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동시에 잡는다 (3)
욜스 칼레시우스.
드래곤을 혼자서 토벌하여 황제에게서 ‘도룡검(屠龍劍)’이라는 칭호를 받은 남자.
그는 그래듀에이트 상급조차 넘어선 ‘절정급’의 검사다.
평상시 욜스 본인이 주력으로 삼는 검술은 그라투시아 도룡검술(屠龍劍術)이다.
하지만 그라투시아 도룡검술은 그래듀에이트 상급 이상을 위한 검술.
그래듀에이트 하급에 불과한 내 힘으로는 도저히 사용할 수 없다.
‘그래서, 다른 검술을 얻어야 했어.’
며칠 전, 나는 욜스와 만나서 유스레흐트의 ‘능력 재현’을 시도했다.
레스터의 랭커스터 소검술을 복사한 지 12일이 지나서 페널티가 해제되었기 때문이다.
욜스의 주요 능력들은 대부분 매우 높은 경지에 도달한 이후에나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중엔 내가 쓸 수 있는 검술도 있었다.
* * *
“크아아……!”
고르트가 정면에서 달려들었다.
눈이 붉게 충혈되었고, 얼굴의 혈관도 툭 튀어나와 있었다.
수준에 맞지 않는 대량의 마력 때문에 전신의 혈맥이 비명을 지르고 있는 상태였다.
‘마력 폭주 직전이군.’
그래도, 명색이 6대 검술명가의 후계자다.
아슬아슬한 선에서 마력을 제어하며, 자신의 힘을 극대화하고 있었다.
“……!”
콰앙!
폭음과 함께 고르트의 대검(大劍)이 뻗어 나왔다.
목검이긴 하지만, 저렇게 대량의 마력이 전개된 상태라면 충분히 사람을 짓이길 수 있다.
‘목검이 아니라 나무 기둥… 아니, 이제는 쇠기둥 같은 느낌이다.’
날카롭지는 않다.
그 대신 파괴력이 극대화되어 있다.
마력으로 호신기(護身氣)를 펼치지 못하는 상태에서 얻어맞는다면, 전신의 골격이 부서지고 내장이 파열될 것이다.
‘하지만, 밸런스가 맞지 않아.’
당연한 얘기다.
크고 단단한 무기가 무조건 좋은 거라면, 사람들은 검이 아니라 쇠기둥을 들고 다닐 것이다.
발트펠트 중검술을 수련한 고르트도 저런 검기에는 익숙지 않다.
그렇기에… 대응할 수 있다.
“하아압!”
쿵!
고르트의 공격이 근처 바위를 부숴 버렸다.
하지만 내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
계속해서 맹공을 펼쳐 왔지만, 나는 그 공격을 모조리 피해 버렸다.
검을 맞부딪칠 필요조차 없었다.
“이 자식……!”
“고르트, 동작이 너무 크다.”
나는 고르트의 공격을 피하면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너무 조잡하군.”
“닥쳐……!”
콰앙!
이번에는 고르트의 검기가 땅바닥을 때렸다.
흙이 튀면서 고르트의 얼굴에도 튀었다.
“크윽!”
인상을 찡그리는 고르트.
순간적으로 집중이 풀리면서, 고르트의 목검에서 마력이 흩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네 기량으로 그렇게 많은 마력을 제어할 수는 없어. 계속 유실되어서, 결국 그래듀에이트 초입에 걸맞은 마력만 남게 될 거다.”
“잘난 척하지 마라, 에르나스!”
고르트가 목소리를 높였다.
“마력이 유실되면, 다시 엘릭시르를 복용해 채우면 된다!”
“구제불능이군.”
다른 학생들에게서 엘릭시르를 빼앗는 건 교칙 위반이다.
지금은 비밀이 지켜지고 있어도, 계속 그런 짓을 일삼는다면 들통날 수밖에 없다.
“카아악!”
바로 그때, 고르트의 온몸이 부풀어 올랐다.
남아 있던 마력을 모조리 끌어내서 전신의 근력을 강화한 것이다.
“어, 어떠냐, 이거라면……!”
“마나 하트에 남겨 두는 최소한의 마력조차 끌어낸 건가.”
일반적으로 마나 하트의 마력을 모조리 끌어다 쓰지는 않는다.
여력을 남겨 두는 편이 여러모로 낫기 때문이다.
지금 고르트처럼 억지로 마력을 쥐어짜는 건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다.
“네 기량으로 그런 짓을 하면 안 된다. 수업 시간에 배웠을 텐데.”
“잘난 척하지 말라고 했다, 에르나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 녀석도 결국 내가 창조한 캐릭터니까.
무엇이 문제인지, 어떤 실수를 하고 있는지, 전지적 시점에서 코멘트가 떠오르게 된다.
