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Passion for design
조운찬의 단골집 <소담>.
이곳은 그 이름에서 느껴지는 이미지처럼, 아늑하고 아름답게 꾸며진 삼청동의 한식집이었다.
일전에 우진이 경완과 함께 갈비탕을 먹었던 그런 정통 한식집과는 분위기가 다른, 옛날 가정식 같은 느낌의 한식집이라고 해야 할까.
여기서 조운찬이 항상 시켜 먹는 메뉴는 떡갈비라고 했고, 그래서 우진과 운찬은 나란히 떡갈비 상차림을 각각 주문했다.
그리고 음식이 나오기 전 일상적인 얘기부터 시작된 두 사람의 대화 주제는, 곧 왕십리 패러필드 사업장에 대한 이야기까지 옮겨갔다.
그 이야기를 듣던 조운찬은, 적잖이 놀랄 수밖에 없었고 말이다.
“그러니까, 네 설계사무소가……. 브루노 산체스, 그 양반과 협업해서 왕십리 패러필드 설계를 진행 중이라는 거지?”
“그렇습니다, 교수님. 기사에도 꽤 크게 났었는데, 모르셨어요?”
“내가 뉴스 신문 그런 거 잘 안 보잖냐.”
조운찬은 우진이 태호건설의 비리를 잡았던 스토리들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평소 세상사에 딱히 관심이 없는 그였기에, 꽤나 떠들썩했던 뉴스에 대해서도 전혀 몰랐던 것이다.
만약 학기 중이었다면 동료 교수들을 통해서라도 들었겠지만, 방학 기간인 지금은 학교에 걸음 할 일이 많지 않았기에 우진으로부터 완전히 처음 듣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 스토리를 대략적으로 다 듣고 난 운찬의 첫마디는, 바로 이것이었다.
“대체 너, 뭐 하는 놈이냐?”
“넵?”
“아니 무슨 신입생이…….”
“이제 이학년 됐습니다만.”
“…….”
업계를 잘 아는 운찬이었기에, 우진의 이야기들은 더욱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물론 믿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이것은 사실, 일부러 지어냈다고 하기도 터무니없을 정도로 현실감 없는 얘기들이었다.
“어쨌든 그래서, 설계 전반을 브루노와 협업하기로 했고……. 그 메인 로비에 들어갈 파빌리온을 네 회사에서 따로 외주하기로 했다는 거지?”
“맞습니다, 교수님.”
조운찬은 본인도 뛰어난 건축가였지만, 당연히 해외 유명한 건축가에 대한 관심이 많다.
그래서 그에 관한 이야기들도, 어느 정도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 양반, 전에 컨퍼런스에서 한 번 본 적 있지.”
“정말요?”
“하지만 얘기는 나눠보지 못했어. 다음에 가능하다면 자리를 한 번 만들어줄 수 있을까?”
“물론이죠, 교수님. 브루노도 아마 기뻐할 겁니다.”
하지만 지금 그런 부분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자리가 만들어진 이유다.
그래서 결국 식사가 차려졌을 즈음, 조운찬이 먼저 운을 떼었다.
“그래서 우진이 넌, 오늘 날 보자고 한 이유가 뭔데?”
그리고 그의 이 질문을 기다리고 있었던 우진은, 망설임 없이 곧바로 대답하였다.
“그건……. 제 파빌리온의 디자인 때문입니다.”
우진의 간결한 대답에, 조운찬이 쓰고 있던 뿔테안경을 살짝 치켜올렸다.
방금 우진의 대답으로 인해, 흥미가 조금 더 커진 것이다.
“디자인에 대해, 내게 조언을 구하려고?”
그러나 이 다음 순간.
조운찬은 적잖이 당황해야만 했다.
이어진 우진의 대답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방향이었으니까.
“아뇨. 디자인 컨셉이나 방향성은 이미 정해 두었습니다.”
“뭐?”
우진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제가 교수님께 여쭙고 싶은 부분은……. 사실 제 머릿속에만 있는 이 디자인을 현실로 꺼내기 위한 솔루션입니다.”
