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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시운전 (2) (11/204)

#11. 시운전 (2)2020.10.25.

하기야 놀라기도 했을 테지. 느닷없는 얘기도 얘기거니와 그녀로선 족집게도 그런 족집게가 없을 테니까. 지금도 봐라. 그녀는 마치 날 돈암동 아리랑고개 어디쯤에 있는 점술집 옥동자, 아니 백호장군동자 보듯 하고 있다. 음, 그러고 보니 나레이션이 알려주는 정보도 따지고 보면 신기처럼 일종의 치트인 셈이니까 아주 틀린 말도 아니려나? 아무튼, 현재 상황을 즐기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속으로 웃고 말았다. 자, 그럼 이 소소한 즐거움을 계속해서 이어 가볼까?

“제 말이 맞죠? 속이 막 더부룩하고, 가끔 쓰리기도 하지 않아요? 모르긴 몰라도 가끔 체하기도 할걸요?”

“대박! 신 내렸어요?”

눈만 크게 뜬 게 아니라 입까지 벌리곤 연신 헐, 대박, 쩐다 따위를 외치는 그녀를 보다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요전에 받았던 명함 때문인지는 몰라도 꽤 성숙하게 느껴지던 그녀가 이제야 제 나이로 보인달까. 뭐, 실제 나이는 모르지만.

“진짜 어떻게 알았어요? 응? 말해봐요!”

“참네. 누가 영업비밀을 그렇게 쉽게 알려줘요?”

“앙! 쪼잔해! 그러지 말고, 말해줘요. 저 궁금한 거 있으면 잠도 잘 못 자는 성격이란 말이에요.”

“자, 일어나죠.”

“아앙! 치사빤스!”

헐. 치사빠, 빤스? 웬 아재 개그를. 근데도 귀여워 보이는 건 둘 중 하나겠지. 예쁘면 다 용서된다는 말이 진리이기 때문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내가 지금 제정신이 아니거나.

“가죠.”

옅게 미소를 지어 보이곤 먼저 일어났다.

“아아앙!”

그녀가 뒤쪽에서 투정 부리듯 두 손을 털며 발을 동동거리는 게 느껴졌지만, 그저 웃을 뿐이었다. *** 이미 그녀의 속사정(?)을 전부 알려주곤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다 했다는 듯 사라져버린 나레이션이었다. 그래도 상관은 없다. 데이트 코스까진 아니라도 약하디약한 그녀의 위장을 고려하면 최소한 무얼 먹어야 하는지는 알고 있으니까.

“골라봐요. 죽 먹으러 갈래요? 아니면 된장찌개 먹으러 갈래요. 아, 청국장은 먹을 줄 알아요?”

“죽은 별론데…….”

“왜요? 죽이 얼마나 맛있는데. 잣죽, 전복죽, 야채죽, 소고기죽, 호박죽, 미역죽, 게살죽, 팥죽, 홍합죽, 김치죽, 콩나물죽…….”

걸으면서 손가락을 꼽으며 죽이란 죽은 다 얘기하고 있자, 어느샌가 이하연이 걸음을 멈춘 채 날 쳐다본다. 아무 말도 않고 있지만, 들리는 듯하다. 헐! 하고 외치는 게.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봐요. 많죠? 입맛대로 고를 수 있잖아요. 그래도 싫으면 삼계탕은 어때요? 닭고기가 소화도 잘되니까 괜찮을 거 같은데.”

“누가 요리사 아니랄까 봐. 근데, 지금 말한 죽……. 다 만들 줄 알아요?”

“뭐, 가능하죠. 레시피만 알면 누구라도 만들 수 있는 게 죽이니까. 것보단 얼마나 정성을 들여 끓이느냐가 진짜 죽 맛을 내는 비결이긴 하겠지만.”

“방금 그 말 좋다.”

나참, 진짜 이 여자. 종잡을 수가 없다. 가끔 이상한 부분에 꽂히는 걸 나로선 이해하기 어렵다.

“그럼, 만들어 줄 수도 있겠네요?”

