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진급이 걸린 2차 시험 (1)
비무전 본선에 진출한 여덟 명의 학생에게는 적색 엘릭시르가 주어졌다.
우승자에게는 네 병, 준우승자에게는 세 병,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두 병씩이다.
상위 8명에게만 주어지는 거라 평소보다 양이 많았다.
‘이 정도면 다들 그래듀에이트 초입에 도전할 수 있겠군.’
현재 루퍼스와 베리스리제, 클로에가 아직 그래듀에이트의 경지에 들어서지 못했다.
적색 엘릭시르 두 병을 복용하면 늦어도 2차 시험 전에는 그래듀에이트 초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초입에 들어섰다고 해서 2차 시험을 반드시 통과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기숙사에 돌아온 뒤, 나는 적색 엘릭시르 네 병을 복용하고 마력 연공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복용한 적색 엘릭시르도 네 병이었기 때문에, 산술적으로는 마력이 두 배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후우…….”
마나 하트에 축적된 마력을 확인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기대했던 것만큼 마력이 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슬슬 약발이 안 듣기 시작했군.’
엘릭시르를 복용하면 마력이 늘어난다.
하지만 적색 엘릭시르를 100병 복용한다고 1병 복용하는 것의 100배 마력량을 획득하는 것은 아니다.
‘고만고만한 마력을 여러 번 흡수한다고 마나 하트의 저장량이 늘어나지는 않으니까.’
일종의 내성이라 할 수 있다.
엘릭시르의 마력을 흡수하여 심장 쪽으로 보내면, 마나 하트가 자극을 받아 마력 저장량이 늘어난다.
하지만 고만고만한 수준의 마력일 경우, 마나 하트가 제대로 자극받지 못한다.
결국 기껏 흡수한 마력을 제대로 저장하지 못하게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더 높은 단계의 엘릭시르를 복용해야 하지.’
2차 시험을 통과하면 적색보다 높은 단계의 엘릭시르를 받을 수 있다.
단순히 마력이 많이 들어 있는 게 아니라, 더 정순한 고밀도의 마력이 들어 있다.
그걸 복용하면 마력을 크게 늘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손에 낀 반지를 만졌다.
그러자 그동안 유스레흐트로 획득한 능력이 표시되었다.
== 잠정 획득 ==
[파르티잔 심판검술(S랭크)]
[랭커스터 소검술(S랭크)]
[발라하일 중검술(A랭크)]
[칼레시우스 창뢰검술(C랭크)]
[리히테나워 경신술(A랭크)]
== 영구 귀속 ==
[동부식 마력연공법(A랭크)]
그동안 오랫동안 신세를 졌던 바스티안 기사검술은 이번에 삭제했다.
상위 호환인 파르티잔 심판검술이 있기 때문이다.
바스티안 기사검술 대신 새롭게 획득한 것이, 궁내부 1급 사무관 칼데아스에게서 얻은 ‘발라하일 중검술’이었다.
‘칼데아스와 마지막으로 헤어질 때 악수를 해서 얻은 거지.’
하지만… 뭔가 오해를 했는지, 칼데아스의 표정이 이상했다.
일정 시간 이상 피부를 접촉해야 한다는 점은 역시 큰 단점이다.
‘발라하일 중검술… 파워 중시의 북부 검술이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발라하일 중검술은 육중한 공격을 추구한다.
고르트가 사용하던 발트펠트 중검술과는 달리 그래듀에이트 전용 검술이며, 개인의 근력이나 검의 무게보다 마력의 컨트롤이 중요하다.
‘그동안 북부 검술은 한 번도 익힌 적이 없기도 하고…….’
그동안 접촉한 주요 캐릭터들 중에서, 북부 검술을 메인으로 사용하는 건 고르트와 비올라뿐이다.
두 사람의 검술은 딱히 나한테 메리트가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굳이 건드리지 않았다.
하지만 슬슬 북부 검술을 익혀야 할 때가 되었기 때문에, 마침 나에게 접근해 준 칼데아스에게서 발라하일 중검술을 얻은 것이다.
‘칼데아스가 없었다면, 그냥 적당한 교관에게서 얻는 수밖에 없었지.’
나는 아직 진급을 못 하고 흑색 6반에 갇혀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접촉할 수 있는 인물에 한계가 있다.
나한테 도움이 될 만큼 수준이 높으면서, 현재의 내 마력량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검술을 얻어 내는 건… 의외로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면… 슬슬 시험 좀 해 볼까.’
나는 기숙사 바깥으로 나갔다.
다들 잠들어 있을 시간이라 조용했다.
“…….”
야외 훈련장으로 이동하여, 목검을 들고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눈을 감은 채 마력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북부 검술은 강한 근력을 요구하지만, 마력으로 충분히 커버할 수 있어.’
애초에 그래듀에이트 전용 검술은 마력으로 근력을 향상하는 걸 전제로 한다.
