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아카데미에 천재가 있었다-105화 (105/212)

105화 페르디난드의 창고 (1)

페르디난드 클래스는 학생들이 기피하는 클래스다.

검술을 제대로 가르쳐 주지도 않고, 학생들을 부려 먹기만 하기 때문이다.

지도 교수인 페르디난드는 절정급의 그래듀에이트지만, 검술 교육에는 관심이 없고 고고학 연구에만 열중하고 있다.

페르디난드 클래스에 들어가 봤자 검사로서 성장하는 데는 도움이 안 되기 때문에, 학생들 입장에서는 매력을 느끼기 어렵다.

“네가 이 클래스에 들어온다고? 앞날이 창창한 놈이?”

그렇기에, 페르디난드는 내 말을 듣고 당혹스러워했다.

“페르디난드 클래스에 들어와서 너한테 이득될 게 뭐가 있다고? 그럴 만한 이유가 없잖아?”

“고고학에 관심이 있어서 말입니다.”

“거짓말하지 마라, 짜증 나는 녀석.”

페르디난드가 인상을 찡그렸다.

“이봐, 에르나스. 너는 지금 리히테나워 대공에 가장 가까운 녀석이다.”

“그렇죠.”

“힘을 기르고 세력을 키워야 하는 상황이지. 그러려면 발렌티아노 교수처럼 큰 힘을 갖고 있는 교수들과 손을 잡는 게 정답이다.”

발렌티아노 클래스는 아카데미에서 가장 힘이 있는 클래스다.

발렌티아노 본인도 아카데미 교수들 중에서 가장 명망이 높다.

내가 발렌티아노 클래스에 들어간다면 아주 든든한 아군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이제는 네 행보 하나하나가 정치적인 의미를 갖는다.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란 말이다.”

“그렇긴 합니다.”

“페르디난드 클래스에 들어와 봤자, 너한테 이득 될 건 하나도 없다. 나는 아카데미에서의 입지도 별로 좋지 않고, 너를 지원해 줄 수 있는 게 없단 말이다.”

페르디난드는 고고학을 연구하지만, 기본적으로 아카데미는 ‘힘’을 추구하는 곳이다.

예를 들어 오랜 노력 끝에 고대 검술의 비급을 찾아냈다고 해 보자.

그런데 그 검술이 현대 검술보다 나을 게 없다면, 아카데미가 보기에는 아무 쓰잘데기 없는 헛수고를 한 것이다.

이렇게 허탕을 칠 경우가 많기 때문에, 페르디난드 클래스는 아카데미에서 입지가 별로 좋지 않았다.

“나는 정치와 거리가 먼 인물이다. 내가 관심 있는 분야에 열중할 뿐이라, 네 미래에 도움이 안 될 거다. 그러니…….”

“제 미래를 진지하게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수님.”

“뭐, 뭔 소리냐! 너 같은 녀석을 내가 왜 걱정해!”

페르디난드가 인상을 찡그리며 소리쳤다.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교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발렌티아노 클래스를 등에 업으면 저한테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그래! 그러니…….”

“하지만, 발렌티아노 클래스도 저를 등에 업게 되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뭐, 뭐라고?”

눈을 크게 뜨는 페르디난드 앞에서, 나는 천천히 설명해 줬다.

“제가 발렌티아노 클래스에 들어간다면, 발렌티아노 클래스는 리히테나워 대공 후보가 소속된 클래스가 됩니다. 존재감이 커지고, 강력한 영향력을 갖게 되죠.”

“……!”

“안 그래도 발렌티아노 클래스는 아카데미의 최대 파벌입니다. 여기서 제가 발렌티아노 클래스에 힘을 실어 준다면, 아카데미를 넘어서 제국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세력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죠.”

제국의 명문가들을 살펴보면, 발렌티아노 클래스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이 많다.

그들까지 발렌티아노 클래스를 중심으로 집결하면 정말로 거대한 정치 세력이 된다.

“제가 훗날 리히테나워 대공이 되면, 발렌티아노 교수님은 ‘리히테나워 대공의 스승’으로서 제국 최고의 명사가 될 겁니다. 그 측근들도 영향력이 강해질 테고요.”

“으음…….”