“예? 아, 뭐……. 그렇긴 하죠.”

“그래요?”

응? 뭐지? 뭔가 불길한 예감이……. 아니나 다를까.

“그럼 만들어줘요.”

이번엔 내가 헐! 이다.

“저기요. 저 오늘 쉬는 날이거든요. 그리고 만들려고 하더라도 어디서…….”

음,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이하연이 그 커다란 눈을 반달처럼 만들더니 활처럼 휘며 눈웃음을 짓고 있었으니까. 그러더니 핸드백에서 리모컨을 꺼내 어디론가 향해 내뻗는다 싶은 순간이었다. 삑! 자연스레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시선을 돌려보니 도롯가의 주차구역에 서 있는 검은색 세단이 라이트를 점멸하고 있었다.

“마침 제가 아는 언니가 요 근처에서 바를 하나 하거든요.”

“아, 예……. 바요.”

예상치 못한 전개에 나도 모르게 죽상이 되어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 이하연의 아는 언니가 한다는 바로 가기 전 들러야 할 곳이 있었다. 다름 아닌 마트. 아, 그냥 사 먹으면 안 되나? 요즘 죽집 많잖아? 것도 아니면 인스턴트 죽도……. 이건 좀 아닌가? 대기업에서 양산해내는 반조리 식품들을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내 입으로 위장이 어떻고, 건강이 어떻고 한 주제에 인스턴트 죽을 사서 전자레인지에 돌려먹자고는 차마 말하지 못하겠다. 후우, 하는 수 없지. 그래, 이왕 왔으니 제대로 해보지 뭐.

“무슨 죽 먹을래요?”

“뭐가 있다고 했죠? 잣죽, 전복죽, 야채죽, 소고기죽, 호박죽, 미역죽, 게살죽, 팥죽, 홍합죽, 김치죽, 콩나물죽…….”

손가락을 일일이 꼽아가며 내가 말한 걸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외고 있는 그녀. 이하연, 이 여자……. 천잰데? 와씨. 이건 반칙이잖아. 카페에 있을 땐 몰랐는데, 나오면서 보니까 몸매도 장난 아니던데. 예쁘기만 한 것도 아니고 잘록한 허리가 돋보이는 슬렌더한 몸매에 머리까지 좋고 집안까지 좋으면 그거야말로 사기캐 아님? 혀를 내두르며 다시금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더 이상 보고 있다간 상실감만 커질 것 같아서 얼른 걸음을 옮기려는데, 그녀가 물어온다.

“홍합죽 맛있어요? 혹시 비리거나 하진 않아요?”

“그러니까 볶아야죠. 이렇게, 기름에 달달.”

웍을 쥔 듯한 손을 흔들면서 홍합을 볶는 시늉을 해 보이자 이하연이 깔깔 웃는다. 이게 재밌나? 거참 이상한 여자네.

“근데 그거 알아요?”

“예? 뭐가요?”

“하연 씨. 아, 이렇게 불러도 되죠?”

“음. 원래 나오기 전에는 오빠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거든요.”

“근데요?”

“근데 지금 보니까 이것도 좋은 거 같아요. 느낌 있달까?”

“뭐가요? 제가 하연 씨라고 부르는 게?”

마트 매장으로 들어서며 주거니 받거니 하는 동안, 몇 명인지 모를 남자들이 이하연을 힐끔거렸는지 모른다. 음, 이건 이것대로 부담스럽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괜히 어깨가 으쓱? 설마 나 관종인가? 아, 위험하다 위험해. 설사 지금 이 순간 여태까지 인지하지 못했던, 내가 주목받는 걸 몹시 즐기는 성격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진짜 이건 아니지. 내가 잘나서도 아니고, 다른 사람의 힘을 빌려 관심을 받으며 즐거워하다니. 호가호위가 따로 없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나도 모르게 쓴웃음이 나온다.

“앙! 뭐양! 말 시켜놓고 자긴 딴 생각하는 거 진짜 매너 없잖아요!”

“아, 죄송. 사람이 많아서 정신이 없다 보니.”

