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자객에 맞서다 (3)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지 마시오!”
헨리는 다급히 반박했다.
“다른 검술명가의 후계자들을 암살한다? 내가 왜 그런 짓을 한단 말이오?”
“생각해 보시오, 헨리 랭커스터.”
칼레온이 헨리를 노려보며 말했다.
“6대 검술명가의 후계자 중에서, 아카데미에서 퇴출당한 건 당신의 아들뿐이오. 남아 있는 녀석들이 얄미워서 미칠 것 같지 않겠소?”
“나를 모욕하지 마시오! 그렇다고 해서 다른 검술명가의 후계자를 모조리 죽이려 들지는 않소!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글쎄, 이번만큼은 그럴 가치가 있는 것 아니오?”
“……!”
칼레온의 말을 듣고, 헨리는 움찔했다.
“혹시 당신도 알고 있는 것이오?”
“당신이 알고 있는 걸 내가 모를 것 같소?”
“…….”
헨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건 지난번에 레스터에게 발설할 뻔했던, ‘이번 기수가 특별한 이유’와 관련이 있다.
“이번 기수에서 아카데미의 정점에 오르는 건, 정말로 큰 의미가 있소,”
“…….”
“하지만 레스터는 아카데미에서 퇴학당했지. 이런 상황에서 레스터가 나머지 다섯 명을 제치는 방법은… 그 다섯을 전부 죽여 버리는 것뿐이오.”
칼레온의 눈빛 앞에서 헨리는 침을 삼켰다.
사실 헨리도 그런 방법을 고려하긴 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섣불리 움직일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일단 에르나스부터 제거한 뒤 천천히 상황을 살펴보며 움직일 생각이었다.
“동기는 충분하단 말이오. 안 그렇소?”
“증거가 없소, 칼레온.”
헨리는 칼레온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마교 놈들이 보낸 암살자일 수도 있고, 6대 검술명가의 자리를 노리는 다른 가문의 짓일 수도 있소.”
“그런 거라면 아카데미에서 나와서 무방비해진 레스터 랭커스터부터 노렸을 것이오.”
“꼭 그러리란 보장은…….”
헨리는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에르나스의 함정이다.
에르나스가 거짓된 증언을 해서, 칼레온이 헨리를 의심하도록 만든 것이다.
지금은 칼레온만 쳐들어왔지만, 다른 가문에도 얘기가 퍼진다면 헨리의 입장이 곤란해진다.
“애초에, 그 암살자가 다른 가문의 후계자들도 노리고 있었다는 얘기를 어떻게 믿으란 말이오? 전부 다 에르나스의 증언에 불과하지 않소?”
“그러면 에르나스가 거짓말을 했단 말이오? 대체 왜?”
“그건…….”
헨리에게 가장 답답한 부분은, 진실을 밝힐 수 없다는 점이었다.
이 사건의 진실은 헨리가 라지엘을 보내 에르나스를 암살하려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진실을 밝힐 수는 없다.
결국 거짓말에 반박하기 위해 거짓말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조금만 실수를 해도 말이 꼬이게 된다.
“검술명가의 후계자들을 다 죽이라고 보낸 암살자가,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한 명 못 죽이고 당했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오? 그런 중차대한 임무를 맡은 암살자라면 더 기량이 뛰어난 사람을 고용하는 게 당연하오.”
“학생이라고 얕봐서 방심했다고 하지 않았소.”
“아니, 애초에…….”
“애초에, 뭐요?”
“크흠, 아무것도 아니오.”
말실수를 해서 칼레온에게 단서를 제공해서는 안 된다.
다급히 수습하려 했지만, 칼레온은 무서운 눈으로 헨리를 노려봤다.
“헨리 랭커스터, 역시 뭔가 알고 있는 거 아니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지 않았소!”
“갈수록 수상해지는군.”
까득.
칼레온이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렸다.
당장이라도 검을 뽑아 이그니아스 염옥검술을 펼칠 듯한 분위기였다.
“이 얘기는 다른 가문들에게도 전하겠소. 다른 가문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하군.”
