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아카데미에 천재가 있었다-106화 (106/212)

106화 페르디난드의 창고 (2)

끼익.

커다란 철문을 열자, 페르디난드 클래스의 지하 창고가 나타났다.

페르디난드는 앞장서서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너도 알고 있겠지만, 내 연구는 아카데미 상층부에서 안 좋은 얘기를 많이 듣는다.”

“교수님도 상층부에 속하시는 것 아닙니까?”

“말꼬리 잡지 마라.”

페르디난드가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기껏 연구를 해도 현대에 통용되지 않는 게 너무 많다. 그러니 예산을 따내기 힘들지.”

“그래서 부하 교수들을 시켜서 외부에서 돈을 벌어 오게 하시는 거죠.”

“그래, 그렇게 해서 벌어들인 돈을 모조리 쏟아부어서 겨우 얻어 낸 성과가…….”

창고 안을 쓱 훑어보면서 페르디난드가 내뱉었다.

“이 잡동사니들이다.”

“…….”

“쓸 만한 것들은 전부 내 손을 떠났다. 여기 있는 것들은 ‘쓸모없다.’라는 결론이 내려진 것들이지.”

쓸모 있는 것들은 전부 아카데미 곳곳에서 활용되고 있다.

철혈동에 배치되어 있던 골렘들처럼 말이다.

“이 중에 너한테 유용한 게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네 마음에 드는 게 있다면… 얼마든지 가져가도록 해라.”

“괜찮겠습니까?”

“말했지 않나. 쓸모없는 잡동사니라고.”

페르디난드가 어깨를 으쓱했다.

“더 이상 연구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어 여기에 처박아 놓은 것들이다. 네 마음대로 해라.”

“알겠습니다.”

나는 창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창고에 쌓여 있는 물건 중 절반은 무기나 방어구였다. 현대에 만든 것보다 성능이 떨어져 그냥 여기다가 보관만 해 놓은 것이다.

‘실용성은 없어도 역사적 가치는 있을 테니… 박물관 같은 곳에 전시하면 좋을 텐데 말이야.’

이 세계에도 박물관 같은 게 있을까.

잘 모르겠다.

소설을 쓰면서 설정해 놓은 부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옛 검술을 적어 놓은 교본 같은 것도 있고…….’

가끔 소설에서 옛 비급을 얻어 강력한 힘을 손에 넣는 전개가 나오곤 한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는 다르다. 천 년 동안 계속 검술이 발전되어 왔기 때문에 현대 검술이 더 강하다.

물론, 정말로 강력한 고대 검술이 없는 건 아니지만… 여기에 그런 검술을 배울 수 있는 비급은 없다.

‘여기서 내가 찾아야 하는 건…….’

솔직히 대부분의 유물은 눈으로 봐도 뭐가 뭔지 알 수 없다.

내가 알 수 있는 건 소설에서 묘사된 것뿐이다.

‘아, 저기 있군.’

나는 커다란 유리 상자를 발견했다.

바로 가까이 가자 뒤에서 페르디난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쯧쯧, 겉모습에 현혹된 모양이군.”

페르디난드가 혀를 차며 다가왔다.

“이건 정말로 아무 쓸모 없는 물건이다. 겉모습만 휘황찬란하지.”

유리 상자 안에 들어있던 건, 금색으로 빛나는 검이었다.

“황금과 보석으로 장식을 해 놨지만… 이것 봐라.”

페르디난드가 유리 상자를 열어 검을 집어 들었다.

“전혀 날카롭지 않다. 이런 걸로는 아무것도 벨 수 없어.”

그렇게 말한 뒤, 페르디난드가 검에 마력을 흘려 보냈다.

“그렇다고 해서 검기에 잘 반응하는 것도 아니지. 평범한 검보다 못하다.”

검기를 거둬들인 뒤, 페르디난드가 나한테 검을 넘겨줬다.

“칼날에 새겨져 있는 무늬에 무슨 의미가 있는 것 같긴 한데, 아무리 연구해도 뭔지는 밝혀내지 못했다.”

