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5화
보이지 않는 마케팅
일반적으로 ‘성공한 마케팅’이라 함은, 최대한 다수의 사람에게 상품이나 브랜드를 노출 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마케팅 대상을 더 많이 알리고 더 널리 홍보할수록, 대상의 가치가 더 올라가는 것이 보통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아르코>라는 프리미엄 브랜드를 런칭하기에 앞서, 처음 WJ 스튜디오에서 짰던 마케팅 계획도 일반적인 마케팅 계획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최대한 다양한 매체에 브랜드 홍보를 하기 위해, 다각도로 고민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계획은, 몇 달 전 마케팅 회의에서 우진의 이야기로 인해 180도 달라졌다.
“마케팅이라는 게 결국 뭐죠?”
우진의 물음에, 마케팅 팀장 지용현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야, 저희 브랜드를 ‘알리는’ 것 아닐까요?”
우진이 다시 말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요.”
“흠…….”
우진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직원들이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우진의 입이 다시 열렸다.
“결국 마케팅이라는 건, 상품을 잘 팔기 위한 수단인 거잖아요?”
“그렇죠.”
“그럼 저희는 저희가 팔아야 하는 이 <아르코>라는 브랜드를, 타겟으로 잡은 소비자들에게 가장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요?”
“그 말씀은…….”
“최대한 많은 매체에 노출 시켜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역으로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
“결국 저희 <아르코>를 소비할 수 있는 소수의 고객들이, ‘사고 싶게’만 만들면 되는 거니까요.”
다소 선문답 같았던 우진의 이 말은, 마케팅팀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어찌 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을 이야기한 것이었지만, 마케팅 방향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탈피할 수 있는 새로운 기준점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우리 <아르코>를 소비할 고객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거주에 수십억의 돈을 쓸 수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최상류층이겠지요.”
“우리가 만약 일반적인 아파트, 주상복합의 분양 홍보처럼, 이 <청담 아르코>를 팔기 위해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모객하고 여기저기 플랜카드를 걸고 다닌다면.”
“음…….”
“실제로 이 브랜드를 소비해야 하는 최상류 층에게 매력적으로 어필될 수 있을까요?”
가격이 싼 기본 소비재일수록.
그것은 수요와 공급. 그리고 실질적인 기능과 가치에 의해 가격이 책정된다.
하지만 반대로 가격이 비싼 사치재일수록, 그것의 가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람의 심리이다.
그것이 귀해 보이고 특별해 보이도록 만드는 것.
그것은 실제적인 기능이 아닌 소비자들의 심리라는 것이다.
우진은 그렇게 생각했고,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제가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부자들은 자신들이 ‘특별한’ 사람이길 바랍니다. 정확히는 자신을 ‘특별한 사람’으로 대우해주기를 바라지요.”
“경청하겠습니다.”
“해서 저는 우리 <아르코> 브랜드가, 마케팅 단계에서부터 그들에게 ‘특별하게’ 다가가길 바랍니다.”
“대표님께선, 생각해보신 방안이 있으신 거죠?”
“아직까진 방향성 정도지만…….”
우진은 자신이 생각하는 ‘특별한’마케팅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것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아무나 접할 수 없는 마케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군요.”
“아무나 접할 수 없는……. 마케팅이요?”
브랜드를 널리 알리기 위한 것이 마케팅인데, 그것을 ‘아무나 접할 수 없다.’라는 것.
이만한 모순도 찾기 어려웠지만, 우진의 얘기는 계속됐고…….
“누구나 접할 수 있는 것은 특별하지 못합니다. 그렇지요?”
“그렇……습니다.”
“길거리에서 나눠주는 전단지의 대부분이, 필연적으로 버려질 수밖에 없는 이유지요.”
우진의 목소리를 듣던 직원들은 점점 그의 이야기에 빨려 들어가게 되었다.
“그래서 저는 이 프로젝트의 브로셔부터가,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진이 원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마케팅 단계에서부터 <아르코>라는 브랜드를, 철저히 선택된 사람들에게만 노출되도록 하는 것.
그리고 그 선택된 사람들은, 자신들이 선택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고, 또 그것이 특별하게 느껴지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종래에는, 고객들이 WJ 스튜디오로부터 <아르코>를 ‘분양받을 특권’을 얻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
“고객들은 <아르코>에 초대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본인들이 사회적으로 성공했고 특별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어야 합니다.”
