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아카데미에 천재가 있었다-49화 (49/212)

49화 클래스의 문을 두드리다 (1)

수련생 기숙사에서 나와 함께 지낼 룸메이트는 다름 아닌 하인리히였다.

‘하필이면…….’

나는 하인리히를 보자마자 한숨을 내쉬었다.

소설에서 주인공 아칸델의 룸메이트는 루퍼스였다.

루퍼스는 대항전에서 패배한 이후 아칸델을 높게 평가하게 된 상태였기 때문에, 꽤 양호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호전적이면서 정직한 성격의 루퍼스를 옆에 붙여 놓으니 스토리 전개가 쉬워져서 여러모로 편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에르나스, 왜 사람 얼굴을 보자마자 한숨이지?”

하인리히가 나를 노려봤다.

그 눈빛에는 적개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비무전에서 나에게 패배한 원한 때문일 것이다.

루퍼스와는 달리, 하인리히는 자신을 패배시킨 존재에게 강한 적의를 갖게 되는 성격이다.

다만 내가 한숨을 쉬는 건 그것 때문이 아니었다.

“가만히 서 있지 말고 짐이나 정리해라. 바닥에 선을 그어 놓아 구역을 나눴으니, 내 구역으로 넘어오지 않도록 주의해라.”

“…….”

하인리히의 짐은 이미 완벽하게 정리된 상태였다.

모든 것이 철저하게 각이 잡혀 있었는데, 주위에는 먼지 하나 떨어져 있지 않았다.

“짐 정리를 하면서 먼지를 피우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 바란다. 알겠나?”

“내가 알아서 할게…….”

하인리히는 엄청난 결벽증이다.

단순히 깨끗한 걸 선호한다기보다는, 완벽주의적인 성격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우수한 캐릭터에게 결점 한두 개를 부여해 주면 인간미가 생기기 때문에 이렇게 설정했던 건데… 지금은 후회하고 있다.

‘잔소리 좀 듣겠군.’

흑색 6반의 기숙사에서 옮겨진 짐을 풀고 있자, 여러 잡동사니가 굴러 나왔다.

수업 때 쓰던 연필 하나가 굴러가는 걸 보고 하인리히가 눈을 치켜떴다.

“에르나스, 연필이 내 영역을 침범하려 하고 있다. 대처해라.”

“네네, 알겠습니다.”

“그 성의 없는 대답은 뭐지?”

짐을 풀고 있자, 열려 있던 방문 밖에서 얼굴을 내미는 사람이 있었다.

적색 1반의 대표였던 루퍼스 이그니아스였다.

“음, 에르나스인가. 조사가 다 끝난 모양이군.”

“루퍼스…….”

역시 루퍼스도 소설처럼 2차 시험을 단번에 통과한 모양이었다.

“에르나스와 하인리히가 룸메이트라… 기묘한 조합이군.”

“루퍼스, 너는 누구와 룸메이트지?”

“나는 혼자다. 애초에 2차 시험을 통과한 남학생은 여기 있는 세 명뿐이니까.”

루퍼스가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르트 녀석은 도전했다가 손목만 다쳤다. 상대 실력이 뛰어난 것도 있었지만, 무슨 일인지 고르트 본인이 별로 집중을 못하는 것 같더군.”

“…….”

아마 칼라일 문제 때문일 것이다.

발트펠트 가문이 관련되어 있다는 게 들통나지 않을까 신경 쓰여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소설에서 고르트는 2차 시험을 무난히 통과했었어. 전개가 바뀌었군.’

내가 교수들 앞에서 너무 입을 턴 탓일까.

어차피 다음 시험일에 재도전을 해서 올라오겠지만, 앞으로의 미래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신경 쓰였다.

“아, 너희 흑색 6반의 슈미츠라는 녀석도 도전했다가 실패했다. 아직 검기가 미숙하더군.”

“혹시 다치지는 않았어?”

“부상을 입지는 않은 것 같지 않았다.”

“그래… 알려 줘서 고맙다.”

슈미츠가 올라왔으면 여러모로 일을 진행하기 편했을 텐데, 아쉬웠다.

그래도 슈미츠라면 다음 시험일에 재도전을 해서 진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여학생 쪽은?”

“여자 쪽은…….”

루퍼스가 팔짱을 끼며 대답했다.

“세리느와 베리스리제, 그 두 사람이 시험을 통과했다.”

* * *

“설마 너하고 같은 방에서 생활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베리스리제.”

수련생 기숙사 3층, 304호실.

그곳에서 세리느는 베리스리제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꼭 다른 사람하고 같은 방을 써야 하는 거야? 이번에 진급한 사람은 우리들밖에 없으니까, 기숙사에 방 아직 많이 남아 있잖아?”

“규칙이라고 하니, 어쩔 수 없죠.”

“쯧… 짜증나게.”

베리스리제가 머리를 쓸어 올리며 투덜거렸다.