“…….”

나는 검을 받아들고 이리저리 살폈다.

페르디난드의 말대로 표면에 기하학적인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화려한 걸 보니 높은 신분의 사람이 사용하던 의장용 검일 것 같더군. 어쨌든 쓸모는 없…….”

“교수님, 잠시만요.”

페르디난드의 말을 중간에 끊은 뒤, 나는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 표면에 새겨져 있는 무늬를 따라… 마력을 흘려 보냈다.

“……!”

페르디난드가 흠칫 놀랐다.

표면의 무늬가 푸르스름하게 빛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는 무늬 바깥으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계속해서 마력을 주입했다.

이윽고 표면의 무늬 전체에 마력이 전달되면서 찬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칼날 전체가 아니라, 칼날에 새겨진 무늬에만 마력을? 어떻게 그런…….”

“칼날이 아닙니다, 교수님.”

당혹스러워하는 페르디난드에게, 차분히 설명해 줬다.

“이것은 칼집입니다.”

“뭐, 뭐라고?!”

철컥.

잠금 장치가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표면을 붙잡은 채 칼자루를 잡아당기자, 스륵 소리와 함께 ‘진짜 검’이 뽑혀 나왔다.

“이게 진짜 칼날입니다.”

“……!”

찬란하게 은백색으로 빛나는, 날카로운 검.

그 모습에 페르디난드가 눈을 크게 떴다.

경악을 금치 못하는 모습이었다.

“에, 에르나스! 이 녀석, 이걸 어떻게 알고 있던 거냐?!”

“책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런 식의 잠금 장치가 먼 옛날에 사용되었다고 적혀 있었죠.”

물론, 그런 책을 읽어 본 적은 없다.

소설 속에 나온 내용이라 알고 있을 뿐이다.

“대체 무슨 책이냐? 나는 전혀 처음 들어 보는…….”

“교수님, 여기 칼날에 무슨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읽을 수 있으십니까?”

“글자? 어디 보자…….”

페르디난드가 칼날 아랫부분에 새겨진 글자를 살펴봤다.

“진은(眞銀)… 진은으로 만든 검이었군!”

“뭡니까, 그게.”

“마력을 증폭해 주는 은색 금속 ‘미스릴’이다! 지금은 어디서도 채굴할 수 없고, 고대의 유물만 남아 있지! 진은으로 만든 검은 나도 처음 본다!”

“대단한 금속인가 보군요.”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행세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잘 알고 있었다.

이 진은검(眞銀劍)은 소설 후반부에서 주인공 아칸델이 입수하여 사용하는 무기이기 때문이다.

“대단하고말고! 이건…….”

“일단 검기부터 전개해 보지요.”

흥분한 페르디난드를 무시하고, 마력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즉각 검기가 전개되었다.

“오오……!”

페르디난드가 한눈에 알아보고 탄성을 질렀다.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다.

“검기가 평소보다 더 강하게 전개되는 느낌입니다. 정말로 마력을 증폭해 주는 것 같군요.”

“그, 그래! 잠깐 줘 봐라!”

이번에는 페르디난드가 나한테서 빼앗아 검기를 전개했다.

페르디난드도 명색이 그래듀에이트 절정급이기 때문에, 날카롭고 뚜렷한 검기가 전개되었다.

“훌륭하군! 마력을 제대로 증폭해 주고 있다!”

“그렇죠?”

“음, 하지만… 아주 민감하군. 마력을 제어하는 실력이 부족하면 금방 검기가 흐트러지겠어.”

페르디난드가 마력의 흐름을 살짝 바꾸니, 금방 검기가 일그러졌다.

“이것 봐라. 약간만 느슨하게 했는데 바로 이렇게 된다.”

“네, 그런 것 같았습니다.”

“자칫하면 칼날 위에서 마력이 폭주하겠군.”

소설에서도 다루기 어려운 검으로 묘사되었다.

