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만들 줄 아나? (3)2020.11.06.
그렇다곤 해도 역시 난감했다. 갑자기 물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으니까. 난 재빨리 머릿속의 지식들을 떠올리곤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굴은 부패가 쉬운 어패류인 만큼 보관에 주의해야 하고, 조리하기 전 반드시 상했는지 제대로 확인해봐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생굴 자체에 워낙 잡티가 많이 붙어 있기 때문에 세척에도 신경 써야 합니다. 이는 식감 때문만은 아니고, 위생과도 직결되기에 반드시 꼼꼼하게 씻어야 하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일단 제대로 대답은 한 거 같았다. 조리에 관해 물은 게 아니라 생굴의 취급에 대해 물었으니, 이 이상의 대답은 없지 싶었는데…….
“그래서 어떻게 씻으면 되는데?”
응? 화라도 나신 걸까? 어째 평소와 달리 목소리가 조금 딱딱한 느낌인데. 혹시 내가 잘못 대답하기라도 했나? 난 속으로 안절부절못하면서도 대답을 미루지 않았다. 사실 지금 김진호 셰프가 물은 것들은 어지간한 요리사라면 다 알고 있는 것이었으니까. 뭐, 실제로 그렇게 하느냐는 다른 문제라 하더라도 말이다.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소금으로 씻는 방법과 무즙으로 씻는 방법이…….”
“흐르는 물에 씻으면 안 되나?”
“아, 혹시 맹물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되물으며 눈치를 살폈다. 설마 진짜 몰라서 묻는 건 아닐 테고. 일종의 시험이란 얘긴데.
“……애당초 굴을 해수에 담가 운반하는 이유는 쉽게 부패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도 있거니와, 자칫하면 식감이 떨어지거나 굴 고유의 향이 달아나버리는 수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씻을 때 역시 담수만을 사용하기보단…….”
“그럼 해수로 씻으면 되지 않나?”
“해수는 말 그대로 바닷물이기 때문에 오염 여부를 알 수가 없어서, 운반용이 아니라면 사용하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비린내를 잡기 위해서라도 맹물로만 씻는 건 그다지 좋은 방법은 아닙니다.”
“계속해.”
“그렇기 때문에 소금을 이용하는 건데, 이때 절대 손으로 치대거나 빡빡 문지르지 말아야 합니다. 그랬다간 신선도가 떨어지고 굴이 뭉개지는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무즙을 이용하는 건데, 앞서 말씀드린 방법과 동일하게 숟가락이나 젓가락으로 살살 저어가면서 씻다가 3분여를 담가놓으면 불순물이 빠져나오게 됩니다. 그 후에 물로 헹궈내면 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할 수도 있었지만, 이 정도면 충분할 거라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김진호 셰프는 더 이상 따지거나 하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한차례 끄덕이곤 물었다.
“어느 쪽으로 할 거지?”
“예?”
“소금으로 씻을 건지, 무즙으로 씻을 건지 물었다.”
“아!”
난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저라면 무즙으로 하겠습니다.”
“그래? 그럼 해봐.”
아, 지금 나더러 하라는 건가? 본래 주방에서 식자재를 다듬는 일이 내 일이긴 하지만, 보통 식자재 자체가 음식 맛을 좌우할 경우엔 김진호 셰프가 직접 손을 쓰는 거로 아는데…….
“최준석! 굴 가져와.”
그때까지 주방 한구석에서 눈치만 보고 있던 준석이 형이 잽싸게 움직이는 게 보였다. 잠시 후 난 강판에 간 무즙으로 생굴을 씻기 시작했다. 스테인리스 믹싱볼에 무즙과 생굴을 넣고 조리용 수저로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저으면서 곁눈질로 바라보니 김진호 셰프가 팔짱을 끼고 바라보고 있었다. 어우 씨. 사람 간 떨리게. 딱 보니까 굴 한번 잘못 씻었다간 몇 날 며칠은 갈리게 생겼다. 젠장. 이러다 진짜 무즙처럼 갈리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머리 따로 손 따로. 잡생각 때문인지 평소라면 별거 아니던 일이 왜 이렇게 힘든지. 내가 봐도 서툴기만 한 손길.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에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정신이 번쩍 든다. 그제야 머리가 맑아지며 눈앞의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일정한 간격으로 수저를 저어주길 얼마간. 잠시 놔두자, 무즙이 검게 물들어간다. 굴에서 나온 불순물이 무즙에 흡수되는 것이다. 그걸 한 3분쯤 지켜보다가 엔간한 잡티는 다 빠진 거 같아 물에 헹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굴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려 하나하나 살폈다.
