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4화
<천년의 그대>
첫날 최고 시청률 33퍼센트.
우진은 전생에 <천년의 그대> 첫날 시청률이 얼마였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지만, 하나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바뀐 오늘의 시청률이, 최소 1.5배 이상은 높다는 것 말이다.
천년의 그대.
아니, 우진이 아는 2012년대의 그 어떤 드라마도, 첫날 시청률 앞자리가 3을 찍지는 못했었다.
‘최고시청률도 아니고 첫날 시청률이라니……. 이슈화는 확실히 성공했구나.’
그래서 소정 대표와 통화하는 동안, 우진은 멍한 표정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해냈어요. 해냈다구요!]
전화 너머로 들리는 소정의 목소리에서는, 그녀의 흥분이 그대로 전달되고 있었다.
“그, 그러게요. 첫날 이 정도라니…….”
우진의 떨떠름한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소정의 텐션은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고마워요 서 대표님. 대표님 아니었으면 이렇게 대성공은 힘들었을 거예요.]
“아닙니다. 제가 뭘 한 게 있습니까.”
[쓸데없이 겸손은……. 대표님이 뭐 하셨는지는 전 국민이 다 알걸요?]
“세트장이 드라마에 영향을 뭐 얼마나 준다고요.”
[그냥 세트장이 아니잖아요. 그냥 세트장이.]
“하하.”
[그나저나 내기는 대표님이 이기셨네요?]
“내기요? 아……!”
첫 방영 시청률 내기를 떠올린 우진이 머쓱한 표정이 되었다.
사실 질 확률이 아주 높다고 생각한 내기를 이렇게 이겨버렸으니, 생각할 게 또 하나 늘어버렸다.
[어지간한 건 다 들어줄 테니까, 저한테 뭐 뜯어갈지 열심히 생각해 두시라고요.]
“고민해 보겠습니다.”
소정은 그 뒤에도 거의 5분 정도를 신이 나서 떠들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도 부족했는지, 우진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저 지금 퇴근해서 바로 성수동 가려고요.]
“성수요? 성수는 왜…….”
[오늘 같은 날, 한잔해야죠. 설마 빼려는 건 아니죠?]
“어 음……. 그건 아니지만…….”
[한 시간 뒤에 봐요! 오빠 집 잠깐 들렀다가 바로 1층으로 내려갈게요!]
“네 그럼 조금 있다가…….”
뚜- 뚜- 뚜-
할 말만 후다닥 하고 전화를 끊어버린 소정을 보며, 우진은 어이없는 표정이 되었다.
‘기분이 좋긴 좋으신가 보네.’
사실 기분이 좋지 않으면 그게 말도 안 되는 거긴 하다.
오늘의 시청률은, 미래를 알고 있던 우진조차도 상상치 못했던 수치였으니까.
흥분이 조금 가라앉은 우진이, 속으로 머리를 굴려보았다.
‘전생에서 천년의 그대는, 20퍼센트 미만 시청률로 시작해서 30퍼센트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고, 최고시청률은 두배 가까이 찍었다고 했었으니까.’
첫 방영의 시청률이 화제성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면, 전체 최고시청률은 당연히 모든 부분에 걸쳐 영향을 받는다.
화제성으로 인한 시청자 유입도 중요하고, 그 시청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영상미도 중요하며.
마지막으로 매화 다음 화가 궁금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스토리와 연출까지도 너무 중요하다.
‘그리고 다른 건 몰라도……. 스토리나 연출은 사실 이미 걱정할 게 없지.’
첫 스타트를 전생에서보다 훨씬 높게 끊었으며, 그 이후의 부분에서도 전생에서 제작됐던 <천년의 그대>보다 부족할 이유가 전혀 없다.
물론 데이터를 단순하게 산술적으로 곱해서 환산할 수는 없겠지만, 만약 그렇게 주먹구구식으로 계산한다면 50퍼센트가 넘는 최고시청률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
2천년대 초반의, 전 국민 중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하던 국민 드라마급의 시청률을 12년에 볼 수도 있게 된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진이 뿌려놓은 씨앗에는, 달콤한 열매가 열리는 것을 넘어 금덩이가 주렁주렁 매달리게 될 터였다.
‘너무 김칫국부터 마시지는 말자. 잘 된 건 사실이지만, 항상 보수적으로 생각해야지.’
투자금 회수와 함께 벌어들일 돈으로 또 뭘 할지 머리를 굴리던 우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정신을(?)차렸다.