“쳇. 웃는 거 내가 다 봤거든요.”

“진짜 죄송해요. 이제부턴 집중할게요. 그러니까 다시 말해봐요. 뭐라고 그랬죠?”

“아, 몰라아!”

등을 돌리고 보란 듯이 식품매장 쪽으로 쏙 들어가 버리는 이하연이었다. 마치 자신이 화났다는 걸, 아니 삐쳤다는 걸 보여주기라도 하려는 듯이. 크큭, 그러면서도 카트는 왜 밀고 가는 거야? ***

“이걸론 뭐 만들 수 있어요?”

“당근이라……. 알다시피 요리하는 데 필수는 아니지만, 이런저런 요리에 쓰이긴 하죠. 그래도 역시 생으로 갈아서 먹는 게 가장 좋겠죠. 먹기가 좀 그러면 사과랑 함께 갈아도 좋고.”

“그럼 저건? 아, 고구마는 원래 우리나라에서 나던 게 아니라면서요?”

“예. 멕시코가 원산지인데, 그게 15세기쯤엔가 콜럼버스에 의해 스페인에 전파되었다죠. 그러다가 포르투갈 사람이 말레이와 필리핀 그리고 중국으로 차례차례 전달한 게 결국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로 들어와……. 하아, 계속해요? 지루하지 않아요?”

“아뇨. 재밌어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 이하연. 그녀의 머리 뒤쪽으로 포니테일 스타일로 묶인 머리칼이 허공에서 춤추듯 흔들거리는 게 눈길을 끈다. 진짜 이상한 여자다. 이런 얘기가 재밌을 게 뭐가 있다고.

“얼마 전에 빠스를 만들었는데…….”

“아! 빠스! 맛탕 말하는 거 맞죠? 나 좋아하는데.”

자꾸만 옆길로 새는 얘기. 그런데도 대화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그건 그렇고. 거진 한 시간이나 식품관을 돌면서 이러고 있는데……. 아직도 카트가 텅텅 비어있는 건 무엇?

“이제 슬슬 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아!”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를 보며 말하자, 이하연이 아차 싶은 표정을 지어 보인다. 그러면서도 살짝 아쉬운 듯한 눈빛이었다.

“재밌다 보니까 시간 가는 줄도 몰랐네요.”

“예, 예.”

“앙? 영혼 1도 없다?”

“그러니까요! 완전 즐거웠죠?”

“쳇. 엎드려 절받는 기분. 응? 저건 뭐예요? 아앙. 귀영!”

“아, 그거요. 노루궁뎅이 버섯.”

“풋. 진짜?”

“요즘 많이 나오잖아요. 설마 마트 안 와봤어요?”

이하연은 내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노루궁뎅이 버섯을 만지작거리며 까르르거렸다. 그러면서 묻는다.

“이걸로도 죽 만들 수 있어요?”

고개를 끄덕여주자, 덥석 집어 든다.

“그럼 나 이걸로 할래.”

그렇게 결정되었다. 오늘의 메뉴가. *** 삐비빅! 번호키를 누르자 도어락 풀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철문을 연 이하연을 따라 가게 안으로 들어갔을 때, 팟하는 느낌으로 전등이 들어오며 시야가 밝아졌다.

“아무도 없네요?”

“저녁이나 돼야 오픈하거든요.”

“아……!”

바를 와본 건 처음이지만, 그래도 명색이 요리사다. 당연히 이쪽 계통의 가게들이 대충 어떻게 돌아가는지쯤은 알고 있다.

“언니한텐 톡 보내놨으니까, 문제 될 건 없어요.”

그녀는 시간을 확인하곤 다시 말했다.

“지금이 두시니까, 세 시간 정도 여유가 있네요.”

그러더니 바 의자를 하나 골라 걸터앉고는 두 손으로 턱을 받치곤 날 바라본다.

“자, 그럼. 요리사님, 죽 만들어줘요.”

