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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셰프의 선택 (1) (82/204)

#82. 셰프의 선택 (1)2021.04.09.

“그건 맛간장 얘기 아니었…….”

- 시작은 그랬는데, 이래저래 품목이 많아지다 보니까 브랜드 하나 새로 만들어서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랄까. 아무튼, 그렇게 됐어.

“그래서 그걸 나더러 하란 거야?”

- 크크큭. 쫄기는. 넌 다 좋은데, 너무 자신을 낮추는 경향이 있더라. 얀마. 마케팅이 얼마나 중요한데, 그 중요한 얘기를 직접 얼굴 보고 얘기해도 될까 말까 한 판국에 내가 왜 전화로 말하고 앉았겠냐?

아닌 게 아니라 궁금하다. 진짜로 내가 광고를 찍고 말고는 둘째치고, 이런 얘기는 직접 보고 해야 하지 않나? 그래서 아무 말 하지 않고 듣고만 있었더니, 녀석이 대놓고 말한다.

- 혹시라도 딴 데서 채갈까 봐 선수 치는 거지.

“뭐래?”

- 푸흐흐흐. 너도 정말 한결같다. 내가 진짜 너 때문에라도 매니지먼트 회사를 차리든가 해야지, 원. 아무튼, 이건 친구로서 말하는 게 아니니까, 확실히 새겨둬. 혹여 다른 데서 전화 와서 광고 얘기를 꺼내도 우리 쪽한테 먼저 기회를 줬으면 해. 오케이?

별 얘기를 다 하네. 애당초 다른 데서 연락 올 일도 없구만.

“알았다.”

- 아, 다른 데라고 해서 당연히 모든 광고를 하지 말라는 건 아니고. 어디까지나 식품회사 한정. 그러니까…….

“경쟁업체 쪽 말하는 거잖아.”

- 그렇지. 그 얘기야.

“그럴 일 없으니까, 염려 놓으시고요. 바쁜데, 얼른 끊으시죠.”

- 크크큭. 오케이, 오케이. 조심해서 들어가고, 이따가 시간 나면 집에서 맥주나 한 캔씩 하든가 하자.

“들어가. 나 길거리라서 쪽팔린다.”

또다시 웃음소리가 들리고 전화가 끊겼다.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떠올랐다. 사모님 모습이. 녀석과 통화를 하다 보니 맛간장 생각이 난 탓일 터다. 어쩐다. 전화를 드려야 하나? 강형식이 말은 안 하지만, 꽤 기다리는 눈치던데. 후, 안 그래도 아저씨 때문에 속이 말이 아닐 텐데, 그런 얘기를 해도 되나 싶기도 하고. 그래도 더 이상 미루는 건 안 되겠지. 이번 주 내일이 일요일이니까, 내려갔다 올까?

“어우, 진짜 어쩐다냐?”

머리가 다 지끈거려 눈살이 절로 찌푸려지고 있었다. *** 강형식은 전화를 끊은 뒤, 자신이 쥐고 있는 핸드폰을 지긋이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픽하고 웃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하게도 서진영과 통화를 하게 되면 자꾸만 웃게 된다. 그것도 속이 다 시원할 정도로 웃는 자신이어서 때론 이해가 안 될 정도였다.

‘아마도 그건…….’

진심이 느껴져서일 터다. 서진영의 말과 행동 그 어디에서도 가식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아무리 친구로 지내기로 했다지만, 다른 이들 같으면 모르긴 몰라도 자신한테 잘 보이려고 무던히 애를 쓸 게 뻔한데. 녀석은 그런 게 없다. 그렇다고 자존심만 세서 지 잘난 맛에 사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인간은 태생 자체가 모자란 존재라기에 배우고 또 배워야 한다나? 누가 들으면 중늙은이가 하는 말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고지식한 면모를 가지고 있었다. 한데, 그게 또 좋기만 하다. 자신이 모자란다는 걸 잘 알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한시도 쉬지 않고 노력하는 녀석을 보고 있노라면 자신이 지난 몇 년 동안 얼마나 한심하게 살아왔는지 여실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자꾸만 응원하게 된다. 뭐라도 하나 주고 싶고. 그러면서도 함부로 뭘 줄 수도 없는 게, 자신이 아는 서진영은 공으로 뭔가를 바라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 아니었다. 만일 그게 아니었으면, 일찌감치 차부터 한 대 뽑아줬을 거다. 아니, 자신이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컬렉션 중에서 원하는 차를 한 대 주고도 남았다.

