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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프린트-159화 (159/315)

159화

수확의 달

선영아파트의 조합이 승소했다는 소식은, 기사를 통해 엄청나게 빠르게 퍼져나갔다.

부동산 투자자들은 물론, 평소 관심 없던 일반인들까지도 한 번쯤 기사 제목을 봤을 정도로.

꽤 크게 이슈가 되었던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우진과 곽홍식의 물밑 작업도 한몫하였다.

바닥까지 떨어져 내린 선영아파트의 시세를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최고가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언론을 타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었으니 말이다.

물론 우진이나 홍식에게, 언론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만한 힘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사건 자체가 결코 평범하지 않은 치밀한 사기극이었고.

그 자체만 놓고 봐도 꽤 자극적인 기삿거리였으니.

각 언론사에 소스만 열심히 뿌리고 다니면, 알아서 수많은 기사들로 재생산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이슈는, 결국 8시 뉴스에까지 실리게 되었다.

[다음 소식입니다.]

[청담 선영아파트 재건축의 진행이, 급물살을 타게 되었습니다.]

[2심까지 진행된 비대위와의 소송 끝에 결국 조합이 승소하였으며…….]

국밥집에서 뉴스를 보던 경완이, 육수를 한 모금 들이킨 뒤 입을 열었다.

후루룩-!

“크으……! 맛 좋고!”

“기분 꽤 좋아보이십니다?”

우진의 물음에, 경완이 고개를 끄덕이며 씨익 웃었다.

“물어 뭐해? 당연하지.”

“전무님께선 뭐라십니까?”

“네 바짓가랑이 꼭 붙잡고 있으란다. 그럼 아마 몇 년 내로 전무 달 수 있을 거라고 하시던데.”

“하하.”

오늘 우진은 오랜만에 경완을 만났다.

선영아파트 일도 거의 마무리되었으니, 퇴근 후에 국밥이나 한 그릇 하기로 한 것이다.

만나서 특별히 일적인 이야기를 나눌 것도 없었다.

두 사람의 나이 차이는 거의 20년이지만, 경완은 마치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우진이 편했다.

그것은 반대로 우진도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사실 정신연령으로 치면……. 경완 아재가 나랑 제일 비슷할 테니까.’

만면에 푸근한 미소를 머금은 채 뉴스를 시청하는 경완.

이번 일로 사실 경완이 번 돈은 없다.

천웅쪽에서 매수한 지분들은, 회삿돈으로 매수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분은 우진보다도 더 좋아 보이는 경완을 보며, 우진은 피식 웃고 말았다.

“천웅이 가져간 물건은, 얼마에 내놓으실 겁니까?”

“글쎄. 네가 얘기했던 대로 13억 정도?”

“빨리 물건 올리시죠.”

“왜?”

“그거 다 팔리고 나면, 전 더 비싸게 올리게요.”

“와, 이놈. 도둑놈 심보 보소?”

경완은 낄낄 웃으며, 우진과 소주잔을 맞대고는 단숨에 입에 털어 넣었다.

이어서 은근한 목소리로, 다시 우진을 향해 입을 열었다.

“너 이번에, 한 20억 벌었냐?”

“팔려야 번 거죠. 아직 안 팔았습니다만.”

“대충 알아들어 짜샤. 그래서 얼마 벌 것 같은데?”

“음……. 취·등록세 떼고 양도세 떼고……. 차 떼고 포 떼고 해도, 대충 30억 가까이 남지 않을까요?”

“캬……! 서우진, 부럽다. 부러워.”

경완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는 우진이 정말 부러웠다.

사실 이 상황에서 우진이 부럽지 않다면, 그거야말로 거짓말일 것이다.

‘30억이라니. 누군 평생 만져보기도 힘든 돈을 20대에……. 크……!’

하지만 그와 동시에 경완은, 우진이 이렇게 승승장구하는 것이 진심으로 기쁘기도 했다.

친한 지인의 성공으로, 대리만족 같은 것을 느낀달까?

우진의 성공이 본인에게도 도움이 되긴 했지만, 그것과는 완전히 별개의 순수한 감정.

그래서 경완은 무엇보다도, 우진의 다음 행보가 궁금했다.

정확히는 우진이 이번에 거둔 성공을 거름으로 또 어떤 일을 벌일지, 그런 것이 너무도 궁금한 경완이었다.

경완이 기대감 어린 목소리로 우진을 향해 물었다.

“그럼 이제 그 돈으로 뭐 할 건데?”

“사옥 올릴 겁니다.”

“사옥? 너네, WJ 스튜디오?”

“네.”

사옥이라는 말에, 경완의 두 눈이 살짝 반짝인다.

“어디다?”

“그건 부지를 이제부터 알아봐야죠.”