사실 세리느도 잔뜩 투덜거리고 싶은 심경이었다.

베리스리제하고는 계속 사이가 안 좋았으니까.

‘딱히 내가 잘못한 일도 없는 것 같은데 말이야.’

세리느 입장에서는 사사건건 공격적으로 나오는 베리스리제가 부담스러웠다.

어렸을 때 귀족들 행사에서 얼굴을 마주치면 서로 잘 지냈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 세리느에게 적개심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마… 세리느가 에르나스와 약혼을 했던 시기 전후였던 걸로 기억한다.

“어쨌든 베리스리제, 일단 이렇게 룸메이트가 되었으니 앞으로 잘 지내 보죠. 잘 부탁해요.”

“관둬.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세리느가 손을 내밀자, 베리스리제가 인상을 찡그렸다.

“우리들은 아카데미의 정점 자리를 두고 다투는 라이벌이야. 사이좋게 잘 지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베리스리제, 하지만…….”

“비무전 때 네 입으로 말했잖아. 아카데미의 정점에 오르고 싶다고.”

베리스리제가 세리느를 노려보며 내뱉었다.

“네가 그런 생각이라면, 나도 너를 경쟁자로 봐 줄게. 기회가 오면 추락시켜 줄 테니까 각오해 둬.”

공격적인 목소리를 들으면서, 세리느는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저는 베리스리제한테 당해 추락당하는 게 두려우니 2층 침대의 아래층을 사용하도록 하죠.”

“뭐?”

세리느가 2층 침대의 아래층에 걸터앉자, 베리스리제가 다급히 달려들었다.

“누구 마음대로?!”

“기회가 오면 추락시켜 준다면서요. 2층 침대의 위층에서 잠들어 있을 때 베리스리제에게 당하면 곤란하니, 저는 아래층을 쓰겠습니다.”

“잠깐, 나도 침대에서 떨어지는 거 무섭단 말이야! 내가 아래층을 쓰겠어!”

“먼저 차지한 사람이 임자입니다, 베리스리제.”

“세리느, 너는 왜 그렇게 맨날 선수를……!”

달려드는 베리스리제를 밀쳐 내면서, 세리느는 방바닥 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그러고 보니 에르나스는 조사가 다 끝났을까.’

내일부터는 수련생으로서의 삶이 시작된다.

흑색 6반에서처럼 에르나스와 힘을 합치고 싶은데… 베리스리제나 하인리히, 루퍼스 같은 인물들이 있으니, 기숙사에서는 에르나스와 대화를 나누는 것조차 부담스러울 것 같았다.

* * *

‘그나마 다행인 건, 루퍼스도 하인리히도 비겁한 음모를 꾸미는 성격은 아니라는 점인가.’

2층 침대 위층에 누운 채, 나는 생각에 잠겼다.

‘정정당당한 승부로 상대방을 꺾는 걸 선호하는 스타일이라, 잠자는 동안에 칼 맞을 걱정은 안 해도 돼.’

만약 고르트가 있었다면 좀 불편한 나날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 녀석은 기회만 오면 얼마든지 내 목숨을 빼앗으려 할 녀석이니까.

하지만 루퍼스나 하인리히는 그런 성격이 아니다.

루퍼스는 공식적인 싸움에서 나하고 정면 대결을 해서 승리하는 걸 원할 테고, 하인리히도 비슷하다.

내가 무방비한 모습을 보여도 ‘기회다!’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후계자들보다 6대 검술명가 자체를 더 경계해야겠지.’

사실 내가 싸워야 할 적은 6대 검술명가의 후계자들이 아니다.

그 녀석들은 이미 한 번씩 꺾어 줬고, 앞으로도 계속 내가 우세를 점할 자신이 있다.

이제 더 이상 위협적인 존재들이 아닌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경계해야 할 적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기 가문의 후계자를 리히테나워 대공으로 만들고 싶은 6대 검술명가 전체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검술명가의 가주들 중 한 명이 지금 당장 나를 찾아와서 검을 휘두르면… 그냥 나는 죽는 거야.’

가주들은 전부 절정급의 검사다.

그래듀에이트 하급에 불과한 나로서는 도저히 맞서 싸울 수 없다.

‘물론, 그들도 정치적 입장이라는 게 있으니 그렇게 하지는 못하지만.’

그들은 제국 사회를 이끄는 최상위 명문 귀족이다.

아무런 명분 없이 직접 움직이지는 못한다.

그 대신 수하들을 움직여 은밀히 나를 해치려 할 것이다.

‘이미 헨리 랭커스터와 테오도라 발트펠트가 내 목숨을 노렸지. 그런 일이 계속 벌어질 거야.’

칼레온 이그니아스는 아들인 루퍼스처럼 정면 승부를 선호하는 성격이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방침을 바꿀 수도 있다.

결국 나는… 그런 위협에서 나 자신을 지킬 수 있도록 강해져야 한다.