“쯧, 이젠 소형차라도 한 대 뽑을 법도 하구만.”

아무리 봐도 그럴 낌새가 보이질 않는다. 조만간 틈을 봐서 중형차라도 한 대 뽑아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아, 여기 있었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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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아보니 장동일 상무가 휴게실 문을 열고 들어오고 있었다. 한국 사람 평균 신장치고는 조금 작은 키. 아무리 1960년대에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확실히 큰 편은 아니다. 눈짐작으로 보자면 160 정도. 그런데도 왜소해 보이지 않는 건 평소 운동을 많이 한 탓에 꽤 다부진 체격을 가져서일 테다. 그 얘긴 곧 장동일 상무가 자기 관리에 철저한 사람이라는 걸 말해준다. 그리고 그건 업무로도 이어져, 빈틈없는 일 처리와 함께 꼼꼼한 관리자로서 회장에게 신임을 받게 해주고 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사내에서 사원들이 가장 믿고 따르는 상사임과 동시에 가장 어려워하는 임원이기도 한 그였다. 더불어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강 회장을 모셔온 그라서, 강형식의 작은 아버지인 강구철 사장조차 함부로 못 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푸근한 미소를 보여주는 사람은 다름 아닌 강형식이었다. 그 까닭은 강형식의 아버지, 지금은 죽고 없지만 태어날 때부터 장가를 가서 아이를 낳을 때까지 장동일 상무가 줄곧 조카처럼 생각하던 남자의 아이라서일 터였다. 그 점은 강형식도 마찬가지여서, 피만 안 섞였다뿐이지 심정적으론 가족이나 마찬가지였다.

“아, 찾으셨어요? 혹시 급한 일이라도…….”

회의를 끝내고 나서 휴게실로 곧장 와 서진영과 통화를 한 거였기에, 딱히 장동일 상무가 자신을 찾을 까닭이 없다고 여겼기에 하는 말이었다.

“아니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냥 궁금해서.”

“……?”

“하하하. 그런 반응은 네 아비랑 똑같구나.”

아련한 눈빛을 해 보이던 장동일 상무가 입가에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그 친구 말이야. 서진영라고 했나?”

“예. 맞습니다.”

“혹시 얘기했나?”

눈을 반짝이는 모습이 뭔가 예사롭지 않다. 그리고 강형식은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광고 얘기는 했는데…….”

“녀석하곤. 내가 그걸 말한 게 아니란 걸 알면서 그러느냐?”

“하하. 그건 아직.”

강형식이 멋쩍게 웃어 보이자, 장동일 상무가 재밌다는 반응을 보인다.

“그래도 출시 전에는 당사자한테 얘기해야 하지 않겠냐?”

당연한 얘기다. 하지만, 좀처럼 하기 어려운 얘기이기도 하고. 강형식이 콧등을 찡그리며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는다.

“워낙 자길 내세우는 걸 싫어하는 친구라서요.”

“허허허. 요즘 애들 같지 않네.”

“좀 그런 면이 있죠.”

“뭐, 내 눈에는 나쁘지 않아 보인다만, 그래서야…….”

뒷말은 충분히 짐작이 간다. 요즘처럼 자기 PR이 필수가 돼버린 세상에서 확실히 서진영의 그런 태도는 마이너스다. 그럼에도 강형식은 그런 서진영이 어리석다곤 느껴지지 않는다. 그만큼 신중하고 또 허세가 없다는 방증이기도 하니까.

“BI 시안 나오면 얘기해보려고요.”

“그게 좋겠구나. 아, 그건 그렇고. 광고 얘기는 어떻게 됐지? 한다고 하나?”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거 같진 않더군요. 그래서 집에 들어가면 한번 만나보려고요.”

강형식의 얘기에 싱긋이 웃던 장동일 상무는 턱을 쓰다듬으며 얘기했다.

“그나저나 맛간장도 문제는 문제군. 회장님께 보고서 올리려면 그 문제부터 매듭지어야 할 텐데.”

“곧 확답을 줄 겁니다. 워낙 신중해서 그런 거지, 없는 소리를 하는 친구는 아니니까요.”

“그래야지. 이왕지사 같은 배를 타려면 가벼운 쪽보단 진중한 쪽이 좋으니까.”

“그 점은 염려하실 필요 없습니다.”

