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두 번째 방송
본격적으로 바빠진 이후, 우진이 어머니의 가게에 걸음 하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어휴. 이 엘리베이터도 없는 상가에서, 진짜 오래도 장사하신단 말이지.’
가게의 앞에 도착하자, 유리 벽 너머로 열심히 칼국수를 말고 계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지난 세월과 다를 바 없이, 여전히 열심히 땀 흘려 일하시는 어머니의 모습.
그런 그녀의 모습에, 우진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일 그만하셔도 된다고 최소 열 번 이상은 말했건만.
십 년 이상 해온 장사를, 쉽게 그만두지 못하시는 어머니였다.
[아들이 땀 흘려 번 돈을, 엄마가 어떻게 놀면서 쓰겠니.]
[진짜 괜찮아요, 엄마. 이 정도면 일은 정말 할 만큼 하신 거예요.]
[할 만큼 하기는……. 엄마 아직 젊어. 그리고 우진아. 네 사업도 이제 시작이잖니. 지금 조금 잘 된다고 방심하면 안 된다, 아들.]
우진의 사업이 망할 일은 없다.
어디서 거하게 사기라도 당하지 않는 한, 이미 확보해 놓은 인프라와 자원만 가지고도 최소 십 년 이상은 해먹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카페 프레스코 프랜차이즈 공사만 해도 뭐…….’
게다가 매입해 둔 지식산업센터에서 나오는 월세만 해도, 이자에 세금까지 제하고 한 달에 오백만 원 이상이 고정적으로 나온다.
우진이 결혼해서 가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조촐한 두 가족 먹여 살리는 정도는, 우진의 능력으로 충분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우진이 이런 설명을 아무리 해 봐야.
자식이 걱정되는 어머니의 마음은, 원래 이성적인 판단에 의거한 감정이 아니었다.
“오! 아들 왔어?”
“차가 생각보다 덜 밀렸네. 천천히 정리하세요.”
“그래. 거의 다 했으니까, 거기 앉아서 조금만 기다려라.”
원래대로라면 토요일 저녁 시간대는, 주희의 가게에 사람이 바글바글한 타이밍이다.
하지만 오늘은 오래전부터 아들과 약속을 잡아놨었고.
그래서 저녁 장사를 쉰다고, 가게 앞에 알림판을 세워 둔 상태였다.
하여 주희가 가게를 전부 다 정리하고 나온 시간은, 저녁 다섯 시 삼십 분.
드르륵- 탁-!
가장 바쁠 시간대에 셔터를 내리는 것이 어색한지, 주희는 헛웃음을 지었다.
“아들 덕에 이 시간대에 퇴근도 다 해보고. 엄마가 호강하네, 호강해.”
“조기 퇴근이 아니라, 아예 닫으셔도 된다니까요?”
“또, 또 그런다. 그 얘기는 나중에 다시 하기로 했잖아?”
주희가 내린 셔터를 자물쇠로 잠근 우진은, 기분 좋게 대화를 나누며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이제는 회귀 이후 적응이 되어서인지, ‘어머니’가 아닌 ‘엄마’라는 호칭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아들. 근데 운전은 언제 이렇게 배웠대?”
“언제 배우긴요. 저 군대 가기 전에 면허 딴 거 아시잖아요.”
“면허야 땄지. 장롱이었잖아?”
“에이. 스틱도 아니고 오토 운전하는 게 뭐 어렵다고요. 오른쪽 밟으면 나가고 왼쪽 밟으면 서는데.”
끼익-
어머니를 조수석에 태우고 음식점 앞에 도착한 우진은, 주차 발렛을 맡기며 엉뚱한 생각을 했다.
‘엄마 앞에서는 운전도 일부러 좀 어설프게 해야 하나…….’
이어서 음직점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어머니의 발걸음이 멈칫하는 게 느껴졌다.
“우진아.”
“네?”
“여기……. 너무 비싼 곳 온 거 아니니?”
주희는 우진에게 단지 저녁 식사를 같이하자는 이야기를 들었을 뿐, 뭘 먹는지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막상 아들의 차를 타고 도착하고 보니, 너무 고급스런 음식점에 도착한 것이다.
주차도 발렛 요원이 나와 친절하게 해 주는 것을 보니, 그녀로서는 식대부터 걱정될 수밖에 없던 것.
그에 우진은 웃으며, 미리 준비해 뒀던 쿠폰을 꺼내 보였다.
“짠.”
“이게 뭐야?”
“아는 형님이 주신 쿠폰이에요.”
“아는 형님?”
“외식업 쪽에서 일하시는 형님이 한 분 계시거든요.”
우진에게 석중은 아는 형님이 맞다.
그리고 그가 일하는 업종이, 외식업인 것도 맞는 말이다.
다만 재벌 3세라는, 조금 특별한 배경이 있을 뿐.
“여기, 85퍼센트 할인 보이시죠?”
“그……러네.”
“인당 30만 원어치 먹어도, 9만 원이면 된다고요. 그러니까 엄마. 부담 갖지 말고 들어오세요.”
