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역공
김기태는 우진을 모르지만, 우진은 그를 너무 잘 안다.
물론 그의 인간관계나 배경 같은 것까지 세세하게 아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 인간 됨됨이만큼은 누구보다 적나라하게 안다는 뜻이었다.
‘모를 수가 없지. 그렇게 데였는데 말이야.’
김기태는 누구보다 자존심이 세며, 겉과 속이 완전히 다른 사이코패스 같은 인물이었다.
겉으로는 항상 사람 좋은 척을 그렇게 하면서, 자신이 손해 보지 않기 위해서는 그 어떤 비열한 짓도 서슴지 않는 인물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우진이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은, 그가 자신의 부정한 행동들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는 점이었다.
너무 쉽게 그것을 정당화해버린다거나, 혹은 그런 일이 아예 없던 것처럼 완벽히 잊어버린다거나.
[내가 그랬다고? 무슨 소리야. 다른 사람이랑 착각한 거겠지.]
[사람을 모함할 거면, 증거를 가져와 증거를. 이거 아주 안 될 놈이네.]
처음에는 그냥, 단순한 발뺌인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우진은 묘한 위화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신의 부정한 행동을 그냥 모른 척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적이 없다며 자기 자신까지도 완벽히 속이는 느낌이었으니 말이다.
그 표정, 제스쳐. 그리고 모든 행동들까지.
그는 진심으로 억울해 보였고, 우진마저도 억울한 사람을 추궁하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니까 그것은, 아무리 봐도 연기가 아니었었다.
우진은 그때, 이런 종류의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이번 생에서는, 어지간하면 상종도 하지 않으려 했었는데…….’
하지만 어떤 운명의 장난 같은 것이었는지, 결국 이렇게 엮이고 말았다.
학년은 다르지만 같은 학교 같은 과의 학생이 되었으며.
같은 공모전에 출품까지 했다.
그리고 그 공모전에서, 우진은 김기태를 완벽히 실력으로 눌러버렸다.
“생각해보면 김기태가……. 이걸 그냥 참고 있을 놈은 아니지.”
김기태를 속까지 꿰고 있는 우진은, 그가 어떤 식으로 행동했을지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그래서 공모전 모형 작업을 하던 자신의 작업실을 찍어갔다는 얘기를 들은 순간, 곧바로 김기태와 연결 지을 수 있었고 말이다.
‘김기태와 명성건설의 관계를 알아봐야겠어. 생각해보면 전생에도 데피노스는, 거의 대부분의 경우 명성 건설쪽과 일을 하곤 했었지.’
처음에는 당연히 심증만 있었지만, 그것을 물증으로 바꾸는 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학과 사무실에 찾아가서 서류 몇 장 떼어 보니, 너무도 쉽게 단서가 쏟아져 나온 것이다.
“조교님, 저 컴퓨터 좀 써도 될까요?”
“응? 뭐, 안될 건 없지만……. 왜?”
“교수님께서 학년별 명부 좀 뽑아달라고 하셔서요.”
“아 그래? 알겠어. 저쪽 컴퓨터 쓰면 돼.”
우진은 3학년 학생명부에서 김기태의 이름을 찾을 수 있었고, 관련 서류를 전부 다 뒤지기 시작하였다.
그의 가족관계부터 시작해서 중‧ 고등학교 졸업기록까지.
우진은 김기태가 나온 고등학교의 이름을 알아낸 뒤, K대 관계자인 척 전화하여 그의 학생기록부를 열람해 볼 생각이었다.
대학교의 학생명부와 달리 중고등학교의 생기부에는 그와 관련된 자세한 이력이 기술되어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결과부터 말하자면,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김진명? 어디서 들어봤는데.’
학생명부에 김기태의 아버지로 기록되어있는 ‘김진명’이라는 이름을 발견한 순간, 아주 낯이 익다는 느낌을 받았으니 말이다.
해서 포털 사이트에 그 이름을 검색해 본 순간.
탁-!
우진의 입에선, 웃음이 새어나올 수밖에 없었다.
“줄줄이 묶여있는 굴비도 아니고, 이렇게 쉽게 딸려 나온다고?”
명성건설의 상무이사 김진명과 김기태의 아버지 김진명이 동일인물이라는 사실을, 곧바로 알 수 있었으니까.
‘이거 그림이 그려지는데…….’