우진은 오늘 자신이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있던 파빌리온 디자인에 대해, 조운찬에게 이야기해볼 생각이었다.
* * *
일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었지만.
우진이 아는 미래에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는 가장 핫한 분야 중 하나가, 바로 디지털 건축이었다.
사전적인 의미로 가장 간단히 표현하자면.
컴퓨터로 대표되는 디지털기술을 건축설계에 활용한, 일체의 모든 건축들을 의미하는 것이 바로 디지털 건축이다.
하지만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의 디지털 건축은 너무 포괄적인 분야였다.
오늘날 모든 건축설계에 쓰이고 있는 AutoCAD같은 프로그램들도, 결국 디지털 기술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니 말이다.
때문에 ‘디지털 건축’이라는 말은 경우에 따라 혹은 표현하는 사람에 따라 아주 다양하게 쓰이는 단어였지만.
우진의 머릿속에 있는 디지털 건축의 분야는, 아주 명확한 한 가지를 의미하였다.
일반적인 설계도면으로는 솔루션을 제시할 수 없는, 비정형적이고 기하학적인 외관을 가진 미래지향적 디자인의 건축물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특이한 형상의 부재(部材)들을 제작하고, 그것들로 건축물을 시공하는 ‘디지털 패브리케이션(Digital Fabrication)’ 방식의 건축.
지금도 동대문에 차근차근 시공 중인 DDP(동대문 디자인 플라자)같은 건물 말이다.
“디지털 패브리케이션이라…….”
미래에는 이 방식으로 정말 많은 세계적인 건축물들이 시공된다.
물론 미래라고 해서 디지털 건축들만 판을 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작품성 있는 아날로그 건축물들은 훌륭한 평가를 받으며, 그것들은 디지털 건축이 갖지 못하는 감성적인 가치들을 갖기도 하니까.
하지만 전생에서 우진이 가장 동경했고 관심 있던 분야가 바로 이 디지털 건축이었고.
어찌 보면 건축이라는 분야의 축소판인 파빌리온은, 우진이 디지털 건축의 첫발을 내딛으며 경험을 쌓기에 아주 좋은 기회라고 할 수 있었다.
건축에는 인간의 편리를 위한 많은 고민들과 제약들이 수반되지만, 그 어떤 건축물로써의 기능보다 디자인적 아름다움이 가장 중요한 파빌리온 설계에서는 그런 것들로부터 한결 자유로울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우진이 조운찬에게 배우고 싶은 것은, 그가 공부하고 연구하는 분야인 디지털 패브리케이션 기법들에 대한 것이었다.
우진의 머릿속에 있는 상상 속의 형태를, 실존하는 건축물로 형상화 시켜 줄 수 있는 디지털 패브리케이션의 노하우와 응용사례들.
마지막으로 이 모든 작업을 위한 가장 기본 소양인, 다양한 툴을 다루는 방법들까지 말이다.
우진은 2학년 첫 학기를, 오롯이 이 분야에 대한 공부에 쏟을 생각이었다.
물론 WJ 스튜디오의 일들이야 계속 바쁘겠지만, 실질적인 시간이 많이 들어가는 부분들은 직원들이 대신할 수 있도록 시스템도 많이 만들어진 상태였다.
“물론 쉽지 않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우진의 말에, 운찬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개인 차이가 있겠지만, 확실히 쉬운 분야는 아니지.”
“하지만 불가능하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그래?”
“디지털 패브리케이션이라는게, 전부 다 어렵고 고차원적인 기법만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맞는 얘기다. 간단한 기법을 잘만 응용해도, 얼마든지 멋진 결과물을 뽑아낼 수 있지.”
“제 능력이 닿는 선에서, 최대한 배워서 활용해보고자 합니다.”
하여 이러한 우진의 포부와 열정에 대해 전부 들은 조운찬 교수는, 오늘 끝도 없이 놀라고 있었다.
“그런데 우진아.”
“예 교수님.”
“넌 이걸 대체…… 어디서 처음 접한 거냐?”