“후보지가 있을 거 아냐.”

“종로는 못갑니다. 거기 너무 비싸요.”

우진의 그 말에, 경완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야, 내가 언제 우리 회사 근처로 오랬냐?”

“느낌이 그랬어요, 느낌이.”

“내가 왜?”

“일하기 싫으실 때마다 외근 나간다하고 놀러 오실 것 같습니다.”

“뭐야, 너 언제 독심술도 익혔냐?”

“하하하.”

“그래서 어디로 갈 건데?”

“아직 모릅니다. 일단 부지부터 찾아봐야죠.”

우진은 경완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연스레 사옥건설에 대한 계획을 머릿속으로 떠올려 보았다.

‘내 회사 사옥이라…….’

경완에게는 어디로 갈지 모른다고 했지만, 사실 우진은 낙점해둔 위치가 몇 군데 있었다.

일단 첫 번째 후보지는, 지금 WJ 스튜디오가 위치한 성수동 업무지구.

이유는 우진이 성수동의 지식산업센터를 선택했던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11년 기준으로 대지 평당 4천만 원 정도인 성수 업무지구는, 2020년 즈음 1억에 육박할 정도로 땅값이 오를 동네니 말이다.

실사용 측면에서의 입지도 마음에 들었다.

북서쪽으로 중랑천을 건너면 강북 도심에, 아래로는 한강만 건너면 바로 압구정이었으니.

직접 몇 개월 있어 본 결과, 서울 핵심지로의 이동이 무척이나 편했던것이다.

‘부지만 싸게 잡을 수 있으면, 여기서 아예 뿌리박을지도.’

그리고 두 번째 후보지는, 서초구의 방배동이었다.

정확히는 내방역 인근의 대로변.

약 2019년경까지, 방배동은 강남 안에서 꽤 저평가된 지역이었다.

서초구 한복판에 위치했음에도 불구하고, 고지대인 서리풀공원으로 교통이 막혀있어, 강남 핵심지와 단절된 느낌이었으니 말이다.

서초역과 내방역은 거리상으로 1km남짓 밖에 되지 않지만, 실제로 이동하려면 서리풀 터널을 빙 돌아서 한참 가야 했다.

‘하지만 서리풀 터널이 뚫리고 나면, 입지 자체가 완전히 달라지게 되지.’

방배동은 2019년 즈음부터, 완전히 새로운 입지로 탈바꿈하게 되는 동네다.

19년 4월의 서리풀 터널 개통을 시작으로, 지역 자체에 개발 호재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우선 강남 3구에서 마지막까지 빌라촌으로 남아있던 방배1동부터 방배4동까지의 낙후되었던 거주지들이, 2020년대 초반부터 시작해서 신도시급으로 개발되게 된다.

개포동에 이어, 강남의 마지막 뉴타운으로 불렸던 방배동.

거기에 20년대 후반에는 사당역 복합환승센터 사업까지 진행되며 지역 인프라까지 좋아지니, 장기적으로 본다면 성수 이상으로 좋은 입지였다.

과거 80년대 압‧서‧방(압구정, 서초, 방배)으로 불리며 최고 부촌으로서의 명성을 날렸을 때처럼, 다시 과거의 그 위상을 찾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배동이 왜 두 번째 선택지냐?

거기에는 당연히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방배가 이렇게 발전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었다.

‘10년이라는 시간은, 그렇게 짧지 않으니까.’

WJ 스튜디오는 당장 1년 사이에, 말 그대로 어마어마한 성장을 일궈냈다.

그리고 우진은 당연히 여기에 만족하지 못한다.

사업이라는 것은 커지면 커질수록 성장 속도가 눈덩이처럼 더 불어나게 되고.

때문에 10년 뒤의 미래라는 시점은, 지금 우진으로서도 감히 재단할 수 없는 미래였다.

그래서 우진은 당장 빠르게 성장 중인 성수동 업무지구에, 조금 더 마음이 기울어있는 상태였다.

“야, 국밥 다 식겄어. 갑자기 왜 멍 때리고 앉았냐.”

경완의 목소리에 상념에서 깨어난 우진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아, 잠깐 생각난 게 좀 있어서요.”

그에 경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시 수저를 들었다.

“하여간 특이한 놈이라니까. 그러니까 청담동 재건축 사업장을 쥐락펴락할 수 있었겠지만 말이지.”

우진은 국밥에 남은 국물까지 싹싹 긁어 입에 털어놓고는, 한결 가벼워진 기분으로 밖에 나왔다.

오늘은 4월의 마지막 금요일.

이렇게 다사다난했던 4월이 지나고, 어느새 2011년도 중반에 접어들고 있었다.

* * *

우진은 매수했던 일곱 채의 물건들 중, 두 채를 제외하고는 전부 다 매도하였다.