“그건 제가 바라는 바가 아닙니다.”

다른 클래스들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절정급의 교수들이 이끌고 있으니, 다들 강력한 정치 세력으로 성장할 가능성을 갖고 있다.

“잠깐, 그러면 욜스 클래스는 어떠냐? 권력에 관심이 없는 욜스 교수라면 그런 일이 벌어질 일도 없을 텐데?”

“욜스 클래스는… 이런 말씀 드리기 뭣하지만, 아직 부실해서 말입니다.”

욜스 클래스는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지금쯤이면 건물 공사도 끝나고 교직원도 확보했겠지만, 그래도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을 것이다.

“제가 그곳에 들어가면 클래스를 정비하는 걸 도와드려야 할 겁니다.”

“으음, 그런가…….”

고개를 끄덕이는 페르디난드를 보면서, 나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교수님, 저는 특정 클래스의 세력을 등에 업고 몸집을 키울 생각이 없습니다.”

“…….”

“저는 소속된 클래스와 적정 거리를 유지할 생각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페르디난드 클래스가 최선입니다.”

내 말을 듣고, 페르디난드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결국 내가 권력과 거리가 멀기 때문에 페르디난드 클래스에 들어오겠다는 얘기로군. 네가 나중에 리히테나워 대공이 된다고 해도, 내가 너와의 인연을 내세우며 위세를 부리지는 않을 거라 생각하는 건가.”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내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하지만, 네가 단순히 그런 이유만으로 내 클래스에 들어오려고 할 것 같지는 않다.”

“…….”

“페르디난드 클래스에 소속되는 것으로, 네가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있겠지.”

외눈 안경을 낀 눈으로 나를 응시하며, 페르디난드가 물었다.

“너한테는 어떤 점이 이득이지?”

“명확한 이득이 있습니다.”

“말해 봐라.”

나는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근처에 있던 암리타 관련 자료를 보며 말했다.

“페르디난드 클래스는 고고학을 연구하는 클래스입니다. 결과물이 신통치 않은 경우가 많지만… 가끔 대단한 성과를 이룩하기도 하죠.”

“…….”

“이번에 철혈동에서 골렘과 싸우면서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고대 유산을 더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입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손가락에 낀 유스레흐트를 의식했다.

이 엄청난 물건 또한, 고대의 아티팩트다.

“기존 아카데미 교육과정을 통해서는 얻을 수 없는 새로운 힘… 페르디난드 클래스에서 그런 힘을 얻어 내고 싶습니다.”

지금 페르디난드가 연구하고 있는 암리타뿐만이 아니다.

소설 속에 나온 여러 가지 고대 유물들에 가장 빨리 접근하기 위해서는, 페르디난드 클래스에 소속되는 것이 최선이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교수님.”

“에르나스, 네 녀석…….”

“페르디난드 클래스에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

진지하게 부탁하는 내 얼굴을 보면서, 페르디난드의 눈동자가 떨렸다.

* * *

결국, 페르디난드는 나를 받아들여 주기로 했다.

앞으로 다른 교수들한테 시달릴 것 같다고 투덜거리긴 했지만 말이다.

‘페르디난드 앞에서는 말하지 않았지만… 사실 선택지가 없었어.’

페르디난드한테는 정치적 판단으로 다른 클래스들을 배제했다고 말했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나 자신의 성장을 위해서는, 특정 클래스 전속이 되는 건 피해야 하니까.’

특정 클래스 전속이 되면, 그 클래스에서 추구하는 검술을 중점적으로 수련하게 된다.

하지만 나는 특정 스타일에 구애받고 싶지 않다.

다양한 검술을 조합하여 사용하는 것이 내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완성한 파천검강처럼 나만의 검술도 만들어 나가야 하는데, 특정 클래스에 소속되는 건 별 도움이 안 된다.

‘교수들 앞에서 그런 걸 연습할 수도 없거든. 대체 어디서 그런 검술을 배웠냐고 추궁당할 수도 있고.’

그런 관점에서 볼 때, 페르디난드 클래스는 내가 자유롭게 검술을 수련할 수 있는 곳이다.

