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진급이 걸린 2차 시험 (3)
“크흐흐……!”
웃음소리를 터뜨리면서, 칼라일이 강하게 검을 휘둘렀다.
붉은 마력이 목검에 집중되어, 아까보다 훨씬 거대한 검기를 형성하고 있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쿵!
검기와 검기가 부딪치면서 굉음이 발생했다.
그리고 나는 몸이 뒤로 밀려나는 걸 느꼈다.
“에르나스가……!”
“밀려나다니!”
내가 공방에서 밀려나는 것을 본 학생들이 경악했다.
심지어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하인리히조차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역시 검기의 위력이 다르군.’
공격을 받아 내면서, 나는 냉정하게 칼라일의 역량을 분석했다.
‘이것이 그래듀에이트 중급인가.’
그렇다.
칼라일은 그래듀에이트 초입이나 하급 수준이 아니다.
일반적인 전투 사제보다 한 단계 위에 있는 ‘고위 사제’로서, 그래듀에이트 중급의 힘을 지니고 있다.
‘본래 이 시험에서는 전투 사제 중에서도 그래듀에이트 초입 수준만 데려다 놓기로 되어 있었지.’
포로 생활로 쇠약해진 그래듀에이트 초입.
그 정도라면 실전 경험이 없는 학생들도 도전해 볼 만하다.
방금 전에 하인리히가 순식간에 상대를 해치운 것도, 상대가 그 정도밖에 안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녀석은 다르지.’
모종의 이유로, 그래듀에이트 중급의 힘을 지닌 칼라일이 섞여 들었다.
그리고 하필이면 내가 시험을 치를 때 상대로 나섰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누군가가 의도한 일이라는 거지.’
2차 시험에서 나를 엿 먹이려는 사람이 있다.
그가 칼라일을 집어넣어, 내 시험 상대로 만들었다.
칼라일이 나에게 부상을 입히거나, 아예 목숨을 빼앗는 것을 기대하면서.
‘그게 누구인지, 나는 이미 알고 있지.’
하지만, 그 범인을 밝히는 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금 중요한 건 눈앞에 있는 이 녀석을 쓰러뜨리는 것이니까.
그래듀에이트 중급 수준의 힘을 지닌 놈이라고 교관 측에 알릴 필요도 없다.
‘내가 쓰러뜨리면 되는 거니까.’
시험 상대를 바꿔 달라고 요구해 봤자 꼴사나울 뿐.
여기서 내가 쓰러뜨리면 된다.
“……!”
쿵! 쿠웅!
칼라일은 연달아서 육중한 공격을 펼쳤다.
나는 공격 하나하나를 막아 내긴 했지만, 조금씩 자세가 무너지고 있었다.
“에르나스……!”
“젠장, 상대가 너무 강한 거 아니야?!”
흑색 6반 쪽에서 세리느와 슈미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녀석들 입장에서는 내가 이렇게 밀리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잠시 시선을 돌려 보니, 루퍼스와 베리스리제 등도 당혹스러워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면 슬슬… 반격을 해 볼까.’
계속 부딪치면서 느낄 수 있었다.
그래듀에이트로서의 경지는 칼라일 쪽이 한 수 위다.
하지만 검술은 그렇지 않았다.
‘체계적인 검술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지.’
나는 안네리제에게서 얻은 파르티잔 심판검술로 맞섰다.
S랭크의 숙련도이기 때문에 칼라일의 거칠고 난잡한 검술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었다.
‘지금이다.’
칼라일의 공격을 흘려 보낸 뒤, 빈틈을 노렸다.
무방비해진 칼라일의 상체를 향해, 검기가 파고들었다.
“이 녀석……!”
칼라일이 간신히 피했다.
하지만 공격은 이걸로 끝이 아니다.
이미 나는 칼라일의 회피 동작을 예상하여 다음 공격을 펼치고 있었다.
“……!”
쿵!
검기와 검기가 부딪쳤을 때와 비슷한 소리가 났다.
내 목검은 칼라일의 어깨에 정확히 명중한 상태였다.
하지만… 칼라일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크흐흐……!”
여유로운 웃음을 터뜨리면서, 칼라일이 나를 향해 목검을 치켜들었다.
* * *
‘애송이 녀석, 이미 늦었다!’
