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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프린트-257화 (257/315)

257화

방해꾼

감사원이란, 국가 행정기관과 공무원의 직무에 대한 감찰을 목적으로 설립된 대통령 직속의 국가 최고 감사기관이다.

공무와 관련된 거의 모든 비리에 제재를 가할 수 있는, 모든 감사기관의 사령탑인 셈이다.

우진이 의아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중앙 기관의 어떤 비리를 감사하는 것도 아니고 지자체일 뿐인 이천시의 공무집행에 대한 감사를 이 감사원에서 직접 지시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라면 일어나기 힘든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감사원이 당연히 그러한 권한과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맞았지만, 이천시와 같은 지자체는 대한민국에 수없이 많았다.

때문에 그런 크고 작은 기관 전부에 감사원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이 물리적으로 가능할 리 없는 것.

그래서 보통 지방 기관의 감사는, 각 피 감사기관이 가지고 있는 1차 감독기관, 혹은 감사담당관이 하게 된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결코 그렇지 않다.

어떤 공무를 수행함에 있어 하나의 기관 안에서 모든 부분이 소화되는 경우는 보통 없었으니까.

예를 들어 이천시에서 이번에 진행 중인 <천년의 그대> 세트장 인근의 지구 단위 개발의 경우.

도시계획위원회나 경기도청 같은 다른 기관과의 협업이 필수적으로 진행된다.

이 협업 과정에서 각 기관의 감사담당관은 자연스레 연계기관의 감사업무를 병행하게 되니, 감사 시스템이 제법 촘촘하다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걸 감사원에서. 게다가 국토부에서까지 태클을 걸었단 말이지?’

지금 이천시와 우진이 진행 중인 지구단위계획은, 전국적으로 봤을 때 정말 규모가 작은 사업장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감사원이나 국토부가 직접 움직일 이유가 없는 수준.

그래서 우진은, 일단 이렇게 얘기하였다.

“뭐, 국장님께서도 이미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 같지만……. 제 쪽에 어떤 문제는 전혀 없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넵. 알겠습니다. 정말 혹시나 해서 전화 드린 겁니다. 하하.]

“그리고 혹시 가능하시면…….”

[네?]

“이천시 감사담당관에 연락 들어온 국토부나 감사원 직원 정보 좀 공유해주셨으면 합니다.”

[엇, 그야 어렵진 않지만…….]

“별 뜻은 없습니다. 어떤 정황 때문에 감사가 들어오는 건지, 한번 물어보기나 하려고요.”

[기분 나쁘신 것은 알겠지만, 가능한 그런 연락은 피하시는 게 좋을 수도 있습니다.]

“그쪽에서 더 공격적으로 나올까 봐서죠?”

[그렇습니다. 잘 아시네요.]

우진이 웃으며 답했다.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저도 저 위에 계신 분들 심기 불편하게 해드릴 생각은 없으니까요. 좋은 말로 궁금한 부분 몇 가지만 물어볼 겁니다.”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프로젝트 진행에 다른 애로사항은 없으시죠?”

[물론입니다. 감사 때문에 골치가 좀 아파진 것 말고는……. 걱정 않으셔도 됩니다.]

“네, 항상 감사드립니다, 국장님!”

[저도 마찬가집니다! 그럼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뚝-

조용현 국장과의 전화를 끊은 우진은, 의자에 등을 푹 기대며 잠시 생각에 빠졌다.

‘세상에 원인 없는 결과는 없는 법인데…….’

아직 어떤 확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진은 갑작스레 들어온 감사에 어떤 목적이 있을 것이라 확신하였다.

그 의도가 정확히 뭔지는 아직 감이 오지 않았지만, 찬찬히 찾아본다면 분명히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다 지어놓은 밥에 재를 뿌리는 걸, 그대로 두고 볼 수는 없지.’

어차피 감사가 시작된다고 해도 딱히 걸릴 것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순순히 저들의 의도대로 움직여 줄 생각은 없었다.

원래 달콤한 열매가 열리는 곳에는 날파리들이 꼬이는 법.

우진의 머리가 빠르게 굴러가기 시작하였고.

잠시 후.

위이잉-

우진의 스마트폰으로, 조용현 국장의 메시지가 날아왔다.

[감사원 사무1처 000]

[010-0000-0000]

[국토교통부 운영과 000]

[010-0000-0000]

* * *

오전 회의가 끝난 뒤, 우진은 진태를 따로 대표실에 불렀다.

이렇게 꺼림칙한 일이 있을 때에는, 최대한 빠르게 행동하는 것이 우진의 방식.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당연히 정보수집이었다.

