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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 아카데미에 천재가 있었다-25화 (25/212)

25화 자객에 맞서다 (2)

브로시안 가문은 오랫동안 랭커스터 가문을 섬겨 왔다.

주된 업무는 암살 같은 더러운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브로시안 가문의 검술은 정상적인 정면 대결에 적합하지 않다.

기습, 암습, 급습… 그런 것에 특화된 검술이다.

하지만 브로시안 암살검술에도 정면 승부에 적합한 필살기가 있다.

이름조차 없는, 비밀스러운 최종 비기.

‘이 기술의 특징은, 처음 보는 사람이면 대응할 수 없을 정도로 변칙적이라는 것.’

초견즉살(初見卽殺).

변칙적인 기술이 많은 서부 검술의 개념이다.

처음 보는 상태에서 맞섰다간 바로 허를 찔려 목숨을 빼앗긴다.

‘이 기술을 사용하면, 라지엘 브로시안은 그래듀에이트 중급조차 쓰러뜨리는 것이 가능하다.’

자신보다 기량이 뛰어난 상대조차 쓰러뜨릴 수 있는 것이 초견즉살의 기술이다.

물론, 기량 차이가 정말로 심한 경우에는 초견즉살이 성립하지 않지만… 그 정도가 아니라면, 자신보다 한 수 위의 상대라도 해치울 수 있다.

‘그렇기에, 초견즉살의 비기는 철저히 숨기는 게 일반적이지.’

기술의 정체가 알려지면 대응법이 연구된다.

그렇기 때문에 브로시안 가문의 사람들은 이 기술을 함부로 펼치지 않는다.

랭커스터 가문에게도 이 기술의 존재를 계속 숨겨 왔다.

‘그런 기술을 나한테 쓴다는 건, 라지엘도 궁지에 몰렸다는 뜻.’

라지엘은 빨리 나를 해치우고 뒤처리까지 마쳐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자꾸 도발까지 하니, 숨겨 왔던 최종 비기를 쓸 수밖에 없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나는 이 기술에 전혀 대응하지 못했겠지.’

브로시안 암살검술의 최종 비기는 뱀처럼 꿈틀거리며 파고 들어오는 ‘찌르기’다.

어느 타이밍에 어느 곳으로 찔러 들어오는지 파악하기 어려운 데다가, 마지막 순간에 ‘관절을 느슨하게 만들어’ 팔의 길이를 늘인다.

그래듀에이트 중급까지 쓰러뜨리는 초견즉살의 필살기이니, 그래듀에이트 하급인 나로서는 대응하기 어렵다.

‘하지만…….’

뻗어 오는 라지엘의 칼날을 보면서.

나는 마나 하트의 마력을 활성화했다.

육체의 요소요소에 마력을 집중해, 최적의 상태를 만들었다.

그리고 비장의 기술을 펼쳤다.

‘지금의 나라면, 이걸 파훼하는 것으로 승리를 확정 지을 수 있다.’

파앗!

검기와 검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라지엘의 칼이 튕겨 나가, 동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이어졌다.

“아니……?!”

당황하면서 주춤하는 라지엘.

초견즉살의 비기가 어째서 파훼당했는지 이해를 못 한 듯했다.

“이걸, 어떻게…….”

“라지엘 브로시안, 한 가지 알려 주지.”

내 칼날은 이미 라지엘의 목덜미에 닿아 있었다.

그 상태를 유지하며, 나는 차갑게 말했다.

“랭커스터 소검술에는, 브로시안 단검술의 최종 비기를 파훼하기 위한 기술이 있다.”

“뭐, 뭐라고?”

라지엘이 눈을 크게 떴다.

“마, 말도 안 된다. 랭커스터 가문은 우리한테 그런 기술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

“그건 너희들의 착각이다.”

“……!”

랭커스터 가문도 브로시안 가문에 초견즉살의 비기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나중에 브로시안 가문을 토사구팽해야 할 때를 대비해, 그 비기를 입수하여 대응법을 연구해 놓은 것이다.

브로시안의 검사는 마지막 순간에 그 기술을 펼칠 테고, 그 기술만 파훼하면 확실한 승리를 거둘 수 있으니까.

“사냥개를 처분해야 할 때를 대비해, 미리 대책을 마련해 놓은 것이지.”