한번 단서가 확실하게 잡히자, 그 다음부터는 훨씬 쉬워졌다.
김기태의 아버지가 명성건설의 상무이사라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 그가 어떤 식으로 행동했을지 전부 다 머릿속에 그려진 것이다.
‘보나마나 공모전 작업도, 명성건설의 인프라를 빌려서 쉽게쉽게 갔겠지.’
우진은 SPDC공모전 사이트에 업로드 된 기태의 작품을, 다시 한번 자세히 살펴보았다.
‘설계 수준을 보니 완전히 맡긴 건 아니었을 것도 같지만……. 모형제작이나 세부 설계도는 백 퍼센트 외주야.’
우진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먼저 건드리지만 않았다면 그냥 상종하지 않으며 살 생각이었지만.
이렇게 김기태가 먼저 이빨을 드러낸 이상, 그것을 그저 회피하는 것으로 끝내 줄 생각은 없었다.
‘주먹을 휘둘렀으면, 거꾸로 처맞을 생각도 할 줄 알아야지.’
우진은 곧바로 가장 최근에 오픈된 명성건설의 모델하우스를 검색하였다.
그리고 홈페이지에서 그쪽 실무관계자의 전화번호를 확인한 뒤, 망설임 없이 전화를 걸었다.
“아, 안녕하세요. 명성건설 오 팀장님이시죠?”
“모델하우스에 들어가는 건축모형을 납품하고 싶어서 전화 드렸는데요…….”
“아, 이미 장기 계약이 되어있다고요? 혹시 어떤 회사인지 알 수 있을까요?”
“예,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현장 구조를 거의 꿰고 있는 우진에게, 몇 가지 정보를 찾아내는 일은 너무도 쉬운 일이었다.
해서 그렇게 하루 한나절 정도를 투자한 결과.
우진은 김기태를 완전히 옭아매는데 필요한 정보들을, 거의 다 수집할 수 있었다.
‘최우수상이라도 만족하고 가만히 있지 그랬냐, 김기태. 그것도 네놈에겐……. 과분한 상이었는데 말이야.’
우진은 자신이 수집한 모든 자료를 싹 다 정리하여, 서울시 디자인재단에 보낼 투서를 만들었다.
특히나 설계 단계에서 명성건설의 도움을 받았던 모든 정황들을 정리하여, 꼼꼼하게 기록해 넣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진은 뭔가 부족함을 느꼈다.
그가 조사한 자료들만 봐도, 누구나 김기태의 설계를 의심할 수밖에 없게 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명백한 증거’라고 할 만한 확실한 물증이 확보된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정황이 아무리 김기태의 부정을 말해준다 한들, 발뺌할 수 없을 정도의 명확한 물증이 없다면.
김기태는 분명 무슨 수를 써서라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갈 게 분명했으니까.
게다가 그렇게 김기태가 빠져나가는 데 성공해 버린다면, 오히려 우진이 역풍을 맞을 가능성도 있었다.
명예훼손과 관련된 죄목을 들먹일 수가 있는 것이다.
‘뭐, 괜찮은 방법이 없을까?’
그런데, 우진이 모니터를 응시하며 고민에 빠져있던 바로 그때.
드르륵-
우진의 방문이 열리며, 밖에서 작업 중이던 석현이 안으로 들어왔다.
“야, 우진.”
“응?”
“내가 좀 도와줄까?”
우진의 시선이 닿은 석현의 입가에는, 어느새 음흉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 * *
석현은 고등학교 때부터, 공부를 무척이나 잘했다.
이공계열 쪽에서는 한국에서 탑으로 쳐 주는 S대의 공대를 들어간 것만 봐도, 그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 가능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우진은 종종 망각하는 사실이었지만.
석현의 전공은, 공과대학 안에서도 컴퓨터 공학이었다.
석현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우진은 그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맞네. 그러고 보니 얘, 컴공이었지.’
석현은 지금 우진이 뭘 하고 있는지, 대략적으로 들어 알고 있었고.
우진은 생각지도 못하고 있던 해결책을 제시해 주었다.
“그러니까 역으로 그 김기태인지 뭔지 하는 너희 선배한테, 엿을 제대로 한번 먹여주고 싶다는 거 아냐.”
“뭐, 그런 셈이지.”
“부정행위 정황도 거의 확실하다는 거고.”
“맞아. 그건 백 프로야.”