운찬이 듣기에 우진은, 단순히 이런 분야가 있다는 것을 아는 정도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물론 전문적인 지식이 있다고 느껴지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디지털 패브리케이션이 어떤 방식의 건축디자인에 쓰이는지 정도는, 확실히 인지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직 학부 수업은커녕 대학원 수업도 제대로 개설되지 않은 디지털 건축에 대한 이야기들을, 이토록 구체적으로 배우고 싶다며 따로 자신을 찾아온 학부 2학년 학생이라니.
심지어 이런 이야기들은 조운찬을 제외하고는 교수들에게조차 생소할 분야였는데.
그것이 우진의 입에서 흘러나온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운찬이 놀랄 것을 이미 예상했던 우진은, 담담히 그의 물음에 대답하였다.
“제가 작년부터, 3D툴과 관련된 수업들을 정말 열심히 듣지 않았습니까?”
“그…… 랬었지.”
“툴을 다루는 게, 제 적성에 정말 잘 맞더라고요.”
“그랬으니까 내 수업을 그렇게 열심히 들었겠지?”
“맞습니다, 교수님.”
잠시 뜸을 들인 우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따로 이 툴을 활용한 건축들에 대해 알아보고 공부를 좀 더 해보다 보니……. 방금 말씀드린 디지털 건축에 대한 개념들을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3D툴이 적성에 맞는다는 것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아무리 우진이 꿈을 위해 열정을 불태우고 있었다고 해도.
3D툴에 흥미가 생기지 않고 마냥 어렵기만 했다면, 그 바쁜 와중에 이렇게까지 열심히 공부할 수는 없었을 테니 말이다.
물론 디지털 건축에 대해 안 것이 3D툴에 대한 흥미 때문은 아니었지만, 조운찬이 납득할 수 있도록 선후 관계를 조금 바꿔 얘기한 것일 뿐이었다.
우진의 말이 끝나자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잠시 후.
딸깍-
말없이 젓가락을 들어 반찬을 한입 집어 먹은 조운찬이, 천천히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우진이 너만큼, 날 놀라게 했던 사람은 없었다.”
진심 어린 운찬의 말을 들은 우진은, 묵묵히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조운찬의 감탄에, 사실 기분이 좋기보단 조금 부끄럽기도 했다.
그가 지금 감탄한 이유는 우진의 어떤 노력으로 인한 결과물 때문이 아닌, 단지 미래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지식들 때문이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의 다음 말이 이어지자, 그 생각이 조금 잘못됐음을 알 수 있었다.
“사실 어떤 분야에 대해 호기심이나 관심 따위를 갖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야. 하지만 이렇게 열정적으로 그것을 갈망하고 탐구하려는 자세를 갖는 건…….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조운찬이 우진에게 감탄한 것은, 단순히 알려지지 않은 분야에 대한 우진의 지식 때문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 난 기분이 아주 좋구나.”
조운찬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에게는 이 상황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것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지금, 오랜만에 설레고 있었으니까.
“아무래도 오늘, 나 혼자 좋아하고 있던 것을 함께 좋아해 줄 사람을 만난 것 같거든.”
“……!”
“어쩌면…… 나만큼이나.”
현재 가진 바 능력과 디자이너로서의 인지도. 그리고 교수와 제자라는 사회적 관계.
그런 것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운찬은 우진이 오늘 보여준 이 열정이 진짜라는 것을 확실하게 느끼고 있었고, 그거면 충분했으니 말이다.
조운찬이 우진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내가 도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최대한 돕도록 하마.”
“감사합니다, 교수님!”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난 뒤에는, 네게도 날 도울 수 있는 능력이 생겼으면 좋겠구나.”
운찬의 손을 맞잡은 우진은, 속으로 감격할 수밖에 없었다.
그에 대해 꽤 알고 있다고 생각했건만, 오늘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큰 그릇을 발견한 것 같았으니 말이다.
“꼭 그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힘차게 대답한 우진이 속으로 다짐하였다.
‘교수님의 기대를, 져버릴 순 없지.’
조운찬이 얘기한 대로 시간이 좀 더 지난 이후에는, 그와 동등한 위치에서 함께 열정을 나눌 수 있는 한 사람의 건축 디자이너가 되리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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