그리고 옆에서 우진의 통화를 듣고 있던 민우가, 조심스레 우진에게 물었다.
“형, 저희 대표님이신 것 같은데……. 맞죠?”
“맞아.”
“뭐라세요?”
“뭘?”
“뭐 시청률이라던가……. 그런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민우의 이야기에, 각자 웃으며 맥주를 마시던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우진의 입을 향해 모였다.
아무래도 다들 연예계 종사자들이다보니, 관계자이건 그렇지 않건 오늘 재밌게 본 이 드라마의 시청률이 궁금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진의 말이 이어진 순간…….
“33퍼센트래.”
“네?”
“오늘 순간 최고시청률.”
“……?!”
“33퍼센트까지 찍었다고.”
너무 놀라 잠시 정지 상태였던 민우는, 두 손을 번쩍 치켜들며 만세를 부를 수밖에 없었다.
* * *
수요일 저녁이 지나고 목요일 아침이 되었다.
목요일은 원래도 일이 적지 않은 날이었지만, 이천시 문화국 직원들은 평소보다도 더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바로 어제.
그들이 최근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드디어 가시적인 성과가 나왔으니 말이다.
“재영 씨. 보고서 마무리됐어?”
“자, 잠시만요, 국장님. 10분 안에…….”
“오늘 내가 시장님 만날 거라고 얘기 했어 안 했어.”
“죄송합니다! 바로 드릴게요.”
“십분 넘기면 안 돼! 오늘 보고 못 올리면, 다음 주 월요일까지 또 밀린다고!”
이천시 문화국장 조용현은, 일 처리가 무척이나 빠른 사람이다.
정확히는 어떻게 일하면 효율적으로 빠르게 진행되는지를 아는 사람이었다.
‘지금이 타이밍이야. 밀어붙여야 돼.’
리빙페어가 크게 이슈화되고 우리 집에 왜 왔니 <천년의 그대> 특집이 방영된 이후.
이미 <천년의 그대> 이천세트장을 중심으로 관광특구 개발 추진은, 빠르게 빌드업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우진에게 얘기했던 인근 토지의 용도변경 건부터 시작해서, 관광특구 후보지 지정을 위한 사전작업까지.
조용현 국장이 빠릿빠릿하게 움직인 탓에, 벌써 기안은 다 올라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사업 계획서는 상부에서 표류 중이었는데, 그 이유는 간단했다.
윗사람들이 좋아하는 실질적인 성과.
어제 드라마가 방영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런 것이 없던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서우진과 세트장이 이슈화되면서 드라마에 대한 관심도가 크게 올라간 건 맞지만, 그것은 이 프로젝트의 가능성 정도를 타진할 수 있는 가시적인 결과물일 뿐.
드라마의 흥행을 확정적으로 얘기할 수 있는 실질적인 성과는 아직 아니었으니까.
물론 민영기업이나 전문 투자사였다면 이 정도의 성과만으로도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겠지만, 이천시는 국가기관이었다.
어떤 이익집단보다도 가장 보수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집단인 것이다.
하지만 시청률이라는 데이터가 명확하게 나온 지금이라면?
검색 포털에 따로 <천년의 그대>라는 키워드를 검색하지 않아도, 거의 모든 매체가 이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로 도배 되어 있는 지금의 상황이라면?
이렇게 되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천시에서 예산과 노력을 투입하는 것 이상으로 결과물이 무조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니, 사업 진행속도가 차원이 달라지는 것이다.
조용현이 타이밍이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었다.
‘이제 물은 들어오기 시작했으니……. 지금부터 미친 듯이 노를 저어서 드라마 방영이 끝나기 전에 얼추 그림을 만들어 놔야지.’
<천년의 그대>는 대략 20부작이라고 하였다.
시청자 반응에 따라 번외편이 몇 화 정도 추가로 제작될 수는 있겠지만, 사전제작 드라마인 만큼 큰 틀에서의 변화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터.
매주 2회씩 방영되는 것을 생각하면 종영까지 대략 10주 정도 걸릴 것이었으니, 그 안에 최소한의 정비는 다 끝내두고 관광객을 받을 준비를 해야만 했다.
우진과 얘기했던 개발계획들이야 좀 더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진행해야겠지만.
기본적인 도로정비와 주차시설, 경관정비 등.
관광객들을 수용하기 위해 효율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최소한의 시설들은, 당장 올해가 가기 전에 끝내놓는 게 조용현 국장의 목표였다.