내가 그래듀에이트 상급이기에 망정이지, 중급만 되었어도 검기가 폭주했을 것이다.

“좀 연습이 필요하겠군요. 갖고 가서 이것저것 시험해 보겠습니다.”

“앗…….”

내가 진은검을 빼앗아 가자, 페르디난드가 눈을 크게 떴다.

“왜 그러십니까?”

“가져가겠다고?”

“마음에 드는 건 얼마든지 가져가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크윽…….”

페르디난드가 입술을 깨물며 신음했다.

“에르나스, 진은으로 만든 검은 엄청난 가치를 지닌다. 그걸 그냥 가져가면…….”

“칼집은 드리겠습니다. 너무 화려해서 바깥에 들고 다닐 수 없을 것 같으니.”

“젠장, 칼집은 필요 없단 말이다!”

욕설을 내뱉으며 페르디난드가 화를 냈다.

“이미 한번 했던 말을 뒤집을 수도 없고… 빌어먹을!”

“감사히 쓰겠습니다, 교수님.”

“으으윽……!”

페르디난드는 이를 악물고 신음했다.

정말로 속상해하고 있는 것 같아서 살짝 미안해졌다.

“에, 에르나스, 혹시 이 창고에 있는 물건 중에 다른 가치 있는 건 없나? 너한테 필요는 없는 물건으로 말이다.”

“제가 무슨 감정사도 아니고, 그런 걸 어떻게 압니까.”

“이 진은검은 찾아냈잖아!”

“우연히 얻어걸린 거라…….”

“크윽……!”

마음만 같아서는 뭐든지 하나라도 찾아 주고 싶었지만, 정말로 아는 게 없었다.

“젠장, 나는 올라가서 암리타 연구나 해야겠다…….”

“수고하십시오, 교수님.”

암리타 연구는 나한테도 필요한 일이기 때문에… 나는 교수실로 돌아가는 페르디난드를 진심으로 응원했다.

‘그러면… 이걸로 준비는 다 끝난 건가.’

파천검강도 완성했고, 그 위력을 극대화해 줄 진은검도 입수했다.

페르디난드 클래스의 전공생이 되어, 움직이기도 편해졌다.

‘그렇다면 이제… 슬슬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겠지.’

지금쯤 클라우비체 슈라이에르가 나를 제거하기 위해 책략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소용없는 짓이다.

‘클라우비체, 네가 주도권을 잡을 일은 없을 거다.’

격변하는 제국 정세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나는 책략을 펼치기로 했다.

* * *

남부에 위치한 슈라이에르 가문의 성.

그곳에서는 가주인 클라우비체 슈라이에르가 장거리 통신 마법으로 전송된 편지를 살펴보고 있었다.

‘베리스리제가 간만에 쓸 만한 정보를 보내 줬군.’

이 편지는 아카데미에 재학 중인 클라우비체의 딸, 베리스리제가 보내 준 것이었다.

‘에르나스가 페르디난드 클래스의 수련생이 되었다, 자기 뜻대로 움직이기 위한 선택으로 보인다…….’

페르디난드 클래스는 고고학 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클래스다.

하지만 에르나스가 고대 유물 같은 것에 관심이 있어서 페르디난드 클래스로 들어간 건 아닐 것이다.

‘베리스리제의 의견대로, 지도 교수에게 휘둘리지 않고 마음껏 움직이기 위한 선택이겠지.’

에르나스는 리히테나워 대공의 자리를 노리는 인물이다.

게다가 미하일 발트펠트를 쓰러뜨려서 세간의 주목도도 크게 높아진 상황.

지금 한가하게 고대 유물이나 찾아다니고 있을 때가 아니다.

‘가만있자, 아카데미 바깥을 자유롭게 돌아다니기 위한 건가?’

페르디난드 클래스는 고대 유물을 찾기 위해 세계 각지를 탐색하곤 한다.

아카데미 바깥을 자유롭게 돌아다니기 위해 페르디난드 클래스에 들어간 걸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보통 녀석이 아니군.’

