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9. 거리에서 (1) (179/204)

#179. 거리에서 (1)2021.11.21.

팀이든 장소든 그게 뭐든 간에 어떤 식으로 결정되는지는 모른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이 문제에 관해서 참가자들의 의사는 일절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 그렇기에 순순히 받아들였다. 그저 운이라고 생각하며 한편으로는 최선을 다할 뿐 억울할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유수아는 불안하기만 했다. 역시 이럴 땐 즐거운 생각을 해야 한다. 그녀는 작년에 기차를 타고 가다가 우연히 서진영을 만났던 일을 떠올렸다. 그때는 솔직히 몰랐다. 서진영이 어떤 사람인지. 요리사라는 것도 몰랐고, 크게 관심이 있지도 않았다. 당연하지 않은가. 겨우 기차에서 한 번 만났을 뿐 이름도 몰랐으니까. 그렇다곤 해도 그 한 번의 만남으로 그는 그녀에게 꽤 큰 인상을 남겼다. 세상에! 삶은 달걀을 그렇게 맛있게 먹는 사람이라니. 그래서였을까? 자신과 친구들에게 하나씩 나눠준 달걀은 이제껏 살면서 먹어본 그 어떤 달걀보다 맛있었다. 따지고 보면 겨우 달걀 하나에 불과할진대, 어찌나 맛있던지. 가끔 그때 생각이 나서 달걀을 삶아보지만, 이상하게도 그때만 못했다.

“뭘 그렇게 골똘히 생각해? 남자친구?”

방송에 출연하게 되면서, 친해진 언니 김성연이 물었다.

“나, 남자친구요? 저 아직 솔로인데요?”

“호호호. 얘 봐! 얼굴 빨개졌네. 너 솔직히 말해봐. 모쏠이지?”

“……아녜요. 저도 남자…… 사귀어본 적 있어요.”

“진짜?”

“고등학교 때 잠깐.”

“설마 같이 도서관 가고 손 한두 번 잡아본 거로 사귀었다고 말하는 건 아니겠지?”

김성연의 물음에 유수아는 얼굴이 빨개진 채로 되물었다.

“그, 그럼 뭐가 더 있나요?”

황당한 얼굴로 그녀를 보던 김성연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다가 숨넘어갈 것 같던 웃음이 잦아들자, 손을 뻗어 유수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유, 귀여워.”

그때였다.

“홍대에선 세 팀이 내릴 겁니다. 말씀드린 대로 조별로 움직여주세요. 스텝들 따라가시면 되고요. 이제 곧 도착할 테니 준비해 주십시오.”

강서 쪽으로 움직이던 미니버스가 서서히 속도를 줄이고 있었다.

“어머, 벌써 도착했나 보네.”

김성연의 얘기에 유수아는 한껏 긴장한 채 손을 가만히 쥐어 보였다. *** 참가자들은 미리 정해진 순서에 따라 서울 시내 다섯 군데 상권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 모습을 모니터를 통해 바라보던 한진석이 흥미롭다는 듯 얘기했다.

“제가 다 손에 땀이 나네요. 근데, 서 셰프님.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요. 팀장은 왜 미리 정해주지 않은 거죠?”

앞서 회의를 통해서 팀까지 배정했다면 팀장을 정할 만도 한데, 그렇게 하지 않은 까닭이 궁금한 모양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도 테스트니까요.”

“아하! 그렇군요.”

납득했나? 고개를 끄덕이는 게 납득한 거 같다. 한진석뿐만 아니라 윤정희도 수긍한 눈치다. 장경묵은 뭐가 그리 이상한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대신 모니터를 뚫어질 듯 바라보다가 툭 던지듯 말했다.

“쉽진 않을 겁니다.”

그럴 거다. 다른 건 둘째치고, 팀별로 주어진 미션은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으니까. 룰은 쉽다. 점심시간이 시작되는 12시부터 저녁 시간이 끝나는 7시까지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음식을 만들어 팔면 된다. 어떤 요리를 만들지는 이미 정해져 있으니 그건 판별요소가 아니다. 그렇다면 그들을 선별하는 기준은 뭘까? 이 역시 간단하다. 판매 실적. 얼마나 많이 팔았느냐가 관건이다. 당연히 기간은 하루 한정이 아니다. 촬영 역시 하루에 끝나지 않고. 3일. 이렇게 하는 이유는 겨우 하루 만에 입소문이 날 리 없기 때문이다. 물론 오디션이라는 특성상 호기심에 몰려드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사흘씩이나 이어지면 결국 맛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맛없으면 팔리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렇겠죠. 기준은 단순해도 장사라는 건 그리 간단하지 않으니까요.”