칼라일은 마음속으로 에르나스를 비웃었다.
어떻게 칼라일의 빈틈을 찾아서 공격을 명중시키긴 했지만… 그 공격은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너 같은 애송이가 내 호신기(護身氣)를 뚫을 수 있을 것 같으냐!’
호신기.
마력으로 육체를 보호하는 기술이다.
마력을 견고하게 압축해야 하기 때문에 그래듀에이트 중급은 되어야 사용할 수 있다.
칼라일은 이 호신기로 에르나스의 공격을 막아 낸 것이다.
‘기껏해야 그래듀에이트 초입이나 하급 수준일 테고… 네 녀석의 검기로는 내 호신기를 뚫을 수 없다!’
검기와는 달리, 호신기는 가까이서 보지 않으면 눈치채기 어렵다.
주위의 교수나 학생들은 칼라일이 호신기를 펼쳤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이 위화감을 느끼기 전에 전투를 마무리해야 한다.
‘네놈의 목을 날려 주마! 그걸 위해 여기로 온 거니까!’
며칠 전, 포로로 잡혀 이송 중이던 칼라일에게 사람이 찾아왔다.
자유를 되찾게 해 줄 테니, 아카데미로 가서 사람 하나를 죽여 달라는 것이었다.
결국 칼라일은 진짜 역량을 숨긴 채 아카데미로 오게 되었고, 이렇게 에르나스와 대결하게 되었다.
‘임무를 잘 수행해 주면 별도의 사례금도 준다고 했으니… 확실하게 죽여 줘야지!’
물론, 나중에 가서 말을 바꿀 수도 있다.
입막음을 위해 칼라일을 죽이려 들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칼라일은 살아남을 자신이 있었다.
일단 포로 신분에서 벗어나는 게 우선이다.
“하아압!”
방어를 포기한 채, 칼라일은 맹공을 펼쳤다.
에르나스가 반격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내 호신기는 그 정도 공격에는 끄떡도 안 한다!’
에르나스는 애송이답지 않게 능숙한 방어 기술을 펼친다.
저것만 뚫어서 목을 날리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칼라일은 방어를 도외시한 채 육중한 공격을 펼쳤다.
“과연 그럴까?”
“……?”
마치 칼라일의 속마음을 읽은 것처럼, 에르나스가 이상한 말을 했다.
그 직후 칼라일은 깨달았다.
에르나스의 자세가 어느새 지금까지와는 달라졌다는 것을.
‘이건……?’
본능적인 경계심을 느꼈다.
그렇다고 해서 후퇴하지는 않았다.
칼라일은 자신의 실력, 특히 몸을 지켜 주고 있는 호신기를 믿고 있었다.
이 애송이를 두려워해서 뒷걸음칠 이유가 없었다.
“……!”
그리고 그 직후.
벼락처럼 뻗어 나온 에르나스의 검이 칼라일의 어깨를 파고들었다.
“크아아악!”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까도 에르나스가 비슷한 곳을 공격했지만, 그때는 호신기를 뚫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에르나스의 검은… 호신기를 찢어발기고, 칼라일의 어깨를 잘라 내고 있었다.
‘그래듀에이트 초입 내지는 하급일 텐데… 어떻게 이런 위력을……!’
한쪽 팔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느끼며, 칼라일은 절규했다.
* * *
칼라일의 한쪽 팔이 떨어져 나갔다.
전력을 다한 발라하일 중검술을 펼치면서, 칼레시우스 창뢰검술의 원리로 검기를 순간적으로 강화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렇게 공격의 위력을 한계까지 끌어올리니, 그래듀에이트 중급의 호신기조차 찢어발길 수 있었다.
“크으윽, 내 팔, 내 팔이……!”
어깨를 부여잡으며 칼라일이 신음했다.
시뻘개진 눈으로 나를 노려보면서 대놓고 살기를 드러냈다.
“이 개자식, 죽여 버리겠어……!”
그 순간, 칼라일의 전신에서 붉은색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구경하던 학생들도 놀랄 정도로 격렬한 기세였다.
“너한테는 불가능한 일이다, 칼라일.”
“크아악!”
두 번째로 펼친 공격이 칼라일의 다른 팔까지 절단했다.
하지만, 양쪽 팔을 잃고도 칼라일은 나한테 달려들려 했다.