부하직원이 허겁지겁 정리해 뽑아 올린 보고서를 받아 든 조용현이, 거울을 보며 옷 매무새를 한 차례 다듬었다.
시장실에 보고를 올리러 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국장님.”
“왜?”
“이거, 일단 말씀 주신대로 쓰기는 했는데……. 이 계획이 정말 가능하긴 한 겁니까?”
“뭐가?”
“분양가요.”
“아……. 택지?”
“네. 아무리 드라마가 잘 된다고 해도, 이 정도면 이천 도심에 조성했던 택지보다도 분양가가 비싼 수준이지 않습니까?”
부하직원이 이야기를 듣던 조용현이 피식 웃었다.
그의 말대로 지금 보고서상에 책정한 분양가는, 개발될 택지의 위치를 생각하면 턱도 없이 부족한 수준이었으니까.
하지만 이건 충분히 실현 가능한 계획이었고, 그래서 조용현은 더 설명하지 않았다.
“되니까 그렇게 적었지. 사실 보수적으로 책정한 거야 그 가격도.”
“헐.”
“나 보고 올리고 온다. 점심 시장님이랑 먹을 것 같으니까, 알아서 점심들 챙겨 먹어.”
“예, 국장님!”
기분 좋게 문화국을 나온 조용현은, 시장실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들뜬 걸음으로 빠르게 걷기 시작하는 용현.
그의 머릿속에는, 한 달 전쯤 우진과 통화했던 내용이 떠올라 있었다.
* * *
[서 대표님! 일단 개발승인은 떨어졌습니다.]
[오! 정말입니까? 벌써요?]
[하하. 제가 좀 발 빠르게 움직였지요. 시장님께서도 꽉 막히신 분은 아니라, 가능성 자체는 확실히 있다고 판단하신 듯합니다.]
[빠르니까 좋군요. 그럼 토지 용도변경 건도 승인이 난 걸까요?]
[그건 아직입니다만……. 조만간 진행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아무래도 그렇겠죠?]
[네, 대표님. 어차피 택지개발이 원활히 진행되려면……. 용도변경은 선택이 아닌 필수에 가까운 부분이라서 말이지요.]
10월 말, 11월 초순 쯤.
용현은 <우리 집에 왜 왔니>의 <천년의 그대> 특집이 방영된 이후, 프로젝트에 속도가 나면서 우진과 통화한 적이 있었다.
관광특구 지정이라는 커다란 플랜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핵심 컨텐츠를 손에 쥐고 있는 우진과 최대한 긴밀하게 협업을 해야 했으니 말이다.
[그럼 다음 스텝은 이제 뭘까요? 용도변경이야 승인 떨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할 테고…….]
[이제 도계위*[도시계획위원회. 도시기본계획 수립 및 도시 관리 계획 결정 등, 도시의 전반적인 계획과 관련된 사항을 심의 또는 자문하는 의사결정기구.]와 협업해서 택지조성 계획 짜고, 분양준비 시작해야죠.]
[아, 택지 분양이요?]
[네. 아마 택지 분양해서 확보한 자금이, 관광특구 지정에 필요한 자금으로 쓰이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그날 통화에서, 용현은 우진으로부터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를 들었었다.
[그럼 그 택지 분양 일정은, 대략 언제쯤으로 보시는지요?]
[설계 용역업체는 처음에 선정해 두었고, 얼추 기본설계도 나와 있으니까…….]
[진짜 빠르시네요.]
[빠르면 올해 말. 늦어도 1월 달에는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용현은 능력 있는 공무원이었고, 빠릿빠릿한 일 처리들이 바로 그 능력에서 나오는 것이었지만.
그 체계적이고 빠른 실무만 생각하다 보니 한 가지 놓치고 있던 부분을 우진이 지적해 줬던 것이다.
[혹시, 국장님.]
[말씀하시죠.]
[그 택지 분양은, 최대한 일정을 좀 미뤄보면 안 되겠습니까?]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말 그대롭니다. 올해 말은 너무 빠른 것 같고, 내년 1월도 좀 손해가 클 것 같아서요.]
[손해라고요?]
빠른 사업 진행은 곧 예산의 절약이고, 프로젝트 성공의 지름길이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조용현에게 우진의 이 말은 일견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우진의 설명이 이어지기 시작하자, 용현은 무릎을 탁하고 칠 수밖에 없었다.
용현이 놓치고 있었던 것은, 어찌 보면 너무도 간단한 이치였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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