눈치 빠른 아들의 이야기에, 주희는 멋쩍은 표정이 되어 음식점 안으로 들어섰다.
코스로 하나씩 준비되는 음식들은 당연히 전부 맛있었고.
어머니와 함께.
그리고 아들과 함께하는 식사시간은, 그 어느 때 보다 즐거웠다.
* * *
올해 부장직급을 끝으로 SH그룹에서 정년이 된 유준모는, 50대 후반의 전형적인 대한민국 가장이었다.
올해 대학교 2학년인 딸과, 얼마 전 첫 직장에 취직한 아들을 둔. 한 가정의 아버지.
SH그룹은 대기업이었고, 때문에 모아둔 돈도 제법 많은 준모였지만, 그래도 정년이 눈앞으로 다가오니 앞이 캄캄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많이 모았다고 해 봐야 월세가 따박따박 나오는 건물주도 아니었거니와.
요즘 같은 100세 시대에는, 50대라고 해도 아직 앞길이 구만리 같았으니 말이다.
얼마가 될지 모를 긴 여생 동안 노후를 즐기며 살기엔, 준모가 모아둔 돈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었다.
‘휴우. 임원승진까지는 바라지도 않았지만……. 정년까지 한 2년만 더 있었어도…….’
그래서 일요일 저녁 안락한 소파 위에 축 늘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
요즘 준모의 머릿속에는, 내년부터 뭘 준비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했으니 말이다.
‘요즘 너도나도 치킨 튀기러 간다는데……. 역시 치킨이나 피자가 제일 만만할까?’
딱 십 년만 더 젊었어도 뭔가 새로운 사업이라도 구상해 보겠건만.
곧 60대를 바라보는 준모는, 도무지 새로운 도전에 대한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선택지는 프랜차이즈 음식점같이 남이 닦아놓은 길로 좁혀졌고.
그와 동시에 불안한 것은, 남들 다 하는 사업을 해서 밥 벌어 먹고살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비싼 아들 대학원 등록금까지는, 회삿돈으로 전부 해결할 수 있었다는 점.
원래는 2년 더 다녀서 딸래미 대학 등록금도 전부 해결하는 게 목표였지만, 이미 확정된 정년을 일개 사원인 그의 힘으로 어찌할 수 있을 리 없었다.
‘하청 업체 바지사장 자리라도, 어디서 제안 들어올 일 없으려나…….’
노후에 대한 이런저런 고민 때문인지, 가만히 있어도 절로 한숨이 나오는 준모.
멍한 표정으로 TV를 보고 있는 그의 앞으로, 과일 접시 하나가 슥 밀려 나왔다.
그가 좋아하는 딸기와 사과가, 수북이 쌓여있는 접시였다.
“여보, 너무 걱정하지 말라니까요?”
“그……렇게 티 났어?”
“아주 얼굴이 까맣게 죽어가지고는…….”
“휴우. 답이 안 나오니까 그러지 뭐.”
“그렇게 죽상 짓고 있는다고 답 나오는 것도 아니니까, 좋아하는 과일이나 드세요.”
“그럴까?”
준모가 포크로 찍어 사과 하나를 집어 드는 사이, 아내는 리모컨을 들어 TV 채널을 돌리기 시작했다.
딱히 보려고 기다렸던 프로는 없었지만 일요일 저녁은 재밌는 예능이 많은 시간대였고.
예능이야말로 마음 비우고 아무 생각 없이 킬링타임 하기 좋은 프로그램이었다.
어느새 사과를 한 입 베어 먹은 준모가, 아내를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자기야. 지난주에 박두영 나오는 예능 뭐, 새로 시작한 거 하나 있지 않나?”
“박두영이요?”
“왜, 있잖아. 박두영이랑 윤재엽 나와서, 자기 집 자랑하던 프로그램.”
“아……!”
“그거 이름이 뭐였지?”
“잠깐만요. 이름은 기억 안 나는데, KBC에서 했던 것 같아.”
아내가 채널을 돌리자, 곧바로 윤재엽의 얼굴이 화면 정 중앙에 떠올랐다.
이어서 화면 구석에 박혀있는 <우리 집에 왜 왔니>의 로고를 확인한 준모는,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그래, 이거 맞아. 우리 집에 왜 왔니.”
“우리 이거, 지난주에 뒤에만 잠깐 봤었죠?”
“맞아. 잠깐 봤는데 박두영이 웃기더라고.”
“어휴. 그 아저씨는 이제 너무 오래 봐서 진부하더라.”
“반대로 박두영이만큼 롱런하는 개그맨도 잘 없잖아.”
“음……. 그건 그래요.”
두 내외가 <우리 집에 왜 왔니>를 튼 것은, 단지 지난주에 우연히 봤던 웃긴 장면 때문이었다.
하지만 예능이라는 것이 원래 그런 소소한 재미 때문에 찾는 것이었고.
그래서 <우리 집에 왜 왔니>를 튼 두 사람 또한, 대충 그런 재미를 기대한 것이었다.