경륜이 있어서 그런가, 윤정희는 단번에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녀의 말대로다. 장사는 보기엔 단순해 보여도 그 속을 들여다보면 복잡하기 이를 데 없다. 어디서 장사를 하는지, 즉 목도 중요하고 어떤 음식을 팔지부터 얼마에 팔지까지 까지. 모든 요소는 매출로 이어진다. 맛도 그렇다. 누굴 대상으로 할지에 따라 맛도 달라진다. 좀 더 달게 만들지, 짜게 만들지 혹은 맵게 만들지. 당연히 이런 요소들을 고려해 테스트하는 건…….

“그래도 결국 겪지 않으면 안 될 일이죠.”

“하긴, 최종 목적은 예선통과 따위가 아니니까요.”

한진석의 얘기에 모든 게 함축되어 있다. 이 프로그램의 목적은 그저 오디션에만 있는 게 아니다. 결국 레스토랑을 내고, 매출을 일으켜 대국민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는 음식점을 성공시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목적이다. 그걸 위해선 지금부터 하나씩 하나씩 저들을 단련시킬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버텨내지 못하는 이들은 탈락의 고배를 마시게 될 테고. 성공한다면? 일차적으로 본선에 진출하게 되는 거고, 그 뒤에는 레스토랑 주방의 한자리를 차지하게 될 테지. 그 후로는 자기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제법 인지도를 얻게 될 테고 말이지.

“홍대 쪽이 가까워서 그런가, 다른 곳보다 빠른데?”

장경묵의 얘기처럼 모니터로 본 참가자 중 홍대 쪽으로 간 이들이 먼저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중에 한 명. 유수아의 얼굴이 보였다. *** 하루 일곱 시간씩 사흘 동안 그들이 만들어야 할 음식은 와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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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류는 세 가지. 원래 있던 푸드트럭을 빌리게 되었는데, 그래서 그런가 메뉴도 확실하고 준비도 어느 정도 되어 있다.

“만들어 본 적 있어요?”

팀장이 된 최석준의 물음에 유수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배웠어요.”

“아, 요리학원 다녔다고 했죠?”

“지금도 다니고 있는데요?”

“호호호. 수아는 진짜 부지런한가 봐? 대학생이라고 하지 않았어?”

최석준의 나이는 서른둘. 그에 비해 김성연은 서른셋. 나이만 놓고 보면 그녀가 한 살 많아서 그런지 편하게 말하고 있었다. 스물두 살에 불과한 유수아는 여기서도 막내였다.

“속은 오빠가 하신댔죠?”

“하고 말고 있나. 아이스크림이야 있는 거 쓰면 되고. 크림만 좀 만들면 되는데 뭐.”

자신보다 세 살 많은 김광철을 보며 유수아가 발끈해서 외쳤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크림 만드는 건 뭐 쉽나요? 진짜 대단한 거라고요!”

“예, 예. 그렇다 치죠.”

“아, 진짠데!”

유수아가 두 주먹을 꽉 쥔 채로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는 게 여간 귀여웠는지 김광철이 피식 웃고 만다.

“자자, 노는 건 이따가 하고 얼른 준비하자고요. 개시까진 한 시간 정도밖에는 남지 않았으니 서두릅시다!”

팀장인 최석준의 얘기에 모두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각자에게 주어진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중 유수아에게 맡겨진 건 다름 아닌 반죽이었다. 휘핑기를 찾아 한차례 작동시켜보고 있는 그녀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 점심때가 되자, 사람들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직장인들은 말할 것도 없었고, 학교 앞이라 그런지 학생들도 많이 보였다. 그중에 몇 명이 와플 그림이 그려져 있는 푸드트럭 앞으로 다가오자 유수아를 비롯한 팀원들이 바짝 긴장했다.

“안녕하세요. 뭐 드릴까요?”

김성연의 강력한 주장에 힘입어 손님 접객을 맡게 된 유수아가 애써 미소를 지어 보이며 물었을 때였다. 학생들로 보이는 손님 중 한 명이 주문하려다 말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와플 세 개만……. 어? 혹시 유수아 씨 아니에요?”

놀란 건 유수아만이 아니었다. 시작할 때부터 자신들을 알아보는 이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아주 안 한 건 아니었다. 지난주에 첫방이 나갔으니까. 하지만, 이름까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게다가…….

“맞네!”

“진짜 유수아 씨예요?”

“와! 유수아다!”

“실물이 더 예뻐요!”

“사인해주세요! 저 언니 팬이에요!”

세 명의 대학생이 돌아가며 쏟아내는 말에 유수아는 정신이 없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부끄러워져 금세 얼굴이 빨개졌다. 하지만, 지금 자신이 뭘 해야 하는지를 잊어버리지는 않았다.

“일단 주문부터 받고요. 사인은 이따가 해드릴게요.”

“와, 정말요?”

“근데, 이거…… 설마 미션?”

“어! 저기 카메라다!”

