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든 프린트-70화 (70/315)

70화

반가운 재회

우진이 수하에게 연락한 이유는, 시간이 잠깐 떴기 때문이었다.

“그럼 오늘 여기 온 김에, 실측이나 싹 따서 가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저희야 빠르게 작업해주실수록 좋죠.”

진태는 현장까지 나온 김에 실제 수치를 전부 실측해서 돌아가길 원했고.

그 작업은 굳이 우진까지 달라붙을 필요 없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정묵이랑 진혁이 다 왔다니까, 걔들이랑 같이 치수 전부 따 놓을게.”

“흠, 그럼 그동안 나는 뭐하지?”

“커피라도 한잔하면서 쉬고 있어. 어차피 길어봐야 한 시간이야.”

“뭐……. 그러자, 그럼.”

박정묵과 윤진혁은, 얼마 전에 새로 뽑은 WJ 스튜디오 시공 파트의 직원들이었다.

우진과 진태는 사무실에서 출발한 반면, 그 두 사람은 다른 현장에서 오고 있었기 때문에.

따로 움직여 시간차가 조금 생긴 것이다.

게다가 현장 기술자인 두 사람은, 미팅에 굳이 들어올 필요도 없었고 말이다.

“커피라……. 카페 프레스코 커피를 맛볼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건 어려울 것 같고…….”

고개를 돌린 우진의 시선에, 높다랗게 솟아있는 KBC의 일산사옥이 들어왔다.

‘배우님은 잘 계시려나? 오랜만에 한 번 연락이나 해 볼까?’

그러니까 우진은 오늘 수하가 여기 올 것을 예측한 게 절대로 아니었다.

그냥 그녀가 자주 이곳에 온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한번 연락해 본 것뿐이었고.

어쩌다 보니 타이밍이 잘 맞았을 뿐인 것이다.

물론 우진을 만나러 나온 임수하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대표님, 혹시 전직 점쟁이세요?”

“네?”

“아니, 내가 오늘 여기 올 거 어떻게 알고 딱 맞춰서 연락을 주셨대.”

“KBC 자주 오신다면서요.”

“물론 그렇기는 하지만요.”

두 사람이 만난 곳은, KBC 사옥의 1층에 있는 커다란 카페였다.

미래에도 압도적으로 점유율이 높은, 해외브랜드의 커피 매장.

은은하게 코를 찌르는 원두향을 느끼며, 우진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빨아들였다.

그런 그를 향해, 수하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간, 어떻게 지냈어요?”

“뭐, 저야 바쁘게 지냈죠.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사업이 초기 단계라서요.”

“어휴, 힘드시겠네요.”

우진이 웃으며 덧붙였다.

“그래도 배우님만큼 바쁘겠어요? 연예인 스케줄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건 아니잖아요.”

“하……. 뭐 저도 바쁘긴 했지만…….”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은, 당연히 일상적인 것들부터 시작되었다.

지난번처럼 아파트 청약이라던가 하는 공통의 주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딱히 둘의 대화는 어색하지 않았다.

지난번 수하가 불광까지 차로 데려다준 이후로, 서로 꽤나 편해진 상태였으니까.

“아하, 그럼 이번에 이쪽에 오시게 된 건, 근처에 새로 생기는 카페 공사 때문이셨네요?”

“그렇죠. 정확히는 그 일을 따러 온 거지만요.”

“아하. 그럼 이제 종종 오시려나요?”

“음……. 아무래도 그렇겠죠? 다음 주부터 공사 시작될 테니까, 아마 8월 초까지는 자주 오겠어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일상적인 대화를 하는 두 사람에게, 사실 서로에게 물어보고 싶은 말이 각자 하나씩 있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두 사람이 하고 싶은 말은, 같은 주제에 대한 질문이었다.

‘혹시 예능 출연 잡힌 거 없는지, 슬쩍 한번 물어볼까?’

‘오늘 예능PD랑 미팅 있는 거,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 번 물어볼까?’

우진이 수하의 예능 출연에 대해 궁금해하는 이유는.

새로 방영될 예능프로그램인 <우리 집에 왜 왔니>의 방영일자가 점점 더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제 출연진은 슬슬 정해져야 하는 시기였고.

그 예능에 수하가 꼭 출연하길 바라는 우진으로서는, 어떻게 되어 가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 말이다.

‘콩고물도 좀 얻어먹어야 하고 말이지…….’

그러니까 우진은, 자신이 한 달 전에 뿌려놨던 떡밥이 잘 여물었는지가 궁금했던 것이었고.

반면에 수하가 예능 섭외에 관해 우진에게 물어보고 싶은 이유는, 완전히 다른 맥락이었다.