“정면 대결을 피하는 겁쟁이 자식… 너 같은 놈은, 내 공격 한 방에 짓이겨 줄 수 있단 말이다!”
쿠웅!
바닥을 박차며 고르트가 달려들었다.
지금까지보다 훨씬 빠르고 위협적인 돌진이었다.
“하아아압!”
기합을 지르면서 고르트가 검을 휘둘렀다.
그 충격파만으로도 사람을 해칠 수 있을 듯한, 파괴적인 공격.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너무 빤히 보이는 공격이었다.
“……!”
고르트의 공격이 허공을 가른 뒤, 땅을 찍었다.
이미 나는 공중으로 도약한 상태였다.
아까 베리스리제를 제압했을 때와 똑같은 움직임으로.
“이 녀석……!”
고르트는 뒤늦게 대응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이미 내 기술이 전개되고 있는 상태였다.
‘낙뢰(落雷).’
전광석화처럼 떨어져 내린 공격이 고르트를 덮쳤다.
* * *
칼레시우스 창뢰검술(蒼雷劍術).
아카데미 교수가 된 욜스 칼레시우스가 ‘학생들을 위해’ 개발한 그래듀에이트 전용 검술이다.
서부 황야에서의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상대방의 빈틈에 일격필살의 공격을 꽂아 넣는 것을 중시했다.
가장 큰 특징은 순간적으로 마력을 집중해 공격력을 극대화한다는 것.
갑자기 검기가 푸른색으로 번쩍이며 상대방의 급소를 찌르는 모습은, 마치 한 줄기 번개와 같다.
‘하지만, 현시점에서는 아직 미완성이지.’
내가 욜스에게 얻어 낸 칼레시우스 창뢰검술은 아직 C랭크.
욜스 본인도 아직 칼레시우스 창뢰검술을 완성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설 본편에서 욜스는… 칼레시우스 창뢰검술을 완성하지 못한 상태에서 사망한다.
‘그리고 주인공인 아칸델이 칼레시우스 창뢰검술을 완성하게 돼.’
칼레시우스 창뢰검술은 엄청난 장래성을 지닌 검술이었다.
아칸델은 욜스를 대신하여 칼레시우스 창뢰검술을 완성하고, 그 진정한 힘을 발휘하게 된다.
‘순간적으로 공격력을 극대화하여, 강대한 힘을 지닌 존재조차 쓰러뜨릴 수 있게 되는 거지.’
그걸 알고 있기에 나는 수많은 그래듀에이트 전용 검술 중에서 일부러 칼레시우스 창뢰검술을 습득했다.
앞으로 소설 스토리를 진행하려면 내가 직접 칼레시우스 창뢰검술을 완성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서는 아칸델이 욜스를 대신해 칼레시우스 창뢰검술을 완성시켰지만, 이제는 내가 대신해야 한다.
“크으윽……!”
칼레시우스 창뢰검술의 제1식(式) ‘낙뢰’에 당한 고르트가 비틀거렸다.
고르트가 들고 있던 거대한 목검은 이미 산산조각 난 상태였다.
게다가 그 파편이 고르트의 온몸에 박혀 있었다.
“어떻게, 어떻게 이런…….”
무엇보다 고르트는 손목이 아작 난 상태다.
목검을 꽉 쥔 채 낙뢰에 대항했기 때문이다.
적절히 손목에서 힘을 뺐다면 괜찮았겠지만, 근력을 강화한 상태로 힘을 꽉 주고 있었기 때문에 손목이 망가지고 말았다.
“으윽……!”
그런 상태에서도, 고르트는 포기하지 않았다.
일부만 남은 목검을 들고 다시 나한테 달려들려 했다.
하지만, 비틀거리며 무릎을 꿇었다.
“크헉……!”
전신을 강화해 주고 있던 마력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검기를 만들고 있던 마력도 이미 다 흩어져 버린 상태이기 때문에… 이제 고르트는 마력을 거의 다 잃게 될 것이다.
자신의 진짜 기량에 걸맞지 않은 힘을 추구한 말로였다.
“아, 안 돼, 기껏 모은 내 마력이, 내 마력이……!”
“그건 네 마력이 아니다, 고르트.”
고르트를 내려다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학생들에게서 빼앗은 마력이고, 언젠가 유실될 마력이었다.”
“크윽……!”
“고르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라.”
나는 고르트를 향해 목검을 치켜들었다.
“이번에는 정당한 방법으로 말이다.”
“……!”
쿵!
고르트의 거체가 땅바닥에 쓰러졌다.
베리스리제에 이어 고르트까지 제압한 순간이었다.
‘이걸로 황색 3반은 한동안 혼란스럽겠군.’
고르트는 마력을 잃고 손목도 다쳤다.
그동안 고르트에게 착취당해 온 학생들이 어떻게 나올까.
‘알아서 하겠지.’
그렇게 말하고 나는 베리스리제 쪽을 쳐다봤다.
