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차 조심해. (3)2021.02.14.
그들은 일본인이었다. 그나마도 사모님의 귀띔이 아니었다면 몰랐을 거다. 그만큼 한국말이 유창했다. 뭐 때문에 온 건지는 대화 몇 마디에서 분명히 드러났다. 어째서인지 일본말은 단 한마디도 꺼내지 않는 그들이었고, 그중 하나는 아예 입을 닫고 있었다. 아마 한국말을 잘 모르는 듯했다.
“お会いできなって光栄です。私の名前は吉原颯太で愛川詠斗先生の弟子です。(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전 아이카와 에이토 선생님 밑에서 수련 중인 요시하라 소우타라고 합니다.)”
자신을 소개하는 듯한 몇 마디 말만 하곤 그 후론 아무 말도 없는 걸 보면. 나머지 한 명이 주도적으로 얘기했는데, 말인즉슨 ‘칼을 만들어 달라.’였다. 이에 대한 아저씨의 반응은? 대화는커녕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러자 당황했는지 일본인은 울상이 되고 말았다.
“돈은 얼마든지 원하는 만큼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저희에게 칼을 만들어 주십시오.”
도대체 얼마나 준다는 건지 모르겠다만, 금방이라도 바닥에 엎어질 듯 굽실거리는 그들을 보자니 묘한 느낌이었다. 저들이 누구길래 저토록 간절히 칼을 원하는 걸까? 호기심에 힐끔거리긴 했지만, 이내 관심을 꺼버렸다.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니까. 그렇게 생각했지만…….
“2천만 엔을 드리겠습니다.”
헉! 이, 이천만엔?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2억이 넘는 돈이다. 그걸 칼 한 자루 값으로 내놓겠다고? 그럼 주방장님이 맡기신 칼…….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나한테 준다는 칼이 무려 2억짜리인 거야? 마른침이 넘어간다. 그런 채로 눈을 반짝이며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어쩌실까 싶어서. 하지만, 내 기대와는 달리 아저씨께서 칼을 파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한 시간도 넘게 마당에 서 있다가 돌아가게 된 그들이 아쉬운 음성으로 남긴 말이 귓가에 남았더랬다.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그땐 꼭 허락해주십시오.”
그러거나 말거나 제 할 일만 하는 아저씨셨지만. 그들이 가고 난 뒤 물어보았다.
“칼 사러 여기까지 왔나 보네요?”
다시 봤다는 눈빛으로 쳐다보는데, 아저씨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하다.
“미친놈들.”
“에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실 거까지야. 저 같으면 그냥 팔겠네요. 2억이나 준다는데…….”
별 뜻 없이 말했을 뿐인데, 아저씨가 눈을 치켜뜨고 버럭 소리치신다.
“뭐? 지금 뭐라 한 거냐?”
“……아뇨. 뭐라 하는 건 아니고요. 칼 한 자루 정도는 만들어줘도…….”
“허!”
기가 막힌다는 듯 날 쳐다보시던 아저씨는 화가 치민다는 듯 얼굴이 빨개진 채 입술만 달싹거리다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셨다. 그러곤 횅하니 떠나셨다. 그 뒷모습을 보다가 중얼거렸다.
“뭘 화까지 내신대?”
그때, 등 뒤에서 사모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이 조부님께서 독립운동을 하셨었거든.”
“아!”
그걸로 모든 사정이 파악된다. 그럼 또 얘기가 다르지. 정확한 사정이야 말씀을 안 해주시니 나로선 알 길이 없지만, 대충 짐작이 간다. 아저씨 마음이 어떤지. 그나저나 일본에서 심산유곡이나 다름없는 이곳까지 찾아올 정도로 유명하신 건가?
“이런 일이 자주 있나요?”
“가끔.”
“참내. 어떻게 알고 찾아온대요?”
“그러게.”
옅은 미소와 함께 말씀하시는 사모님의 얼굴엔 어딘지 모르게 자부심이 넘쳐흘렀다. 더불어 남편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애정이 깃들어 있었고. *** 그날 밤 어둠이 깃들고, 달이 뜨기 전 말씀 드렸다.