교수들이 검술 교육에는 별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마음대로 검술을 수련하면서, 암리타를 비롯한 페르디난드 클래스의 연구 성과를 받아먹으면 된다.

‘어쨌든… 한동안 소란스럽겠군.’

내가 페르디난드 클래스를 선택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아카데미는 한동안 시끌벅적할 것이다.

다른 클래스의 지도 교수들뿐만 아니라, 학생들도 놀라워할 테니까.

* * *

“에르나스가 페르디난드 클래스를 선택하다니…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군.”

기숙사 근처의 숲속.

그곳에는 루퍼스, 베리스리제 그리고 하인리히가 모여 있었다.

에르나스를 제외한 검술명가의 후계자들이 집결해 있는 상태였다.

“베리스리제, 혹시 들은 것 있나?”

“내가 들은 게 뭐가 있겠어.”

“세리느 바스티안과 룸메이트이지 않나.”

“그 녀석이 에르나스의 정보를 나한테 흘려 줄 이유가 없잖아.”

루퍼스에게 그렇게 대꾸한 뒤, 베리스리제가 하인리히를 쳐다봤다.

“하인리히, 너는 어떻게 생각하지?”

“…….”

발트펠트 잔당의 토벌을 마치고 복귀한 하인리히는 아까부터 계속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베리스리제의 질문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도 교수에게 주도권을 넘겨줄 생각이 없는 거겠지.”

“주도권?”

“다른 클래스 전속이 되면 지도 교수의 지휘를 받게 된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그 교수의 아랫사람이 되는 거지. 결국 교수에게 주도권을 빼앗겨 행동에 제약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하인리히가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페르디난드 교수는 에르나스가 어떤 행보를 보이든 간섭할 사람이 아니다. 결국 에르나스는 주도권을 빼앗기는 일 없이 자기 마음대로 활동할 수 있는 거다.”

“그렇다면…….”

“놈은 앞으로 더 적극적인 행보를 보일 거다. 리히테나워 대공의 자리를 손에 넣기 위해.”

“……!”

하인리히의 분석에 베리스리제가 숨을 삼켰다.

루퍼스도 인상을 찡그리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페르디난드 클래스를 선택한 건 더욱 광폭적인 행보를 위한 포석이라는 건가. 역시 보통 놈이 아니군.”

“쯧, 짜증 나는 녀석.”

“베리스리제, 하인리히.”

루퍼스가 다른 두 사람을 쳐다보며 말했다.

“솔직히 말하겠다. 우리들이 자력으로 에르나스를 꺾는 건 어렵다.”

“잠깐,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베리스리제가 눈을 치켜뜨고 루퍼스를 노려봤다.

“실망스럽네. 언제부터 그렇게 겁쟁이가 됐지?”

“현실을 냉정히 파악했을 뿐이다, 베리스리제.”

루퍼스가 인상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놈은 미하일 발트펠트도 쓰러뜨렸다.”

“욜스 교수와 함께 협공했던 거잖아? 혼자서 쓰러뜨린 게 아니야.”

“그건 그렇지. 하지만 우리였다면 그 싸움에 끼어들지도 못했을 것이다. 협공은커녕… 목숨을 부지하기도 어려웠겠지.”

“그건…….”

“에르나스는 이미 그래듀에이트 상급 수준이다. 그렇게 판단해야 한다.”

“……!”

“아직 그래듀에이트 중급에도 도달하지 못한 우리들하고는 너무 큰 차이다.”

루퍼스의 말에 베리스리제가 다급히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다고 에르나스한테 패배했다는 걸 인정하자는 거야?”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다.”

“그러면 뭔데?”

“에르나스에 맞서, 우리 셋이 손을 잡자는 얘기다.”

루퍼스가 베리스리제와 하인리히를 쳐다보며 말했다.

“혼자서 에르나스를 당해 내기는 어려워도, 셋이 힘을 합치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루퍼스, 너…….”

“이미 레스터와 고르트가 탈락했다. 누군가가 또 탈락하기 전에, 에르나스의 독주를 막아야 한다.”

“…….”

본래 루퍼스는 정정당당한 일대일 승부를 선호하는 남자였다.

그런 루퍼스가 이런 얘기를 할 정도로, 에르나스와의 격차가 큰 상황이었다.