그녀는 여전히 정신을 잃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이번 패배에서 얻은 피해는 고르트보다 적다고 할 수 있었다.
‘아직 그래듀에이트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였으니 말이야.’
만약 베리스리제가 어중간하게 그래듀에이트 초입에 들어선 상태였으면, 고르트나 지난번 레스터처럼 마력을 잃었을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현재 아카데미는 나를 제외하고 1강 2중 1약으로 보면 되는 건가.’
1강은 청색 2반의 그 녀석.
2중은 마력을 온존하고 있는 루퍼스와 베리스리제.
1약은 마력을 잃어버린 고르트.
레스터가 퇴출된 현재의 구도는 이런 느낌이라 할 수 있다.
‘세리느는 루퍼스나 베리스리제보다 살짝 위라고 보면 될 테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산길을 걸었다.
고르트와 베리스리제를 쓰러뜨렸으니, 이제 황색 3반과 녹색 4반의 진지를 덮쳐야 할 시간이기 때문이다.
지금 흑색 6반의 진지가 공격받고 있겠지만 세리느가 지켜 주고 있으니 걱정할 건 없다.
‘일단 가장 전력이 부실한 황색 3반의 진지부터.’
리히테나워 경신술을 사용해 몸을 날렸다.
그래듀에이트 하급의 몸으로 리히테나워 경신술을 펼치니, 정말로 놀라운 속도가 나왔다.
순식간에 황색 3반의 진지에 접근하자, 의욕 없는 표정으로 경비를 서고 있던 학생들과 마주쳤다.
“실례하겠다.”
“……!”
가볍게 검을 휘둘러 제압한 뒤, 입구로 들어갔다.
눈앞에 황색 깃발이 보였기 때문에 바로 꺾어 버렸다.
‘4개 중 하나는 꺾었고… 이제 3개 남았군.’
나머지 셋은 더 안쪽에 있을 것이다.
그것들을 모조리 꺾어 버리고, 녹색 4반의 진지로 이동하면 된다.
그쪽도 수비 병력이 얼마 없을 테니, 오랜 시간은 걸리지 않을 것이다.
‘방어를 소홀히 한 게 너희들의 실수다, 고르트, 베리스리제.’
흑색 6반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나는 거침없이 진지 내부로 진입했다.
* * *
진지전이 열리는 시합장, 남쪽 구역.
높은 산봉우리 위에 설치된 적색 1반의 진지에서, 루퍼스 이그니아스는 마지막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크윽……!”
적색 1반은 이미 깃발 3개를 잃었다.
이제 루퍼스가 뚫리면, 마지막 깃발조차 꺾이게 된다.
진지를 공격한 청색 2반에게 완패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추태를 보이다니……!’
원래 적색 1반은 최약체인 백색 5반의 진지를 공략하려 했다.
하지만 신중하게 병력을 움직이는 사이, 빠르게 움직인 청색 2반이 백색 5반의 진지를 괴멸해 버렸다.
청색 2반은 이어서 적색 1반을 공격했고, 결국 적색 1반의 진지가 유린당하고 말았다.
‘청색 2반의 평균적인 실력이 우리 적색 1반보다 뛰어난 건 아니야!’
일반 학생들의 실력은 큰 차이가 없다.
문제는 청색 2반의 대표였다.
‘이번에 청색 2반은 저 녀석을 앞세워서 모든 걸 맡기는 전략을 취했어! 그게 통한 거고!’
지금 루퍼스의 눈앞에 서 있는 검사.
푸른색 머리카락을 허리까지 길게 늘어뜨린 이 학생이야말로, 청색 2반의 대표였다.
“……?”
바로 그때.
푸른 머리카락의 검사가 고개를 돌렸다.
북쪽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빈틈인가……?’
공격할 기회다.
하지만 루퍼스는 좀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빈틈을 노리고 달려들어 봤자, 역공당해 자신이 쓰러지는 광경만 상상되었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실력 차이가 있었다.
“어디를… 보고 있는 거지?”
긴장 속에서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담담한 대답이 돌아왔다.
“북쪽에 있는 진지들.”
“진지들……?”
“황색 3반과 녹색 4반의 진지가 함락되었다. 흑색 6반의 완승이군.”
“……!”
그 말을 듣고, 루퍼스는 숨을 삼켰다.
이렇게 먼 거리에서 그런 걸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흑색 6반의 대표, 누구였더라.”
“에,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이다만…….”
“그렇군.”
고개를 끄덕인 뒤, 푸른 머리의 검사가 다시 루퍼스에게 시선을 향했다.
그리고 루퍼스에게 회피 불가능한 참격(斬擊)을 날리며 중얼거렸다.
“그 녀석인가.”
청색 2반의 ‘신동’.
리히테나워 검술 아카데미의 최강자가, 에르나스에게 관심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