“꺅! 어떡해! 나 화장도 안 했는데!”

학생답게 풋풋하면서도 야단법석을 떠는 게 귀엽기만 하다. 따지고 보면 같은 또래라 할 수 있는 유수아는 저들이 저러는 걸 이해하고도 남았다. 그래서인지, 자신도 모르게 웃고 마는 그녀였다.

“와플 세 개라고 그러셨죠? 크림으로 드려요?”

“전 아이스크림으로 주세요!”

“육천 원입니다.”

“여기요.”

돈을 받고 거스름돈을 내주고 있는 동안, 팀원들이 각자가 맡은 바에 따라 와플을 만들어냈다. 그 후 손님들에 와플을 건네고, 사인에 사진까지 찍어준 후였다.

“우리 수아, 인기 많네?”

“하지 마요. 창피하게…….”

“크크큭. 뭐가 창피해. 자기가 예뻐서 그런걸.”

“아니네요. 저 하나도 안 예쁘다구요.”

쑥스러워서 어찌할 줄 모르는 유수아를 김성연이 귀엽다는 꼭 껴안아 주었다. *** 이런 현상은 비단 유수아가 있는 조에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었다. 64명, 16개 팀이 산재해 있는 장소. 홍대, 신촌, 압구정, 강남역, 종로에서 사람들이 하나둘씩 그들을 알아보고 몰려들었다. 당연하게도 SNS가 달아올랐다. 푸드트럭을 다녀간 이들이 올린 사진 때문이었다. 지금 막 유수아가 만들어준 와플 받아가지고 옴. 바삭하게 구워진 와플에 아이스크림……. 존맛임. 핸드폰으로 찍은 게 분명할 텐데도 사진 속의 와플은 정말이지 먹음직스러웠다. 그뿐만 아니라 함께 찍혀 있는 유수아는 쑥스러워하는 얼굴임에도 귀엽게 나와 있었다. 댓글이 폭주했다. - 진짜 귀엽다. - 이거 지금 <맛있는 도전> 미션임? - 그런 거 같은데요. - 여긴 압구정동인데, 한청이 핫도그 만들어 팔고 있음. - 어딘데요? - 좌표 찍어줘요. - G 백화점 건너편……. - 방금 사진 올라온 거 보고 옴. - 나도 봄. 한청 오늘도 개시크. - 토미 오빠가 짱이지. - 음식에 집중합니다. 얼굴로 요리하는 거 아니잖아요? - 이왕이면 잘생긴 사람이 만들어주면 더 맛나지 않음? - 그건 그렇지. - 뭔 헛소리냐고! - 아 진짜 짱 나네. 이놈의 외모지상주의. 방송사 홈페이지에 공지 한 줄 올라오지 않았음에도 금세 이슈가 되었다. 그러다가 오후 3시가 넘어가기 시작하자, 포털 사이트에 기사가 올라오는가 싶더니 어느새 실검에도 하나둘 올라오기 시작한다. <맛있는 도전>, 유수아, 한청, 토미 김 등 프로그램명에 이어 참가자들의 이름이 올라오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갓솁도 올라왔다.

“오올. 이게 갓솁의 위력이군요.”

한진석이 탄성을 내지르자, 장경묵이 툴툴대기 시작했다.

“뭐야! 왜 내 이름은 없는데?”

“당연한 소리를 왜 해? 이거 아직 방송도 안 나갔거든! 그러니까 사람들이 너 출연한 줄 모르는 건 당연한 거지.”

“어우, 그건 알겠는데, 왜 이렇게 억울한 거지?”

“크크크. 뭘 또 그렇게까지.”

말만 그런 게 아니라 진짜로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장경묵을 한진석이 놀리는 걸 보다가 서진영이 윤정희에게 묻는다.

“선생님. 뭐 좋아하세요?”

“아, 저 중에서 말씀하시는 거죠?”

서진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윤정희가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츄러스.”

그걸로 결정됐다.

“츄러스면 홍대인가?”

“그럼 그쪽으로 가면 되겠네.”

“난 닭꼬치가 댕기는데.”

“와플도 맛있을 거 같지 않나?”

“그럼, 홍대 먼저 갔다가 신촌, 종로 거쳐서 강남으로 넘어가면 되겠네.”

“오호! 그거 좋은데요? 어떻게? 서 셰프님, 그렇게 하면 될까요?”

한진석의 물음에 서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저만치서 신현정 피디가 지시를 내리기 시작한다. 그걸 보면서 서진영이 속으로 생각했다. 지금부터 돌기 시작하면, 저녁 무렵엔 압구정동에 있는 푸드트럭까지 들를 수 있겠다고.

“지금 나가면 되나요?”

촬영진 쪽으로 시선을 돌려 확인까지 한 한진석이 기대감 가득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오케이! 출발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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