마력을 잘 다룰 수 있다면 근력 부족은 얼마든지 커버할 수 있다.
‘그리고 근력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정확한 자세.’
이건 동부 검술과는 조금 다른 의미다.
여기서 말하는 정확한 자세란 공격의 위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자세를 의미한다.
정확한 자세를 취해 정확한 동작으로 검을 휘두를 수 있다면 위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발라하일 중검술은… 무게중심을 중요시하는군.’
한 번도 직접적으로 배운 적이 없지만, 저절로 발라하일 중검술의 핵심 이론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동안 칼데아스가 수련하면서 터득한 깨달음을 되새기면서, 천천히 자세를 교정했다.
‘그리고 체중 이동을 유념하면서…….’
앞으로 한 발 내딛고.
무게 중심이 바뀌는 것을 의식하면서.
마력으로 강화된 근육을 일제히 움직였다.
우웅!
목검이 울리고, 공기도 진동했다.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육중한 공격이 펼쳐졌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런 느낌인가.’
지금까지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쾌감이 느껴졌다.
내가 이렇게 강력한 한 방을 펼쳤다는 사실이 큰 만족감을 주었다.
‘이게 북부 검술의 매력인 거군.’
지식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실제 경험하는 건 확연히 달랐다.
검을 한번 휘둘렀을 뿐인데 성취감이 느껴졌다.
‘요새 검술을 익히는 게 재밌단 말이지.’
하인리히와 대결하면서도 느꼈던 것이다.
검의 세계를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즐거움이 있었고, 감동이 있었다.
원래 나는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검술을 익혔던 거지만… 이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제대로 검의 길을 걷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다.
‘이렇게 계속 검을 휘두르면서 검을 이해하고, 엘릭시르를 복용해 마력량도 늘리다 보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되겠지.’
그래듀에이트 초입에서 시작한 경지는 하급, 중급, 상급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위에는 절정급이 있다.
욜스, 칼레온, 발렌티아노 등 아카데미의 대표적 교수들은 거의 다 절정급이다.
‘하지만… 절정급이 내 최종 목표가 되어서는 안 돼.’
나는 이 세계의 작가이기 때문에 알고 있다.
절정급 너머에도 새로운 경지가 있다는 것을.
소설 속에 직접 등장한 적은 없었지만, 군데군데 암시하는 장면을 넣어 놨다.
‘소설에서 주인공이 최종적으로 그 경지에 도달할 예정이었는데, 거기까지 쓰지 못했지.’
그러니… 내가 대신해서 그 경지에 도달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의 이야기를 제대로 마무리할 수 없을 테니까.
‘그래도 거기까지 갈려면 멀었으니, 일단 그래듀에이트 중급부터.’
나는 지금 그래듀에이트 하급이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빠른 거지만, 여기서 안주해서는 안 된다.
누구보다 빨리 그래듀에이트 중급에 도달해야 한다.
‘그래듀에이트 중급에 도달하는 건 상당히 어렵지.’
그래듀에이트 하급으로 인정받으려면, 마력을 실시간으로 조절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검기를 한번 펼치고 끝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검기의 성질을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그래듀에이트 중급으로 인정받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바로 마력을 압축하여 견고하게 만드는 능력이다.
‘일반적으로 호신기(護身氣)를 전개할 수 있으면 그래듀에이트 중급으로 인정받아.’
호신기는 마력을 육체 표면에 전개하는 것이다.
그냥 마력을 두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제대로 압축하여 견고하게 만든 상태여야 한다.
이렇게 호신기를 몸에 두르면 육체를 단단히 보호할 수 있다.
검으로 찌른다고 해도 호신기가 육체 표면을 보호하고 있기 때문에 칼날이 살에 닿지 못한다.
이렇게 마력으로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게 되기에, 그래듀에이트 중급이 되면 전투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된다.
‘지금 실력으로 호신기를 펼치는 건 어림도 없지만…….’
나는 목검에 마력을 집중시켰다.
마력을 잘 제어하여, 검기를 최대한 견고하게 만들어 봤다.
‘이런 식으로 연습하는 건 가능하지.’
물론, 어디까지나 그래듀에이트 하급 수준으로 견고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그래도 이걸 반복하다 보면 점차 실력이 좋아질 거다.
‘그리고 이 상태에서 발라하일 중검술을 펼치면…….’
우웅!
아까보다 더 강력한 일격을 펼칠 수 있었다.
검기를 견고하게 만들었으니 공격 자체의 위력도 향상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호신기라는 방어 기술을 터득하기 위해, 공격 기술을 더욱 갈고닦아야 하는 거야.’
견고한 검기를 유지하면서, 다시 한번 검을 휘둘렀다.
이 연습은 내가 그래듀에이트 중급이 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진급에도 도움이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발라하일 중검술을 수련했다.
* * *
다른 학생들과 어울려 기초 교육을 받으면서 개인 수련에 힘쓰던 어느 날.
아카데미 전교생이 연무장으로 소집되었다.
