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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칼 받으러 온 건데요? (2) (49/204)

#49. 칼 받으러 온 건데요? (2)2021.01.22.

김진숙 회장은 기분이 좋았다. 말 그대로 띵호와다. 왜냐고?

“탁월한 결정이었습니다.”

박 실장의 말대로다. 대박 조짐이 보이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티를 낼 순 없다. 채신머리가 없어서? 아니다. 부정 탈까 봐서다. 원래 방송이란 게 그런 거니까 말이다. 잘나가는 듯싶다가 한순간 꼬꾸라지는 경우도 숱하고, 반대로 망한 거 같다가 단번에 빵 뜨는 경우도 적지 않다.

“글쎄. 방송 나가면 알겠지.”

“초반 시청률은 어떨지 모르지만, 2회차부턴 분명 이슈가 될 겁니다.”

“그렇겠지. 류승렬인데.”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조심스럽게 운을 떼는 박 실장을 보며 김진숙 회장이 후! 하고 웃었다.

“됐어.”

“……실력은 차치하고, 그룹 이미지에 도움이 될 겁니다.”

“알아.”

“하면 어째서?”

김진숙 회장은 거실 소파에 등을 파묻으며 텔레비전 리모컨을 만지작거렸다.

“박 실장.”

“예, 회장님.”

“망아지랑 소금장수 얘기 알아? 아, 당나귀인가?”

“무겁다고 안 가려는 걸 억지로 끌려다 물에 빠진, 그 얘기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거.”

그게 뭐 어쨌다는 걸까? 박 실장은 김진숙 회장의 집 안 거실 한쪽에 서서 안경 안쪽으로 눈빛을 발했다. 하지만, 그런다고 김진숙 회장의 속내를 읽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김진숙 회장이 말해줄때까지.

“왜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당나귀가 아둔해서? 그럼, 잔꾀를 쓰는 당나귀를 다른 놈으로 바꿔버린 소금장수는 똑똑한가?”

리모컨 버튼을 눌러 TV를 켠 김진숙 회장은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며 말을 이어갔다.

“당나귀가 아니라 소금이 문제인 거야, 소금이.”

“…….”

“그야 소금이 귀하니까, 소금장수로선 지극히 당연한 조치였겠지만, 그건 우화니까 그런 거고. 우리 같은 사람들은 소금이 너무 무거워 당나귀가 움직이지 않았다는 데 주목해야겠지.”

“그러니까, 그 친구가 부담스러워한다는 얘기인가요?”

“맞아. 그게 아니면 설명이 안 돼. 왜 있잖아? 로또 맞은 사람들이 흥청망청 써대다가 패가망신한 얘기들. 그거랑 비슷하달까? 겁나는 거지. 제 분수에 맞지 않은 대접. 그걸 겁내는 거야, 서진영이는.”

“그럼…….”

“데려와야지. 쓸 만한지 그렇지 않은지는 중요하지 않잖아? 설사 쓰다가 버리더라도, 지금 당장엔 도움이 되니까. 박 실장 말대로 방송이 나가고 나면, 분명 몸값이 뛸 거야. 그전에 어떻게들 데려오고 싶긴 한데……. 그놈의 소금이 문제란 말이야, 소금이.”

김진숙 회장의 말을 들으며 안경을 매만지던 박 실장이 생각이 정리된 듯 말했다.

“하면, 뒷조사를 좀 제대로 해볼까요?”

“가족?”

“예. 부모 없는 사람은 없지 않습니까? 혹은 형제라든가.”

“것도 나쁘지 않지.”

김진숙 회장이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을 때였다. 띠디디 띠디디디. 현관 쪽에서 소리가 들려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명의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도 두 사람 다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다만 조금 어려워하는 기색이었다.

“왔니?”

“예.”

김서연은 고모인 김진숙 회장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이곤 박 실장에겐 그보다 좀 더 허리를 숙인다. 그런 점이 박 실장이 그녀를 어렵게 대하게 만들고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아가씨.”

“아저씨도 건강하셨죠?”

“그럼요.”

“다행이네요.”

대화는 거기서 끝이었다. 어디서 왔는지, 뭘 하다 왔는지는 이쪽도 묻지도 않았고 저쪽 또한 얘기하지 않았다. 다만 물었을 따름이었다.

“밤 샜니? 그럼, 집에 가서 편히 자지 왜?”

“멀어서요.”

“그래? 얼른 씻고 자라.”

“죄송해요. 일하던 중이셨던 거 같은데.”

“집에서 무슨. 그저 얘기 좀 하고 있었지.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가서 자.”