우진의 이야기가 전부 끝났을 때, 직원들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야기 전반에 동의하고 감탄했지만, 그와 별개로 이 계획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은 쉽게 떠오르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래서 지용현은 다시 물어볼 수밖에 없었고.
“그게…… 가능할까요?”
그 질문에, 우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간결히 대답하였다.
“그걸 가능하도록 만들어야지요.”
“……!”
우진에게는 계획이 있었으니까.
* * *
식사를 다 한 수하와 우진은, 조용한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커피를 한 잔 시킨 수하는 그것을 홀짝이며 천천히 우진으로부터 받은 브로셔를 정독하였고.
그렇게 삼십 분 정도 지났을 때 그녀는 브로셔의 마지막 장을 넘길 수 있었다.
탁-
이어서 브로셔를 덮은 그녀의 시선이, 건너편에 앉아 타르트를 오물거리고 있던 우진을 향했다.
수하의 첫 마디는 이것이었다.
“이거, 홍보 브로셔 맞아?”
우진이 간결히 대답했다.
“맞는데?”
“무슨 홍보 브로셔에, 분양가도 없고 분양 일정도 없어?”
“분양 일정이야 개별분양이라 의미 없어서 빠진 거고…….”
우진이 웃으며 한 마디 덧붙였다.
“분양가가 없는 이유는, 가격이 얼마나 합리적인지 보다는, 얼마나 좋은 집인지를 알리는 게 목적인 브로셔니까.”
우진은 싱글싱글 웃으며 수하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기분이 좋았다.
수하의 표정이나 목소리만 봐도 이 브로셔에 이미 마음이 홀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고.
그녀야말로 우진이 생각하는 이 아르코 브랜드의 타겟 수요층에 가장 부합하는 사람들 중 한 명이었으니까.
반면 우진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수하는, 브로셔를 앞뒤로 살피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그나저나……. 이게 분양 홍보 브로셔가 맞긴 한 거야?’
만약 처음 우진에게 설명을 듣지 않고 이 브로셔를 손에 쥐었다면, 끝까지 전부 읽고 나서도 분양 홍보를 위한 책자라는 사실조차 몰랐을 것 같았다.
“아무리 봐도 이상해.”
“또 뭐가?”
“이게 어딜 봐서 분양 홍보 브로셔야? 그냥 건축 잡지지.”
“오, 잡지? 그렇게 느껴져?”
“응. 다시 보니까, 아예 책자 안에 분양이라는 단어도 없는 것 같은데?”
“맞아, 대신 이런 문장이 있지.”
“뭐?”
“‘청담 아르코를 완성 시키는 것은, 바로 이 특별한 주거에 걸맞은 특별한 당신이 될 것입니다.’라고.”
“…….”
듣고 보니 그런 말이 있었던 것도 같았다.
그리고 그 문장을 보면서, 꽤 설레었던 것 같기도 했다.
수하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우진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누나 말 듣다 보니, 확신할 수 있겠어.”
“뭘?”
“우리 디자인 팀에서, 내 의도대로 브로셔 아주 제대로 만들었다는 걸 말이야.”
“고객이 이게 브로셔인 줄도 몰라야 하는 게 네 의도야?”
“맞아. 바로 그거야.”
수하가 어떻게 생각하든, 우진은 싱글벙글이었고, 그런 그를 향해 수하가 다시 물었다.
“그럼 이 브로셔는 대체 어떻게 고객들한테 전달되는 건데?”
우진은 탁자 위에 놓인 브로셔를 톡톡 두들기며 천천히 입을 열었고.
“이렇게 인맥을 통해서 직접 전달되던가, 그게 아니면…….”
이어서 준비했던 모든 이야기들을 하나씩 풀어놓기 시작하였다.
* * *
수하와의 미팅이 끝난 뒤, 우진은 곧바로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복귀하자마자 우진이 한 것은, 곧바로 회의를 소집한 것이었다.
“마케팅실, 지금 전부 자리에 있죠?”
[네, 대표님.]
“회의합시다. 10분 뒤에 회의실로 오세요.”
[넵, 알겠습니다!]
회의를 소집한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우진의 마케팅 계획에서 마지막 퍼즐이 바로 수하였는데, 그녀의 수락을 받았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마케팅을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임수하 배우님의 수락은 받았고, 강소정 대표님께도 긍정적인 답변 받았습니다.”