혹시 남아있을지 모를 모래나 깨진 굴 껍데기 등을 제거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가장자리의 검은 띠 부분에 잡티가 남아있을 수도 있기에 살살 비벼가며 물에 헹궜다. 햐, 알이 굵고 살이 통통하게 오른 게 한눈에 봐도 상급이다. 뿐만 아니라 살짝 누를 때마다 탱글탱글함이 느껴지는 걸 봐선, 딴 지 하루 정도나 지났을까 싶다. 그만큼 신선하다는 건데. 초장에 살짝 찍어서 씹으면 바로 터지면서 향긋한 바다 냄새가 입안 가득 퍼질 것만 같다.
“다 됐습니다.”
채반에 받쳐서 물기를 쏙 빼낸 굴들을 접시에 옮겨 담고서 말하자, 김진호 셰프가 앞으로 다가왔다. 어느새 손에는 젓가락을 들고 있었다. 그런 채로 굴을 살피는 김진호 셰프. 나 역시 바짝 긴장한 채 접시 위에 올려져 있는 굴들을 살폈다. 혹시라도 실수한 게 있나 해서. 씻기 전까지만 해도 누런빛이 흐르던 굴들은 어느새 뽀얀 우윳빛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러면서도 뭉개지거나 터진 건 보이지 않는다. 일단 겉만 봐선 손질이 잘 된 거 같긴 한데……. 설마 껍질이 씹히거나 하는 건 아니겠지? 슬슬 마르기 시작하는 입술에 침을 축이고 있을 때, 김진호 셰프가 젓가락을 들어 굴을 한 점 집어 들었다. 그러곤 눈앞으로 가져가 찬찬히 살피다가 이내 입안에 집어넣는다. 동시에 눈을 감은 뒤, 천천히 씹기 시작하는 셰프.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속이 다 타들어 가는 느낌이다. 고윤수 주방장님이 뭔가를 시킬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의 긴장감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제길, 한 일 년은 지난 거 같다. 얼마나 긴장했는지 다리가 다 후들거릴 정도가 되었을 때야 김진호 셰프가 눈을 떴다. 그러곤 날 보지도 않은 채 돌아섰다.
“최준석, 상에 올릴 준비해.”
후우! 안도감이 들며 맥이 탁 풀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난 씨익 웃고 말았다. 툭! 툭! 내 곁을 지나가는 준석이 형이 남들 모르게 내 어깨를 두드려주고 있었고. *** 저녁 식사를 무사히 마치고 난 후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준석이 형이 어깨동무를 해왔다.
“끄윽!”
다 좋은데, 목은 왜 조르는 거냐고요!
“수, 숨 막혀요!”
목줄을 죄는 팔을 몇 차례 두들기자, 그제야 형이 놔주며 웃어 보였다.
“자식, 제법이다?”
마른기침을 쏟아내곤 대꾸했다.
“아유, 형도 참. 굴 손질 한 번 한 거 가지고 무슨.”
“어쭈? 이게 어디서 잘난 척을! 얀마, 네가 몰라서 그러나 본데. 김진호 셰프가 보통 깐깐한 분이 아니시거든? 그런데도 봐라. 오늘 제대로 날 잡으신 거 같던데, 네가 제대로 하니까 더 이상 아무 말씀 안 하시는 거.”
“그러게요. 난 한소리 들을 걸 각오하고 있었는데.”
“그만큼 잘했다는 거지. 근데, 참 희한하네. 나 때랑은 좀 많이 다른데?”
“뭐가 말이에요?”
“뭐긴. 김진호 셰프가 주방 식구들한테 엄격한 분은 아니시지만, 그래도 함부로 일을 맡기거나 하시는 분은 아니거든. 뭐랄까. 공과 사를 확실히 하신달까. 눈치 빠른 너라면 이미 감 잡았지 않아? 굴이란 게 손질이 별거 아닌 거 같아도 어지간히 세심하게 하지 않으면 막 뭐 씹히고 난리도 아니잖냐. 그런데도 너한테 그걸 맡겼단 말이야. 거참, 무슨 생각이신지…….”
그러니까요. 주방 서열 제일 꼬라비인 나한테 왜 그러신 거래요? 내가 묻고 싶은 말이었다. 처음엔 그저 뭔가 가르쳐주시려고 그러나 싶었는데, 워낙 표정이 없는 분이라 그런지 어째 차갑기만 하던 김진호 셰프의 태도가 마음에 걸린다. 어쩌면 내가 짐작하던 것과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제가 뭐 실수한 거 있었나요?”
“응?”
“그러니까, 저도 모르게 셰프에게 뭔가 실례되는 짓을 했다거나, 혹은 건방진 모습을 보였다든지…….”
