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든 프린트-145화 (145/315)

145화

의외의 지원군들

“기대됩니다.”

“무슨 말씀이세요?”

“서 대표님께서 디자인하실, 파빌리온 말입니다.”

“걱정되시는 건 아니구요? 제 파빌리온의 디자인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면, 브루노의 작품에 누가 될 텐데요.”

“글쎄요. 걱정보다는 기대감과 호기심이 더 크군요.”

“하, 하핫…….”

“여튼, 오늘 미팅은 고생하셨습니다. 본격적으로 작업 시작되면, 그때 다시 뵙도록 하지요.”

“브루노께서도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별말씀을.”

미팅은 순조롭게 끝났다.

패러마운트의 김 실장은 우진의 제안을 전격 수용하였으며, 이 제안이 잘 성사된 덕에 설계에 대한 다른 논의들도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물론 김 실장은 설계 전문가가 아니고 기획 부서쪽 인물이기에, 구체적인 설계 조율 과정은 실무진들과 따로 미팅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설계 수정에 대한 큰 방향성과 맥락은 확실하게 정해졌고.

그것이 브루노가 최초에 설계했던 방향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 고무적인 것이었다.

김 실장이 브루노의 디자인 컨셉과 연관된 설계들은 최대한 수정 요구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니까.

‘후임으로 괜찮은 사람이 와서 다행이야.’

이런 사업의 경우 공모에 당선된 설계의 투시도가 설계변경 과정을 거쳐 완전히 다른 형태로 지어지기도 한다.

사업 주체가 자금집행 과정에서, 이런저런 딴지를 걸어대는 경우가 아주 빈번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총 책임자에게서 이런 약속을 받았으니, 그런 최악의 경우는 피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우진은 설계에 대한 고민들은 한시름 내려놓을 수 있었고.

이제 그의 관심은 온통 파빌리온에 집중되었다.

‘일단 미팅은 생각했던 대로 잘 끝났고……. 그럼 이제 남은 건, 내가 파빌리온 디자인을 멋지게 뽑아내기만 하면 되는 건가?’

물론 금전적인 이득만 따지자면, 파빌리온을 시공함으로써 얻는 이익보다 전체 설계에 브루노와 함께 참여하면서 받게 될 설계비가 훨씬 더 짭짤할 확률이 높았다.

패러필드가 청담 선영보다 건축비 총액은 조금 낮은 사업장이지만, 기본설계만 했던 청담 선영 사업장과 달리 여기서는 실시설계까지도 참여하게 되니 말이다.

아직 정확히 계산해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WJ 스튜디오의 몫만 따져도 수십억이 넘는 단위의 돈일 터.

하지만 우진은 설계권을 얻은 것보다 파빌리온을 시공할 수 있게 된 게 훨씬 더 기분 좋았다.

설계는 브루노의 주도하에 WJ 스튜디오가 서포트를 하는 개념이라면, 이 파빌리온은 반대로 우진과 WJ 스튜디오의 디렉팅 하에 브루노의 조언을 조금 받는 정도가 될 테니까.

그에 더해 아직 한 번도 도전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분야라는 사실 때문인지, 설렘이 더 크기도 하였다.

‘잘할 수 있을 거야. 아니, 무조건 잘 해내야 돼.’

우진은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만큼 멋진 파빌리온을 만들어낼 자신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 있게 백지수표 딜까지 꺼냈던 것이고 말이다.

미팅을 끝내고 사무실에 돌아온 우진은, 오늘 있었던 이야기들을 꼼꼼히 문서화 하여 정리하기 시작했다.

다음 주 월요일 주간 회의에서 이 내용을 정리하여, 파빌리온 제작 설계를 위한 TF팀을 꾸려야 했으니.

직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정보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좋아. 이 정도면 회의 자료는 충분한 것 같고…….”

직원 몇 명에게 요청하여,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자이너들의 파빌리온 래퍼런스를 조사해 달라고 언질도 미리 해 두었다.

그의 머릿속에 있는 디자인과 계획들을 설명하려면, 래퍼런스는 필수였으니 말이다.

하여 그렇게 할 일을 전부 마친 우진은, 퇴근하기 전 마지막으로 스마트폰을 들었다.

우진이 생각하는 파빌리온 디자인을 위해, 꼭 도움받아야만 할 한 사람.

그에게 문자를 남기기 위해서 말이다.

[교수님, 찾아뵙고 조언 구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혹시 시간 언제 괜찮으실까요?]