‘서 대표는 뭐라고 할까? 아무래도 하라고 하겠지?’

수하의 궁금증은, 어쩌면 정말 단순한 것이었다.

신기(?)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우진이 이 예능의 구체적인 포맷을 들은 뒤, 과연 어떻게 이야기할지가 궁금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어쩌면 그녀는 이 예능에 합류하는 이유를, 우진에게서 찾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이제 막 인지도가 생기기 시작한 배우의 입장에서 새로 편성되는 예능에 출연하는 것은 도박수에 가까운 것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이 예능을 꽤나 하고 싶은 상태였으니까.

예능이 잘 돼서 메인 패널로 얼굴을 알린다면 대박이 날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이미지가 잘못 잡히거나 예능 자체가 망해버린다면 이것은 꽤나 악수가 될 터.

선택의 기로에 선 그녀는, 이 화두의 근원이나 다름없는 우진이 자신의 등을 떠밀어주길 바랬다.

그래서 잠시 대화가 멈췄을 때.

둘은 거의 동시에 서로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배우님.”

“아, 그런데 혹시 대표님.”

그리고 무척이나 어색해진 표정으로, 서로를 향해 발언권(?)을 양보하였다.

“대표님 먼저 얘기하세요.”

“아, 아니에요. 배우님 먼저 말씀하세요.”

“음, 그럼…….”

그리고 수하의 입이 다시 떨어졌을 때, 우진은 저도 모르게 한쪽 주먹을 꽉 움켜쥘 수밖에 없었다.

“지난번에 대표님이, 저더러 예능 한번 해보라고 하셨잖아요? 올해 가기 전에.”

“그랬죠.”

“그래서 말인데요…….”

수하는 살짝 뜸을 들였고, 우진은 침을 꼴깍 삼키며 그녀의 말이 이어지길 기다렸다.

정확히는 그녀의 입에서, <우리 집에 왜 왔니>라는 이름이 나오기를 간절히 바랬다.

만약 수하가 다른 이상한 예능의 이름을 꺼낸다면, 그걸 어떻게 말려야 할지도 고민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정말 다행히도.

그녀는 우진이 기대했던 정확히 그 프로그램의 이름을 꺼내었다.

“제가 사실, ‘우리 집에 왜 왔니’ 라는 프로그램에 섭외됐거든요.”

우진은 속으로 쾌재를 질렀지만, 겉으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기 위해 적잖이 애를 썼다.

“음? 프로그램 이름이 꽤나 신선하네요. 예능인가요?”

우진의 표정을 잠시 살피던 수하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다시 말을 이었다.

“네, 맞아요. 예능이죠. 대표님 말대로 올해 안에, 예능 프로그램에서 섭외가 들어오네요.”

수하는 뭔가 뼈가 있는 이야기를 했지만, 우진은 능청스런 표정으로 말을 돌렸다.

“여튼, 그래서요? 그게 무슨 프로그램인가요?”

우진은 <우리 집에 왜 왔니>를 완전히 꿰고 있다.

그가 전생에 가장 좋아했던 예능 프로 중 하나였으니 말이다.

사실 시즌1보다는 시즌2부터 본격적으로 보기 시작했던 예능이지만, 포맷 자체는 비슷하다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는 척을 할 수는 없는 노릇.

“연예인 집에 놀러 가고 그런 프로그램인가……?”

우진은 일부러 조금 애매한 추측을 내어놓았고, 수하는 웃으며 설명을 시작하였다.

“그러니까 이게, 뭐 하는 프로그램이냐 하면요…….”

우진은 전부 다 아는 내용을,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기마냥 눈을 빛내며 듣기 시작하였다.

* * *

먹방, 쿡방 등, 음식과 관련된 예능들은, 2010년에도 수 없이 흥행하며 높은 인기를 끌고 있었다.

그리고 공진영 PD는 이 음식과 관련된 컨텐츠의 흥행 이유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것’이라는 키워드에서부터 찾아내었다.

세상에 음식을 먹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고, 맛있는 음식을 싫어하는 사람도 없었으니.

시청자들의 공감을 끌어내기에 ‘음식’이라는 컨텐츠는, 최상의 조건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여 같은 맥락에서 공PD는, 의식주 중 하나인 ‘주거’에 포커싱을 맞춰보았다.

누구에게나 필요한 음식처럼 ‘집’ 또한 인간에게 필수적인 요소 중 하나였고.

좋은 집, 예쁜 집에 대한 갈망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해서 공진영 피디는 <우리 집에 왜 왔니>라는 이름의 이 프로그램을, ‘집방’ 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로 시청자들에게 소개하였다.