시간은 9시 20분 정도였기에, 시작하자마자 보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드라마도 아니고 예능을 꼭 처음부터 봐야 할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 잠깐 TV 화면을 응시하던 준모는, 조금 의아한 표정으로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음……? 연예인들 집들이하는 프로그램인 줄 알았더니, 오늘은 좀 다르네?”
단순히 출연진들이 서로의 집에 놀러 다니는 예능으로 알았던 <우리 집에 왜 왔니>에서, 웬 커다란 교외의 카페가 등장했으니 말이다.
TV에서는 요란스런 유리아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엄청나! 대박이야! 우리 동네에도 드디어 이런 갬성 커피집이 생기다니!]
하지만 예상 밖의 장면이었다고 해서, 흥미가 동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갬성이 뭐냐, 갬성이. 이상한 단어 좀 쓰지 마.]
[노인네! 쓸데없이 트집 잡지 말고, 여기 인테리어 좀 봐. 나 이제 앞으로 여기만 올 거야. 다른 데 못가!]
유리아와 윤재엽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에서 일단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으며.
[커피 맛도 안 보고, 그렇게 결정해 버린다고?]
[딱 보면 모르냐?]
[뭘?]
[여기 커피가 맛이 없을 것 같아?]
[……?]
[인테리어를 이렇게 해놓고 커피가 맛없으면, 그건 사기야! 사기!]
두 사람의 추임새가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시청자인 준모가 보기에도 카페의 인테리어가 꽤 훌륭해 보였으니 말이다.
‘오, 잘 모르는 내가 봐도 멋진데?’
하지만 준모가 살짝 흥미가 동한 정도였다면.
옆에 앉아있던 아내는, 훨씬 더 격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와……! 여보, 여보! 저기 어딘지 빨리 좀 검색해 봐요.”
“응? 왜 그래, 당신?”
“왜 그러냐니! 저기 완전히 외국 같지 않아요?”
“음……. 좀 멋있기는 한데…….”
“지난주에 갔던 남양주 쪽 카페보다, 저기가 훨씬 멋지잖아요.”
“에이, 거기보다야 당연히 낫지.”
“당신 감성이 메말라서 그렇지, 거기도 엄청 유명한 곳이었다고요.”
“그래?”
“저기 오늘 방송 타고 나면, 정말 난리 날 것 같은데…….”
아내의 격한 반응을 본 준모는, 조금 더 관심이 가기 시작하였다.
‘한번 검색이나 해 볼까……?’
마침 탁자 위에 노트북이 놓여있었기에, 크게 귀찮지도 않았고 말이다.
카페 이름이 방송에 공개되지는 않고 있었지만, 그래도 검색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검색창에 ‘우리 집에 왜 왔니’라고 친 순간, 이미 관련 기사나 내용들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졌으니 말이다.
[<우리 집에 왜 왔니>, 유리아가 감탄한 카페는 어디?]
[‘모던 빈티지’의 끝판왕! ‘카페 프레스코’를 디자인한 서우진은 누구?]
[방송 이전부터 이미 ‘핫 플레이스!’ 삼송역의 명물 ‘카페 프레스코’!]
인터넷을 검색해 본 준모는, 점점 더 눈동자가 커지기 시작하였다.
‘카페 프레스코’라는 상호를 가진 저 TV 속 카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아내보다 더 격했으면 격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뭐야. 저 카페 디자인이……. 그렇게 대단한 거였어?’
원래 사람의 심리라는 것은, 다수 의견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게다가 바로 옆에 앉아있는 아내까지 이렇게 난리였으니.
크게 감흥 없던 준모의 생각도 점점 더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괜히 색감 하나하나가 고급스러워 보이고, 인테리어 소품이나 마감 같은 것도 좀 더 세련되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뒤에서 준모가 검색하던 화면을 같이 보던 아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여보, 저기 커피도 엄청 맛있나 봐!”
“그, 그러게.”
“다음 주중에 자기, 연차 한 번 쓴다고 했죠?”
“응? 으응. 그랬지.”
“그날같이 저기나 한번 가 봐요.”
“평일에?”
“응. 주말에는 가 봐야, 사람 미어터질 거야.”
아내의 호들갑에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인 준모는, 이제 다시 TV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카페 프레스코>에 대한 기사들도 흥미롭기는 했지만, 그보다는 예능이 좀 더 재밌었으니 말이다.
하여 노트북 화면을 덮고, TV에 조금 더 집중하려던 그때.
“음……?”
화면 한쪽에 떠 있던 기사 제목 하나가, 노트북을 끄려던 준모의 눈에 들어왔다.
[새로운 카페 프랜차이즈의 붐? <카페 프레스코>의 대표, ‘강석중’은 누구?]
그리고 그 제목을 확인한 준모는,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기사를 클릭해서 눌러볼 수밖에 없었다.
‘프랜차이즈였어?’
그러잖아도 괜찮은 프랜차이즈의 가맹점을 고민하고 있던 준모에게는,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는 기사 제목이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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