“크윽…….”

내 말을 듣고 라지엘이 몸을 떨었다.

“우리는, 랭커스터 가문에 충성을 바쳐 왔는데…….”

그는 배신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전의를 상실했는지, 칼날이 목에 닿은 상태에서도 저항하지 않았다.

“빌어먹을 검술명가 놈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그동안 충성을 바쳐 왔던 명문가를 향한 욕설이었다.

* * *

“후우…….”

라지엘의 숨이 끊어진 걸 확인한 뒤,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소설 속 세계에 들어온 시점에서 각오하고 있던 일이지만,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건 부담이 되는 일이었다.

‘그나저나, 이제부터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랭커스터 가문에서 아들의 보복을 위해 암살자를 보냈다.

이건 이 세계에서도 분명히 선을 넘은 일이다.

하지만 내가 이걸 고발한다고 해서 일이 잘 풀리라는 보장은 없다.

‘어차피 증거도 없으니까.’

라지엘을 살려 놨다고 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라지엘이 자백을 한다고 해도, 헨리 랭커스터는 철저히 잡아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정치적인 싸움이 되어 버린다.

‘자칫하면 랭커스터 가문에서 역공을 할 수도 있어. 명확한 증거도 없으면서 누명을 씌운다고 말이지.’

가문 사이의 정치적 싸움이 되어 버리면 내가 불리하다.

현재 란즈슈타인 가문은 모종의 사정 때문에 움직일 수 없다.

그러니 나 한 사람의 개인기로 맞서야 한다.

‘현재 나는 아카데미의 일개 학생일 뿐이야. 지금 시점에서 내가 랭커스터 가문을 몰아세우는 건 불가능해.’

지금 당장 랭커스터 가문을 공격하는 건 쉽지 않다.

내가 아카데미 바깥으로 나가서 ‘소설 중반부의 요소’를 활용하면 랭커스터 가문을 무릎 꿇릴 수 있겠지만… 그럴 수는 없다.

‘다른 가문에 도움을 요청할까? 아니, 그렇게 되면 다른 가문에 빚을 지게 돼.’

결국 지금 시점에서 나와 랭커스터 가문의 정면 충돌은 좋을 게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걸 그냥 넘어갈 수도 없는 상황이다.

‘암살자한테 살해당할 뻔했어. 그냥 없었던 일로 치고 넘어갈 수는 없지.’

나는 바닥에 앉은 채 생각에 잠겼다.

‘소설 속의 에르나스라면 어떻게 했을까.’

권모술수의 천재,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그 녀석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멍청하게 당하고만 있지 않는다.

가장 이득이 되는 구도를 만들어 낸 뒤, 자신은 안전한 곳으로 슬쩍 빠져 버린다.

‘주인공인 아칸델만 없었으면 정말로 모든 걸 손에 넣었을 녀석이란 말이지.’

나는 에르나스를 창조한 작가다.

그러니 이런 상황에서 에르나스가 어떤 책략을 내놓을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그래, 이렇게 하면 되겠군.’

그리고, 마침내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 * *

헨리 랭커스터는 초조함을 느끼고 있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라지엘에게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라지엘이 실패했을 리는 없는데…….’

라지엘은 산전수전을 겪은 베테랑 암살자다.

아직 애송이에 불과한 에르나스의 목을 따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터.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가, 가주님, 손님이 오셨습니다!”

“손님?”

시종의 다급한 목소리를 듣고, 헨리는 인상을 찌푸렸다.

“오늘 약속은 없었는데, 누구지?”

“그, 그것이…….”

“실례하겠소.”

시종을 밀치고,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보고 헨리는 흠칫 놀랐다.

“칼레온 이그니아스……?”

“오랜만이오, 헨리 랭커스터.”

이그니아스 가문의 가주, 칼레온 이그니아스.

아카데미의 교수이기도 한 그가 갑자기 랭커스터 가문에 찾아온 것이다.

“여기는 어떻게…….”

“내 경신술이면 여기까지 며칠 걸리지 않지.”

“그런 얘기가 아니라… 크흠.”

헨리는 헛기침을 했다.

“대체 무슨 일로 온 것이오? 최근 있었던 사건들은 다 처리가 끝난 걸로 아는데.”

헨리가 직접 사죄 편지까지 썼다.