어머니의 명의로 매수했던 물건 하나와, 법인 명의로 매수했던 물건 하나를 제외하고는, 싹 다 매도해버린 것이다.

단기간의 차익이라 세금만 십억이 넘었지만, 그게 아깝다고 생각지는 않았다.

결과적으로 우진이 처음 생각했던 수준보다, 훨씬 더 크게 시드 머니가 모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뿌려뒀던 씨앗을 전부 거두고 난 뒤.

WJ 스튜디오의 법인통장에는, 무려 80억이라는 돈이 모여 있었다.

물론 그 중 이번에 벌어들인 돈은 절반도 되지 않는다.

그 사이 WJ 스튜디오의 매출이 성장하면서 늘어난 영업이익의 지분도, 상당히 컸으니까.

“와, 내가 통장에 이런 액수가 찍히는 걸 보게 될 줄이야.”

잔고를 확인한 뒤 입을 쩍 벌리는 진태를 보며, 우진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우리 그래도 꽤 성공했다, 형.”

“야, 이게 성공 수준이냐?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회사 지분이라도 너한테 사놨어야 했는데.”

“형이 산다고 했어도 내가 안 팔았거든?”

“쳇. 매정하기는.”

사실 진태는 WJ 스튜디오에 정말 조금이지만 지분이 있었다.

우진이 최근 스톡옵션으로, 직원들에게 조금씩 지분을 넣어 줬던 것이다.

물론 그 지분을 다 합해야 1퍼센트도 채 되지 않는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그 중 압도적으로 많은 지분을 받은 것이 진태였다.

그래서 진태는, 우진에게 정말 고마웠다.

“그나저나 오늘은 아침부터 나만 부른 이유가 뭐냐?”

“차나 한 모금 하면서 얘기하자고.”

진태가 앉은 자리 앞으로 티백이 담긴 찻잔을 슥 밀어준 우진이, 천천히 다시 말을 이었다.

방금전까지 히히덕거리던 표정은 그 새 어디로 사라지고, 꽤 진지한 표정이 된 우진이었다.

“형 혹시 작년 가을쯤에, 내가 했던 얘기 기억하고 있어?”

“음? 작년 가을……? 무슨 얘기?”

진태가 고개를 갸웃하자, 우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회사 인수합병 건에 대해서 내가 얘기했었는데, 혹시 기억 안 나?”

‘인수합병’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진태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의 이야기는 사실 가벼운 대화가 아니었으니, 진태도 잊지 않고 신경 써서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건 당연히 기억하고 있지.”

“그래?”

“왜, 이제 때가 된 거야?”

“맞아. 슬슬 움직여볼 때가 된 것 같아서 불렀어.”

우진의 말을 들은 진태는, 잠시 머릿속을 뒤져보았다.

작년에 우진이 이야기를 꺼낸 뒤, 틈틈이 조사해봤던 내용들을 떠올린 것이다.

“그때 네가 인수대상으로 가장 처음 얘기했던 회사가, 성진건설이었어. 맞지?”

정확히 기억하는 진태의 모습에, 우진이 살짝 놀란 표정이 되었다.

“어, 맞아. 형 기억력 좋다?”

진태가 씨익 웃으며 답했다.

“기억력이 좋은 게 아니라, 그때 이후로 계속 조사하고 있었던 거야.”

“크……! 역시!”

“뭐, 그렇다고 막 대단한 건 아니지만……. 정리해놓은 서류 있어. 가져올까?”

진태의 물음에, 우진이 손을 휘휘 저으며 대답했다.

“아, 아냐. 그건 지금 말고, 내일 오전에 볼게.”

“그래?”

“오늘은 내가 점심부터 계속 미팅이 있어서, 길게 얘기하기가 힘들거든.”

“아 맞다, 서나헤어 직영점 미팅 있다고 했지?”

“맞아.”

고개를 끄덕인 우진은, 찻잔을 한 모금 홀짝였다.

그런 그를 보며, 진태가 의아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그럼 내일 얘기하지, 오늘 이 얘기를 왜 꺼낸 거야?”

우진의 대답이 곧바로 이어졌다.

“내일까지 형이 해줬으면 하는 일이 하나 있어서.”

“뭔데?”

우진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림컴퍼니라는 회사가 있거든?”

“음? 뜬금없이 거긴 뭐 하는 회산데?”

“SPC(Special Purpose Company)야. 특수목적법인이지.”

우진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감을 잡지 못한 진태가 고개를 갸웃하자, 우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성진건설의 재무상태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곳이야.”

“그래……?”

“파다 보면 알게 될 거야. 내일까지 우림컴퍼니 재무상태 좀 조사해 줘.”

골든 프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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