레오파드……라며? 이게 어디가? 어떻게 봐도 토끼인데? 나보다 두 배는 큰 것처럼 느껴지는 눈을 깜박거리며 쳐다보는 시선에 헛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언제고 기회가 된다면, 잡아당기면 귀가 발딱 일어나는 모자를 씌워봐야겠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래서 주방은 어딘데요?”

잠바를 벗으며 물어보지만, 이하연은 어깨만 으쓱거릴 뿐이었다.

“저야 모르죠.”

한숨을 내쉬곤 바 안쪽으로 들어갔다. 어디 보자. 가스레인지도 있고, 도마랑 칼도 오케이. 웍이나 냄비는……. 어, 저기 있네. 굳이 주방까지 들어갈 필요는 없겠는데? 제일 먼저 한 일은 멥쌀을 물에 담가놓는 거였다. 원래대로라면 못해도 두 시간은 불려야겠지만, 그렇게까지 시간은 없으니까 조금만 불렸다가 블렌더에라도 돌려야겠지. 다음으로 바 안쪽에 놓여있는 가로형 냉장고 위에 도마를 내려놓곤 마트에서 사 온 식재료들을 다듬었다. 그걸 바 한쪽에 있는 싱크대에서 씻고는 먹기 좋게 썰기 시작한다. 다다다다다다다다닥. 칼질을 하는 나를 이하연은 여전히 두 손으로 턱을 괸 채로 보고 있었다.

“지루하죠?”

“전혀요.”

“그럼 다행이고요.”

“재밌어요. 그러니까, 전 신경 쓰지 말아요.”

그렇다면야. 나는 다듬고 썰어낸 식재료들을 담아둘 곳을 찾았다. 밧드가 있으면 좋겠지만, 아쉬운 대로 선택한 건 접시. 아마도 안주용으로 쓰이는 거로 짐작되는 제법 큰 접시였다. 자, 그럼 이제 조리를 시작해볼까나? 아까 물에 담가놓았던 멥쌀을 바 한쪽에 놓여있는 블렌더에 쏟아붓곤 버튼을 누른다. 기계음과 함께 갈려 나가며 금세 허옇게 물드는 블렌더 안. 그걸 또 이하연이 재밌다는 듯 눈을 빛내며 보고……. 아, 다시 느끼지만 눈 진짜 크네. 근데, 저 정도로 속눈썹이 길면 불편하지 않나?

“진짜 이상하죠?”

“예? 뭐가요?”

“눈을 보호하라고 있는 게 속눈썹인데, 눈에 뭐가 들어갔다 싶어서 빼보면 속눈썹이고.”

“흡큭.”

의도하긴 했는데, 제대로 터졌네. 이하연이 코를 마실 것처럼 웃는다. 그 모습에 픽 웃고는 다시금 조리에 집중했다. 블렌더 안에서 적당히 갈린 쌀을 냄비에 붓고서 불 위에 올렸다. 물기가 날아갈 때까지 볶다가 썰어놓은 당근, 양파, 호박을 같이 넣고 볶는다. 비율은 멥쌀 한 컵에 당근 1/4, 양파 1/2, 호박 1/4이다. 그렇게 노릇노릇한 빛이 돌 때까지 볶다가 물을 한 여섯 컵 정도 붓고는 쌀이 익었다 싶을 정도까지 끓인다. 거기에 해동해놓은 칵테일 새우와 잘게 찢어놓은 노루궁뎅이 버섯을 집어넣는다. 바글바글. 이제 마지막으로 소금을 넣어 간을 맞추고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냄새 좋다.”

이하연이 처음으로 턱에서 손을 떼곤 깍지를 낀 채 눈을 감는다. 그 상태로 냄새를 맡는지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며 미소 짓고 있다. 눈을 감은 쪽도 나쁘진 않네. 아니, 눈을 뜨고 있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려나. 헤유. 내가 지금 뭐라는 거냐. 어차피 오늘이 지나면 다시 볼 사람도 아닌데. 쓴웃음을 지으며 막 고개를 내저으려는 찰나였다.

“뭐에요? 지금 그 표정?”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 거 같은데?”

“참네. 아니라니까 그러네요.”