“죄송해요.”
여러 말하지 않았다. 사정을 몰랐다고 해도 내가 실수한 건 분명하니까.
“시끄럽고, 거기 숫돌이나 제대로 정리해.”
평소에도 속내를 잘 비치지 않는 분이시니 속사정을 말씀해주시리라곤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아저씬 내 기대를 배반하지 않으셨다. 그저 제 할 일만 하실 뿐.
“그런데요.”
“…….”
“하시는 일이 이렇게 많은데, 매번 혼자서 다 하시는 거예요?”
“그럼 내가 하지, 누가 해?”
“아니 뭐……. 제자라든가. 뭐 그런 거 있잖아요.”
아저씬 내 말이 웃기신 지 픽하고 웃으셨다.
“몇 명 있기는 했지. 며칠 버티지도 못하고 야반도주해서 그렇지.”
“아……!”
눈에 훤히 그려진다. 손님으로 온 나한테도 이 정도인데, 일을 배우겠다고 오는 이라면 어찌 대하실지 너무 뻔하다. 열흘 남짓한 시간 동안 뼈가 닳고 살이 깎이도록 중노동에 시달린 걸 감안하면……. 어우, 야. 생각만 해도 몸이 다 떨린다. 그저 입만 꾹 닫고 숫돌들을 정리했다. 그게 또 웃기셨던 걸까? 아저씨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한마디 하셨다.
“걱정 마라, 이놈아. 너더러 남으란 얘기 안 할 테니까.”
멋쩍어져서 시선을 딴 곳으로 돌리곤 괜스레 하늘만 탓했다.
“아씨, 날씨가 왜 이래요? 먹구름도 낀 것 같고. 비 오는 거 아니에요?”
“지랄은. 네 눈깔엔 저 별들이 보이지도 않냐? 어디에 먹구름이 있다고.”
할 말이 없어서 닥치고 시키는 일에만 집중했다. 그때였다. 따라라라라, 라라……. 뜬금없이 들려오는 음악 소리. 익숙한 멜로디니 만큼 놀랄 것도 없지만, 어째선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나레이션이 들려올 이유가 뭐가 있을까? 까닭 모를 불안감에 숨을 죽이고 있을 때, 나레이션이 들리기 시작했다. ……역시나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는 법이 없나 보다.
*** 나레이션을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그 탓에 사위는 고요하기만 하다. 원래부터 말씀이 적으신 아저씨였기에. 하지만 그것도 곧 깨질 적막이다. 얼마 후면 아저씨께서 칼을 갈기 시작하실 테니. 그러거나 말거나 나레이션은 계속해서 들려오고 있었다. - ……그나마 다행인 점은 폐암이 아직 다른 곳으로 전이되기 전이라는 것이다. 수술 여부야 정확한 검사가 필요하겠지만, 절망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것만 해도 서진영은 감사하고 있었다. 대부분이 무증상인 폐암임에도 발견만 빨리하면 완치도 가능한 초기라서 치료는 그리 어렵지 않을 테지만, 대신 한시라도 빨리 진단을 받고 치료를 시작하는 게 좋을 터다. 입술을 꽉 깨물었다. 너무나 정확히 내 마음을 꿰뚫어 보는 나레이션이라서. 맞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을 정도로 놀랐고, 솔직히 말해서 지금 무릎을 꿇은 채 깔고 앉아 있는 두 손이 벌벌 떨릴 지경이었지만,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에선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초기라는 말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하아, 그렇다곤 해도……. 폐암이라니. 눈앞이 다 캄캄하다. 속이 울렁거리고 눈앞이 핑핑 도는 게 어지러울 정도다. 그런 채로 간신히 쳐든 눈동자에 칼을 갈기 위해 숫돌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계신 아저씨의 모습이 비친다. ……어떻게 말씀드리지? 아, 아저씨는 아저씨고……. 사모님껜 또 뭐라고 해야 하나. 정말 미치겠다. 한평생 한 남자로 살아온 아내. 헌신적이다 못해 때로는 친구처럼, 또 때로는 스승처럼 아저씨에게 힘이 되어준 사모님. 반대로 말하면 사모님께 있어서도 아저씬 그런 존재일 거다. 기둥. 아니, 또 다른 자신이겠지. 아저씨라고 다를까. 무뚝뚝하고 괄괄한 성격이지만, 아내 앞에서만은 여전히 수줍고 애틋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남자가 바로 아저씨 아니던가. 그렇기 때문에 두 분 사이에 자식 하나 없어도 여태 외롭다고 생각하지 않고 살아오신 분들이었다. 그런 분들께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갑자기 울컥하고 가슴을 치고 올라오는 감정에 내가 이를 악물었을 때였다.