전혀요……라는 말을 붙일까 하던 강형식이었지만, 그럴 필요는 없다는 걸 금세 깨달았다. 이미 장동일 상무의 얼굴에 다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간 자신만큼이나 유심히 서진영의 행보를 지켜봐 온 장동일 상무인 만큼, 어느 정도는 서진영을 믿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자, 그럼. 회사에서 할 일은 다 끝난 거 같고. 지긋지긋한 술이나 마시러 가볼까?”

“아! 오늘은 좀 쉬면 안 될…….”

“잔말 말고 따라와. 사업한다는 놈이 맨정신으로 집에 들어갈 생각을 하면 안 되지.”

“그렇긴 하지만…….”

“오늘 만나기로 한 분이 박 의원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러는 게냐?”

“하아. 알겠습니다. 가시죠.”

결국, 포기하고 앞장서는 강형식을 장동일 상무가 기특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 항암 치료 후 돌아오는 길. 집으로 가기 전에 잠깐 들른 대장간은 예상했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겨우 열흘 남짓 비워뒀을 뿐인데, 한 십 년은 사람이 살지 않은 집처럼 되어버렸다. 그게 안타까워서 애잔한 눈빛으로 남편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을 느낀 건지, 씁쓸한 표정으로 장내를 둘러보던 곽기범이 툭 하고 내뱉었다.

“챙길 거 있다며? 얼른 챙기지 않고 뭐해?”

속이 상한 게 분명한데, 그걸 티 내지 않으려고 일부러 틱틱거린다는 걸 모를 그녀가 아니었다. 한 이불 덮고 살아온 세월이 얼마인데, 그걸 모르겠나.

“챙길 건 얼마 없으니까, 그렇게 닦달하지 좀 말아요.”

“아, 챙길 것도 없는데, 그럼 여긴 뭐하러 왔어?”

혀를 찰 일이다. 병원에서 퇴원하고 곧바로 여기로 오겠다는 걸 말리느라 혼이 난 사람이 누군데. 물론 안다. 자신의 속내를 들키고 싶지 않아서 저런다는 걸. 그렇게 한시라도 빨리 대장간으로 오겠다며 안달하던 남편이지만, 며칠 뒤 사정을 들은 의사가 대장간 출입은 폐암이 완치될 때까지 절대 금물이라는 처방 아닌 처방에 군말 없이 집으로 발길을 돌리던 남편 아닌가. 하지만, 그 속이 어떻겠는가? 갑작스럽게 찾아온 병마도 병마지만, 반평생을 만지고 두드리던 쇠를 멀리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사정을 누구한테 호소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장독이랑 다 살펴보고 가야 하니까, 조금만 쉬고 있어요.”

“그놈의 장독. 누가 먹는다고 그렇게 담아대는지…….”

맘에도 없는 말이란 걸 알기에 그녀는 화내지 않는다. 오히려 안쓰럽기만 하다. 그래도 듣고 넘길 수만도 없다. 남편에게 쇠가 또 하나의 분신이라면, 장독은 자신이 평생을 가꾸어온 터전과도 같으니까.

“누가 먹긴 누가 먹어요? 우리도 먹고, 옆집 길상이네도 주고, 또 진영이도 보내줘야죠.”

길상이네 얘기를 할 때만 해도 뭐라고 하려는지 입술을 달싹이던 남편도 서진영의 이름이 나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 꾹 다물어버린다. 그게 우습기도 하지만, 웃음은 나오지 않는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남편만큼이나 자신 역시도 서진영은 고마운 존재였으니까. 만일 그 아이가 여길 오지 않았더라면……. 느닷없이 찾아와 칼을 받아가겠노라고 머물지 않았다면……. 그토록 기다리던 칼이 다 만들어지고도 떠나지 않고, 반나절 동안 보이지 않다가 뜬금없이 ‘종합검진 패키지’를 내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하기만 하다.

“쯧, 요리사라는 놈이 칼질이 그렇게 서툴러서야.”

뜬금없기는 남편도 매한가지다. 갑자기 며칠 전 방송한 ‘네 마음의 요리를 들어봐!’ 얘기를 하고 있다.

“잘만 하더구만. 뭐가 그렇게 불만이에요?”

장독들을 하나하나 들춰서 혹시 문제가 있는지 살피면서 말하자, 남편이 콧방귀를 뀐다.

“아, 그게 어떤 칼인데! 그 지랄로 칼질을…….”

그녀가 흘겨보자, 금세 꼬리를 내리며 목청을 낮추는 남편이었다.

“욕 좀 하지 마세요.”

“답답해서 그러지.”

보고 싶어서 그러는 거겠지.

“칼질이 그게 뭐야, 칼질이. 나도 그 정도는 하겠네.”