“에이. 그건 아니지. 내가 네 선배라서가 아니라, 너처럼 열심히 하는 놈이 또 어딨다고. 요리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진지한 놈이기도 하고 말이지. 성격도 그 정도면 나쁘지 않고.”
“와아, 형 지금 그걸 위로라고 하는 거예요? 저 성격 좋아요. 나쁘지 않은 게 아니고.”
“크크큭. 그래그래. 그렇다 치자.”
형은 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고는 턱을 매만졌다.
“내 생각엔 말이야.”
“설마 여기서 담배 피울 건 아니죠?”
딱히 금연구역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니지만, 알게 모르게 흡연구역은 주방 뒤쪽 공터와 숙소 옆의 벤치 정도로 정해져 있다시피 했기에 하는 말이었다.
“미쳤냐? 그냥 물고만 있는 거야. 얀마! 지금 형이 말하고 있는데!”
“예, 예. 계속하시죠.”
“큼, 아무튼……. 김진호 셰프가 널 좀 싹수가 있는 놈으로 본 거 같다는 게 내 생각이다.”
“예? 저를요?”
“요즘 고윤수 주방장님도 그렇고. 부쩍 너한테 잘해주시잖냐? 자식! 그동안 고생만 죽어라 하더니, 잘됐다.”
내가 이래서 이 형을 좋아한다. 보통 이런 경우엔 시기와 질투가 난무하고 어제까지 웃던 사람이 바로 싸늘한 표정이 되어 없는 사람 하기 일쑤인데. 준석이 형은 진심으로 기뻐해 주고 있었다. 그게 좋아서 난 코끝을 손가락을 문지르며 웃어 보였다. 뭐, 그건 그렇고.
“진짜 그럴까요?”
“마! 형이 하는 말이니까, 믿어도 돼.”
“아, 형이 하는 말이니까 그렇죠.”
“이 자식이!”
“아씨! 툭하면 발길질이야!”
“너 거기 안 서!”
“몰라요. 저 가요!”
“얀마! 오늘 같은 날 술 한잔 해야지!”
“형수님한테 미움받기 싫거든요! 형도 쫓겨나지 않으려면 얼른얼른 들어가라구요!”
숙소 쪽으로 달려가면서 손을 흔들자, 준석이 형이 낄낄거리며 담배를 든 손을 치켜드는 게 보였다. 요즘 다시 금연 모드로 들어갔다더니, 그새 못 참고 또 당기나 보다. 에휴. 이래서 담배는 애당초 배우면 안 된다니까. 난 고개를 내저으며 숙소 앞까지 내달렸다. 그나저나 진짜일까? 고윤수 주방장님이야 그렇다 치고, 김진호 셰프도 날 눈여겨보고 계신 걸까? 아냐, 아냐. 아직 확실하지도 않은 걸 가지고 붕 뜨고 그러면 안 되지. 김진호 셰프가 그런 분이 아니란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그동안 살면서 뒤통수 맞은 게 얼만데. 자꾸만 치켜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애써 내리는 동안 숙소 앞에 도착했을 때였다. 톡이 울렸다.
- 퇴근했어요?
- 난 아직 일하는 중인데.
- 아, 배고파. 자기가 끓여준 라면 먹고 싶다.
- 이따가 우리 집으로 라면 먹으러 올래요?
와아, 이 여자 봐라. 지가 깡패야? 어디서 요망한 발언을 해선…… 내 심장을 폭행하는 거지? ……갈까? 아우, 이러면 안 되는데……. 지금 이럴 때가 아닌데. 난 계단을 오르며 한숨을 연거푸 쉬며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어떻게 답장을 보내야 할지 감을 못 잡겠었어. 그때였다.
- ㅋㅋㅋ 지금 설렜죠?
- 근데 우리 집에 가면 엄마도 계시고, 할아버지랑 할머니랑 삼촌들이 있는데……. 그래도 올래요?
헐! 완전 날 들었다 놨다 하네? 기가 막혀서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있을 때였다.
- 분하죠?
- 화나죠?
- 그럼 당장 저 잡으러 와요.
젠장! 가슴이 또 뛴다. 이거 아무래도 병이지 싶은데? 아니면 이 여자한테 점차 길들여지는 건가? 난 고개를 내저으며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곤 외투를 벗어 침대 위로 던지곤 핸드폰을 들어 답톡을 보냈다.
- 일하느라 많이 힘드셨나 보네요. 그래도 굶지 말고 제대로 먹고 일해요. 지금은 괜찮은 거 같아도 나중에 늙으면 몇 곱절로 고생하니까. 전 막 들어와서 씻고 자려고요.