석현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럼, 메신저를 한번 털어보는 게 어때?”
“메신저……?”
“잘 생각해 봐. 그 선배, 학교에서 작업하던 컴퓨터 같은 거 없어?”
2010년은 아직, 스마트폰이 보편화되기 이전이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소통은 문자나 메신저를 사용했었고, 특히 이런 팀 과제 같은 것을 할 때는, 메신저가 거의 필수라고 할 수 있었다.
‘학과 컴퓨터실에서, 매번 판넬 작업하는 걸 본 것 같긴 한데…….’
하지만 컴퓨터에 대한 지식이 그리 깊지 못한 우진은, 메신저를 털라는 석현의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메신저는 어떻게 털어?”
“캐시 파일(Cache File) 까보면 돼.”
“음……?”
“쉽게 말해, 채팅 기록이 컴퓨터에 남아있을 거라는 얘기야.”
“아……?!”
석현의 설명을 들은 우진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옅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래. 외주를 넣었으면, 분명히 채팅 기록이 남아있을 수밖에 없어.’
디자인 외주라는 것은, 전화통화 한 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작업물을 맡겼으면 컨펌이 오가야 했고, 특히 김기태 같은 성격이라면, 어지간히 까다롭게 굴었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 채팅 기록 안에서 명확한 증거를 찾아낸다면.
그것이야말로 김기태를 오도 가도 못하게 만들, 확실한 무기가 되어 줄 것이었다.
“어떤 메신저를 쓰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KSN메신저일 거야. 우리 학교 선배들, 거의 그것만 쓰더라고.”
“아 그래?”
“KSN이 유료문자까지도 연동 되서, 나도 요즘 계속 쓰게 되더라.”
우진의 말을 들은 석현이, 손뼉을 딱 치며 대답했다.
“좋아, KSN이면 더 편하겠네.”
“왜?”
“캐시 파일에 간단한 암호화가 걸려 있을 텐데, KSN메신저 암호 화장치는 거의 애들 장난 수준이거든.”
“그래?”
다른 유저의 대화 기록을 그렇게 쉽게 뜯어볼 수 있는 것인지, 우진은 조금 의아했지만.
석현은 정말 자신 있는 표정이었다.
“그 선배가 사용했던 컴퓨터만 찾을 수 있으면 돼. 그다음부턴 내가 알아서 해 줄게.”
하여 석현을 데리고 학교에 올라간 우진은, 컴퓨터실의 문을 열고 구석자리에 들어가 앉았다.
컴퓨터실은 주말까지도 상시개방이었기 때문에, 들어가 작업하는 데에는 딱히 문제가 없었다.
공모전이 막 끝난 상황이라, 사람도 거의 없었고 말이다.
자리에 앉은 석현은, 신이 나서 우진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실 메신저 대화 내용이라는 게, 누군가 해킹을 시도할 만큼 중요한 정보가 담긴 경우는 보통 없거든.”
“불특정 다수의 수많은 채팅 기록 안에서, 유의미한 정보를 찾아내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니까.”
“그래서 메신저 개발사에선, 거의 형식적으로만 암호화 작업을 해 두는 경우가 보통이야.”
“하루에도 어마어마하게 많은 대화가 오가는데, 암호화가 전부 들어가면 데이터 전송량만 늘어나고…….”
탁-
“그게 다 결국 서버 비용이니까.”
석현은 우진에게 장담했던 대로, 캐시 메모리에 저장되어 있던 대화 내용들을 순식간에 긁어내었다.
물론 그 안에서 김기태의 대화 기록들을 찾아내는 데까지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래도 우진이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수월하게 끝난 것이다.
“찾았다.”
“……!”
컴퓨터실에 들어와 앉은 지 딱 두 시간 정도가 지났을 무렵, 석현이 메모장에 옮겨놓은 김기태의 대화 내역안에는.
우진이 원했던 내용들이, 그야말로 적나라하게 들어차 있었다.
“크흐. 이거면 된 거지 우진?”
우진은 석현의 머리를 살짝 헝클어뜨리며, 기분 좋게 웃었다.
“물론이야. 충분해.”
미리 준비해 온 USB에 채팅 기록을 그대로 담은 우진은, 빠르게 컴퓨터실을 벗어나 작업실로 돌아왔다.
이것으로 모든 퍼즐이, 깔끔하게 완성되었다.
골든 프린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