“예. 그럼 들어갈게요.”

그녀 특유의 가늘고 긴 눈을 감다시피 해서 그런가 안 그래도 긴 눈썹이 곧게 뻗어 나와 살랑거린다. 그런 그녀를 보다가 방문을 닫고 사라지자, 김진숙 회장이 중얼거렸다.

“쟨 어떻게 갈수록 날 닮나 몰라? 누가 보면 내 딸인 줄 알겠어. 근데, 요즘 물이 올랐나? 오늘따라 더 이뻐 보이네?”

“그런가요? 제가 보기엔 좀 지쳐 보이시던데.”

“내가 쟤 고모야, 고모. 딱 보면 몰라? 얼굴이 꽃처럼 피었는데, 무슨.”

“그거야 회장님을 많이 닮아서 그런 거겠지요?”

“누구? 오빠? 하긴, 우리 오빠가 또 한 인물 하긴 하지. 좀 차가운 인상이라 그렇지. 그래도 이왕이면 엄마 쪽을 좀 더 닮을 것이지. 그랬으면 진짜 미인 소리를 들었을 텐데. 하필 친탁을 해서. 쯧.”

아쉽다는 듯 닫힌 문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김진숙 회장의 눈이 반짝거린다. 사랑스러워 못 견디겠다는 눈빛이었다. ***

“이제 오세요?”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남편에게 말하는 아내의 얼굴에는 그늘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빡빡하다 못해서 허덕거릴 수밖에 없는 살림살이란 걸 빤히 알지만, 아내가 저러는 까닭을 모를 수가 없다. 그 점은 그도 마찬가지였다.

“언제라고 했지?”

아내가 입을 가리고 웃는다.

“아침에도 물었잖아요.”

“그, 그랬나?”

“일주일 뒤부터 방영 시작한다고 했어요.”

“음, 예고 같은 거 안 뜨나?”

“아직요.”

남편의 옷을 방에 걸어두고 나왔을 때, 남편은 이미 잠든 수아의 방을 들렀다 나오는 중이었다.

“수연이는?”

“회식이 좀 늦어지나 봐요.”

“거참. 무슨 학원이 회식을 그렇게 자주 해?”

진짜 궁금해서 물은 게 아님을 알기에 대답을 필요치 않았다. 그 증거로 남편은 거실에 앉은 뒤, TV를 켜곤 빠르게 채널을 돌리고 있었다. 말은 안 하지만, 혹시라도 진영이가 나온다는 프로의 광고가 없나 찾아보는 것이리라. 그렇게 한참 동안 리모컨과 씨름을 하던 남편이 불쑥 말했다.

“어느새 다 컸네.”

뒤이어 나올 것 같던 말들은 입속에서 머물다 삼켜진 것 같았다. 소파로 와서 남편 옆에 다소곳이 앉은 아내도 TV를 물끄러미 바라볼 뿐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러길 얼마나 지났을까.

“수연 엄마.”

“네.”

“진짜 고생했어.”

“…….”

바라본 얼굴에는 눈시울이 살짝 붉어져 있었다. 어느새 살짝 떨리고 있던 입술이 벌어졌을 때, 흘러나온 음성은 물기가 묻어났다.

“제가 뭘 했다고요. 아무것도 해준 것 없이…… 그 아이가…… 그 애…… 혼자서…….”

다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남편이 아내를 안는다. 그러곤 등을 토닥였다. 말없이. 아내의 흐느낌이 조용히 그리고 한동안 끊이지 않았다. *** 와씨……! 꽝! 이런 제, 제기랄! 꽝! 끄윽! 꽝!

“으헉!”

결국, 참다 참다 신음이 터졌다. 쨍강! 손에서 벗어난 집게도 바닥을 때리며 요란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쯧, 사내놈이 그렇게 힘이 없어서야.”

황당해서 남자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내가 살다 살다가 힘없다는 소리는 또 처음 듣는다. 속에서 열불이 터지다 못해 화딱지가 나서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 하신 거 아닙니까? 그래도 손님인데, 오자마자 일을 시키…… 좋습니다. 그건 그럴 수 있다고 치고. 솔직히 장난 아닌 거 알잖습니까? 웬만한 사람은 십 분도 못 잡고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9분.”

“예?”

“10분을 못 채웠지.”

“……제가요?”

“그럼, 여기 자네 말고 또 누가 있나?”

어처구니가 없다. 근데 또 한편으로는 할 말이 없기도 하다. 십 분 운운한 것도 나였으니까. 젠장. 그 웬만한 사람이 나였구나.

