을 막아 낼 자신이 있었다.
“루클레치아, 슬슬 이쪽도 공격을 개시하라고 전달해라.”
“네, 가주님의 명령을 전달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슈라이에르 가문은 아카데미 상대로 연전연패를 거듭했지만, 아직도 병력은 많이 남아 있다.
클라우비체까지 전장에 나섰으니, 패배는 있을 수 없다.
“절정급의 교수 네 명이 있다고 했지.”
클라우비체는 코웃음을 쳤다.
“그게 다 무슨 소용이냐. 검이 닿지 않으면 아무 의미 없는 것을.”
난공불락의 슈라이에르 본성에서 쏟아지는, 슈라이에르 비격검술의 폭격.
아무리 날고 기는 그래듀에이트 절정급이라고 해도… 이걸 뚫기는 어려울 것이다.
* * *
“큭……!”
“욜스 교수!”
욜스가 폭발에 휘말리는 모습을 보고, 발렌티아노가 목소리를 높였다.
“괜찮은가?!”
“걱정 마십시오. 크게 다치지는 않았습니다.”
이마에서 피를 흘리며 욜스가 대답했다.
호신기로 방어하고 있기에 망정이지, 자칫하면 일격에 즉사했을 것이다.
“슈라이에르 비격검술… 이 정도 위력일 줄은 몰랐군요.”
“젠장, 안겔라 교수 말대로 우리 네 명을 동시에 상대하면서 우위를 점하고 있군.”
클라우비체가 어떤 스타일의 검사인지는 발렌티아노나 욜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 압도적일 거라고는 상상 못 했다.
“안겔라 교수, 돌파할 수 있겠나?”
“글쎄요.”
안겔라가 이쪽으로 날아오는 검을 막아 내며 대답했다.
“제가 알던 것보다 더 위협적이라,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큭…….”
여기 있는 교수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경신술 실력을 지닌 건 안겔라였다.
그 안겔라도 돌파하기 어렵다면, 누구도 돌파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지금까지 공성전을 여러 번 치렀지만, 이번만큼은 다르군…….”
그동안 아카데미는 절정급의 그래듀에이트를 앞세워서 연전연승했다.
아무리 대단한 요새가 있어도 욜스나 안겔라가 뛰어 올라가면 공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클라우비체라는 막강한 존재가 그런 전술을 원천 차단하고 있는 상태였다.
“클라우비체는 대체 왜 지금까지 나서지 않은 겁니까? 처음부터 전장에 나섰다면…….”
“직접 나서는 걸 싫어하는 인물이라 그렇지. 마지막 순간까지 안전한 곳에 틀어박혀 있을 성격이야.”
안겔라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철저히 자기 안위만 생각하는 인물이지.”
“거참…….”
“그래도 클라우비체가 직접 나섰다는 건 그만큼 궁지에 몰렸다는 뜻이다. 그러니… 윽!”
쿠쿠쿵!
클라우비체의 공격이 한층 거세지기 시작했다.
아까하고는 다른 종류의 검을 날리고 있는 것 같았다.
“위력이 더 강해졌군……!”
발렌티아노가 신음하면서 검을 휘둘렀다.
날아오는 검을 충분히 처리하지 못하면 아군이 큰 피해를 입기 때문에, 그래듀에이트 절정급인 교수들이 최대한 처리해 줘야 했다.
“성벽 아래에 붙기만 해도 훨씬 상황은 나아질 걸세! 자칫하면 성벽을 무너뜨릴 수 있으니, 클라우비체도 지금처럼 무차별 공격을 하지는 못할 터……!”
“하지만, 성벽 아래까지 가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군요! 크윽……!”
쿵! 쿠쿵! 콰앙!
연속해서 쏟아지는 폭격에 다들 신음하고 있었을 때.
조금 떨어진 곳에서 움직이고 있던 페르디난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조심해라! 호신기를 최대한 두텁게 해!”
페르디난드가 다급히 소리쳤다.
“클라우비체 놈이 새로운 검을 꺼냈다!”
“……!”
그 말에 다들 클라우비체를 다시금 살폈다.
아까보다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클라우비체가 무슨 검을 들고 있는지도 잘 보였다.
그 검은… 찬란한 은백색의 검이었다.
“진은(眞銀)으로 만든 검이다! 놈은 어검술을 쓰려고 한다!”
“……!”
파앗!
지금까지하고는 다른 소리를 내면서 은백색의 검이 사출되었다.
방금 전처럼 직선으로 날아와 폭발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궤도를 그리며 날아와 아군을 꿰뚫었다.
“으윽!”
“아악……!”
은백색으로 빛나는 검이 종횡무진 전장을 휘젓고 다니며 아카데미의 검사들을 쓰러뜨렸다.
여기 있는 교수들 중에도 어검술을 쓸 수 있는 교수가 있지만, 이렇게 먼 거리에 있는 적을 자유자재로 학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욜스!”
“제가 막겠… 윽!”
쿠웅!
추가로 날아온 검이 커다란 폭발을 일으켰다.
“젠장, 클라우비체 이 자식, 엄청난 고가의 그래듀에이트 전용검까지 일회용으로 날리고 있… 커억!”
“페르디난드 교수!”
클라우비체가 계속해서 쏟아붓는 원거리 공격에 점점 피해가 커지고 있었다.
게다가…….
“성에서 검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
설상가상으로, 성문이 열리며 슈라이에르 가문의 병력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슈라이에르 본성을 지키고 있던 검사들이니만큼, 지금까지 상대했던 적들보다 정예일 터.
클라우비체의 원거리 공격을 막으면서 저들을 상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큭, 이러면 일단 후퇴를 해서…….”
발렌티아노가 후퇴를 고민하고 있었을 때.
이번에는 후방에서 함성 소리가 들렸다.
“설마……!”
아카데미의 병력이 도착하기 전에 미리 병력 일부를 내보내 숨겨 놓았던 걸까.
후방에서도 슈라이에르 가문의 병력이 몰려들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후퇴하는 것도 불가능해진다.
“어떻게 이런 일이……!”
남부 지역으로 진군한 이래, 아카데미는 계속 승승장구해 왔다.
그런데 오늘 갑자기 전멸의 위기에 놓인 것이다.
이것이 슈라이에르 가문의 저력… 아니, 클라우비체 슈라이에르의 저력인 걸까.
“클라우비체가 직접 전장에 나선 것만으로, 이렇게 달라지다니……!”
클라우비체를 너무 얕봤다.
그 사실을 뼈저리게 후회하면서, 발렌티아노는 입술을 깨물고 있었을 때.
어디선가 엄청난 굉음이 울려 퍼졌다.
클라우비체의 공격이 또 아군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힌 걸까.
“어디냐?!”
하지만, 소리가 들려온 곳은 전방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슈라이에르 본성 내부였다.
“……!”
그리고, 발렌티아노는 목격했다.
슈라이에르 본성 안쪽에 있는 망루 하나가 무너져 내리는 것을.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대체 누가…….”
주위를 둘러봤지만, 다른 교수들의 공격은 아닌 것 같았다.
혹시 하인리히의 짓인가 했지만, 하인리히는 지금 성문에서 나오는 병력을 막는 중이었다.
“그렇다면…….”
“누구겠습니까.”
그때 욜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클라우비체의 일방적인 공격에 피투성이가 된 상태였지만, 욜스는 언제부터인가 웃고 있었다.
“마침내… 에르나스가 도착한 것이지요.”
“……!”
콰앙!
폭삭 주저앉는 망루 위에서, 금색의 검기가 번뜩이는 모습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