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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프린트-37화 (37/315)

37화

프리미엄이란?

사람은 누구나 더 좋은 것, 더 귀한 것, 더 편한 것을 추구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돈의 흐름은, 이와 같은 맥락으로 움직인다고 우진은 생각하였다.

‘사람은 누구나 특별해지고 싶어 하지. 누구에게나 인생의 주인공은 자기 자신이니까.’

우진의 부모님 세대에는 사치와 낭비를 흉으로 여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 되어갔다.

자산, 소득의 격차와 별개로 모든 사람이 같은 수준의 소비만을 고집한다면, 자본주의 사회는 굴러갈 수 없었으니까.

해서 현대의 사람들은 자신의 특별함을 증명하기 위해 돈을 쓴다.

그리고 우진은, 가장 많은 사람들이 돈을 아끼지 않는 분야가 바로 주거(住居)라고 생각하였다.

‘좋은 주거에 대한 갈망이야말로, 고금을 통틀어 변치 않는 인간의 욕망이니까.’

우진은 욕심이 나쁘다 생각지 않았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이었고, 또 인간을 움직이는 원동력이기도 했으니까.

언제나 문제가 되는 것은. 자신의 능력 밖의 것을 원하거나, 노력 없이 과실만을 바라는, 그릇된 탐욕일 뿐이었다.

해서 우진은, 현대인의 욕심이 담겨있는 고상한 단어가 바로 ‘프리미엄’ 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프리미엄’ 을 찾는 사람들이 원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 자신을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말씀드렸던 대로 면적을 아래위로 200 정도 줄이고, 폴리싱타일(유광타일) 대신 천연대리석으로 시공했습니다.”

“보시면 모델하우스로 진입하는 동선을 따라 대리석 마감재가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여기. 이 지점부터 화이트 헤링본(Herringbone)*[판재나 띠 모양의 소재가 일정한 각도를 이루면서 서로 엇갈리게 조합된 무늬]이 들어가면서, 모하 내부의 마감재와 같은 톤으로 변경됩니다.”

“아마 홍보관을 찾은 사람들은 이 웅장한 호화 인테리어를, 분양받을 집과 연관 지어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워낙 모델하우스 내장재도 고급진 데다, 홍보관 로비까지 이어지는 디자인 톤을 최대한 부드럽게 뺐거든요.”

“공동주택. 아파트라고 생각할 수 없는 이 특별한 고급감.”

“이 클리오 프레스티지 아파트를 분양받으러 온 사람들은, 이 공간이 자신들을 특별하게 만들어준다고 느낄 겁니다.”

우진의 설명이 청산유수처럼 이어졌고.

최종감리를 나온 천웅건설 디자인팀장 손준기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일 뿐이었다.

‘와, 이게 이렇게 뽑힌다고?’

우진의 설명에는 한 치도 트집 잡을 부분이 없었으며, 그 전에 그럴 생각이 들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디자인 디테일과 마감 퀄리티에 감탄하기 바쁜 상황에서,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진짜 고생하셨습니다, 서 대표님. 이거, 대표님 시공이 저희 팀 디자인을 제대로 살려주셨네요.”

진심이 담긴 손준기의 이야기에, 우진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대답하였다.

“별말씀을요. 기본적으로 디자인이 잘 빠졌으니, 시공도 예쁘게 나올 수 있었던 것 아닙니까.”

손준기의 감사 인사는 물론. 우진의 대답 또한 전혀 빈말이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디테일 측면에서 설계도가 아쉬운 점들이 분명 있었지만.

그래도 회귀 전 우진과 협업하던 디자인 팀의 작업물들과 비교하면, 앉혀놓고 절이라도 하고 싶을 정도로 군더더기 없는 훌륭한 디자인이었으니 말이다.

‘유학파 디자이너랍시고 설치던 임 차장만 생각하면……. 진짜 아오.’

그리고 우진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그 시점.

손준기와 함께 온 디자인 팀원들은 적잖은 충격을 받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것은 분명 그들이 디자인하고 설계한, 디자인팀의 머릿속에서부터 나온 프리미엄 홍보관의 디자인이었는데.

3D로 랜더링한 투시도에 포토샵을 덕지덕지 발랐던 시뮬레이션 이미지보다도, 지금 완공되어 눈앞에 나타난 홍보관의 모습이 몇 배는 더 아름다웠으니 말이다.

‘디자인이 끝인 줄 알았는데…….’

‘시공과정에서 이렇게까지 결과물이 살아날 수도 있다니.’

천웅건설의 디자인 팀은, 지금까지 수많은 현장을 디자인해왔다.