‘훗날… 가주들과 정면에서 격돌하더라도 승리할 수 있어야 하니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손가락에 낀 유스레흐트를 만졌다.

그러자 현재 보유하고 있는 능력이 표시되었다.

== 잠정 획득 ==

[파르티잔 심판검술(S랭크)]

[랭커스터 소검술(S랭크)]

[발라하일 중검술(A랭크)]

[칼레시우스 창뢰검술(C랭크)]

[리히테나워 경신술(A랭크)]

== 영구 귀속 ==

[동부식 마력연공법(A랭크)]

여기서 파르티잔 심판검술, 발라하일 중검술, 칼레시우스 창뢰검술은 그래듀에이트 전용 검술이다.

랭커스터 소검술은 S랭크의 숙련도를 자랑하지만, 그래듀에이트 전용 검술이 아니라 현시점에서는 약하다.

이제부터는 목검이 아니라 진검을 사용하게 되므로, 목검을 부러뜨리거나 짧게 잡아 소검처럼 쓰는 것도 불가능해진다

‘이해도를 높여서 영구 귀속으로 넘기는 것도 어려울 것 같으니… 랭커스터 소검술은 삭제하고 다른 걸 얻어야 하겠어.’

그렇다면 어떤 것이 좋을까.

오늘 만난 발렌티아노 교수에게서 검술을 얻으면 좋았겠지만, 발라하일 중검술을 얻을 때 바스티안 기사검술을 삭제한 페널티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제 곧 12일이 지나 페널티가 사라지기 때문에, 그때 가서 다른 사람의 검술을 얻어야 한다.

‘그래듀에이트 전용 검술이면서, 하급 수준의 마력으로도 충분한 힘을 발휘할 수 있고, 지금 상황에서 내가 써먹을 곳이 많고… 그래, 숙련도를 높여서 영구 귀속으로 만들기 쉬운 검술이면 더 좋을 텐데.’

소설 내용을 되새기며 고민을 하고 있었을 때.

갑자기 침대 아래층에서 하인리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르나스, 잠들었나?”

“아직 안 자는데.”

너무 조용해서 벌써 잠든 줄 알았는데, 아직 깨 있었던 모양이다.

“내일부터 클래스를 방문하게 된다. 알고 있겠지?”

“물론이지.”

수련생은 본인이 직접 특정 클래스로 찾아가야 한다.

그러면 그 클래스에서 강의를 해 주기도 하고, 훈련을 시켜 주기도 하고, 과제를 내 주기도 한다.

그리고 충분한 교육을 받았다고 판단되면 수료증을 받는다.

이 수료증을 충분히 모으면 3차 시험에 도전할 수 있다.

“아카데미에 있는 여러 클래스 중에서 어느 클래스를 먼저 찾아갈지는 학생의 자유다. 이것도 알고 있겠지?”

“알고 있어.”

“나는 가장 먼저 욜스 교수님의 욜스 클래스를 찾아갈 생각이다.”

“…….”

의외였다.

욜스 클래스는 이번에 새로 생기는 클래스다.

욜스 본인은 훌륭한 검사지만, 욜스 클래스는 아직 아무런 준비가 안 된 상태다.

하인리히가 가장 먼저 찾아가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곳인데, 무슨 이유가 있는 걸까.

“그러니 너는 다른 클래스로 가라.”

“뭐?”

“너와 같은 클래스에서 수련을 받고 싶지 않다.”

“…….”

하인리히의 목소리에는 나를 향한 적개심이 잔뜩 담겨 있었다.

정말로 나하고 같이 다니는 게 싫은 모양이다.

“너는 발렌티아노 클래스 같은 곳에나 가라. 알겠나?”

“뭐… 생각해 볼게.”

“흥…….”

하인리히는 다시 조용해졌다.

고요해진 방 안에서 나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보니 내일 어디를 가야 할지도 정해야 했단 말이지.’

내일 세리느하고도 얘기해 볼까.

과제가 주어지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단독으로 움직이는 것보다는 동료와 함께 움직이는 쪽이 편하다.

‘가만있자, 그러고 보니 나는…….’

마침 나는 새로운 힘을 필요로 하는 참이다.

그런 점을 고려하면… 딱 좋은 클래스가 있었다.

* * *

다음 날 오전.

아직 공사가 덜 끝난 건물 앞에서, 하인리히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무슨 생각이냐!”

하인리히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노려봤다.

“내가 분명 어젯밤 경고했을 텐데?”

“그랬지.”

“그런데 왜 여기 있는 거지?”

“생각해 본다고만 말했지, 네 말대로 해 주겠다고는 말하지 않았어.”

내 말을 듣고 하인리히가 눈을 부릅떴다.

“이 미친 녀석……!”

“욕하지 마라. 먼저 간다.”

“이봐……!”

분노하는 하인리히를 내버려 둔 채, 나는 앞장서서 문을 열었다.

‘도룡검’ 욜스 칼레시우스가 이끄는, 욜스 클래스의 문을.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