* * *

사실 파빌리온이라는 개념은, 아직 한국 건축업계에서 그렇게 보편적인 것이 아니었다.

건축물 앞이나 로비에 세워지는 조형물들이야 오래전부터 있어왔지만, 그것을 보통 파빌리온이라 부르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패러마운트의 김 실장도 우진이 얘기하는 이야기의 맥락상으로 파빌리온이라는 말을 이해한 것뿐이었고.

그래서 우진이 어떤 조형물 같은 것을 설치한다고 이해했을 뿐, 구체적으로 이해하지는 못했었다.

그렇다면 우진은 아직 한국 건축에선 개념조차 생소한 파빌리온을, 대체 어떻게 자신 있게 작업하겠다고 한 것일까?

게다가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만큼 뛰어난 디자인으로 뽑아내겠다는, 야심 찬 포부까지 가지고 말이다.

당연히 그것이 근거 없는 자신감은 아니었다.

우진의 그 자신감에 대한 근거는, 바로 여기에 있었으니까.

“아, 교수님. 그럼 제가 주말에 찾아봬도 될까요?”

[그래.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밥이나 한 끼 같이 먹자꾸나.]

“제가 교수님 계시는 쪽으로 가겠습니다.”

[아냐. 우리 집 쪽에는 별거 없고……. 내가 일요일에 마침 삼청동 쪽에 나갈 일이 있으니, 그쪽에서 보면 어떻겠어?]

“저야 좋습니다. 그럼 일요일 몇 시까지 삼청동으로 갈까요?”

[한 시 정도면 적당하겠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식당은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소담’이라고 내 단골집 있거든? 거기로 예약하는 건 어때?]

“좋습니다!”

K대 공간디자인과의 교수이자, 미래의 프리츠커상 수상자.

그리고 현시점 한국의 그 누구보다 디지털 건축디자인에 관심이 많고, 그와 관련된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만큼 뛰어난 실력을 가진 인물.

조운찬 교수라는 든든한 빽이, 우진이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던 근거 중 하나였던 것이다.

‘아마 파빌리온 관련해서 디지털 건축디자인을 하고 싶다고 조언을 구하면……. 엄청 좋아하시겠지.’

K대가 디자인 명문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교수들의 미래지향적인 건축디자인에 대한 관심도는 낮은 편이었다.

조운찬 교수를 제외하면 다들 연령대도 높은 편이었고, 무엇보다 툴에 익숙한 교수는 잘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조운찬 교수는 항상 자신의 관심 분야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을 필요로 했고, 우진은 이번 기회에 조운찬 교수와의 유대감도 더 끈끈하게 만들어볼 생각이었다.

우진이 아는 조운찬 교수는 어떤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기보다 디자인이라는 학문을 탐구하는 진성 학자에 가까운 타입이었고.

때문에 우진이 도움을 요청한다면, 아무 조건 없이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을 사람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도움만 받고 입 닦을 생각은 절대로 아니지만 말이지.’

디자인이야 결국 우진이 직접 하겠지만, 설계하는 과정에 조운찬 교수의 조언과 도움은 필수다.

때문에 파빌리온이 완성된 뒤, 우진은.

대외적으로는 서포터, 국내에는 지도교수로서 조운찬 교수의 이름을 함께 올려줄 생각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결과적으로 조운찬에게도 큰 이득이 될 것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이런 우진의 배려가 아니더라도 동대문의 DDP가 완성된 뒤에는 엄청나게 위상이 높아질 건축디자이너가 바로 조운찬이었지만.

그 전에 파빌리온이 먼저 진행되면서 교수로서 K대 내의 입지부터 공고히 다질 수 있게 될 터.

이것이 실질적으로 조운찬에게 득이 되는 것과 별개로, 도움을 구하는 우진으로서는 응당 해야 할 도리라고 생각했다.

“2학년 수업에 디공디가 있으니……. 명분도, 타이밍도 완벽하네.”

파빌리온을 처음 생각했을 때부터 생각했던 계획들이 이렇게 깔끔하게 맞아떨어지자, 우진은 무척이나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조운찬 교수가 서포트 한다 해서 디자인 툴들을 배우는 게 쉬운 일을 결코 아닐 테지만.

적어도 즐기면서 공부할 수는 있을 것이었다.

이것은 오래전부터 우진이 동경해 왔던 분야였으니 말이다.