“칼이나 주십시오.”

“칼? 무슨 칼?”

얼씨구? 이 아저씨가 나랑 장난하나? 아, 그러고 보니 아직 인사를 안 했구나.

“서진영입니다.”

일단 고개를 까닥이곤, 곧이어 고윤수 주방장님을 앞세웠다.

“주방장님께서 보내서 왔습니다.”

“노인네, 죽지도 않네.”

“…….”

“왜? 기분 나쁜가? 틀린 말 한 것도 아니고.”

너무하네. 말이라도 그렇게 하는 게 아니지.

“그래도 좀 지나치신 거 같습니다.”

“뭐가? 안 죽는 사람도 있나?”

끙. 천하의 서진영이 말발에서 밀린다. 아, 내가 원래 말을 잘하는 타입은 아니었지. 어찌 되었든 기분은 진짜 최악이다.

“객쩍은 소리 그만하고 가서 자게.”

“예?”

“뭘 그렇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보나? 보아하니 팔에 힘이 풀려서 집게들 힘도 없어 보이는데. 그럼 잠이나 자야지.”

“카, 칼은요?”

“아직 갈지도 않은 칼 가져가서 뭐 하려고?”

뭔 소리야, 이건?

“만들지도 않았다는 겁니까?”

“만들기야 진즉에 만들었지.”

“그럼?”

“날을 세워야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칼을 가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인가? 그냥 숫돌에 대고 쓱싹쓱싹 갈면 될 일을. 아닌 말로 요즘 칼갈이용으로 나오는 제품이 얼마나 많은데. 거기다 갈면 10분도 안 걸릴 텐데.

“쯧, 눈빛을 보아하니 칼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는 놈이 분명하군.”

칼에 대해 모른다? 나…… 요리사인데? 울컥해서 말했다. 나도 모르는 새 어조가 반항조다.

“주방장님만큼은 아니지만, 저도 칼 좀 쓰는데요?”

그렇게 따지듯 외치자, 남자가 날 빤히 쳐다본다. 그러다가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 중년 남자의 이름은 곽기범. 보았다시피 대장장이다. 그것도 기계의 힘은 일절 빌리지 않고, 옛날 방식 그대로 칼을 만드는. 딱 여기까지다. 내가 알아낸 것은. 그것도 생떼를 써가며 물은 끝에 알게 된 것들이었다. 그리고 쫓겨났다. 집게도 못 잡는 놈은 대장간에 발들일 자격이 없다나 뭐라나.

“의, 추워!”

한밤이 되자, 추위가 몰려온다. 그런데 방이 차다. 보일러? 그런 거 없단다. 툴툴거렸더니, 나무를 해오든 알아서 하란다. 자긴 밤새워 일해야 한다면서. 아니 이 밤에 어딜 가서 나무를 하란 말인가. 결국, 난 솜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추위에 떨며 잠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씻지도 못했다. 차가운 물을 뒤집어쓸 엄두가 나질 않아서. 그건 그렇고 이놈의 핸드폰은 왜 안 터지는 거야? 아니, 마을에서만 해도 잘만 터지더니. 그리고 나레이션……. 평소엔 잘만 들려오더니만, 요 며칠 코빼기도 안보인……. 아니 안 들린다. 이럴 때 좀 도와줄 것이지. 흠, 이러면 뭐라 대꾸 정도는 하더니만.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건가? 그나저나 강형식은 괜찮은지 모르겠다. 흔들어 깨워도 못 일어날 정도로 마셨는데……. 쯧, 괜찮겠지. 혼자 있던 것도 아니고. 진짜 무슨 일 있었으면 연락했겠지. 아, 전화가 안 터지니 그건 또 아닌가? 아우, 얼마나 추운지 머리가 다 안 굴러가네.

“으드드드. 나도 모, 모르……흐드드. 잠이나 자야겠다.”

하도 떨려서 말도 잘 나오지 않는 마당이니, 잠이 쉽게 올 것 같지 않았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자야지. 그래야 내일 독촉을 하든 성화를 하든 간에 칼을 갈아서 가져가지. 그렇게 잠이 들었다. *** 끄오, 목이 잘 돌아가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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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만 그러냐 하면 손목 팔목 발목 무릎까지 관절이란 관절은 다 삐걱대는 느낌이다. 거기다가 맷돌을 들고 오면서, 아니 그전에 몇 시간 동안 산길을 걸으며 근육에 무리가 온 건지, 걸을 때마다 몸 여기저기에서 비명을 질러댔다. 무엇보다 무지막지하게 쇠를 두들겨대던 망치의 충격을 집게를 통해 고스란히 받았던 탓에, 두 팔은 아예 들어 올리질 못하겠다.