전신의 마력으로 나를 집어삼키려고 하려는 것처럼.
“컥……!”
그러나 칼라일은 더 이상 나한테 달려들지 못했다.
등 뒤에서 달려든 교관의 칼이 칼라일의 몸통 정중앙을 관통했기 때문이다.
“이런, 개같은…….”
“흐읍!”
교관은 다시 한번 검을 휘둘렀다.
칼라일은 목에서 피를 뿜으며 쓰러졌고, 두 번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의 2차 시험 통과를 인정한다! 그리고 승패가 정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발악한 마교도는 즉결 처분 하였다!”
“오오……!”
교관의 목소리에 많은 학생이 감탄했다.
흑색 6반 학생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나한테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잠깐.”
그때였다.
2차 시험을 관전하던 교수들 중에서, 수염을 기른 노교수가 입을 열었다.
발렌티아노 클래스의 수장인 ‘기사검(騎士劍)’ 발렌티아노였다.
“방금 그 마교도가 이상한 짓을 하는 것 같더군.”
“네, 아마 마교도가 사술(邪術)로 발악을…….”
“아니, 그 이전에.”
교관의 말을 중간에 끊으면서 발렌티아노가 말했다.
“호신기를 사용한 것 같았다. 어떻게 된 거지?”
“……!”
발렌티아노의 지적에 많은 사람이 숨을 삼켰다.
“그래, 에르나스의 검기에도 상처를 입지 않았어. 어떻게 된 거지?”
“공격이 제대로 안 들어간 거 아닌가? 너무 빨라서 잘 안 보였지만.”
“호신기는 그래듀에이트 중급부터 사용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학생들이 떠들어 대서 연무장이 소란스러워졌다.
그 소란 속에서 발렌티아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에르나스.”
“네, 발렌티아노 교수님.”
“내 이름을 알고 있었군.”
“황제 폐하께 ‘기사검’의 칭호를 수여받으신 절정급 검사를 못 알아볼 리 없습니다.”
발렌티아노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곧바로 진지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가 보기에는 어땠나? 녀석이 호신기를 사용했나?”
“지금까지 호신기를 쓰는 상대와 싸워 본 적이 없어,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나는 냉정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다만 제 검기가 직격(直擊)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상처를 입지 않았습니다. 모종의 힘으로 육체를 보호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꼈을 텐데.”
“위화감을 느끼긴 했지만, 시험을 중단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알드바우트 총장에게 시선을 향했다.
“시험 상대로 그래듀에이트 하급 이하만 나올 거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으니까요.”
“……!”
“그래듀에이트 중급이 나왔다, 뭔가 잘못되었으니 시험 상대를 바꿔 달라… 이렇게 주장하며 시험을 중단시켰다가 실격 처리가 되면 저만 손해입니다.”
그렇게 말하자 여러 교수들이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알드바우트 총장도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에르나스, 그러면 자네는 그래듀에이트 중급이라는 걸 알면서도 계속 싸웠던 거군.”
“네, 발렌티아노 교수님.”
발렌티아노의 확인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포기하지 않고 전력을 다해 검을 휘두르니, 결국 호신기를 뚫을 수 있었습니다. 아마 포로 생활 때문에 쇠약해진 상태라 호신기를 제대로 유지하기 어려웠던 게 아닌가 합니다.”
“흐음… 그럴 수도 있지.”
“그리고…….”
나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칼라일의 시체를 쳐다봤다.
“역시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두 팔을 잘라서 무력화했습니다. 이게 만약 정상적인 시험이 아니라면 나중에 경위를 조사하게 될 거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허허, 거기까지 생각하고 일부러 목숨을 빼앗지 않았던 건가?”
“네, 그런데…….”
약간 뜸을 들이면서 고개를 돌렸다.
“옆에서 지켜보던 교관님이, 아주 급하게 달려들어 이 남자의 목숨을 빼앗으시더군요.”
“뭐, 뭣……!”
방금 전, 칼라일의 숨통을 끊은 교관이 몸을 움찔했다.
“기껏 살려 뒀는데, 그렇게 갑자기 목숨을 빼앗으시니… 무슨 다른 생각이 있었나 하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
무수한 사람의 시선을 받으며, 교관이 얼굴 표정을 일그러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