“하인리히, 어떠냐. 우리 함께 힘을 합쳐서…….”

“나는 관심 없다.”

하지만, 하인리히에게서는 냉정한 대답이 돌아왔다.

“힘을 합치고 싶으면 너희 둘이 합치면 된다. 나는 생각이 없으니까.”

“하인리히!”

“너희들은 아직 그래듀에이트 하급에 머물고 있는 모양이지만, 나는 이미 중급이다. 지금 에르나스와 차이가 있다고 해도, 분명 따라잡을 수 있다.”

“……!”

하인리히의 단호한 태도에 루퍼스가 눈을 크게 떴다.

“하인리히, 현실을 제대로 인식해라! 너는 이제 더 이상 신동도 뭣도 아니야! 에르나스에게 뒤처지고 있는 패배자에 불과하다고!”

“패배자는 너겠지, 루퍼스.”

“큭……!”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루퍼스가 허리에 손을 댔지만, 결국 검을 뽑지는 못했다.

“꽉 막힌 놈…….”

결국 루퍼스는 이를 갈면서 자리를 떴다.

나름대로 큰마음을 먹고 동맹을 제안한 것일 텐데, 하인리히가 거부하면서 헛수고가 되어 버렸다.

“시간 낭비만 했군.”

“잠깐, 하인리히.”

하인리히도 자리를 뜨려고 했지만, 베리스리제가 제지했다.

“에르나스가 더 적극적인 행보를 보일 거라 했는데… 그러면 앞으로 에르나스가 뭘 어떻게 할 것 같아?”

“글쎄다.”

하인리히가 냉정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녀석의 행동은 예측하기 어렵다.”

“그래도 뭔가 알고 있는 것 없어? 기숙사에서도 같은 방이잖아.”

“네가 세리느한테서 들은 얘기가 없는 것처럼, 나도 그 녀석한테서 들은 얘기는 없다.”

그렇게 말하고, 하인리히가 쏘아붙였다.

“그렇게 궁금하면, 페르디난드 클래스에 가서 염탐이라도 해 보든가.”

“페, 페르디난드 클래스에 가서?”

“어차피 너도 4번째 수료증을 받기 위해 다음 클래스를 선택해야 할 텐데.”

“……!”

숨을 삼키는 베리스리제를 뒤로하고, 하인리히는 자리를 떴다.

* * *

이틀 뒤.

모든 처리가 완료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나는 페르디난드 클래스로 향했다.

“오늘부터 너는 페르디난드 클래스의 전공생이다, 에르나스.”

지도 교수실에서 마주한 페르디난드는 상당히 피곤해 보였다.

대체 어떻게 에르나스를 손에 넣었냐고 다른 교수들한테 시달린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인사치레는 됐다. 본론으로 들어가지.”

페르디난드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

“앞으로 뭘 어떻게 하고 싶으냐. 말해 봐라.”

“…….”

역시 번거로운 걸 싫어하는 인물이다.

바로 본론에 들어갈 수 있다면, 나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다.

“교수님, 그동안 여기저기서 발굴한 것들이 이곳 지하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뭐? 지하 창고 말인가?”

“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창고에 들어가 보고 싶습니다.”

“그곳에는 실용성이 없는 잡동사니밖에 안 남아 있는데…….”

페르디난드가 눈을 깜박였다.

“너는 이 클래스에서 새로운 힘을 얻기를 바라던 거 아니었나? 창고에 가 봤자 쓸 만한 걸 얻을 수는 없을 텐데?”

“혹시 모르지 않습니까.”

나는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생각지도 못한 물건을 건질 수도 있으니까요.”

“음…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페르디난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내해 주지. 너한테 도움이 될 만한 게 있다면, 얼마든지 가져가도록 해라.”

“감사합니다, 교수님.”

“별로 도움 될 건 없을 테지만 말이다.”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하며, 페르디난드가 나를 안내해 주기 시작했다.

나는 그 뒤를 따르면서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그렇지 않답니다, 교수님.’

자신의 창고 안에 무엇이 잠들어 있는지, 페르디난드는 모를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그 진가를 알아볼 수 있는 건… 오로지 나 한 명뿐이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