“잘됐네요. 이참에 망치는 내려놓고 칼이나 잡던가요.”

“장독 다 살폈으면 이만 일어나자고. 이러다 해 넘어가겠네.”

“뭣하면 여기서 자고 가면 되죠.”

“아, 의사 양반 얘기 못 들었남? 병 다 나을 때까진 여기 얼씬도 말라잖아?”

“대장간만 안 들어가면 되죠.”

그녀의 말에 남편인 곽기범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그럴 수밖에. 폐암이 완치 판정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적어도 5년간은 대장간 출입은 절대 엄금이라니, 그 심정이 오죽할까.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현실적인 부분에선 더 문제에 직면해 있었다. 돈. 그놈의 돈이 문제다. 병원비는 생각보다 많이 나오지 않았더랬다. 계속해서 항암치료도 받아야 하니 지속적인 지출이 있겠지만, 그것도 생각보다는 많지 않으리라. 정부에서 꽤 많이 보조해주는 덕분에 경제적인 타격은 그다지 심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돈이 나가는 게 병원비만이 아니란 게 문제라면 문제. 앞으로 치료받는 동안, 그리고 완치 후 5년 동안 먹고 사는 것도 그렇고 병원을 오가며 지출될 교통비며 약값까지 하나에서 열까지 전부 돈이 드는 일이다. 그에 비해 모아둔 돈은 얼마 없었다. 돈 벌 궁리로 쇠를 만져온 게 아닌지라 통장은 가볍기만 하다. 하기야 정말 돈을 벌 생각이 있었으면, 칼을 일 년에 많아 봐야 다섯 자루밖에 만들지 않았겠는가. 그나마도 식칼 외에 장검도 만든 덕에 버틴 거지, 동네 사람들이 가끔 맡기곤 하는 농기구 제작과 수리로는 수지타산이 맞질 않는다. 대개의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누가 알았나. 건강하기만 하던 사람이 갑자기 아프게 될지. 그렇다고 해서 지난번에 찾아왔었던 일본인들에게 칼을 팔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설사 그렇게 한다고 해도 이제 와선 칼을 만들 몸도 아니다.

“가요.”

할 일을 모두 마치고, 보자기로 싸둔 것들을 들고 나서자 남편이 채가듯 보따리를 가져간다. 그러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문을 나서는 모습이란……. 다시는 여기 안 올 사람처럼 굴고 있다. 그 모습에 그녀는 한숨을 꾹꾹 눌러 참고는 다시 한번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어쩐지 스산해 보이는 풍경. 쓸쓸한 그 모습만큼이나 마음이 심란하기만 하다. 집을 담보로 대출이라도 받아야 하나, 고민하며 대문 밖으로 걸음을 옮기는 그녀였다. *** 한숨이 나오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란 자각쯤은 있다. 때론 내키지 않아도 해야 하는 일도 있는 거란 거지. 애당초 딱 잘라 거절했으면 문제가 없었겠지만, 이미 사모님이랑 상의해 본다고 말해 놓은 이상 없던 일로 할 수도 없고. 하는 수 없지. 전화로 말씀드리긴 그렇고……. 내일 찾아뵙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까톡! 톡이 날아든다. 이하연이다.

- 어디예요?

- 나 지금 약속장소로 가는 중.

괜스레 웃음이 나왔다. 그녀의 얼굴이 떠올라서.

--- 거의 다 와 가요. 저도 곧 도착할 듯.

약속장소는 그리 멀리 있지 않다. 이왕지사 만나는 김에 시간을 줄일 참으로 대일 기획과의 미팅 장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만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빠-----앙. 클랙슨 소리가 들려와 반사적으로 도로 쪽으로 시선을 돌렸더니, 대형 세단 한 대가 떡하니 서 있다. 뭐지? 이하연이 몰고 온 차인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 차창이 부드럽게 내려간다. 그리고…….

“집으로 가시는 길이면, 태워다 드릴게요.”

김서연이었다. 도로변에 세워둔 차 안에서, 운전석에 앉아 있던 그녀가 고개를 낮춘 채 날 바라보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조금 당황해서 뭐라 말하려던 찰나였다. 핸드폰이 진동했다. 그 탓에 난 김서연에게 적절한 대꾸도 하지 못한 채 통화버튼부터 눌렀다.

“예, 하연 씨.”

- 지금 저 보여요?

응? 주위를 두리번거릴 것도 없었다. 저만치서 이하연이 손을 흔들고 있었으니까. 그런 날 김서연이 묘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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