음식을 먹고 만드는 방송을 지겹도록 봐 왔던 시청자들은 ‘집’이라는 새로운 컨텐츠에 열광했고.

<우리 집에 왜 왔니> 시즌2가 방영될 즈음에는, 이 프로그램으로 인해 셀프 인테리어가 유행했을 정도였다.

그러니까 이 <우리 집에 왜 왔니> 프로그램의 기본 포맷은, 의뢰인의 집을 ‘셀프 인테리어’해주는 것이었다.

“고정 패널로 출연하는 MC하나에 연예인 한 명과, 해당 연예인이 섭외한 전문가 하나. 그리고 제작진에서 섭외해 준 무작위 게스트 연예인 정도가, 이 예능에서 한 팀으로 활동한대요. 뭐, 아직 확정은 아니라, 구성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지만요.”

“팀을 꾸려서 뭐 하는데요?”

“인테리어를 해요.”

“인테리어……요? 예능에서?”

“네. 정해진 예산 안에서 의뢰인의 집을 인테리어 해주는 게 기본 포맷인 것 같고요. 인테리어 된 그 집의 Before and After를 비교해서, 시청자들이 각 팀에 점수를 매기나 봐요.”

“점수를 매겨서, 승리 팀 패배 팀을 정하는 거겠죠?”

“네. 바로 그거죠.”

우진은 적당히 모른 척을 하며 맞장구를 쳐 주느라, 적잖이 애를 먹어야 했다.

자칫 말실수를 했다가는, 또다시 의심의 눈초리를 피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물론 처음부터 다짜고짜 인테리어를 시작하는 건 아니에요. 제가 첫 방 대본을 좀 봤는데……. 처음은 연예인들의 집에 놀러 가는 것부터 시작되더라고요.”

처음 <우리 집에 왜 왔니>는, 프로그램 이름에 걸맞게 연예인이 자신의 집에 출연진을 초대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그 연예인이 사는 집의 인테리어를 전문가를 섭외하여 공사하게 되는데, 그러면서 자연스레 해당 연예인과 전문가가 한 팀으로 묶이게 된다.

“뭐, 말은 연예인이 섭외하는 전문가라고 하는데, 아마 제작진 쪽에서 섭외해준 전문가가 대본대로 출연 연예인에게 붙게 되겠죠.”

“흐음.”

“그리고 인테리어를 하는 데에는 몇 가지 조건이 있는데……. 정해진 예산을 넘을 수 없으며, 시공업체의 힘을 빌리지 않고 전부 셀프 인테리어로만 해야 한다는 거예요.”

수하의 이야기를 듣던 우진은, 오래전에 봤던 예능의 내용들이 하나하나 머릿속에 기억나기 시작하였다.

‘그땐 정말 재밌게 봤었는데…….’

그리고 수하의 대략적인 설명이 끝났을 즈음.

우진은 절반의 연기와 절반의 진심을 담아, 그녀를 향해 감탄하듯 대답하였다.

“와……. 확실히 이거, 꽤나 재밌어 보이는데요?”

“대표님이 보시기에도 그래요?”

“네. 저야 뭐, 원래부터 전공이 이쪽이니까.”

반짝이는 우진의 두 눈을 확인한 수하는, 한결 상기된 표정으로 우진을 향해 다시 물었다.

처음부터 우진에게 묻고 싶었던 하나의 질문.

“그럼 대표님은……. 제가 이 예능, 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 질문에 우진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물론이죠.”

“물론……. 이라고요?”

“네.”

“왜요? 이 프로가 무조건 잘 될 것 같은가요?”

수하는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우진을 향해 물었고, 그의 대답을 어느정도 예상하였다.

‘잘 될 것 같다고 하겠지. 그럼 이유를 물어봐야…….’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녀의 그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우진은 무척이나 뻔뻔한 얼굴로, 다음과 같이 대답했으니 말이다.

“그야 저도 모르죠.”

“네?”

“하지만 배우님이 이 예능에 출연하셔야, 저도 전파 한 번 타보지 않겠어요?”

순간적으로 우진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수하는 조금 당황한 표정이 되었지만, 잠시 후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아, 진짜……! 무슨 말인가 했네.”

“하하.”

“제가 여기 출연하면, 서 대표님 전문가로 섭외해 줄 것 같았나 보죠?”

“당연하죠.”

“대체 무슨 자신감?”

수하의 반문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우진은, 그녀를 향해 자신 있게 대답하였다.

“저한테는 스토리가 있거든요, 스토리.”

그 말이 이해되지 않았는지 수하는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고.

우진은 그런 그녀를 보며 작게 웃을 뿐이었다.

골든 프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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