“형, 지난번에 우리 도와주셨던……. 기재부 정책기획과 팀장님 명함 가지고 있지?”

“어, 당연히 가지고 있지. 니가 잘 챙겨 놓으라며.”

“그분께 식사라도 한번 대접하고 싶다고, 연락 넣어줄 수 있어?”

“식사? 갑자기?”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은 게 좀 있는데……. 뜬금없이 전화를 걸 수는 없잖아?”

“아하.”

“지난번에 도와주셔서 성수지구 무사히 따냈으니, 맛있는 밥이라도 한 끼 대접하고 싶다고 연락 좀 넣어 줘.”

“알겠어.”

“새해 인사도 할 겸. 겸사겸사. 내가 직접 전화 걸까 생각도 해봤는데, 아무래도 그때 직접 소통했던 형이 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뭐, 좋아. 사람 좋으셔서 어렵지는 않을 듯.”

우진은 구윤권과 황종호라는 강력한 인맥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런 일에 그 인맥의 도움을 받을 수는 없었다.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휘두를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차선으로 생각한 것이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 생긴 실무 인맥이었고.

정부 부처의 실무진과 연결고리를 만들어두는 것은 꼭 이번 일이 아니라도 필요한 부분이었으니, 진태를 통해 자리를 만들려는 것이었다.

“뭐, 다른 건 필요한 거 없고?”

“응. 다른 얘기는 회의에서 다 했잖아.”

“오케이 알겠어.”

그리고 진태가 나간 뒤.

우진은 이제 직접 수집 가능한 정보들을 찾아보기 시작하였다.

기재부 실무인사를 만나서 뭘 물어보기라도 하려면, 사전정보가 필요했으니 말이다.

‘감사원 사무 1처라……. 여긴 뭐 공개된 게 없는 기관인 것 같고. 국토부 운영과 조직도 정도는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감사가 들어오게 된 경위가 어떻게 된 건지.

최소한의 가닥이라도 잡아야, 구린 구석을 파헤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국토교통부 홈페이지에서 조직도를 살펴보던 우진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단서를 하나 잡을 수 있었다.

‘국토교통부 운영과장……. 김지환?’

그렇게 꼼꼼하게 검색을 한 것도 아니고 조직도를 훑어봤을 뿐이었는데, 낯익은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데…….’

그리고 잠시 후.

우진의 머릿속에, 작년 여름의 기억이 또렷이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 * *

[그러니까, 어르신. 저쪽에서 꼬리를 자르고 도망갔다는 거죠?]

[아무래도 그렇지 않은가 싶네, 서 대표. 정황이야 확실하지만, 국토부 쪽에서 싹 다 손절하고 꽁무니를 빼 버리니……. 기재부 감사관도 어쩔 방법이 없다는군.]

[하긴……. 최종 개표에서 제 설계가 만장일치로 결정됐다는 건, 국토부에서 건축가협회를 버렸다는 뜻이겠지요.]

[하여간 촉 하나는 좋은 놈들이라니까. 확 잡아다가 족쳐버리려고 했는데 말이지.]

[그럼 이번 일로 징계받은 사람도 아무도 없는 겁니까?]

[징계는 한 사람 받았어.]

[어떤……?]

[국토교통부에 김지환 운영과장이라고, 이번 프로젝트 담당했던 실무인력이지.]

[아, 그렇군요.]

[사실 나는 그 친구가 수상한데, 더 추궁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아쉽구만.]

[수상하다는 말씀은…….]

[담사 담당관에게 들은 얘긴데, 그 김지환이라는 친구가 협회장 학교 후배거든.]

[아……!]

[정황은 너무 확실한데 증거가 없으니, 원……. 뭐, 그래도 혼쭐이 나기는 했을게야.]

[결과적으로 일은 잘 풀렸으니, 더 신경 써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어르신.]

[내가 서 대표 신경 쓰는 줄 알아?]

[예?]

[원래 내 성질머리가, 그런 놈들 보면 가만두질 못하거든.]

[아…….]

[확 감방에 처넣어 버렸어야 하는 데, 아쉽단 말이지. 아쉬워.]

[…….]

<성수지구 통합설계>와 관련된 모든 결과가 정해진 이후.

우진은 황종호에게 감사 인사를 하기 위해, 술자리를 한 번 가진 적이 있었다.

국토교통부의 운영과장 ‘김지환’이라는 이름은, 다름 아닌 그때 들었던 이름인 것이다.

‘뭔가 가닥이 좀 잡히는 것 같기도 하고.’

물론 김지환이라는 그 사람이, 직접 이천시에 전화를 넣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김지환이 과장으로 있는 부서의 부하직원이 전화를 넣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의심할 만한 여지는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것.