‘실시설계가 끝나는 데까지 최소 삼 개월. 5월쯤에 삽 뜨면, 공기(공사 기간)는 대충 2년 정도 잡으면 될 테고……. 파빌리온 설계는, 올해 안으로만 나오면 되겠네.’

디지털 건축에 대한 개념조차 아직 제대로 확립되지 않은 한국에서.

DDP(동대문 디자인 플라자)가 완공되기도 전에, 먼저 그러한 분야에서 디자이너로서 서우진이라는 이름을 알릴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아직 본격적으로 일이 시작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우진의 가슴은 벌렁거리기 시작했다.

처음 WJ 스튜디오라는 이름으로 사업자를 낼 때처럼, 설렘 가득한 두근거림이 또 한 번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주간 업무는 순조롭게 마무리되었고, 별다른 일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토요일도 순식간에 지나갔다.

하여 그렇게 일요일 정오.

우진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삼청동으로 향하고 있었다.

* * *

조운찬에게 2010년은, 꽤 특별한 한 해였다.

젊은 나이에 K대의 조교수로 들어가 유례 없이 빠르게 이름을 알리면서.

결국 최연소의 나이에 정교수가 되어, 처음 제자들을 가르쳤던 한 해였으니 말이다.

K대 디자인학과라는 보금자리는, 교수로서 뛰어난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주 마음에 드는 좋은 자리였지만.

그의 공부를 더 심도 있게 갈고닦을 수 있을 만큼 훌륭한 인프라가 갖춰져 있다는 부분이, 조운찬으로서는 가장 마음에 들었다.

“K대를 선택했던 건…….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정말 괜찮은 선택이었지.”

그래서 이렇게 기분 좋은 한 해를 보냈던 조운찬은, 올해 들어 K대에 더 큰 애착을 갖게 되었다.

그의 그 애정 안에는, 당연히 제자들에 대한 애정도 포함되어 있었다.

자신이 유학까지 다녀오며 연구하고 공부했던 분야를 제자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여러모로 행복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제자들 중에는, 조금 많이 특별한 녀석들도 있었다.

“서우진……. 이 녀석은, 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녀석인지 모르겠단 말이야.”

2010년 K대 공간디자인과에서, 단연 최고의 화젯거리는 바로 서우진이었다.

신입생이면서 다른 학교 학생들은 물론 선배들까지 싹 다 밀어내고 SPDC 대상을 거머쥐질 않나.

학기 초부터 사업을 벌이더니 그것을 성공시키고, 무려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TV에 출연하질 않나.

두 눈으로 보고 확인하지 않았다면 믿을 수 없는 일들을, 연달아서 계속 성공시키는 조금 많이 특이한 제자 서우진.

몇몇 교수들은 수업에 충실하지 않은 서우진을 아니꼽게 보기도 했으나, 조운찬과는 전혀 상관없는 얘기였다.

우진이 성실하지 않은 수업들 중에 조운찬 교수의 수업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그가 가르치는 과목들은 그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정적이던 우진이었으니 말이다.

우진이 다른 교수의 수업에서 어떤 평가를 받든, 조운찬은 그런 것을 신경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다 아는 내용이라 듣기 싫었나 보지 뭐.”

게다가 그가 우진에게 소개해줬던 3D그래픽 업체의 사람들 또한 우진을 아주 높게 평가하였다.

아주 똑똑하고 열정적이며, 예의 바른 청년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평소 조운찬이 가지고 있던 우진의 이미지는, 어떤 제자들보다도 좋을 수밖에 없었다.

“요놈이 갑자기 왜 보자고 했을까……. 궁금해 죽겠네, 진짜.”

사실 일요일에 사소한(?) 일정들이 있었던 조운찬은, 우진의 전화에 충동적으로 그것들을 취소했다.

우진이 말하는 것을 보니 그의 일과 관련된 꽤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는 듯 보였고.

겉으로 티 내지는 않았지만, 그것에 대한 호기심이 엄청나게 커졌으니 말이었다.

방학이라 학교에서 마주칠 일도 없었으니, 하루라도 빠르게 우진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했던 것.

그래서 운찬은 일요일 오전에 있던 약속을 서둘러 마무리하고, 약속 시간보다 20분이나 먼저 삼청동 단골집인 ‘소담’에 도착해 있다.

그리고 운찬이 그곳에 도착한 지 10분이 지났을 즈음.

우진의 차가 ‘소담’의 주차장에 들어왔다.

골든 프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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