때문에 지금 우진이 시공한 현장보다, 더 멋지고 더 아름다운 공간도 분명히 많이 봐왔다.

하지만 이제까지 그들이 디자인했던 공간이, 디자인하며 상상했던 수준 이상으로 멋지게 뽑힌 경우는 한번 도 없었다.

생각했던 그림대로 잘 뽑혔다며 감탄한 적은 더러 있었지만…….

‘이거 우리가 디자인한 것 맞아?’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결과물이 더 좋았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자, 이제 설명 끝나셨으면 촬영 좀 하겠습니다!”

우진의 브리핑이 전부 끝나자, 그들의 뒤를 따르던 촬영팀이 일사불란하게 장비를 풀었다.

촬영팀의 역할은, 천웅건설 본사에서 여러 방면으로 쓰일 그럴싸한 현장 사진들을 뽑아내는 것.

보통 이렇게 찍힌 사진들은 윗선에 보고하기 위한 용도로 가장 많이 쓰이지만, 오늘은 조금 다를 것이다.

홍보관이 본격적으로 오픈되기 전.

이 사진들을 담은 수많은 기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인터넷에 뿌려질 예정이었으니까.

“흐흐, 공간이 좋으니까 사진 찍을 맛도 나네요.”

“앵글 잡기 진짜 편하네.”

촬영팀이 세팅되는 것을 잠시 지켜보던 손준기의 앞으로, 우진이 다가가며 슬쩍 입을 열었다.

“저기, 팀장님.”

“아, 말씀하세요, 대표님.”

우진이 멋쩍게 웃으며, 그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하였다.

“혹시 촬영팀에서 찍은 사진들, 저희 측에도 공유가 좀 가능할까요?”

전문 촬영팀이 찍은 사진들은, 그 자체로도 천웅건설 자산의 일부이다.

때문에 우진은 조심스레 물어봤고, 손준기는 웃으며 대답하였다.

“아하, 그 정도야 제가 얼마든지 해드릴 수 있죠.”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사진들은 어디에 쓰시려고……?”

숨길 것도 없었기에, 우진은 솔직히 대답하였다.

“저희 스튜디오 포트폴리오에 쓰려고 합니다. 아시다시피 저희, 신생이잖아요.”

우진의 말에 잠시 멈칫 한 준기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신생이라……. 그랬죠.”

준기는 이번 작업을 진행하는 동안 우진이나 WJ 스튜디오에서 어설픈 구석을 단 한 번도 찾을 수 없었고.

때문에 WJ 스튜디오가 신생업체라는 사실을, 자연스레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준기는 현장을 한 번 더 둘러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뭐, 신생이 아니더라도 사실 이정도 퀄리티의 작업이면, 어느 업체라도 포트폴리오에 추가하고 싶을 겁니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하네요. 여튼,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감리확인까지 전부 끝나고 현장 촬영 작업까지 마무리되자.

우진은 점점 더 지금의 상황이 실감 나기 시작하였다.

‘이걸…… 내가 만들었단 말이지?’

인테리어 공사 그 자체를 말하는 게 아니다.

일을 받아오는 것부터 시작해서 인력을 수급하고 자재들을 직접 발주 넣는 일련의 작업들까지.

오롯이 우진과 WJ 스튜디오가 가진 힘으로만 해낸 첫 번째 작업물이었으니, 이것은 우진에게도 첫 번째 경험인 것이다.

‘이제 남은 건…….’

우진은 휴대폰을 열어서 달력을 확인해 보았다.

구닥다리 폴더식 폰이었지만, 그래도 달력 기능 정도는 탑재되어 있었다.

[5월 26일, 수요일. 잔금 수령.]

[5월 29일, 토요일. 기자회견.]

[6월 3일, 목요일. 홍보관 오픈.]

남은 일정들을 확인한 우진의 입가에 저도 모르게 미소가 걸렸다.

지난 한 달 동안 최선을 다했고 열심히 일했으니.

이제 남은 것은, 달콤한 열매를 따 먹는 일들뿐이었다.

* * *

십 년 차 샐러리맨이자 3인 가족의 가장인 경택은, 오늘도 아침부터 출근을 위해 바삐 지하철에 올라탔다.

지난 십 년 동안 항상 반복되어왔던, 평소와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하루의 시작.

덜컹-

출근길의 지하철은 언제나처럼 사람이 많았고, 앉을 자리조차 한 곳 없었지만.

어쩐지 그의 기분은, 평소보다 훨씬 더 좋아 보였다.