이번 프로젝트가 국토부 운영과와 연결고리가 있는 프로젝트도 아니었으니, 우진의 의심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다.

‘이 정도 되는 인물이라면 충분히 감사 요청을 넣을 힘이 있지. 어쨌든 지구단위계획이라는 게, 국토부의 영향력 아래 있는 프로젝트니까.’

조금은 막막하던 상황 안에서 단서를 하나 찾은 우진의 표정이 밝아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우진의 머릿속에 다시 의문이 떠올랐다.

‘그럼 이천시에 감사를 넣은 게……. 단순히 내게 앙심을 품었기 때문일까? 그것도 좀 말이 안 되잖아?’

당시 우진의 영향력 때문에 국토부에 감사가 내려간 것은 사실이었지만, 국토부가 그것을 알 방법은 없었다.

우진이 직접적으로 액션을 취한 게 없기도 했지만, 우진이 기재부를 움직일 만한 힘이 있다고 저들이 생각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김지환이라는 인물이 징계를 먹은 것은, 결국 설계 쪽의 비리 때문이 아닌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비합리적인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

우진의 상식으로는, 애초에 자신을 타겟으로 앙심을 품을 이유가 없던 것이다.

‘만약 나에 대한 앙심으로 감사를 넣은 거라면……. 어지간히 쪼잔한 수준이 아닌 건데…….’

단순히 그런 의도라면, 우진은 오히려 허탈한 심정이었다.

저들의 의도대로 움직이고 그렇지 않고를 떠나서, 어떻게 대응할 방법이 없었으니 말이다.

사실 개발 사업에 대한 감사라는 것은 국토부에서 얼마든지 종용할 수 있는 지극히 합법적인 행정절차였고.

단지 우진에게 똑같이 돌려주기 위한 심보로 감사를 넣은 것이라면, 우진의 입장에서는 얌전히 감사를 받는 방법밖에 없었던 것이다.

‘정말 그게 다야? 사람이 그렇게 옹졸할 수가 있다고?’

우진은 그 뒤에도 좀 더 정보를 수집해 봤지만, 딱히 그 이상의 무언가를 찾아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조금은 찝찝한 상태로, 결국 일단락 지을 수밖에 없었다.

‘만약 그게 감사의 이유였다면, 이걸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건지…….’

이 일을 제외하고도 할 일은 산재해 있었기 때문에, 우진은 일단 다른 업무로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감사가 진행된다 해서 캥길 것도 없었으니, 심각한 상황도 아니었고 말이다.

며칠 뒤에는 진태를 통해 약속을 잡은 기재부 실무자도 만나볼 수 있었지만, 그를 통해서도 딱히 더 핵심적인 단서를 얻을 수는 없었다.

다만 우진이 찾아냈던 그 김지환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좀 더 확실한 정보를 들을 수 있었을 뿐이었다.

“아, 국토부 운영 과장님이시라면, 작년에 감사대상이셨던 그분이 맞습니다.”

“역시 그렇지요?”

“무슨 문제라도……?”

“아, 아닙니다. 그냥 궁금해서 여쭤본 겁니다.”

그래서 우진은 일단 여기에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괜히 감사에 신경 쓰며 심력을 소모한다면, 그것이 김지환의 의도대로 움직여주는 것이라 생각했으니까.

‘감사 준비나 철저히 해놔야지. 어차피 받을 감사라면, 최대한 깔끔하게 털어버리는 게 중요하니까.’

하지만 그렇게 보름 정도가 지난 뒤.

바쁜 일정 속에 이번 일을 거의 잊고 있던 우진은, 생각지 못했던 곳에서 뜻밖의 단서를 얻을 수 있었다.

“네, 국장님. 설계 공모가 지난주에 끝났다면서요?”

[예. 대표님.]

“괜찮은 곳에서 지원이 많이 들어왔나요?”

[음, 그게…….]

“왜 그러세요?”

[적어도 열 군데 이상은 공모를 넣을 줄 알았는데, 딱 한 곳에서만 지원이 들어왔거든요.]

“네?”

어디서 많이 봤던.

마치 작년의 데자뷰같은 그런 상황.

[금성설계사무소라고, 도시계획‧설계 쪽으로는 꽤 규모가 있는 회사가 들어와서 다행이긴 한데…….]

“……?”

[한 군데밖에 들어오질 않았으니, 일단 여기로 진행하면 되겠지요?]

조용현 국장의 목소리를 들은 우진의 머릿속이, 번개같이 회전하기 시작하였다.

골든 프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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