“증거 없이 랭커스터 가문을 몰아세우지 마시오. 전쟁이라도 하고 싶은 거요?”
“그쪽에서 먼저 칼을 뽑아 준다면 우리야 고맙지.”
“칼레온……!”
원래 헨리는 다른 가문들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면서 지분을 차지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랭커스터 가문이 나머지 다섯 가문 사이에서 공공의 적이 되어 버린다.
“지금 아카데미에서 현장을 철저히 조사하고 있소. 증거가 나오지 않기를 기도하는 게 좋을 거요.”
“랭커스터 가문은 아무 관련도 없으니, 증거가 나오든 말든 아무 상관 없소.”
“흥, 말은 잘하는군.”
칼레온이 코웃음을 치면서 자리를 떴다.
그 뒷모습을 보면서, 헨리는 주먹을 꽉 쥐었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네놈……!’
마음만 같아서는 지금 당장 아카데미로 쳐들어가서 에르나스를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다가 발각되면 정말로 헨리가 사건의 흑막이 되어 버린다.
자칫하면 6대 검술명가에서 랭커스터 가문의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다.
“빌어먹을……!”
욕설을 내뱉으면서, 헨리는 의자 팔걸이를 주먹으로 부숴 버렸다.
‘기다려라,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지금은 어려워도, 기회가 오면 네놈을 반드시 죽여 버리고 말겠다.
헨리는 이를 갈면서 그렇게 다짐했다.
* * *
‘지금쯤 칼레온이 불같이 화를 내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흑색 6반으로 돌아가기 위한 배에 올라탔다.
본래는 더 일찍 귀환해야 했지만, 암살자 사건의 추가 조사 때문에 계속 발이 묶여 있어야 했다.
아카데미에 괴한이 숨어 들어왔다는 것만으로도 큰 사건인데, 괴한이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의 암살을 시도했고, 나아가 다른 검술명가의 자제들까지 죽일 계획이었다고 하니… 철저한 조사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열심히 조사를 해 봤자, 내가 의도적으로 남긴 흔적밖에 찾을 수 없겠지만.’
이번 사건을 수습하면서, 나는 아카데미 측이 랭커스터 가문을 의심하도록 유도했다.
칼레온 이그니아스와의 독대를 요청한 것도 그 일환이었다.
‘칼레온은 꽤 단순한 성격의 인물이지. 헨리를 의심하게 만드는 건 어렵지 않았어.’
칼레온은 근엄한 중진이지만, 아들인 루퍼스와 마찬가지로 단순한 측면이 있다.
소설 속에서도 타인의 계략에 여러 번 속아 넘어갔다.
이런저런 얘기를 꺼내면서 랭커스터 가문을 의심하도록 유도하니, 불같이 화를 내면서 뛰쳐나가 버렸다.
‘아들을 끔찍이 아끼는 사람이니, 더 분노할 수밖에 없지.’
칼레온은 헨리를 찾아가 항의한 뒤, 이어서 다른 가문들에게도 얘기를 전달할 것이다.
다른 가문들도 랭커스터 가문을 의심하게 될 테고, 랭커스터 가문은 궁지에 몰리게 된다.
‘이걸로 내가 직접 나서지 않아도 다른 가문들이 랭커스터 가문을 견제해 줄 거야.’
이것이 내가 생각한 뒷수습이었다.
내가 직접 움직이지 않고도 랭커스터 가문에게 보복할 수 있는… 에르나스 란즈슈타인다운 방식이다.
‘나하고 랭커스터 가문의 싸움이 되면 안 되니까.’
지금 나는 아카데미에서 자신을 단련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랭커스터 가문과 정치 싸움을 하고 있을 여유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구도를 바꿨다.
‘다른 가문들과 랭커스터 가문 사이의 싸움으로 만드는 거지.’
랭커스터 가문이 흑막이라는 걸 밝히는 물적 증거는 제공하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랭커스터 가문이 너무 불리해지기 때문에, 싸움이 쉽게 끝나 버린다.
자칫하면 랭커스터 가문이 고개를 숙이고 다른 가문 밑에 들어갈 수도 있다.