“음. 이번만 넘어가 주죠. 근데, 저거 막 끓는데, 저러다 넘치는 거 아니에요?”

“거의 다 돼서 그래요. 좀만 기다려요.”

잠시 후, 내가 말했던 것처럼 노루궁뎅이 새우 죽이 완성되었다.

“먹어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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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와! 앗, 뜨뜨……!”

뭔 성격이 저리 급해? 가스레인지에서 내렸다고는 해도 아직 펄펄 끓고 있는 죽을 냄비째 떠먹는 여자라니. 저러다가 입천장이라도 데면 어쩌려고.

“와!”

“왜요? 맛없…….”

“와!”

“……?”

“우리 가게 내요!”

“에?”

“다 때려치우고 저랑 가게 하자고요. 이거 팔면…… 완전 대박 날 거라니까요!”

“……칭찬?”

끄덕끄덕. 고개를 끄덕이는 거로 모자라 엄지척까지 해 보인 이하연이 미친 듯이 죽을 퍼먹기 시작한다. 물론 뜨거워서 연신 앗뜨를 외치면서. 그런 그녀를 보다가 나 역시 그릇에 죽을 덜며 말했다.

“장이 안 좋은 데는 속이 편한 음식이 최고예요. 그렇다고 해서 상큼하거나 신선한 게 좋다는 건 아니니까 너무 샐러드만 먹지 말고요. 뭐, 소화가 잘되는 음식도 좋긴 하지만, 가장 좋은 건 발효음식인데, 알다시피 우리나라 음식 중엔 발효음식이 많잖아요? 가령 김치라든가, 된장찌개, 청국장……. 음료도 될 수 있으면 유산균이 잔뜩 들은…….”

탁. 응? 뭔 소리……? 쳐다보니 이하연이 숟가락으로 냄비를 두들긴 채 손을 멈추고 있다. 그런 채로 묻는다. 다소 차가운 음성으로.

“어디로 떠나요?”

한 템포를 쉬고 고개를 내저었다.

“……아뇨.”

“그런데 왜 그래요? 다시 못 볼 사람처럼?”

“그야……. 그냥 걱정되니까 하는 말이죠. 참네, 예민한 성격이네, 진짜. 걱정해줘도 난리야.”

“그래요?”

“아, 먹기나 해요. 죽 다 식어!”

“그럼 이제부터 우리 1일?”

흠칫. 아, 뭔 개소리래. 뭐가 1일이야, 1일은. 근데 왜 가슴은 두근거리고 난리야?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머뭇거리고 있을 때였다. 부으으으으. 핸드폰이 진동했다. 응? 얜 또 웬?

“아, 웬일?”

- 너 내일 뭐 해?

느닷없이 물어오는 강형식에게 대답했다.

“뭐하긴 쉬지. 일요일이잖아.”

- 진영아, 그럼 나랑 내일 어디 좀 가자.

“어디?”

- 흐흐흐. 피닌파리나 세르지오, 정비 끝냈거든. 퍼펙트하게!

“피, 피닌……. 뭐?”

- 지난번에 본 차 있잖아. 페라리!

“아, 그 빨간 차?”

- 크큿. 그래 그 빨간 차. 그거 타고 간만에 좀 달려볼까 하고. 코에 바람 좀 넣고 오자는 거지. 왜 싫어?

나쁘지 않지.

“그러지 뭐.”

뚝. 헐! 지금 전화 끊은 거야? 와, 성격 진짜……. 고개를 내젓고 있을 때였다. 따라라라, 따라……. 귓가에, 아니 머릿속에 예의 그 BGM이 들려온 것은. 그리고……. - 강형식은 지금 너무 들떠있다. 근래 들어 누구 때문에 기운을 차린 그는 당장이라도 페라리 피닌파리나 세르지오를 타고 질주하고 싶어 하지만, 그러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다. 텐션이 너무 낮은 것도 문제지만, 너무 높은 것도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란 걸 그는 아직 모르고 있다. 들을수록 황당한 표정이 되어가는 내 머릿속으로 계속해서 나레이션이 들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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