드디어 2차 시험이 개시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에르나스 님은 바로 2차 시험에 도전하실 거죠?”
이동 도중, 옆에서 클로에가 말을 걸어왔다.
“저는 고민하고 있는 중이에요. 이번에 도전할지, 다음에 도전할지.”
“너도 이미 그래듀에이트의 경지에 들어섰으니, 한번 도전해 봐도 좋을 거야.”
1차 시험은 전교생이 같은 날에 치렀다.
하지만 2차 시험부터는 그렇지 않다.
정기적으로 열리는 시험일에 희망자가 응시하는 형식이다.
탈락하면 다음에 재도전하면 된다.
“상당히 엄격한 시험이라고 하는데, 탈락해서 망신을 당하면 부끄러운걸요.”
“그런 분위기는 아닐 거야. 천천히 생각해 봐.”
“사실 그렇게 자신이 없기도 해요. 그래듀에이트가 된 지 얼마 안 되기도 했고.”
클로에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에르나스 님이 진급하시면 한동안 얼굴을 뵐 수 없게 되겠네요. 계속 에르나스 님을 곁에서 보필하고 싶었는데 말이죠.”
“이번 시험을 통과 못 해도, 너라면 다음번 시험에서 통과할 수 있을 거야.”
“네, 최대한 빨리 쫓아가도록 할게요.”
2차 시험에서 통과해서 진급하면 흑색 6반을 떠나게 된다.
반대로 시험에서 통과하지 못한 사람은 계속 흑색 6반에 남기 때문에, 자칫하면 졸업할 때까지 얼굴을 못 볼 수도 있다.
클로에처럼 재능 있는 인물들은 금방 시험을 통과해 진급하지만 말이다.
“아, 다들 모여 있네요.”
연무장에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교수들도 모여 있었다.
2차 시험을 처음으로 통과하는 학생이 누구인지 살펴보고 싶기 때문이다.
“발렌티아노 교수님도 있고… 아, 칼레온 교수님도 있네요. 복귀하신 모양이군요.”
이그니아스 가문의 가주인 ‘염옥검’ 칼레온은 한동안 아카데미 바깥에서 랭커스터 가문을 압박하고 있었다.
하지만 물적 증거가 없는 상황이라, 결국 큰 수확을 거두지 못하고 아카데미로 복귀했을 것이다.
“…….”
그때, 잠시 칼레온과 눈이 마주쳤다.
칼레온은 별로 호의적이지 않은 시선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제부터 철저히 견제해 주겠다는 눈빛이군.’
당연한 얘기지만, 칼레온은 자신의 아들인 루퍼스가 아카데미의 정점에 오르길 바란다.
그리고 리히테나워 대공이 되어 다른 검술명가를 제치고 제국의 실권을 잡길 기대하고 있다.
당연히 나를 견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칼레온은 비겁한 수단을 쓰지는 않는 인물이야.’
이상한 수작을 부리지는 않는다.
시험에 손을 댄다든가, 그런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시험에 손을 댄다면, 다른 가문의 가주들이지.’
문득 고개를 돌려 보니, 6대 검술명가 후계자들의 얼굴이 보였다.
루퍼스도, 고르트도, 베리스리제도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하인리히…….’
청색 2반의 신동, 하인리히 아그리파.
그는 대놓고 나에게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명백한 의지가 담긴 눈빛이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나한테 달려들어서 사생결단을 내자고 할 듯한 눈빛이야.’
좀 참아라, 하인리히.
투쟁심을 갖는 건 나쁘지 않지만, 지금은 2차 시험을 치를 때다.
“다들 늠름해진 것 같군.”
그때 백발이 성성한 노교수가 단상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카데미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원로 교수… ‘백랑검(白狼劍)’ 알드바우트였다.
그는 현재 아카데미의 모든 사무를 관장하는 ‘총장’ 자리에 앉아 있는 인물이었다.
“그래듀에이트의 경지에 오른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냥 검에 검기를 생성하는 것만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다. 실전에서 활용할 수 있어야 의미가 있는 것이지.”
알드바우트가 학생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2차 시험에서는 너희들이 실전에 나설 수 있는 그래듀에이트인지를 판별하게 된다.”
“…….”
“진급 이후의 교육 과정에는 목숨을 건 실전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실전에 나설 수 없는 그래듀에이트를 진급시킬 수는 없다.”
알드바우트의 발언에 일부 학생들이 술렁였다.
지금까지는 목검을 들고 다른 학생들이나 교관들과 투닥투닥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진급한 이후에는 본격적인 실전까지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본격적으로 2차 시험을 시작하기 위해…….”
알드바우트가 눈짓을 했다.
그러자 교관들이 신속히 움직였다.
“시험에서 너희들의 실력을 평가해 줄 ‘시험관’들을 소개해 주도록 하겠다.”
“……!”
교관들이 끌고 나온 ‘시험관’의 모습을 보고, 학생들이 일제히 숨을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