“웬일로 그러고 있냐? 맨날 칼 가는 거 훔쳐보느라 눈에 핏발을 세우더니만.”
“후, 훔쳐보는 거 아니거든요!”
“그럼? 감시하는 거냐?”
“……감시는 무슨.”
아저씨하고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겁나서 시선을 돌려버리자, 아저씨가 툭 하고 내뱉는다. 무뚝뚝하기 그지없는 말투로. 하지만, 그 음성엔 따스함이 녹아 있었다.
“사내놈이 물지게 좀 졌다고……. 피곤하면 들어가 자. 내일 먼 길 떠나야 하는 놈이 그렇게 축 처져 있어서 되겠냐?”
“…….”
“칼은 오늘 안에 갈아놓을 테니, 걱정 붙들어 매고.”
지금 칼 걱정할 때냐고 버럭 소리치려다 참았다. 대신 꾹꾹 눌러 담은 음성으로 말했다.
“마지막까진 봐야죠.”
“그러든가, 그럼.”
얼마 지나지 않아 칼 가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 칼이 완성된 것은 새벽 두 시가 다 되어서였다. 기쁨 따윈 없었다. 그동안 이제나저제나 언제 끝나나 기다렸지만,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저 멍한 상태로 아저씨가 칼을 정성스럽게 모시듯 두 손으로 받쳐 든 후 뒷마당 한가운데 있는 작은 사당 안으로 들어가는 걸 지켜봤을 뿐이다. 그리고 이십 분쯤인가 지나 나오셨을 땐 칼은 이미 커다란 나무상자에 들어가 있었다. 진짜 끝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 아저씨가 자자고 했고 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얘기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얘기를 하더라도 어떻게 해야 할까. 말하면 믿어는 주실까? 별별 생각을 다 하다가 돌아섰다. 이게 말로 할 일이 아니란 생각에. 그렇게 아저씨께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방으로 들어온 뒤,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리고 해가 뜰 무렵 고윤수 주방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 꼭두새벽부터 뭐이가?
분명 거친 사투리임에도 어째선지 내 귀엔 구수하면서도 따뜻하게만 느껴지는 말투였다. 그래서였을까. 괜스레 울컥하는 마음이었다.
“……휴가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아직 칼이 완성되지 않았다고 할 수도 있었지만, 거짓말을 하고 싶진 않았다. 그렇다고 이미 고윤수 주방장님이 시킨 일이 끝났는데 이런저런 변명을 해가며 복귀하는 걸 미루기도 싫었고.
- 니래 어디네?
“아직 아우라지인데요.”
- 기럼 휴가는 어디로 갈 생각이네?
“아, 그건…….”
- 왜 말이 없네?
“어딜 가려는 건 아니고요. 여기서 하루 이틀 더 있다가…….”
- 간나새끼, 지금 날 놀리는 거이네?
“예?”
- 니래 지금 하는 말이, 일하라고 보내놨더니 놀다 오겠다 이말 아니네?
“그, 그런 건 아닙니다. 그저 아직 여기서 할 일이 남아…….”
- 그거이 그거 아니네? 일하러 갔으면 끝까디 일하러 간 거이디, 먼 말이 그리 많네? 내래 너를 거기로 보내면서 언제까지 오라 한 적 있네?