“오! 다행입니다!”
“이제 플랜을 정하면 되는데, 1차 브로셔 배포는 다음 주부터 바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배우님 촬영 일정이 잡혀야 하는 것 아닌가요?”
“어차피 브로셔에는 배우님 이미지 안 들어가니까요.”
“아……!”
“내일부터 바로 인쇄 들어가야 하니까, 오늘 좀 바쁘게 움직여 봅시다.”
“네, 대표님!”
회의가 끝난 뒤에는, 여기저기 전화를 걸기 시작하였다.
아르코 브랜드의 마케팅을 위해 미리 섭외해 두었던 우진의 인맥들에게 전화를 돌리는 시간이었다.
“네, 석중 형님. 별일 없으시죠?”
[나야 별일 없지. 어쩐 일이야?]
“지난번에 말씀드렸던, 청담동에 그 타운하우스 말입니다.”
[아, 그거! 오, 드디어 분양 하냐?]
“조만간 분양 시작할 건데, 그 전에 브로셔 몇 권 보내드릴까 해서요.”
[좋지.]
“전에 말씀드렸던 대로, 지인분들께도 좀 전달 드리면…….”
[그렇잖아도 내가 떡밥 좀 뿌려 뒀는데, 다들 관심 있어 하는 눈치더라고.]
“오, 정말요?”
[브로셔 나오는 대로 보내줘라.]
“몇 권 필요하세요?”
[한 열 권…… 정도?]
“알겠습니다, 형님.”
지인들에게 전화를 돌리는 데만 하더라도, 한 시간 이상이 훌쩍 지나갔다.
다들 간단히 용무만 이야기하고 끊을 수 있는 사람들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모든 통화가 끝난 뒤에는…….
“대표님, 최종본으로 인쇄 발주 넣었습니다!”
“넵, 고생하셨습니다!”
브로셔 발주를 마지막으로,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다.
* * *
청담 아르코의 브로셔는, 정확히 천부만 인쇄되었다.
그리고 그 천 권의 브로셔들은, 무척이나 다양한 장소에 배포가 시작되었다.
서울 내 5성급 이상 호텔의 VIP 라운지부터 시작해서…….
“음? 매니저님. 이 건축 잡지는 뭔가요? 못 보던 건데.”
“아, 지배인님께서 오늘부터 VIP 고객대기실에 비치해 두라고 하신 책자입니다.”
“아, 그래요?”
“판매용은 아니고 소장용이라고 셨습니다.”
“청담 아르코……?”
“저도 궁금해서 봤는데, 건물 정말 멋지더라고요.”
고가의 외제차들이 전시되어 있는 자동차 매장과, 명품 매장이 모여 있는 면세점의 VIP 라운지까지.
“제가 좀 일찍 왔죠?”
“네, 고객님. 시승은 30분부터 가능하십니다.”
“흠…….”
“음료라도 좀 준비해 드릴까요?”
“아, 아닙니다. 그냥 앉아서 쉬고 있을게요.”
“네, 고객님.”
“이쪽에 있어도 되죠?”
“물론입니다.”
“이 잡지는 뭐예요? 읽어도 되는 거죠?”
고부가가치의 소비가 이뤄지는 많은 장소에, WJ 스튜디오의 직원들이 직접 영업을 뛰어다닌 것이다.
“아, 물론입니다. 오늘 들어온 잡지인데, 그렇잖아도 고객님들이 한 번씩 다 읽어보시더라고요.”
“아하, 그래요?”
“표지가 눈이 좀 가나 봐요.”
“그러게요. 제가 건축에 딱히 관심이 있는 건 아닌데…….”
“구매처를 물어보시는 분도 계시더라고요.”
“음? 그 정도에요?”
“WJ 스튜디오에서 나온 잡지라서 그런가. 요즘 서우진 대표가 핫 하잖아요.”
“아, 거기!”
당연한 얘기겠지만, 단순히 책자를 비치한 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몇 달에 걸쳐 각 매장과 모종의 프로모션을 체결하기도 하였으며, 콜라보 이벤트까지 따로 기획해 놓은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각 매장에서도 아르코 브로셔를 적극적으로 노출시킬 수밖에 없었고.
그것은 자연스레 입소문으로 이어졌다.
골든 프린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