잠시 기다려봤지만, 답이 없다. 바쁜 일이라도 있나? 음, 숫자가 사라진 거로 봐선 읽긴 한 거 같은데. 어깨를 한차례 으쓱해 보이곤 옷을 벗었다. 그러곤 샤워실로 들어가기 전에 핸드폰을 한 번 더 확인해봤지만, 역시나 답톡이 온 건 없었다. 신경 쓰지 말자. ……라고 생각했지만, 계속 신경이 쓰여서 샤워도 하는 둥 마는 둥 하곤 나왔다.
“뭐야? 기껏 답톡 보냈더니만.”
수건으로 물기를 닦곤 속옷을 갈아입은 뒤 침대에 막 눕는데 톡이 날아왔다. 그것도 엄청난 속도로, 연달아 날아들고 있었다.
- 진짜 뭐양.
- 여자가 들이대는데, 잠이 와요?
- 앙. 얄미워.
- 그래도 쿨한 내가 한번 참는다.
- 아씨!
- 집착해달라고요!
- 나 집착 좋아한다니까!
- 나만 시크한 걸로 하쟀잖아요!
- 맨날 나만 질척거리는 거 같아.
- 미워!
크크큭.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생긴 거랑 달라도 이렇게 다르냐? 진짜 귀엽네.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답톡을 보냈다.
- 집착까진 모르겠고, 이번 주말에 시간 돼요? 안 되면 말고.
기다릴 틈도 없이 톡이 날아든다.
- ㅎ 나한테 푹 빠지셨나?
- 근데 어쩐다?
- 나 그렇게 쉬운 여자 아닌데?
- 좀 더 밀어붙여 봐요.
- 그럼 혹시 알아요?
- 넘어가 줄지.
참네. 어디서 밀당질을. 키득거리며 쌈박하게 날려줬다.
- 포기하죠.
곧바로 날아드는 톡.
- 앙! 진짜 뭐예요!
- 언제, 몇 시, 몇 분! 어디서 보면 되는데요?
- 아니다. 내가 태우러 갈게요.
- 토요일날 볼까요? 아니면 일요일?
- 일요일에 보죠.
- 가면서 전화할 테니까.
큭큭큭. 앙앙거리는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하다. 피식 웃고는 톡을 보냈다.
- 그럴 거까진 없고. 저번에 된장국 먹고 싶다고 했지 않아요? 끓여 줄게요. 아, 그러려면 지난번처럼 바에서 봐야 하냐?
-- 마침 잘됐네. 언니가 그날은 일찍 연다고 했는데. 그럼, 거기서 봐요. 근데 몇 시?
- 글쎄요. 조금 일찍도 괜찮은데.
-- 아, 그럼 오전에?
- 설마 아침 해달라는 건 아니죠?
-- 그거 좋다앙. 아침 해주는 남자. 매력 있다.
- 그럼, 그때까지 밥도 안 먹고 기다리려고요?
-- 점심 일찍 먹으면 되죠.
- 그래요. 그럼.
-- 오케. 그럼 그때 봐요.
-- 잘 자요.
-- 내 꿈 꾸고.
이하연과 나눈 대화들을 보다가 눈을 감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꿈에서 그녀를 볼 수는 없었다. 너무 피곤해서 그런지, 아예 꿈을 꾸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녹다운 되다시피 해서 잠이 들고, 아침 해가 뜨기도 전에 눈을 뜬 나는 시간을 확인하곤 서둘러 숙소를 나섰다. 아침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서.
“어, 일찍 나오셨네요?”
덩치가 나보다 큰 혜순이 누나를 보면서 인사하자, 누나는 푸근한 인상으로 순박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새, 새벽에 깼는데……. 잠이 안 와서.”
몇 마디 하지도 않고선 쑥스러운지 얼굴을 붉히는 누나를 보고 있으니 어째선지 수연이 누나 생각이 났다. 닮은 구석이라곤 1도 없는데도.
“그럼 좀 쉬고 계세요. 어차피 제가 식재료 다듬어야 나물도 무칠 수 있으시잖아요.”
“……아, 아냐. 나도 도울게.”
“그러실래요?”
고개를 끄덕이곤 내 옆으로 다가온 혜순이 누나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시금치를 다듬기 시작했다. 나 역시 한쪽에 자리를 잡고선 식자재 손질을 시작했고. 그때 문이 열리며 인기척이 느껴졌다. 돌아보니……. 응? 김진호 셰프가 이 시간에 왜? 의아해져서 쳐다보고 있을 때, 김진호 셰프가 날 불렀다.
“서진영.”
“예?”
“제누와즈 만들 줄 아나?”
……어? 지금 내가 제대로 들은 거 맞나? 어느새 김진호 셰프를 바라보는 내 눈동자가 풍랑을 만난 배라도 되는 듯 흔들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