에르나스가 페르디난드 클래스를 선택할 거라고는 클라우비체도 예상하지 못했다.

역시… 위험한 놈이다.

‘되도록 빨리 해치워 버려야겠어.’

클라우비체는 에르나스를 죽이기로 마음먹은 상태였다.

이미 심복인 루클레치아를 혈검장로회에 보낸 상태이며, 교섭이 끝나는 대로 암살자들을 파견할 수 있을 것이다.

‘아카데미 안으로 암살자를 들여보내는 건 위험하다. 에르나스가 바깥으로 나왔을 때 습격하도록 해야겠지.’

클라우비체가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을 때.

집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가주님, 궁내부에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궁내부?”

궁내부에서 이 타이밍에 왜 찾아온단 말인가.

리히테나워 대공 관련은 아닐 테고.

“무슨 용무라고 하더냐?”

“그것이… 매우 중대한 일이라, 직접 말씀드려야 한다고 하십니다.”

“매우 중대한 일?”

클라우비체는 인상을 찡그렸다.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 * *

“아버지, 무슨 일이십니까?”

아버지인 칼레온의 호출을 받고, 루퍼스는 칼레온 클래스의 지도 교수실에 발을 들였다.

“다른 녀석들과의 동맹 얘기라면 이미…….”

“그것 때문이 아니다. 자리에 앉아라.”

칼레온은 평소보다 심각한 표정이었다.

“이번에 궁내부에서 연락이 왔다.”

“궁내부에서?”

아버지의 말을 듣고 루퍼스는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설마 리히테나워 대공을 확정하기로 했다는 얘기입니까?!”

“그런 게 아니다. 진정해라.”

“죄, 죄송합니다.”

“너희들하고 직접적으로 관계 있는 얘기는 아니다. 오히려 우리들과 관련이 있지.”

“네?”

우리들.

그게 뭘 가리키는 말일까.

“너도 알고 있듯이, 최근 제국 사회는 크게 흔들리고 있다.”

“아, 네…….”

일단 랭커스터 가문이 몰락했고, 발트펠트 가문이 전란을 일으켰다가 패배했다.

황제의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기밀이 세상에 알려졌으며, 차기 황제를 보필하기 위해 리히테나워 대공을 선출하기로 했다는 것도 드러났다.

“궁내부에서는 이런 상황의 타개책을 마련하기 위해, 우리들에게 6검 회의의 개최를 요청했다.”

“6검 회의?”

“6대 검술명가의 가주들이 한곳에 모이는 회의다. 물론, 투옥되어 있는 헨리 랭커스터와 이미 사망한 미하일 발트펠트는 참가하지 못하겠지.”

“그, 그러면……!”

루퍼스는 침을 삼켰다.

“이그니아스 가문, 아그리파 가문, 슈라이에르 가문 그리고 란즈슈타인 가문까지… 현재 남아 있는 4개 가문의 가주가 집결하게 된다는 말입니까?”

“그렇지.”

여기 있는 칼레온을 포함한, 검술명가의 가주들이 한자리에 집결한다.

이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궁내부에서는 우리 검술명가들이 힘을 합쳐 이 혼란을 수습해 주길 바라고 있다. 하지만…….”

칼레온이 인상을 찡그렸다.

“장담컨대, 궁내부 의도와는 다른 결과가 나올 거다.”

“……!”

그렇다.

다들 제국의 패권을 놓고 경쟁하는 사이인데, 화기애애하게 향후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가 될 리가 없다.

한자리에 모아 놓으면 더 큰 혼란이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칫하면 이 회의를 계기로 전면 전쟁이 시작될 수도 있다.

“대체 어떤 정신 나간 사람이 이 시점에 이런 회의를 추진한 건지 모르겠군.”

“아, 아버지…….”

“네가 참석할 일은 없지만, 각오해 두는 게 좋을 거다.”

칼레온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6검 회의 이후, 제국 사회에는 대격변이 일어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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