‘지금은 6대 검술명가가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어야 해. 랭커스터 가문이 멸망하거나 다른 가문 밑으로 들어가 버리면 곤란하지.’
이걸로 랭커스터 가문은 한동안 나를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
지금은 다른 가문들에 대응하느라 정신이 없을 테고, 함부로 아카데미에 접근하면 다른 가문들에게 의심받는다.
‘리스크를 무릅쓰고 아카데미에 쳐들어올 수도 있지만…….’
랭커스터 가문이 다시 나를 건드리려 하면, 또다시 격퇴하면 된다.
그리고 이번보다 심한 곤욕을 치르게 해 줄 것이다.
소설의 지식을 활용하면, 방법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럼 슬슬 출발하겠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교관이 배를 출발시키려 했다.
하지만 그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르나스, 여기 있었군.”
“욜스 교수님?”
도룡검(屠龍劍) 욜스 칼레시우스.
흑색 6반의 검술 담당 교수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잠깐 괜찮겠나?”
“무, 물론입니다.”
교관이 욜스에게 깍듯이 예를 표했다.
혼자서 드래곤을 쓰러뜨려 황제에게 치하를 받은 욜스는 누구에게나 존경의 대상이었다.
“암살자의 습격을 받았다더니, 다친 곳이 없어서 다행인 것 같군.”
“상대가 제 앞에서 너무 여유를 부렸습니다.”
“방심했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욜스가 내 얼굴을 보면서 말했다.
“들리는 소문대로 랭커스터 가문에서 보낸 암살자라면, 브로시안 가문의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렇습니까?”
“그곳의 암살자들이 그렇게 허술할 것 같지는 않다.”
“…….”
“적어도 그래듀에이트 하급 이상을 보냈을 텐데 말이다.”
내가 입을 다물고 있자, 욜스가 쓴웃음을 지었다.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것 같아서 기쁠 뿐이니까.”
“교수님의 지도 덕분입니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 마라.”
그렇게 말하며 욜스가 나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이렇게 눈으로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다. 처음 아카데미에 왔을 때하고 비교하면 몸이 많이 달라졌다. 고작 몇 달 사이에 말이다.”
“…….”
“네가 누구보다 열심히 단련을 했다는 증거겠지. 너는 징벌동에서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단련을 했을 거다.”
욜스의 말에 나는 가슴이 조금 뭉클해지는 것을 느꼈다.
다른 건 그렇다 쳐도, 육체가 탄탄해진 건 순전히 내 노력의 결과다.
노력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기쁜 일이었다.
“그래도, 아직 네 몸은 많이 부족하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계속해서 육체를 단련하도록 해라. 마력으로 육체 능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는 해도, 기본 근력이나 체력이 갖춰져야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교수님.”
“마음만 같아서는 내가 개인적으로 지도해 주고 싶지만… 너도 알다시피, 그럴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렇게 말하며, 욜스가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2차 시험에 통과한 뒤라면, 가능하겠지만.”
“교수님…….”
“지금 할 얘기는 아니겠지. 그래도 내가 너를 눈여겨보고 있다는 걸 기억해 줬으면 한다.”
“…….”
욜스의 얘기는 2차 시험이 끝난 뒤 이루어질 ‘진급’과 관련된 것이다.
하지만 욜스의 말대로 지금 할 얘기는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얘기를 더 꺼내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흑색 6반으로 돌아가는 건가?”
“네, 자리를 비운 지 열흘이 넘었죠.”
“하필이면 이런 날에 돌아가게 되었군.”
“무슨 말씀이시죠?”
내 질문을 듣고, 욜스가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저께부터 진행된 합동 실습에서, 흑색 6반은 황색 3반 및 녹색 4반과 함께 움직였다.”
황색 3반과 녹색 4반.
6대 검술명가인 발트펠트 가문과 슈라이에르 가문의 후계자가 대표를 맡고 있는 곳이다.
“오늘 최종 결과가 나왔다. 흑색 6반은 황색 3반과 녹색 4반의 방해 공작 때문에… 매우 처참한 성적을 기록했다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