“그런 건 아니지만. 죄송해서요. 제 개인적인 일로 괜히 주방 식구들한테 폐 끼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 일 없다, 야. 아새끼래 그리 잘아서 어디다 쓰갓니? 서진영이. 내래 사정은 모르겠디만 니가 그러는 데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디 않갓어? 아침부터 개소리 그만하고 볼일 다 보고 올라오라. 나중에라도 미련 같은 거 남디 않게끔. 내 말 알아듣갓니?
“……예.”
대답도 채 하기 전에 끊겨버린 전화를 한동안 말없이 쳐다보았다. 한숨이 나온다. 주방장님이랑 의논이라도 해볼걸 그랬나? 후우, 아니다.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겠냐? 괜히 심란해하시기만 하실 테지.
“역시 그 방법밖에 없나?”
결심을 굳히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저씨랑 사모님이 깨기 전에 가야 할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 진짜 예전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사람들한테 물어물어 가도 반나절은 걸릴 터였다. 하지만, 스마트폰으로 검색 한번 하는 것만으로 가장 가까운 병원을 찾아내 방문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워낙 산골에서 출발해서인지 멀긴 멀었다. 차만 있어도 이렇게 오래 걸리진 않았을 텐데. 근로복지공단에서 운영하는 병원이 정선에 있기는 했지만, 아저씨를 거기로 모시려면 또 얼마나 입씨름을 해야 할지 모를 일이었다. 때문에 찾은 곳이 강릉의 한 종합병원. 거기서 종합검진 패키지를 구입했다. 여러 말 필요 없이 이걸 내밀면 되겠지. 뭐, 말이 종합검진이지 폐를 집중적으로 검사하는 검진 패키지였다. 종합검진도 종류가 많아서, 더 좋은 패키지도 있었지만 쳐다보지도 않았다. 괜히 다른 거 검사한다고 시간만 잡아먹을 거 같아서. 대신 하는 기에 사모님 것도 함께 구입했는데, 아저씨 거완 달리 여성 질환 쪽으로 특화된 것이었다. 그렇게 두 분 걸 같이 구입하다 보니 돈이 적지 않게 들어갔지만, 그래도 아깝단 생각이 들진 않았다. 두 분 합쳐서 300만 원 남짓. 지난 십여 일. 두 분이 내게 해주신 걸 생각하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니까. 까놓고 말해서 아저씨가 주신다는 칼값만 해도 얼마인데. 아니 아니, 칼은 못 받아도 좋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내가 다시 왔을 때 아저씨께서 여전히 대장간에서 쇠를 달구고 망치질을 하고 계셨으면 좋겠다. 아, 그것도 욕심인가? 폐에 문제가 있으니 낫더라도 이젠 대장간에서 일하긴 힘드시려나. 아무튼, 나한테 이놈 저놈 하면서 거친 말도 서슴없이 하시고 가끔은 짓궂은 농담도 던지시다가 함께 밥도 먹고 그랬으면 원이 없겠다. 그럴 수만 있다면 돈이 대순가. 어떻게든 하루라도 빨리 치료를 받아야 하는 마당에 이렇게 해서라도 아저씰 병원에 모실 수 있다면 뭔들 못할까. 그나마 다행인 건 요즘 내가 좀 번다는 거고, 이 정도쯤은 해드릴 수 있다는 거지. 그러고 보니, 외삼촌이랑 외숙모도 생각나네.
“조만간 두 분께도 해드려야겠네.”
그렇게 결심하고 걸음을 내디디면서 나도 모르게 다시 중얼거렸다.
“후, 그나저나 이걸 또 뭐라고 하고 드리냐?”
아저씨 성격상 역정이나 안 내시면 다행이지 싶은데. 한숨을 푹푹 내쉬며 버스에 올랐다. 그리고 오후 늦게, 해가 지려는지 서쪽 하늘이 석양으로 물들기 시작할 무렵 돌아올 수 있었다.
“썩 나가! 어디 그 더러운 발을 집안에 자꾸 들여!”
문턱을 넘기 전에 들려온 호통에 움찔하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