굴욕적인 일이었지만, 이번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일이었다.

“레스터의 퇴학 때문에 온 것이 아니오.”

“그러면……?”

칼레온이 무언가를 바닥에 집어 던졌다.

그 정체를 확인하고 헨리는 흠칫 놀랐다.

‘저건……!’

칼레온이 집어 던진 건, 다름 아닌 라지엘의 머리였다.

평소에는 복면을 쓰고 있어 가족한테도 얼굴을 드러내지 않지만, 헨리는 얼굴을 알고 있었다.

“아는 사람이오?”

“모르겠소. 대체 누구기에 여기다가 집어 던지는 것이오?”

시치미를 떼면서 대꾸하자, 칼레온이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을 습격한 암살자라고 하더군.”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을?”

“하지만 학생이라고 너무 방심했던 모양이오. 빈틈을 보였다가 칼에 찔려 죽은 것 같더군.”

“…….”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라지엘은 상대가 학생이라고 방심할 녀석이 아니다.

빈틈을 찔려 죽었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얘기다.

‘라지엘은 그래듀에이트 하급이지만, 그래듀에이트 중급도 여러 명 죽였던 베테랑 암살자다. 남의 허를 찌르면 찔렀지, 남에게 허를 찔릴 녀석은 아니란 말이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라지엘의 머리가 굴러다니고 있는 건 사실이다.

에르나스가 죽였든, 다른 사람이 죽였든, 라지엘이 임무에 실패한 건 사실인 것 같았다.

그렇다면, 헨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뿐이다.

이번 일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대충 짐작이 가는군, 칼레온 이그니아스…….”

헨리는 최대한 평정을 유지하며 입을 열었다.

“저 암살자를 우리 랭커스터 가문에서 보냈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이오?”

“…….”

“정말로 어이없는 얘기로군.”

그렇게 말하며 헨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에르나스 란즈슈타인, 그 녀석이 내 아들인 레스터를 몰락시킨 건 사실이오. 하지만 그 보복으로 암살자를 보낸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얘기지.”

“…….”

“혹시 그 암살자가 내 이름을 입에 담기라도 했소? 그런 게 아니니까 이렇게 혼자서 찾아온 거 아니오?”

라지엘이 헨리의 이름을 발설할 리가 없다.

헨리에게 지시를 내렸다는 물적 증거가 있을 리도 없다.

명확한 증거가 있었다면, 칼레온 혼자서 오는 게 아니라 헨리를 체포하기 위한 부대를 이끌고 왔을 것이다.

결국 칼레온도 증거가 없는 것이다.

“여러 가지 문제가 있긴 했지만, 에르나스 란즈슈타인은 정당한 대결 끝에 내 아들인 레스터를 꺾었소.”

헨리는 일부러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아들의 몰락에 안타까워하는 아버지의 표정이었다.

“나는 그 결과에 납득한 상태요. 그런데 암살자를 고용해 보복하려 하다니… 있을 수 없는 얘기지. 나를 너무 모욕하지…….”

“뭔가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군, 헨리 랭커스터.”

“뭣이오?”

“에르나스가 말하길, 딱히 레스터의 보복을 위한 건 아니었다고 하더군.”

그 말을 듣고, 헨리는 흠칫 놀랐다.

이게 무슨 소리일까?

“에르나스도 처음에는 레스터의 보복을 의심했다고 말했소. 하지만 저 암살자가 말하길, 에르나스를 죽인 뒤…….”

칼레온이 무서운 눈빛으로 헨리를 노려봤다.

“아카데미에 잠입하여 다른 검술명가의 후계자들도 죽이고 다닐 계획이라고 했다더군.”

“……!”

말도 안 된다!

헨리는 그런 건 명령한 적이 없다.

에르나스 한 명을 죽이라고 명했을 뿐, 다른 검술명가의 후계자들은 언급조차 안 했다.

자칫하면 나머지 검술명가 전체를 적으로 돌리게 되는데, 그런 짓을 왜 한단 말인가!

“내 아들인 루퍼스 이그니아스도 암살할 거라 말했다던데… 헨리 랭커스터, 정말로 이번 사건하고 관계가 없는 것 맞소?”

염옥검 칼레온이 이글이글 불타는 눈빛으로 헨리를 노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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