“산이라 그런가? 더럽게 춥네.”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방을 나오는데, 아저씨가 마당 한쪽에서 장작을 패고 있었다.

“……!”

장작……. 있었구먼! 순간 울화가 치밀었다.

“뭡니까? 장작이 있었으면 방에 불 좀 때주시지.”

아니면 말이라도 해주던가. 그랬으면 내가 손수 불을 지피기라도 하지 않았겠는가. 억울해서 따져 물은 건데, 아저씨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받아쳤다.

“내가 왜?”

“그야 제가 손님이니까…….”

“손님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가서 물이나 길어오게.”

“제가 왜요? 전 그냥 칼이나 받아서 가면 되는데요?”

“그럼, 여기 있는 동안 놀고먹을 텐가?”

“그러니까 얼른 칼 갈아서 주시면 되잖아요.”

“칼은 아무 때나 가나?”

“그럼 그것도 때가 있나요?”

“모든 일엔 다 때가 있는 법이야.”

“때는 무슨…….”

“그만 구시렁거리고, 가서 물 받아오라니까?”

“아,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알아야 가든 말든 할 거 아닙니까?”

“저쪽. 뒷산에 오르면 약수터 있어.”

  *** 약수터라고 해서 동네 뒷산에 있는 걸 상상해버렸다. 깔끔하게 콘크리트로 모양새를 잡고, 빼꼼히 빠져나온 호수 끝에서 졸졸거리며 약수가 흘러나오는. 한쪽에는 등산객들이 마시라고 가져다 놓은 플라스틱 바가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래도 이건 좀 심하잖아. 산을 이루는 바위틈 사이로 흘러내린 물이 오랜 세월 파인 돌 웅덩이에 고인 채 흘러넘치고 있었다. 거참, 마을에서 얼마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문명하곤 완전히 동떨어져 있네. 그러고 보니 전화도 안 터졌었지? 다들 걱정하려나? 숙모님이야 가끔 연락하니 지금 내 상황을 모르실 테고. 주방 식구들은 어떠려나? 이하연은 또 톡을 미친 듯이 날렸을까? 강형식은? 맥주 한잔하자고 온…… 아니지. 그저께 그렇게 마셨는데, 그럴 리가 없지. 모르긴 몰라도 숙취 때문에 고생 좀 할 거다. 자식이……. 사업한다는 놈이 술이 그렇게 약해서야. 언제 한번 날 잡고 잉어를 고아 먹이든가 해야지, 원.

“물통은 또 왜 이렇게 큰 거야?”

쯧, 웬만하면 집 안에 우물 좀 팔 것이지. 혀를 차면서 커다란 물통에 물을 채워 넣기 시작했다. ***

“전화는 왜 안 터지는 거죠?”

물통을 내려놓으며 묻자, 아저씬 특유의 툭툭 던지는 말투로 얘기하셨다. 바닥에 붙어버릴 듯 낮게 깔리는 음성으로.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불만 있으면 통신사에 전화해야지.”

“아, 전화가 돼야……. 응? 제가 전화할 땐 받으셨잖아요.”

“유선이니까.”

“……!”

그러고 보니 전화번호 앞자리가 010이 아니었더랬다. 그걸 이제야 깨닫다니.

“전화 좀 한 통화 쓰겠습니다.”

“그러던가.”

안된다든가, 공짜는 없다는 식으로 말할 줄 알았더니 흔쾌히 대답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친절하게 어디 있는지도 알려준다.

“안방에 가면 있다.”

알겠다고 대답하고 막 돌아서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에 물었다.

“근데, 칼은 언제 가실 거죠?”

“이제 갈아야지.”

오, 이건 희소식이네. 반가운 마음에 되물었다.

“아침 먹고 가실 건가요?”

“아니. 이따 밤에.”

“예? 밤에요?”

대답은 않고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아저씬 당연하다는 듯 얘기했다.

“시작해야지. 오늘이 보름이니까.”

아니 보름인 거랑 칼 가는 거랑 무슨 상관인지. 그리고 시작이라니. 그럼 끝은 언제란 말인가? 뭔가 미심쩍어져서 고개를 갸우뚱하는데, 아저씨가 씩 웃는다.

“열흘 정도 걸릴 거야. 달이 기울 때까지. 그 이후엔 음기도 약해질 거니 의미 없는 일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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