금요일 퇴근길도 아닌 월요일 출근길에, 콧노래까지 흥얼거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오늘따라 그의 기분이 좋은 데에는, 당연히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드디어 나도 여의도 금융맨이란 말이지.”

경택에게 오늘은, 여의도 직장에 처음 출근하는 날이었으니까.

‘흐……! 서울이라. 게다가 여의도!’

경택은 어릴 적부터 지방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였다.

‘지거국’이라 불리는 지방 거점 국립대를 나와, 나고 자란 지역에서 마흔이 다되도록 회사를 다닌 진성 토박이.

첫 직장부터 금융회사에 몸담았던 그에게 여의도 증권사는 꿈의 직장이었으며, 오늘은 그렇게 원했던 꿈을 이룬 날이었다.

그러니 월요일 출근길이라 한들, 그의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직 성공과 함께 무려 20퍼센트에 가깝게 인상된 연봉은, 그의 기분을 더욱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요소였고 말이다.

[이번 정거장은 여의도. 여의도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여의도역에 내린 경택은, 경쾌한 걸음으로 출구를 향해 걸어 나갔다.

그런데 그때.

위이잉-

주머니에 들어 있던 경택의 휴대폰이, 요란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발신자를 확인한 경택의 얼굴에, 다시 웃음꽃이 폈다.

“어, 여보.”

[출근 잘했어요? 혹시 늦잠 잔 건 아닌가 해서.]

“늦잠이라니. 오늘 첫 출근인데. 새벽부터 일어나서 준비하고 나왔죠.”

[아침은 챙겨 먹고 나간 거죠?]

“걱정 마요, 걱정마. 자기가 냉장고에 넣어놓고 간 거 그대로 잘 먹고 나왔으니까.”

때맞춰 걸려온 아내의 전화를 기분 좋게 받은 경택은, 전화를 끊으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빨리 가족들도 데리고 올라와야 하는데…….”

꿈꾸던 직장으로 이직을 성공한 경택에게, 이제 남은 걱정은 단 하나였다.

지방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집값이 비싼 이 서울에, 어떻게 번듯한 집 한 채 마련해서 가족을 데리고 올라오냐는 것.

경택은 이제 제법 고액연봉자 축에 낄 만큼 벌이가 괜찮았지만, 그래도 서울에 집을 장만하는 것은 아득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전세대출이라도 받아야 하나? 여의도에 살면 제일 좋겠지만,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고……. 오늘은 퇴근하면, 서울 지도 좀 펼쳐놓고 고민해야겠어.’

아내의 전화로 인해 조금 무거운 표정이 된 경택은, 에스컬레이터를 나와 지하철 출구를 빠져나갔다.

이어서 그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회사에 들어가기 전에 커피라도 한 잔 살까 해서 말이다.

그런데 카페를 찾기 위해 고개를 돌리던 그의 눈에, 지하철 출구 옆에 꽂혀 있는 신문들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 더 정확히는.

그 신문의 한 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커다란 아파트 분양 지면 광고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여의도까지 10분! 천웅건설의 럭셔리 프리미엄 브랜드, 마포 클리오 프레스티지 분양홍보관 오픈!]

다른 것보다 경택의 눈에 가장 먼저 밟힌 것은, ‘여의도까지 10분’이라고 쓰여 있는 커다란 붉은 폰트.

‘10분? 저기가 대체 어디지?’

궁금해진 경택은 저도 모르게 다가가 신문을 한 장 뽑아 들었고, 카페에 가는 대신 그 지면 광고를 읽으며 회사를 향해 걸어갔다.

‘천웅건설에서 새로 만든 프리미엄 브랜드라…….’

그리고 잠시 후.

“와……!”

그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육성으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광고 하단에 실린 아파트 단지 이미지들이, 마치 아파트가 아니라 고급 호텔 같은 이미지였으니 말이다.

“무슨 아파트 커뮤니티 센터에 수영장도 있네? 서울은 원래 다 이런가?”

경택은 회사를 향해 걷는 와중에도 내용 하나하나를 꼼꼼히 읽어보았고, 갈수록 이 분양 광고에 혹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회사에 도착할 즈음, 신문을 접어 가방에 집어넣었다.

‘그래. 이번 주말에는 홍보관이라도 한 번 가봐야겠어. 분양홍보관에서 입장료를 받는 것도 아닐 테니까.’

분양가가 얼마인지, 투자가치는 있는 것인지.

그런 것은 아직 전혀 알 수 없었지만, 경택은 난생처음으로 ‘아파트 분양 홍보관’ 이라는 곳에 가보기로 결심하였다.

이곳은 어쩐지, 특별하게 느껴졌으니 말이다.

골든 프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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